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49화 (149/204)
  • 149회

    미국 시애틀.

    누들 출판사.

    숀은 어딘지 신이 나 보였다.

    어제 업로드된 한국작가 이상의 연재소설.

    그 내용이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상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숀.

    <그 집>의 판매 순위가 떨어졌을 때에는, ‘그럴 줄 알았지, 순문학 작가가 그렇지 뭐.’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전세는 바뀌었다.

    조나단 란스마이어 감독.

    백인인 숀조차 존경해 마지않는 그가 <그 집>을 맡는다고?

    그 충격을 떨쳐 내는 데에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 이상이라는 작가.

    어떤 인간인지는 몰라도 사고뭉치인 건 확실하다.

    “크리스, 크리스. 이상이 오늘 올린 소설 봤어? <지팡이> 말이야.”

    크리스는 처음부터 <그 집>을 밀어붙인 심사위원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숀의 반대파.

    숀은 크리스가 당황하거나 짜증을 내길 바랐지만, 크리스는 덤덤할 뿐이었다.

    “어, 봤어.”

    “문학박사님이 보기엔 어때?”

    숀은 크리스의 학위를 가지고 빈정거렸다.

    크리스는 그런 숀을 물끄러미 보았다.

    숀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이상 그 사람, 혹시 제국주의자가 아닐까? 한 마디로 친일파인 거지.”

    “…넌 소설가가 갱단 얘길 쓰면 갱단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촌스럽긴.”

    “하지만 한국인 작가가 친일파를 주인공 삼아 소설을 쓰는 건 좀 다른 문제 아냐?”

    “네가 뭔데 함부로 다른 나라 작가를 판단해? 미국 땅은 떠나 본 적도 없는 주제에.”

    “얘들아, 좀! 그만해.”

    듣다 못한 파멜라가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별수 없이 한 발 물러났다.

    누들의 최고참 파멜라의 말을 거역할 순 없었다.

    “지겹다, 너네도. 대체 또 왜 그러는데?”

    “파멜라, 너 이상의 <지팡이> 봐?”

    숀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니. 연재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좀 바빠서. 장르 소설도 아니잖아.”

    “지금 봐 봐. 금방 읽을 수 있어.”

    “숀 너는 이상 작가한테 은근히 관심 많은 거 같다?”

    미국에서 이상은 그렇게까지 유명한 작가는 아니었다.

    작가나 예술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조금 있는 수준.

    물론 영화 <그 집>의 흥행에 따라 그의 입지도 달라지겠지만.

    “보면 알아. 우리가 왜 이러는지.”

    숀이 말했다.

    파멜라는 하는 수 없이 이상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영어판 <지팡이>의 조회수가 어마어마했다.

    파멜라는 좀 놀랐지만, 이내 이해가 됐다.

    유럽권에서 이상은 이미 ‘핫’한 작가였다.

    유럽 독자층은 기본적으로 영어 독해를 할 줄 아니, 이 숫자엔 그들도 포함되어 있을 거였다.

    ‘한 편에 몇 센트 안 하긴 하지만… 이걸 다 환산하면, 돈도 엄청 벌었겠군, 부럽다.’

    파멜라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팡이>를 보기 시작했다.

    …대단히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21세기 미국인에게 20세기 한국은 낯선 세계.

    그럼에도 어찌나 묘사와 서술에 능숙한지, 또 어찌나 번역이 유려한지.

    파멜라는 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역시 대단한 작가인 건 맞아. 순문학 특유의 지겨움이랄까.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글 자체의 깊이가 남달라.’

    파멜라는 글 읽는 속도가 빨랐다.

    게시판에 올라온 분량을 거의 다 봤을 때였다.

    “어?”

    그녀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친일파의 아들한테 접근한다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야. 나중엔 일본을 찬양하는 시까지 쓴다고.”

    숀이 신나서 말했다.

    크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이윽고 파멜라가 모든 화를 다 봤다.

    이야기는… 하융이 시를 쓰는 데서 끝이 났다.

    “어떻게 생각해?”

    그 물음을 한 건 의외로 크리스.

    그 역시 <지팡이>의 독자 반응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파멜라는 곰곰이 생각했다.

    “독자들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스토린데? 게다가 모국의 독자들을.”

    “욕을 먹고 싶은가 보지.”

    숀이 빈정댔다.

    “아니야.”

    파멜라가 똑 부러지게 말했다.

    “욕하기엔 일러. 아직 이 시를 어떻게 하는지는 나오지 않았잖아. 여기서 주인공 캐릭터가 갈릴 거야. 이거….”

    그녀가 피식 웃었다.

    “미친. 이거 정말 흥미진진하잖아?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서 그런가? 난 정말 재밌는데?”

    “뭐?”

    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더 흥미진진한 게 뭔지 알아?”

    크리스가 끼어들었다.

    “<지팡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야.”

    “그런 것도 봤어? 크리스?”

    “구글링 좀 했지. 뭐… 팬이니까?”

    크리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서, 일본 쪽은 뭐래?”

    “좋아하겠지. 일본을 찬양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이 한국에서 발표됐는데.”

    숀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 우익들이 <지팡이>를 보고 날뛰었고.

    일본 내에서도 <지팡이>는 이상하게 해석되고 있었다.

    이상이 일본의 눈치를 봐서 그런 글을 썼다는 무식한 말들 말이다.

    그래도 크리스가 보기엔 한 줄기 희망은 있었다.

    크리스는 그들에게 유튜브 영상을 하나 틀어 줬다.

    영상에 나온 건 백발이 성성한 일본인 원로 평론가.

    뉴스 인터뷰로 보이는 그 영상에서 기자가 물었다.

    ― 최근 이상의 <지팡이>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그 안에 친일행위를 하는 조선인을 다루고 있어 한일 양국 모두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원로 문학인으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먼저, 친일행위를 하는 인물을 그리는 것이, 작가의 친일행위라 해석하는 대부분의 몰지각한 해석에 대해서 반대표를 던지는 바입니다.

    크리스가 숀을 슬쩍 보았다.

    숀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 저는 일본의 독자들과 일본 문학계가 <지팡이>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고자 합니다. 지금껏 한국문학에서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루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일제를 비판하거나 혹은 무심하거나. 이에 따라 일본의 반응도 갈렸지요. 비판을 당하면 수긍을 하거나 반발을 했고, 무심하게 굴면 우리도 무심하게 굴었습니다. 하지만….

    원로 평론가는 숨을 한번 새액― 내쉬었다.

    ― <지팡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사실 어렵습니다. 지금껏 우리가 본 적 없는 인물형이거든요. 하융의 친일행위는… 겉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자의 행동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소설을 제대로 봤다면 알 수 있죠.

    ― 무엇을 말입니까?

    ― 그것은… 대단히 인간적인 선택이란 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자도 무엇을 물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자 원로 평론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 하융은 조선이나 일본과 같은 거시적 분류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자입니다. 하융 그 자체로만 남길 바라는 거죠. 즉, 한 나라에 소속된 국민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남길 선택한 겁니다. 저는 하융이 다소 과격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실존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본인으로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진 않습니다. 자칫하다간 저 역시 제국주의를 찬양한단 오해를 받겠죠. 동시에 우익들의 반발을 사겠고요. 참 어려운 일이지만… 이해합니다. 여론이란 그런 법이니까요.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다.

    내내 못된 소리를 하던 숀조차도, 이 인터뷰에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지팡이>가 대단한 작품인 건 맞는 것 같아.”

    파멜라가 입을 열었다.

    “세상을 이렇게 놀라게 하잖아. 안 그래?”

    “…인정해. 내가 보기엔,”

    크리스가 말했다.

    “이상은 ‘20세기 한국인’이라는 존재의 범위를 넓힌 거야. 자신의 환경을 비판하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저항하는 인간을 만드는 거지. 넓게 보면, 인간의 범위까지 넓힐 수 있을지도.”

    두 사람은 물끄러미 숀을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묻는 표정들이었다.

    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얼굴은 조금 벌게진 채로.

    그리고 이내.

    “화장실 좀.”

    하고 사무실을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남은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파멜라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집> 캐스팅 끝났다고 하지 않았나?”

    * * *

    심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가능하면 연구실로 들려줄 수 있느냐는 거였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지팡이> 때문에 여러모로 속 시끄러워진 지금.

    심 교수와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국대학교에 도착한 후.

    나는 인문대 건물로 바로 올라갔다.

    인문대라 그런지, 간간이 학생들이 날 알아봤다.

    신기함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의문이 섞인 시선들.

    <지팡이>와 그에 대한 언론의 질타 때문이겠지.

    심 교수의 연구실 앞.

    나는 노크를 했다.

    들어오란 외침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심 교수는 이미 소파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어어, 어서 와요.”

    “조교분은 없네요?”

    “방학인데 뭘 부르겠어. 일단 앉아요.”

    새삼 친절을 보이는 심 교수.

    테이블의 차며 과자며, 조교도 없이 교수가 이런 걸 챙기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지팡이> 일로 내가 많이 속상해할 거라 생각한 걸까.

    “요즘 기분이 어때요?”

    그가 물었다.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별다를 게 있나요. 집필을 하면 지겹고 지루하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으니까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려고 노력을 해요.”

    심 교수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차를 들었다.

    “그래도 내가 지도교수랍시고, 이상 작가의 작품과 기사들은 모두 챙겨 봐요.”

    “…감사합니다.”

    “요즘은 속이 좀 상하던데. 내 제자가 필요 이상 욕을 먹는 것 같아서.”

    여기서… 내가 할 말은 하나겠지.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뭐, 나한테 죄송할 건 없어요. 내 명예 치켜세우자고 이 작가가 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

    “….”

    “한 가지 재밌는 점이 있던데요.”

    “재밌는 점이요?”

    “그래요. 해외에서는 <지팡이>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이상 작가의 의도와 미학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고 봐도 무방해요. 심지어 일본조차도 <지팡이>의 함의에 주목하죠… 아, 물론 우매한 인간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긴 하지만.”

    심 교수가 무슨 얘길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며칠 전 일본의 원로 평론가가 인터뷰를 했다.

    <지팡이>의 하융이 국민이 아닌 인간이 되길 선택했다는 인터뷰 말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일본 여론과 우익 단체의 질타를 동시에 받았다.

    나는 그가 자신에게 닥칠 일을 충분히 예상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런 소신 있는 인터뷰를 해 준 걸 보면, 어느 나라건 원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심 교수가 계속 말했다.

    “요는 어쨌건, <지팡이>의 해외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에요. 문제는… 한국의 반응이겠죠. 아시다시피.”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평론가들이야 의견이 분분하지만, 여론은 확연하게 <지팡이>에 비판적이다.

    인터넷에서 내 이름이 거론되기만 하면, 그 페이지는 곧 전쟁터로 변할 정도로.

    언론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팡이>를 쓴 이유를 여러 각도로 넘겨짚지만, 결국엔 내 역사의식을 걸고넘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때, 심 교수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했다.

    “한국 독자들이 미운가요?”

    “…예?”

    “한국 독자들이 밉냐고 했어요. 이상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해 주지 않잖아요.”

    나는 바로 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모국에서 이렇게까지 욕을 먹는 작가는 흔치 않다는 것.

    “…잘 모르겠어요. 미운 건 아니지만, 내심 서운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해되기도 하고요.”

    말을 뱉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독자들의 마음을 진지하게 생각했을까?

    ‘설득’한다고 했지만… 과연 어떻게?

    좋은 작품으로 설득을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추상적이기만 한 목표였다.

    심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난 한국 독자들이 유난히 더 화를 내는 이유를 알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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