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45화 (145/204)
  • 145회

    피터 한 교수가 메일로 번역본을 보내왔다.

    따로 덧붙인 말은 한마디.

    ― Good luck.

    그답게 깔끔한 응원이었다.

    물론 그동안 나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지팡이>를 총 5회로 나누고, 그것을 일본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지훈이 정보를 흘린 효과가 있었는지, 또 신라문학의 홍보 덕분인지, 연재에 대한 소문은 이미 문단에 퍼진 상태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이제, 올리기만 하면 시작이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지팡이> 연재.

    지금 글을 올리면… 당분간은 매일, 양질의 글을 연재해야 한다.

    한때 <오감도>는 연재를 중단해야 했지만, 부디 이번에는 완주를 할 수 있길.

    그렇게 여름이 막 시작되려 할 무렵, 나는 <지팡이>의 1부 1화를 홈페이지와 신―문학에 업로드했다.

    물론 홈페이지엔 한국어, 일본어, 영어판으로.

    * * *

    일본 도마크 출판사.

    이상이 새 소설을 게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길이를 알 수 없는 ‘연재’의 형식으로 말이다.

    보고를 받은 미쯔하루 편집장은 적잖이 놀랐다.

    ‘<실족>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연재라니. 그렇다면 최소한 장편 발간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출판사 입장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건수였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바로 이상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일본어 게시판에 갓 올라온 작품 <지팡이> 1화.

    그는 단번에 그 소설을 읽어 갔다.

    소설의 배경이 1910년대 경성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아니야, 그래도….’

    <실족>과는 좀 달랐다.

    <실족> 주인공의 정체성은 식민지 시대 지식인.

    그 자체로 정치적 함의가 짙었다.

    하지만 <지팡이>의 주인공은 이제 갓 태어났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속에 있긴 하지만, 이 아이가 어떻게 자라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부모 없이 태어난 아이, 그 누구도 부모가 되어주지 않은 채 어른이 된 아이… 확실히 당시 조선의 현실과 유사하군. 정치색이 아주 없는 건 아냐. 다만 <실족>보다는 은유적으로, 유려하게 풀어냈어.’

    그는 <지팡이>의 작의를 금방 알아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한일 관계에 민감한 일본인이기에 가능한 일일 거였다.

    ‘확실히, 뒷부분이 기대되는 소설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한 소설이야. 대체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지팡이> 1화를 다 읽은 미쯔하루 편집장.

    “편집장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비서가 말을 걸어왔다.

    “이상 작가에게 발간 문의를 넣어 볼까요?”

    비서는 매뉴얼대로 행동했다.

    도마크는 <실족>을 제외하곤 이상의 책을 놓쳐 본 적 없다.

    그러니 이번에도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게, 비서 나름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미쯔하루 편집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지.”

    * * *

    그 시각.

    독일의 틸 버켈의 저택.

    틸 버켈이 <지팡이> 1화를 본 건, 순전히 지훈의 메일 때문이었다.

    며칠 전, 지훈은 틸 버켈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연이 닿은 명사들과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 이상 작가의 새 소설이 홈페이지를 통해 연재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문학을 홈페이지에 연재한다니.

    일간지도 아니고?

    동아시아의 디지털화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인터넷으로 순문학을 보다니.

    ‘아시아인들은 참 알 수 없군. 전통적인 듯하면서도 이런 데에서는 빠르단 말이지.’

    매체와 별개로 소설이 기다려지는 건 당연한 일.

    그는 한동안 이상의 홈페이지를 들락거렸고, 결국 지금 <지팡이> 1화를 마주 보는 중이었다.

    “지팡이라… 재밌는 제목이군. 확실히 센스가 있는 작가야.”

    ‘지팡이’의 은유는 양면적이다.

    첫째.

    지팡이는 장애와 불편의 상징이다.

    혼자서는 똑바로 걸을 수 없는 사람, 즉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은유한다.

    둘째.

    지팡이는 재기의 상징이다.

    상처 입어 절름발이가 된 자가 다시 걷게 되는 수단.

    좀 더 유치하게 말하자면 제2의 인생이랄까.

    틸 버켈은 소설을 결제했다.

    1유로도 되지 않는 가격.

    그에게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지팡이> 1화를 읽었다.

    그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글을 다 읽은 후, 다시 처음으로 올라가 다시 읽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었을 때….

    틸 버켈은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이건… <갈림길>이잖아.”

    <지팡이>의 근원이 <실족>이라면.

    <실족>의 근원은 <갈림길>이다.

    그리고 그 <갈림길>은… 틸 버켈이 지니고 있던 두 장의 사진에서 나왔고.

    그런 소설을.

    틸 버켈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사진 중 하나.

    그것이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재탄생하려 했다.

    게다가… 이렇게 멋진 시작으로 말이다.

    하융이란 아이의 존재적 불안.

    마치 덩그러니 이 세상에 남겨진 그 아이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기교 역시 대단하다.

    아니, 이 기교를 살린 번역자가 대단하다.

    그저 한 아이가 태어나고 홀로 남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이토록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니.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틸 버켈은 워드 프로그램을 켰다.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하얀 백지.

    그는 거침없이 글의 제목을 적어 넣었다.

    <이 완벽한 시작을 보라>라고.

    * * *

    <지팡이> 1화를 올린 지 20시간 후.

    나는 홈페이지 결제 수를 집요하게 바라봤다.

    돈 때문이 아니었다.

    각 언어에 따른 결제 수 차이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결제 수는 역시 한국어 버전.

    영어가 그다음이었고 일본어가 마지막이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

    아니, 결과라고 하기엔 아직 이른가.

    소설에 대한 반응은 아직 그리 뜨겁지 않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 거겠지.

    하지만 해외 쪽은 얘기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 글을 보고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추후에 있을 발간 계약을 염두에 둔 반응이었다.

    작가들은 작품에 애정을 주는 출판사를 선택하기 마련이니까.

    가장 빠른 반응을 보인 건 리브레 출판사.

    마리옹 편집장은 직접 내게 메일을 보냈다.

    정갈한 영어 메일.

    금홍을 통할 것도 없이 번역기를 돌리니, 중요한 내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 한국의 근대사를 다루는 뛰어난 소설, 인상 깊게 봤습니다. 참으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이더군요. 개화기라고 하나요. 동양의 전통 사회에 서구의 문물이 들어서는 시기 말입니다. 그 격변의 시기를 아름다운 필체와 생생한 묘사로 그려 낸 당신의 소설은, 아마도 유럽인들을 심미적으로 만족시킬 겁니다. 당신이 자국의 역사에 대한 첨예한 감각과 메시지를 담아 이 소설을 지었을 것을 압니다.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유럽의 독자들은 그 역사적 메시지보다는 당신의 뛰어난 묘사에 매력을 느낄 것으로 생각됩니다.

    덧붙여 영어 번역이 정말로 뛰어나더군요. 추후에 우리가 좋은 인연으로 계약을 하게 된다면, 그에 걸맞은 프랑스어 번역을 약속드립니다.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리옹으로부터.

    명확한 세일즈 포인트를 집어내는 마리옹 편집장.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없는 유럽인들.

    그들로선 소설의 역사적 함의보단 분위기 묘사에 끌릴 거라는 진단이었다.

    확실히 프랑스는 독일과 다르다.

    독일이 전범국의 죄책감을 문학에 적극 투영하는 반면.

    프랑스는 문학을 예술품 그 자체로 본다.

    뭐, 그 어떤 쪽도 거부할 마음은 없다.

    둘 다 나름의 가치가 있는 ‘독자 반응’이니까.

    “형.”

    작업실에 함께 있던 지훈이 날 불렀다.

    “왜?”

    “출판사랑 문학 잡지사 홈페이지에서 <지팡이> 얘기 좀 나왔는데… 말씀해 드려요?”

    “독자들?”

    “아뇨. 문단 사람들이요. 평론가들.”

    “벌써?”

    평론가의 글이라면, 메일이나 댓글 수준이 아닐 거다.

    초고와 퇴고를 거친 ‘정리된 글’.

    그런 글이 24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나왔다고?

    “형 소설이 올라올 걸 다들 알고 있었으니, 벼르고 있었겠죠.”

    “얘기해 줘. 뭐래?”

    “하는 말들은 거의 비슷해요. 제일 긴 글을 읽어 드릴게요. 큼큼,”

    지훈이 목을 가다듬더니 글을 읽기 시작했다.

    “이상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글이 꽤나 긴 호흡으로 오랫동안 펼쳐질 것을 예상하고, 또 기대하게 된다. 아마 이상이 대하소설이라는 작가의 또 다른 경지에 도전하는 듯싶은데, 먼저 그의 거침없는 도전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서문.

    “<지팡이>는 범상치 않은 글임이 분명하다. 갓 서른이 된 작가가 1910년대 경성이라는 이색적 시공간을 묘사했다는 점. 이는 그의 전작 <실족>에서 선보였던 일제강점기에 대한 감각을 더욱 큰 판에서 뽐내 보겠다는 선언에 다름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기교를, 그 시대를 대하는 진정성을 믿는다.

    사실 아직 그의 글은 1편밖에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이 비평은 비평의 꼴을 갖추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이것은 아직 한 편밖에 나오지 않은 역작의 시작이 얼마나 많은 민족적 함의를 품고 있느냐에 대한 즐거운 예상이다.”

    “민족적 함의?”

    나는 되물었다.

    “그렇다네요. 민족적 함의. 계속 읽을까요?”

    “응.”

    나는 흥미롭게 귀를 기울였다.

    “주인공 하융은 지금 막 태어났다. 부모의 상실은 191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그 궤를 같이한다. 즉, 하융은 1910년대 조선인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이자 이미지인 것이다. 하융을 맡을 수 없어 난감해하는 친척들의 얼굴을 보라. 그것은 일제강점기 조선이란 나라에 보내던 열강의 무관심한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자. 스스로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자. 그것이 하융이며, 개화기 조선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한 가지 주지할 점이 있다면 조선은 이후에 독립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실질적 역사를 염두에 뒀을 때, 하융의 인생 역시 조선과 함께 동고동락하다가 끝내 승리를 거머쥘 것을 믿는다.”

    침묵이 흘렀다.

    “…여기까진데요.”

    뭐, 그런 평이 나왔구나.

    라고 넘기고 싶었지만….

    “저런.”

    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단단히 잘못 짚으셨는데.”

    “그런가요?”

    지훈이 물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글을 쓴 평론가는 <실족>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역사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주인공의 삶은… 그래, 어떻게 보면 ‘민족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하지만 과연 <지팡이>도 그럴까?

    그날 자정.

    나는 <지팡이> 2화를 업로드했다.

    아직은 하융의 유년기.

    그의 자아가 완성되기 전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면, 적어도 5화까지는 가야겠지.

    그때가 되면, 하융의 ‘자아’가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소년이 청년이 될 즈음, 사람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반反민족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아니, 매국노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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