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회
Y 신문사 문화부.
언제나 번잡하고 시끄러운 문화부 기자실.
서인희 기자는 열심히 기사를 퇴고 중이었다.
음악계, 문단, 미술계 등의 예술계 인터뷰를 도맡은 그녀는 항상 바쁘다.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인터뷰 실력에 진급도 목전.
이런 상황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렇게 힘차게 타이핑을 하던 중, 문화부 팀장이 그녀를 불렀다.
“거기, 서 기자.”
“아, 네.”
“잠깐만 이리 와 볼래?”
서인희 기자는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대머리가 또 무슨 소릴 하려고….’
하지만 그녀는 프로 사회인.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팀장의 자리로 종종 갔다.
“부르셨어요.”
“이상 작가 인터뷰, 아직이야?”
황당했다.
‘아오, 진짜. 인터뷰 안 받아 준다고 세 번은 말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 연락은 해 봤는데 <지팡이> 집필 끝날 때까지 인터뷰는 모두 거절하신다고 하셔서요.”
“하이, 참! 서 기자!”
“…네?”
“기자가 돼서는 작가가 인터뷰 거절한다고 예~ 알았습니다~ 하고 사무실에 있는 거야?”
“아… 계속 연락을 드리고 있긴 합니다만. 그 어느 매체와도 인터뷰는 안 한다고 못 박으셔서요.”
변명은 아니었다.
예술가들에게 기삿거리를 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가들은 연예인과 비슷하다.
어떤 예술가들은 자신을 취재해 주기만을 기다리지만… 어떤 예술가들은 기자라는 족속 자체를 싫어했다.
기사가 그들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상도 따지고 보면 후자였다.
그나마 서인희 기자와는 안면을 좀 튼 정도.
팀장도 그걸 알기에 서 기자에게 억지를 부리는 거지만.
바짝 올라섰던 팀장의 눈썹이 사르르 내려왔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며 그녀를 불렀다.
“하아… 인희야.”
“…예?”
“너 그 작가랑 좀 친하잖아. 아니, 기자 중에서 네가 제일 친하다며. 너 아니면 Y일보에서 누가 이상 인터뷰 따겠어, 응?”
…이번에는 회유인가.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서 기자에겐 지겨울 따름이었다.
‘작가가 싫다는데 어떻게 인터뷰를 따라는 거야. 삼류 인터넷 신문사들처럼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급습이라도 하란 건가?’
“인희야.”
“…예.”
“지금 문화계에서 이상 작가 신작 얘기가 좀 많이 돌아다니니? 그리고 그게 한국 문화계만의 얘기야? 세계 문단에서 다 그 얘기 하고 있을 거다. <지팡이>를 왜 썼는지, 갑자기 왜 그런 애국적인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뭔지! 그리고 그런 걸 썼을 때, 지금까지 우호적이었던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은지!”
팀장이 소리를 꽥 질렀다.
딱히 서 기자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잔뜩 흥분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감이 팍 오지 않니?! 생각해 봐. 이거 한국인이 얼마나 좋아하는 기삿거리냐? 잘 좀 해 봐. 너 진급도 해야지, 인마. 어? 내가, 내가 취재비도 줄게. 좋은 데서 같이 식사하고, 말 좀 나누고 와 봐.”
그는 대뜸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짠돌이 팀장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 처음 본 팀원들.
모두 경악스런 얼굴로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놀란 거 서 기자도 마찬가지.
“아, 왜 이러세요… 팀장님!”
서인희 기자는 극구 거절했지만,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신용카드가 쥐어졌다.
“…삼십만 원. 그 안에선 쓰고 싶은 만큼 다 써.”
그즈음 되니 서 기자는 팀장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그 역시 윗선에서 한 소리 들은 모양이다.
혼자 회의실로 들어간 서 기자.
한숨부터 나온다.
“후우….”
사실 이상 작가의 인터뷰를 그 누구보다 따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었다.
이상이 대체 왜 <지팡이>를 썼는지… 그녀 자신도 대단히 궁금하기 때문이다.
<지팡이>에 묘하게 드리운 조국에 대한 반항의 감정.
그를 오래 봐 왔던 서 기자는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이상만의 의도가 있을 거라는 걸.
그녀는 아직도 쥐고 있는 팀장의 카드를 바라봤다.
‘뭐. 코딱지만 한 취재비보다는 이게 낫겠지만… 작가님이 설마 돈으로 넘어갈까.’
뭐, 그래도 밑져야 본전.
좀 무식한 표현이긴 하지만, 들이받아 보는 것도 기자의 덕목이었다.
이상은 이미 취재를 정중하게 거절한 상태.
서 기자가 선택한 이는… 지훈이었다.
그녀는 지훈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 여보세요?
지훈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저 Y일보의 서인희 기자입니다.”
― 아, 기자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음… 그게….”
서 기자는 생각했다.
FM으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차라리 정과 친분을 자극하자.
그녀는 방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웃으며 말했다.
불쾌하지 않게, 상대가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아니나 다를까.
지훈이 숨이 넘어가라 웃어 댔다.
― 으하하하하하!!! 사비로 삼십 만원이나요?!
“네… 그 카드 지금 제가 쥐고 있답니다.”
― 어휴… 곤란하시겠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이상 작가님 대면 인터뷰는 이제 바라지도 않아요. 그러니 서면 인터뷰나… 아! 매니저님이랑 인터뷰를 해도 괜찮아요. 그렇게 간접적으로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 아이고, 잠시만요. 일단 형한테 물어볼게요.
“작가님께요?”
― 네.
생각보다 일이 간단하게 풀릴 것 같기도 했다.
서인희 기자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수화기 저 너머로, 다시 한번 으하하하하하 하고 웃어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이 삼십 만원 사건을 전한 거겠지.
이즈음 되니, 서 기자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잠시 후.
― 서 기자님?
“작가님!”
서 기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상 작가와 통화를 할 수 있다니.
혹시 지금 당장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건가?
그녀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 Y일보에 감사하다는 말.
그리고… 완결할 때까진 그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말.
“아… 그렇군요. 그래도….”
― 하지만 간접적인 인터뷰라도 괜찮으시다면, 수를 좀 내보죠.
“네? 정말이세요?”
― 네. 저희 팀 내에서 얘길 좀 해 볼게요. 조금 이따가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네! 그럼요. 정말 감사해요. 작가님.”
― 뭘요.
그렇게 통화가 마무리 된 후.
서 기자는 회의실을 나가지 못했다.
한 손엔 카드를, 한 손엔 휴대폰을 든 채 초조하게 기다릴 뿐.
쓰고 있던 기사는 잊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십여 분 후.
딩―
하는 소리와 함께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상의 문자였다.
― 인터뷰를 해 주실 분이 있긴 합니다. <지팡이>를 번역해 주시는 대한외대 피터 한 교수님이라고 아시는지.
* * *
사실 피터 한 교수가 인터뷰에 응한 건… 나로서도 좀 의외였다.
‘팀 이상’ 단톡방에 올린 메시지의 내용은 이랬다.
― <지팡이> 집필과 관련한 가벼운 인터뷰를 해 주실 분 있나요? 부담 갖지 마시고 아시는 만큼만 대답하시면 돼요. 삼십 만원의 접대비를 쓰신다는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낯을 가리는 금홍이야 거절할 게 뻔했고.
피터 한 교수는… 관심이 없을 것 같았다.
지훈조차도 결국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피터 한 교수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 원하는 레스토랑으로 예약을 잡아 주시면 가능.
정말, 고작 삼십 만원이 그의 흥미를 끈 걸까.
대체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아무튼 인터뷰는 그들에게 맡기고.
나는 계속 집필에 집중하는 중이다.
<지팡이>의 초반부 집필 속도는 아주 빨랐다.
반골과 외로움.
이 두 가지가 뒤섞인 캐릭터 ‘하융’.
소설에서 그 꼬마는 하루하루 힘겹게 자라났다.
친척 집을 전전하던 하융을, 결국 할아버지가 전적으로 도맡게 된다.
자식들의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 희생자가 된 셈이다.
할아버지는 뒤늦게 하융에게 정을 주려 하지만, 하융의 불만 많고 고독한 자아는 이미 만들어진 상태.
그는 집 밖을 나돌기 시작한다.
청소년이 된 하융.
그는 자신이 이미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골라 사귀기 시작한다.
하융이 선택한 이는, 그 고장의 유명한 친일인사였다.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그 콩고물을 받아먹는.
선택의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세상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불행한 운명의 심기를.
세상의 도덕이 그에게 가라고 하는 길.
그 길의 정확히 반대로 가고 싶었다.
친일인사와 직접적인 친분을 쌓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융은 그의 아들에게 접근한다.
조선인들 사이에서 친일인사의 집안은 두려움과 경멸의 대상이다.
해를 끼칠까 무서운 동시에,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경멸의 시선을 던지는.
하지만 하융은 하등 상관없었다.
그는 나라고 독립이고 하는 것들이 귀찮고 실감도 나지 않았다.
하융은 생각한다.
독립?
그걸 하면 좋기야 하겠지.
하지만 무엇에 좋지?
‘정신’이나 ‘자부심’ 따위에?
하융은 그런 순진한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저 위층부터 독립의 수혜를 받고, 그 남은 것들을 그 밑층이 받고, 또 남은 것들은 또 밑층이 받고 그러다 보면… 아주 먼 훗날에야 이득을 얻을 수 있겠지.
하융이 이런 마음가짐이었으므로, 친일인사의 아들과 단짝이 된 건 어렵지 않았다.
친일인사가 하융을 어여쁘게 생각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 사람의 직업은 총독부의 건축기사였다.
하융은 그의 도움으로 총독부를 구경 가기도 했다.
‘현대적’인 게 뭔지를 뽐내는 듯한 멋진 건물 양식.
절도 있고 근엄한 군인들.
한눈에 봐도 비싼 옷을 입은 양복쟁이들.
하융은 ‘현대적’이라는 것에 푹 빠져 버렸다.
똑똑한 하융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이 호감이,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반역’일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그의 짧은 삶이 말해 주지 않던가.
아버지도, 집안 어른들도 믿을 게 못 된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보다 더 큰 ‘조국’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믿겠는가.
누가 그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할아버지는 하융을 때려 가며 그 정신을 고쳐 놓으려 했지만, 그러기엔 하융이 너무 자라 버렸다.
이제 하융은 사춘기 소년이었다.
남들이 하라고 하는 건 하기 싫었고, 하지 말라고 하는 건 하고 싶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사춘기를 보내던 하융.
그는 곧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친일인사의 아들이 그에게 묻는다.
― 나는 곧 일본군에 입대하여 대동아전쟁에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려 한다. 너도 같이 가겠어?
하융은 바로 거절했다.
그는 일본이 좋아 친일인사에게 접근한 게 아니었다.
또는 조선이 싫어 반골 행위를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애국이니 조국이니 하는 눈에 안 보이는 가치들.
그런 것들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 하융이 사랑하는 건, 일본이 가져온 현대적 문물일 뿐.
일본 그 자체는 아니었다.
전쟁을 나가라고?
전쟁의 가치 역시 애국이나 똑같이 추상적이었다.
게다가 폭력적이기까지 하니 더 나쁘지.
그건 총독부 건물의 디딤돌 하나만큼도 아름답지 않았다.
다행히 친일인사에게 받은 게 많지 않았다.
‘아직은’ 할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기 전이었고,
친일인사의 지원이 끊겨도 좋은 학교는 갈 수 있었다.
하융은 친구는 그에게 화를 내고 떠난다.
아니, 이젠 친구라고 부를 수도 없겠지만.
“…흠.”
나는 거기까지 쓰고 내용을 마무리했다.
하융의 성장기의 중요한 전환점인 이 부분.
그의 반골 기질과 실리주의가 부디 잘 전달되길.
독자들은 하융을 좋아한다지.
일제강점기 트라우마를 치유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하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건 그런 애국지사가 아니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가치들.
그 가치들을 배반하고 갈등하는 존재의 탄생이며, 그의 아이러니한 삶이다.
이 글을 읽고 어떤 반응이 올까.
불안하다.
하지만 동시에… 적잖이 기대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