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47화 (147/204)

147회

연남동의 모 파인 레스토랑.

서인희 기자는 피터 한 교수와 마주 앉아 있다.

우아한 자태로 와인잔을 빙빙 돌리는 피터 한 교수.

그와 달리 서인희 기자는 이 자리가 어색하다.

팀장이 허락한 취재비 삼십만 원.

그것을 깨끗하게 모두 털어 쓰게 하는 가격.

그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음식들과 분위기.

무엇보다도… 이 모든 걸 한껏 즐기는 벽안의 혼혈 교수.

피터 한 교수는 이 자리가 즐거운 것 같았다.

능숙하게 식사와 와인을 고르고, 처음엔 침묵을 지키는 듯하더니, 음식 재료에 대한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뭘까, 이 사람. 시니컬함과 잘난 척이 공존하는….’

하지만 서 기자는 워낙 성격이 좋았고,

상황도 상황이니 일단 비위를 맞춰 주기로 했다.

메인 요리가 나올 때 즈음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로 분위기도 좀 풀렸을 때, 서 기자가 물었다.

“교수님께선 이런 곳을 자주 다니시나 봐요.”

“몸과 관련된 모든 걸 가리는 편이라서요. 음식도 마찬가지죠.”

“하하… 그러시군요.”

‘…어련하시겠습니까.’

“사람도 가려요. 특히 기자분들을 좀 꺼리는 편이고.”

갑자기 훅 들어 온 공격 아닌 공격.

하지만 서인희 기자도 베테랑 인터뷰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대부분 안 좋아하시죠.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저와 같으시네요.”

“네?”

“저도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을 하고 싶어서 나온 거거든요. 뭐, 이 레스토랑도 좋아하긴 하지만.”

그리고 와인으로 입을 한 모금 축이는 것이다.

서 기자는 바로 알아봤다.

바로 지금 중요한 인터뷰가 시작될 거라는 걸.

그녀는 아까 양해를 구하고 켜 놓은 녹음기를 확인했다.

녹음 버튼이 잘 눌려 있었다.

기자로서 물어봐야 할 건 정해졌다.

이상이 <지팡이>를 쓴 동기.

<지팡이>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생각.

하지만 인터뷰이가 ‘할 말’이 있다면,

준비해 왔던 질문보다 중요한 내용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

“<지팡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작품 자체에 대해 할 말은 없습니다. 그건 작가님이 하실 말씀이죠.”

피터 한 교수가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그의 암녹색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하지만 독자분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반응이라면….”

“많이들 하융을 민족적 투사 혹은 조선의 역사를 대변하는 캐릭터로 본다죠?”

“네. 그런 종류의 비평도 많이 나왔고요.”

“하하….”

피터 한이 낮게 웃었다.

“왜 웃으시는 건가요?”

서 기자가 침착하게 물었다.

“한국의 입시 교육이 너무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입시… 교육이요?”

“네. 저는 한국의 교육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국어 과목 교육론은 공부해 본 적이 있어요. 한국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청소년들이 배우는 학문은 일종의 코드가 필요합니다. 사회가 주입하고 싶은 가치와 연결 가능한 문학을 교과서에 넣거나, 혹은 그런 가치로 해석의 방향을 잡아 버리곤 하죠. 작가의 본래 의도완 별 상관 없이. 뭐, 그게 교육의 역할이긴 하죠. 아이들을 착한 어른으로 기르는 것.”

서 기자는 가만히 그의 말을 들어 보았다.

그녀도 국어국문학과 출신이었다.

고등교과서의 문학 작품 해석이, 실제 작가의 의도와 얼마나 다른지는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작품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조국의 독립 염원. 둘째, 피폐한 식민지 현실에 대한 좌절. 여기서 벗어난 주제의식을 찾긴 힘들어요. 이에 한 가지 공식이 생겨납니다. 일제강점기 작품은 모두 조국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

서 기자는 마치 학교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그럼 <지팡이>도….”

“네. 철저히 그 공식 안에서 해석들을 하시더군요.”

피터 한 교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들,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신 거죠. 한국 사람들, 참 성실하고 착하다니까요.”

비웃음과 빈정거림 그사이 어드매.

피터 한 교수의 화법에 난감한 건 서 기자였다.

‘기사엔 말투를 좀 순화해서 적어야겠어.’

하지만 일리는 있었다.

하융이 민족애국지사가 될 거라는 독자들의 기대.

서 기자 역시 그 기대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기대하시는 대로 읽고, 해석하시는 거겠죠. 한국인들이 바라는 주인공상, 아니… 영웅상으로요.”

“맞습니다. 똑똑하시군요.”

피터 한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서 기자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얼른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 작가님이 하융이란 인물을 창작한 동기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작가님과 그런 얘길 해 본 적은 없어서. 그냥 제가 생각하기엔….”

“….”

“본인을 많이 투영하신 듯했습니다.”

“어떤 면에서요?”

“고집스러운 면이.”

“<지팡이>의 하융이 고집스럽다고요?”

오늘 자 연재본의 하융은 아직 어린아이다.

부모를 잃고 친척의 눈치를 보는 어린아이.

아직 하융의 성격이랄까, 그런 건 드러나지 않는데?

순간, 서 기자는 생각했다.

이 사람이 번역자라면….

“앞으로 나올 <지팡이>의 이야기군요?!”

피터 한 교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며칠 전 이상 작가에게 새로운 원고를 받았습니다. 그 원고를 받고 정말 정말 즐거웠어요. 밤이 새도록 번역을 해도 피곤한 줄도 모르겠습니다.”

“어… 내용을 물어선 안 되겠지만, 작은 힌트라도 주실 수 있을까요?”

“이 정도는 말할 수 있겠네요. 독자 여러분들의 ‘교과서적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될 것 같습니다.”

서 기자는 그 발언에 대해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러나 피터 한은 교묘하게 대답을 피했다.

그런 실랑이 아닌 실랑이 끝에… 결국 대답 듣기를 포기한 서 기자가 물었다.

“흐음… 그럼 혹시 <지팡이>를 사랑해 주시는 독자분들께 남기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을까요?”

피터 한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물로 입안을 한 번 헹군 후, 냅킨으로 입술을 닦을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이 한 마디를 드리고 싶습니다.”

“….”

“소설 속 캐릭터에게 자신의 기대를 반영하지 마세요.”

“…아.”

“대신, 그 캐릭터가 살아가는 삶을 일단 지켜봐 줬으면 해요. 인간이 인간에게 하듯이 말이에요.”

* * *

어제, <지팡이>의 7화가 공개됐다.

드디어 하융이 친일인사의 아들과 접촉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그리고 오늘 올라간 8화.

8화는 7화보다 좀 더 나아갔다.

친일인사의 아들과 친해지고 소소한 덕을 보는 내용이니.

똑똑.

집필을 하던 중, 누군가 작업실을 노크했다.

사실 ‘누군가’라고 할 것도 없지.

집에 있는 사람은 지훈뿐이니까.

“어, 들어와.”

달칵.

열리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지훈의 얼굴.

자못 진지했다.

뭐, 대충 예상은 가지만 말이다.

“저, 형… 독자 반응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지훈이 조심스레 물었다.

집필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 독자 반응을 살피는 일은 지훈에게 맡긴 상태.

지훈은 웬만한 반응은 내게 굳이 전달하지 않았다.

칭찬도 비판도, 건설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지훈의 선에서 처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전달해야 한다면, 지훈이 보기에도 사태가 심각한 모양이다.

“응, 얘기해 보자.”

우리는 회의용 테이블에 앉았다.

지훈은 가지고 온 종이를 덮어 놓고 내 눈치를 봤다.

녀석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누가 보면 소설은 네가 쓰는 줄 알겠다.

“그… 형이 요즘 올리는 내용에 대한 반발이 너무 커요.”

“음. 그렇겠지.”

“….”

“좀 더 솔직하게 말해도 돼.”

“왜 매국노 소설을 쓰냐고….”

“일단 보여 줘.”

나는 종이를 가리켰다.

지훈은 내 시선을 피하며 종이를 내주었다.

신―문학 댓글 창을 인쇄한 내용이었다.

― ? 지금 하융 뭐하는 거? 이거 친일파 소설이었냐?

― ㅋㅋㅋㅋㅋㅋㅋ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이런 소설이 나와도 됨? 이상 실망이네. 잘나가는 작가면 이렇게 조상들 욕보이는 글 써도 되나? 일본이 좋으면 일본으로 꺼지시던가.

― 아 난 진짜 너무 실망이다… 하융의 흔들리는 내면? 그거 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거 아냐? 꼭 친일까지 가야 했을까… 뭔가 내가 다 상처받은 느낌이다. 다시는 이상 글 못 볼 듯.

― 일단 좀 두고 봅시다. 연재잖아요. 내일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모르는 거 아닙니까?

― 아무리 다음편에 내용이 달라져도 친일을 한 건 변하지 않는 사실 아니에요? 이걸 내 돈 주고 결제했다니. 후회스럽네요. 전 하차할래요.

극히 일부만 봤는데도, 비판들이 엄청났다.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안 좋을 줄은 몰랐는데.

지훈이 황급하게 덧붙였다.

“아, 물론 저는 이해해요. 저번에 ‘팀 이상’ 회의할 때도 말씀드렸잖아요. 당시 조선인의 도리가 애국이었다면, 그것에 반대되는 행위, 그러니까 매국 행위에 사춘기인 하융이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고요.”

지훈이 말끝을 흐렸다.

‘팀 이상’에서도 걱정했던 부분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밀어붙였다.

하융의 캐릭터 성립에 꼭 필요한 내용이니까.

일종의 ‘빌드업’이라 해야 하나.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견디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쌓아야 하는 서사적 단계다.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부정적이어서요.”

“피터 한 교수 인터뷰도 별 소용 없었군.”

며칠 전 Y일보에서 낸 피터 한의 인터뷰.

<지팡이>가 교과서적인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없단 말.

그리고 캐릭터의 삶을 지켜봐 달란 말.

난 그 인터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마음을 저토록 잘 알다니.

역시 일류 번역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심 생각했다.

그의 인터뷰가 독자 반응을 좀 희석해 주지 않을까 하고.

…나야말로 괜한 기대를 걸었던 것 같지만.

난 지훈에게 물었다.

“평론가 반응은 어때?”

내가 지금 살펴야 할 두 번째 집단.

바로 평론가들이었다.

이런 윤리적인 논의가 나올 때, 평론가 반응과 독자 반응은 갈리기 마련.

그들은 대체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했다.

“그것도 좀… 애매해요.”

“애매하다고? 뭐가?”

“음… 원로 평론가들과 젊은 평론가들의 의견이 좀 갈리는 추세거든요.”

“재밌네. 어떻게?”

“원로 평론가들은 하융이 지금은 매국 행위를 하지만 나중에는 애국지사가 되는 게 소설의 옳은 방향이 아니겠냐고 넌지시 말하고 있어요.”

“나보고 그렇게 쓰라는 거구만.”

“…그렇죠.”

그것은 은근한 압박이었다.

원로 평론가들이 젊은 작가에게 곧잘 가하는.

“젊은 평론가들은?”

“음… 대체로 조심스러워해요.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평론가들은, 캐릭터를 캐릭터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그들의 행동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고요. 피터 한 교수의 말이 좀 통한 거죠.”

다행이었다.

피터 한 교수도 헛고생을 한 건 아니라서.

지훈이 덧붙였다.

“물론 자로 선을 그은 것처럼 편이 나눠진 건 아니에요. 그냥 경향성이 그렇다는 거죠. 원로 평론가들 중에서도 피터 한 교수의 말을 인용하신 분도 계시고요.”

“당연히 그렇겠지. 나도 이해해. 너는 아직 아무 말 안 했지?”

“음… 네. 하지만 맘 같아선 쓰고 싶어요.”

연재를 시작할 때에, 나는 지훈에게 부탁했다.

<지팡이>에 대해 쓰고 싶은 글이 있어도, 연재가 끝날 때까지만 참아 달라고.

반드시 써야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지훈과 나의 친분은 이미 문단에서 유명하다.

괜히 내 편을 들었다간, 피해를 보는 건 내가 아니라 지훈이다.

평론가들은 타인의 글을 가지고 자신의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작가보다 ‘사회적 위치’가 중요할 테니, 괜한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너까진 쓰지 않아도 돼. 그냥 모른 척하고 있어.”

“으… 알았어요. 제가 참아야죠. 그런데… 수정 계획은 없죠?”

지훈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나는 단박에 대답했다.

“없어.”

“그럴 줄 알았어요. 후… 얘기하니까 저도 좀 후련하네요. 해 보죠, 뭐. 못 먹어도 고!”

그렇게 우리의 회의는 불안을 다독이며 끝났다.

아니, 끝난 줄 알았다.

다음 날 저녁, 지훈이 ‘새로운 곳’의 반응을 들고 오기 전까지.

벌컥!

“형!”

“어?”

막 기지개를 켜던 때, 지훈이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틸 버켈이 <지팡이>에 대한 글을 썼어요.”

‘새로운 곳’은 바로 독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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