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48화 (148/204)
  • 148회

    틸 버켈이 <지팡이>에 대한 글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내가 연재를 시작한 직후.

    그는 SNS에 이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 <이 완벽한 시작을 보라>

    ‘지팡이’란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그리고 그것이 20세기 초반 조선의 경성을 배경으로 한 소설의 제목임을 알았을 때, 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한계에 대한 것인가 극복에 대한 것인가. ‘지팡이’ 안에는 절름발이라는 회생 불가한 장애의 이미지와 그 장애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이미지가 모두 들어있다. 이 이중적인 함의를 모두 갖춘 이 단어를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실과 동떨어진 채 바라본다면 그만큼 얄팍한 해석이 어디 있겠는가.

    즉, 이 소설은 ‘지팡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이상 필연적으로 20세기 초반 조선 역사와 발맞출 수밖에 없다. 또한 작가 이상이 밝힌 것처럼 이 소설은 장편을 넘어 대하소설의 형식을 갖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 역시 <지팡이>에 필연적인 흐름이다. 한 시대의 여명과 그 시대에 태어난 한 인물의 삶을 비추기엔 장편은 너무나도 짧기 때문이다. 이상은 이 모든 필연적 요소를 기적적으로 한 작품에, 아니, 단 1화에 짜 넣었다. 이 이상 완벽한 시작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시작된 그의 글은, 하융의 존재적 불안과 그것의 함의를 기대하며 끝났다.

    내가 이 글을 번역본을 봤을 때 즈음.

    <지팡이>는 독일에서 적잖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아마도 틸 버켈의 덕이 컸겠지.

    그렇게 먼 곳에서 날 응원했던 틸 버켈.

    이번에는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했다.

    그는 과연 하융의 ‘매국 행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철학자로서, 또 전범국의 후손으로서 말이다.

    지훈은 틸 버켈의 이번 리뷰를 출력하며 말했다.

    “형 글이 워낙 논란이니까요. 틸 버켈이 SNS에 글을 올리자마자 네티즌들이 번역을 했더라고요.”

    “잘됐네. 이런 예민한 시기에 해 놓은 번역은 믿을 만하지.”

    한 마디라도 잘못 번역했다간… 욕먹기 십상이니.

    여러모로 인터넷 세계는 참 무섭다.

    나는 지훈이 건네준 틸 버켈의 리뷰를 읽기 시작했다.

    ― <20세기의 자화상, 절름발이>

    최근 이상의 <지팡이>의 전개에 대해 말들이 많다. 독일도 전범국으로서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는 아니기에, 참 많은 사람이 내게 와 묻는다. 왜 이상은 ‘저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을까라고. 물론 난 모른다. 그와 딱히 대단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따로 물어볼 만큼 예의가 없지도 않다.

    독일이 이럴진대, 한국의 소란함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유럽식으로 표현해 볼까. 이건 마치 나찌를 흠모하는 운명을 가진 유대인 소년의 이야기와 같다. 유럽인들이여, 이제 한국의 독자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팡이>는 그만큼 위험하며, 당황스럽고… 동시에 매혹적이다.

    “매혹적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단어가 나오기 전까진.

    틸 버켈마저 <지팡이>를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계속 읽어 나갔다.

    ― 불안한 유년기를 거친 인간의 반골, 반항 기질은 아주 강렬하다. 어쩌면 그 분노는 애국이라는 선의와 윤리보다도 강력한 행동강령이다. 아니라고? 당신은 그릇된 분노보다 선한 의지와 애국 윤리에 마음에 더 간다고? 그럼 손을 모으고 당신의 운명에 감사하단 기도를 바쳐라. 당신은 당신이 성장하기까지 알게 모르게 대단히 많은 혜택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성격 형성을 완성했으니. 진정으로 불안한 이들은, 게다가 가정과 사회에서 동시에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불안감을 느끼며 자라난 이들은 선의보다는 반항과 분노가 먼저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이게 ‘문제아’의 존재 방식이며, 인간의 불편한 모습 중 하나다.

    내가 아는 한 소설은 도덕이나 윤리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예술이다. 하융은 특별할 것도, 대단히 정의로울 것도 없는 가장 보통의 인간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나와 당신처럼. 그것을 인정했으면 한다. 우리는 대단하고 특별한 이의 이야기를 듣고자 소설을 보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가 봐야 하는 건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그러나 우리 안의 깊숙이 자리한 수천 개의 얼굴을 가진 ‘인간성’이라는 걸.

    틸 버켈의 글은 내게 엄청난 위안을 줬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을 만큼.

    철학자가 바라본 문학의 본질.

    그 본질 속에 ‘인간성’이 있다는 건, 작가인 나조차도 감동스러울 정도의 명문이었다.

    사실 이 정도의 글을 받았다면, 감사 인사를 보내는 게 예의였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런 치레를 보이면… 그는 오히려 싫어하리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이상 당신이 아니라 <지팡이>에 대해서 한 말이니, 고마워할 이유가 없다’라고.

    내가 보답할 길은 한 가지였다.

    주눅 들지 않고, 내 길을 가는 것.

    그가 말한 ‘인간성’을 하융을 통해 제대로 보여 주는 것.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하융을 자라게 하자.

    반골의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되도록.

    * * *

    ‘팀 이상’ 번역 회의.

    회의야 많이 해 왔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남다르다.

    요즘 내게 쏟아지는 여론의 질타.

    두 사람 모두 그것이 신경 쓰였겠지.

    지훈은 항상 내 곁에 있으니 불안감이 크지 않다.

    하지만 금홍은… 적잖이 내 눈치를 본다.

    이럴 줄 알고 오늘 회의 장소에도 신경을 쓰긴 했다.

    꽤 쾌적한 카페의 2층을 통째로 빌린 것이다.

    기분 전환도 하고, 마음껏 작품 얘기도 할 수 있게.

    나는 그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시작하죠.”

    “아, 예… 이번 원고는 25화까지죠?”

    금홍이 말했다.

    그녀가 미리 보고 온 원고에 필기가 가득했다.

    “이즈음 되면 책 한 권 분량 나오지 않아요?”

    지훈이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지금 10화 정도 서비스되고 있으니… 비축분은 좀 있는 편이네요. 그런데, 종이책으로 내실 거죠?”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래도 대하소설이면 내셔야죠.”

    “내긴 낼 건데… 완결이 나면 한꺼번에 낼까 했지.”

    ‘구매율’이라는 건 뒤로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도서 시장의 원리라는 게 원래 그렇다.

    1권을 보고 2권을 안 볼 순 있어도, 1권을 안 보고 2권을 보는 사람은 없으니.

    안 그래도 <지팡이>는 민감한 작품이다.

    언론도 초반의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슬슬 냉담하고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매율 하락’이라는 지표는 홈페이지와 신―문학에서 드러내는 거로도 충분하다.

    굳이 종이책 지표를 기삿거리를 줄 순 없지.

    “지금은 연재에 집중하려고.”

    “음… 좋아요. 종이책으로 나오면 표지나 북디자인이나 신경 쓸 게 많아지니까요.”

    “아무튼, 그럼 회의를 좀 시작해 볼까? 금홍 샘은 어떻게 읽었어요?”

    “저는… 사실 굉장히 재밌게 읽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금홍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걱정돼요.”

    “재밌는데 왜 걱정이 돼요?”

    “하융이가 경성제국대학, 그러니까 조선 최고의 대학 인문학도가 되잖아요. 그리고 글쓰기로 자신의 내면을 풀어놓기 시작한 점이 좋았아요. 하융이란 캐릭터와 정말 잘 어울리잖아요. 하융은 대학에서도 입으로만 독립이니 애국이니 떠드는 치들을 싫어하죠.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고고한 척하는 ‘먹물’들이라면서요.”

    “일종의 포즈Pose를 취하고 있는 이들이죠. 한 마디로 폼을 잡는.”

    나는 첨언했다.

    전생에 대학에 다니던 시절, 그런 학생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술자리에선 자기 멋에 취해 독립을 주장한다.

    하지만 동기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가기라도 하면, 겁을 잔뜩 먹고 경찰을 피해 다닌다.

    혹시 자기에게 어떤 피해라도 올까 봐.

    그런 그들을 보며 난 생각했다.

    저렇게 세상을 기만할 바에는, 차라리 일관되게 무심한 태도를 가지자고.

    금홍은 이어 말했다.

    “맞아요.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런 지식인 흉내를 내는 이들이잖아요. 그래서 하융이 문학성으로 그들의 기를 죽이는… 어떤 천재성을 보여 주는 부분이 굉장히 통쾌했어요. 또 한 가지 묘했던 점은, 하융이 조선인 교수에게 이런 말을 듣잖아요. 자네가 조선 문학을 살리는 희망이라는.”

    아, 그 부분.

    나도 꽤 신경을 써서 표현한 부분이다.

    하융의 문학을 눈여겨본 조선인 교수.

    그는 하융을 몰래 불러 이런 말을 한다.

    교수라 해도 조선인은 조선인.

    게다가 제국대학은 일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곳.

    교수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한다.

    ― 자네가 조선의 문학을 살려야 해. 자네야말로 조선 문학의 희망이야.

    지훈도 한 마디 덧붙였다.

    “저, 그 부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융이 그때 느낀 감정이요. 부모도 나라도 자신에게 해 준 게 없고 폭탄 돌리기의 폭탄이 된 것 같은 유년기를 보냈는데 조선의 희망이라니… 하융은 거대한 아이러니로 빠져들고 만 거예요. 왠지 억울함도 들 테고.”

    “하지만… 그 뒤의 내용이….”

    금홍이 입술을 살짝 씹었다.

    난 그녀를 대신하듯 말했다.

    “맞아요. 집으로 돌아와 일본제국을 찬양하는 시를 쓰죠.”

    우리 세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금홍 샘.”

    “…네.”

    “이 부분 번역, 정말 잘 살려 주셔야 해요. <지팡이> 1부의 정수나 다름없으니까요.”

    금홍은 대답하지 못했다.

    지훈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

    나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하융이 거대한 아이러니에 빠졌다는 지훈이의 말, 저도 공감해요. 문제는 여기에서 이 하융의 캐릭터가 극적으로 형성된다는 데에 있어요. 맞아요. 하융은 일본제국을 찬양하는 시를 써요. 하지만 이건 어느 나라를 찬양하는 차원의 정치 행위가 아니에요. 갑자기 자신에게 덮어 씌워진 ‘조선 문학의 희망’이는 굴레. 이걸 벗어 던지는… 일종의 행위예술이죠. 그리고 그 증거가 바로 뒷부분에 나오고요.”

    “시를 바로 등잔불에 태워 버리는 행위요?”

    지훈이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굳이 그런 부분을 쓴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맞아. 그것이 하융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야. 어느 쪽에도 서기 싫은 깊은 반항심을 그런 행위로 승화하지. 조선과 일제 모두에 모욕을 주는 방법으로. 그렇게 반항심이 한소끔 승화된 후에는, 다신 그런 시를 쓰지 않잖아.”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어찌 됐건 하융이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쓴다는 내용.

    그 내용이 공개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비난이 쏟아질지도.

    하지만 그 역시 견뎌 보고 싶었다.

    내가 그려낸 인간의 성장 과정의 그늘.

    그 안에 그런 종류의 충동이 없을 건 또 무엇인가.

    특히 하융과 같은 인간에게.

    다만, 문제는 개연성이다.

    독자들을 심정적으로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는가.

    바로 그 지점에 <지팡이>의 승패가 달렸다.

    “다들 마음 단단히 먹자고요. 앞으로 지금보다 더한 욕을 먹을 수도 있으니.”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들은 긴장했지만, 어딘지 결연한 표정이었다.

    욕먹는 건 두렵지 않다는 어떤 확신들 말이다.

    “하지만 혹시 알아요? 그 비난들이 머잖아 새로운 반전으로 뒤집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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