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43화 (143/204)
  • 143회

    조인창 교수의 방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날 반겨 준다.

    건조한 공기.

    고요한 침묵.

    나무 바닥이 삐걱대는 소리.

    아슬아슬하게 쌓인 책들의 압도감.

    스읍, 하고 숨을 들이켜본다.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있노라면, 뭐든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히야… 저도 오랜만에 들어와 보는군요.”

    조인후 감독이 책장을 쓸어보며 말했다.

    “요샌 잘 안 들어오십니까?”

    그가 <내외인>을 영화로 찍을 때만 해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이 방에 온다고 했다.

    그는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시간이란 게 그렇죠.”

    “….”

    “이제 아버님이 없는 생활도 익숙해지니… 이 방을 찾는 일도 뜸해져요.”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지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떠난 사람은 잊히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혈육이라도, 그게 순리라면 순리다.

    그리고 이 방에 있는 ‘이상’의 흔적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계속 찾지 않으면… 결국 잊혀져가겠지.

    나는 조인후 감독에게 말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네?”

    “문학이 있어서 다행이라고요.”

    “….”

    “문학은 잊히지 않게 붙잡아 둘 수 있잖아요. 그게 뭐건.”

    이 세상 모든 건 필연적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누군가 이야기로 기록해 놓은 것은 좀 더 오랜 생명력을 갖는다.

    미래의 독자들이 이야기를 기억해 줄 테니까.

    그리고 그게 문학이 존재해야 할 이유 중 하나겠지.

    나는 조인후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이 보시기엔 이상은 어떤 사람 같나요?”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 물음이 조인창 교수를 떠올리게 했을지도 모르지.

    “제 짧은 소견으로 이야기해 드리긴 좀 그렇고…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은 있죠.”

    “….”

    “참, 외로워서 사랑스럽다고.”

    외로워서 사랑스럽다.

    그 얘길 들었을 때, 난 좀 슬퍼졌다.

    너무나 정확한 표현이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조인후 감독이 말을 이었다.

    “가족도 있고, 연인도 있고, 동료도 있었지만 언제나 혼자 사는 사람이었다고요. 특히 가족이나 연인들은… 그를 제대로 이해해 주지 못했어요. 외로웠겠죠. 작가로서의 성공을 배제하면, 참 안타까운 삶이니까. 그래서 그에게 ‘문학’이라는 건 삶에 있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겠죠.”

    “…동감합니다.”

    동의가 아니라 동감.

    그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날 이렇게까지 이해해 준 이 부자가 고맙기도 했고.

    “그럼, 편하게 책을 보시죠.”

    조인후 감독은 날 위해 자리를 피해 주었다.

    어딘지 울렁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나는 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책이야 잔뜩 있었다.

    책뿐이랴.

    온갖 논문, 자료, 메모들….

    이 모든 걸 다 보면, 전생의 ‘이상’의 캐릭터를 더 깊이 알 수 있을까.

    시간이 많지 않다.

    얼른 손 닿는 곳부터 책을 들춰 보기 시작했다.

    작품에 관한 책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 건 내 머릿속에 다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작품이 아닌 삶을 담은 책이다.

    나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과거.

    그 삶의 기록을 정리하고, 정리한 자료에서 내 의식과 무의식을 파헤친 글.

    이상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파악한 글.

    지금 내겐 그런 글들이 필요했다.

    한 권, 두 권, 세 권….

    내 옆에 책들이 쌓여 갔다.

    모두 다시 꽂아 둘 것들이었다.

    보물을 찾듯 그렇게 조인창 교수의 방을 뒤지는 동안.

    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세 시간 후.

    나는 그 방을 나섰다.

    “아, 끝나셨습니까?”

    거실 소파에는 조인후 감독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있기에 지루했는지 신문을 보면서.

    그의 시선이 내 손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겨우 그걸 고르신 겁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내가 가지고 나온 건, 고작 두 권의 책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간만에 늦잠을 잤다.

    강연에 이어 연희동에 다녀온 여파가 컸다.

    고작 이 정도 일정으로 피곤한 걸 보면… 혜경의 몸도 그새 나이를 좀 먹은 것 같았다.

    “헬스장에 좀 다닐까? 집에서 하는 운동으론 한계가 있는 것 같아.”

    아침을 먹으며, 나는 지훈에게 말했다.

    그러자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도 그럴 나이가 됐죠.”

    이 녀석이.

    “근처에 헬스장 있던데요.”

    “알았다, 인마.”

    지훈은 내 반응이 재밌는지 한참을 낄낄거렸다.

    그리고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내게 말했다.

    “전 오늘 종일 외출해요.”

    “왜?”

    “평론가 스터디요.”

    “등단했을 때부터 하더니, 꽤 오래 가네?”

    “공부가 많이 돼요. 요즘엔 <실족> 가지고 얘기 많이 해요. 역사에 걸려 넘어진다는 그 발상에서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짚어 낼 수 있다나….”

    지훈은 스터디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전했다.

    대부분 <실족>에 대한 모범적이고 우호적인 해석들이었다.

    나는 지훈에게 물었다.

    “<실족>에 대한 논의,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것 같아?”

    “네? 글쎄요. 한 달은 계속 가지 않을까요?”

    “한 달이라….”

    <실족>을 연재소설로 확장하려는 지금.

    적절한 때에 관심을 옮겨 놓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연재소설에 대한 홍보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내 신작 얘기, 아직 안 했지?”

    “당연히 안 했죠.”

    “이젠 얘기해도 좋아. 아니, 가능하면 얘길 꺼내 줘….”

    “…정말요?”

    “응. 이상이 <실족> 같은 소설을 홈페이지에 연재할 거다. 딱 이 말만 해. 알았지?”

    그러면 평론가들은 분명 관심을 가질 거다.

    연재소설의 경우, 초반의 분위기가 대단히 중요하다.

    평론가들에게 초반에 좋은 평가를 받으면, 작품의 중반까지는 안정된 독자 반응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독자가 내 연재소설에 궁금증이 생겼을 때, 그것을 다루는 평론도 같이 볼 테니.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제가 정보 좀 솔솔 뿌리고 오겠습니다. 승냥이 같은 평론가들이 물어 잡을 수 있도록.”

    “누가 보면 넌 평론가 아닌 줄 알겠다.”

    그렇게 우스갯소리로 식사를 마친 후.

    지훈은 정말로 집을 나섰다.

    술자리가 있으면 늦을 거라는 말까지 덧붙이고.

    그러면 나는….

    “슬슬 시작해 볼까.”

    작업실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건 테이블의 두 권의 책.

    세월에 바래 노랗게 삭은 그 책들은, 조인창 교수의 방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조인창 교수가 쓴 <이상 평전>.

    모 고문서학회가 발행한 <이상의 편지>.

    <이상 평전>은 내 일생을 정리한 책이며.

    <이상의 편지>는 내 생전의 편지를 모은 책이다.

    그 방을 몇 번이나 뒤져 봤지만, 이 두 권 이상으로 필요한 책은 없었다.

    전생에 내게 일어난 일은 <이상 평전>으로.

    그때의 내 마음을 아는 데에는 <이상의 편지>로.

    여기에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책을 다 읽고 생각했다.

    조인후 감독의 말이 역시 틀리지 않는다고.

    이 두 권의 책이 보여주는 이상의 삶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어느 한 곳, 어느 한 사람에게도 기댈 수 없는 삶.

    오로지 문학만이 끝까지 곁에 있어 준 그 삶은, 고고하고 아름다웠지만… 외로웠다.

    자, 어쨌건, 그렇다면….

    “반골과 외로움이라….”

    나는 칠판을 걸어 놓은 벽을 바라봤다.

    지훈에게는 이걸 ‘인생 그래프’라 했지만, 아직까지도 길게 그어진 가로줄에 불과하다.

    달칵.

    보드마카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눈금을 나누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눈금들은 주인공의 나이를 의미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로줄의 가장 왼편엔 ‘탄생’.

    가장 오른편엔 ‘죽음’.

    그렇게 또 적어 넣었다.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럴듯한데?”

    자, 그럼 ‘탄생’부터 살펴보자.

    나는 ‘탄생’의 밑에 적기 시작했다.

    ―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음.

    새로운 아버지에게로 입적.

    진정한 아버지 없이 떠도는 생명이 됨.

    당시 조선의 현실과 닮지 않았나?

    나의 불행한 탄생.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책을 보지 않아도 기억한다.

    태어났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 탄생이 내게 남긴 상처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이 나를 평생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내 탄생에 대해 평생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워낙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기에,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난 일찍이 미쳐 버렸을 거다.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 대까진 나름 유복했다.

    문제는 아버지 대에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단 점이다.

    설상가상 활판소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잃은 아버지는, 마침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에게 날 입양 보냈다.

    난 고작 세 살에, 아버지가 바뀐 경험을 한 것이다.

    이 기억은 내게 고질적인 불안증을 안겨 줬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이 선사하는 든든함보다는, 어떤 애매함과 어설픔이 먼저 느껴졌다.

    당시 조선인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느낀 감정처럼.

    여기서 난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전생의 나와 무척이나 닮았지만, 나보다 건강하고 강한 남자.

    건강하고 강하다는 건, 전생의 내가 갖지 못했던 점에 대한 욕망이겠지.

    그 남자의 이름을… 하융이라 하자.

    하융(河戎)은 내가 한때 삽화가 일을 할 때 쓴 필명이기도 하다.

    나는 하융의 어릴적을 마구 지어내기 시작했다.

    하융은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잃는다.

    하융의 집안엔 사람이 많지만, 그 누구도 그의 부모가 되어 주진 않는다.

    그는 큰아버지의 집, 고모의 집, 할아버지의 집을 전전하며 자란다.

    그는 자연스레 남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큰다.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윗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그 ‘윗사람’이란 비단 어른들이 아니다.

    이 사회, 역사, 나아가 나라까지.

    하융이 그런 걸 믿느니 자신을 믿고 만다.

    그런 오만함은… 하융의 기질이기도 하겠지.

    하융은 일찍이 이 세상엔 자신이 부모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여기서 하융의 비상한 두뇌가 빛을 발한다.

    그는 그 나름의 논리를 세운다.

    부모가 없는 어린아이는 불쌍하다.

    그러나 부모가 없는 어른은 ‘다소’ 불행할 뿐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어른이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

    하융은 그렇게 애어른으로 자라난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연민을 자아낸다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또래에 비하면 대단히 성숙한 자아를 가진 소년으로.

    “…흠.”

    생각나는 대로 갈겨 쓴 이 내용.

    나는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하융은 아직 현생보다 전생의 날 더 닮았다.

    앞으로의 전개야 나 역시 미지수지만.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소설 초고를 써 내려갔다.

    먼저 묘사해야 할 건 1910년대의 경성의 분위기.

    당시 나는 어린아이였기에, 이 부분은 <이상 평전>의 도움을 받았다.

    조인창 교수는 당시 경성의 분위기를 잘 묘사해 두었다.

    개화기라른 새로운 시대를 맞는 기대와 일제강점기의 불안함이 뒤섞인 분위기.

    많은 석학들이 연구한 자료와 귀한 인터뷰를 토대로.

    나는 그것을 읽고, 느낀 후, 나의 문장으로 풀어냈다.

    내 소설 속 하융은 점점 실체를 갖춰 갔다.

    쓰면 쓸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이 소년이 자라면… <실족>의 사내가 되어 종로 한복판에서 싸움질을 할 것이다.

    일본에 의해 억울한 고초를 당할 테고.

    그런 생각을 하니 하융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우습기도 한 것이었다.

    이렇다 할 설정이 많지도 않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글의 분량이 많아지고 있었다.

    아마 모든 내용을 장면화하고, 디테일을 챙기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하소설의 장점이 이런 게 아니겠는가.

    한 인간의 생애를, 머리카락 한 올까지 자세히 다룰 수 있다는 것.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하융이 친인척들의 집을 전전하고 있는 장면을 쓸 때였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지훈이 벌써 왔나?

    벌컥.

    작업실 문이 열렸다.

    지훈이 약간의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저 왔어요.”

    “빨리 왔네?”

    “빨리? 지금 아홉 신데요?”

    “뭐?!”

    나는 깜짝 놀라서 컴퓨터 시계를 봤다.

    녀석의 말처럼, 정말 ‘오후 9:12’란 글자가 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쓴 글은… 약 이만 자.

    여덟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글만 썼다니.

    나조차도 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몸이 찌뿌둥한 게 느껴진다.

    “지훈아, 이것 좀 읽어 봐.”

    나는 가려는 지훈을 붙잡고 말했다.

    “뭔데요?”

    “새 소설.”

    “엥? 벌써 썼어요?! 헉… 이만 자? 오늘 하루 동안 쓴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내주었다.

    지훈이 글을 읽는 사이 주방에 가서 물을 마셨다.

    의식을 하게 되니 목이 말라져서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형.”

    지훈이 심각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어때?”

    나는 컵에 물을 다시 채우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지훈은 그새 글을 다 본 모양이었다.

    녀석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곤 이렇게 말했다.

    “바로 연재 시작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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