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회
오늘은 한국대학교 ‘문학창작특강’ 종강날.
이미 웬만한 강의는 종강을 한 터라, 학교는 조용했다.
하지만 인문대 대강당 근처만큼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들 하나둘 지하로 내려가는 걸 보면… 내 마지막 특강을 보러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일부러 주차장으로 내려가 비상구 길을 택했다.
난 학생이나 청강생들을 만나는 게 아직도 어색하다.
그래서 항상 이 방법으로 강당에 가곤 했는데, 이 길도 오늘로 마지막이겠군.
비상구 문을 열고 강당으로 나서니, 차 조교가 날 맞이했다.
“작가님.”
“차 조교님. 준비는 다 됐어요?”
“네. 올라가시기만 하면 돼요.”
차 조교가 단상을 가리켰다.
단상 너머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들어차 있었다.
객석은 물론이고 간이의자와 계단, 어떤 사람들은 객석 뒤에 서있기까지 했다.
단상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마지막 강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했다.
먼저, 언제나 그랬듯 가벼운 인사.
“안녕하세요. 이상입니다.”
그리고 강연이 시작된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이 자리에서 많은 강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이렇게 마지막 강연을 맞이하게 됐네요.”
약간의 술렁임, 그리고 긴장감.
그들의 신경이 모두 내게로 꽂히는 게 느껴진다.
“여기 이 자리엔 많은 종류의 학생분들이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창작을 하고 싶은 사람,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어쩌면 제가 좋아서 와 계신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와르르 웃음이 쏟아져나왔다.
누군가가 장난스런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마치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유쾌하다, 이런 기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가벼운 농담을 할 수 있는 이 자리도.
“제가 특강을 시작한 건, 제 은사님의 권유였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 이 자리는 제게 넘기셨죠. 지금이야 전 한국대 소속이지만 그땐 아니었어요. 그저 갓 등단한 신인 소설가에 불과했죠. 명문대가 아닌 대학의 대학원생이었고요. 그럼에도 그분은 절 믿어 주셨습니다. 아마 그분은….”
나는 잠시 머뭇거리곤,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라도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게 주시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작가란… 독자, 아니,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까이 또 오래 만나야만 글도 오래 쓸 수 있거든요.”
작가라는 직업 특성상,
작품의 소비자인 독자와의 만남이 쉽지 않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딱히 없지 않은가.
그래서 쓸데없는 고집과 고독에 빠져 버리기도 쉽고.
또, 작가들의 성격 자체가 대체로 내향적이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은 제게 일종의 ‘사회생활’을 시키셨던 것 같습니다. 독자의 얼굴을 이렇게 똑바로 보고.”
난 청중을 한번 훑어보았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저의 독자가 누구인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느껴 보라는 뜻이었던 것 같아요. 작가란 참 겁도 많고 이기적이어서, 인간에 대해서 미친 듯이 파헤치지만, 정작 독자를 눈앞에서 직면하는 건 불편해하거든요. 그 아이러니한 마음을 이겨 내라는 뜻이었단 걸 저는 지금에야 알 것 같아요.”
물론 난 아직도 독자들이 불편하다.
그들이 내가 좋다고 달려드는 게 어색하고, 나를 완벽한 예술가로 보는 눈빛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 자리가 아니었으면 독자분들이 어떻게 눈을 반짝이며 저를 보고 있는지 죽을 때까지 몰랐을 거예요.”
사람들이 낮게 웃는다.
나는 그렇게 웃는 사람들 중 한 학생을 지목했다.
“거기 두 번째 줄 회색 체크 남방을 입은 남학생.”
“…네?”
그는 대단히 당황에서 대답했다.
정말 자신을 지목한 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학생은 일 년 반 동안 꾸준히 내 특강을 들었죠?”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눈이 마주치면 얼굴이 벌게져선 고개를 숙이는, 그는 그런 종류의 학생이었다.
굉장히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한 질문이었다.
학점에 포함도 안 되는 특강.
작가에 꿈에 없다면, 일 년 반 동안 꾸준히 들을 리가.
그는 차마 대답은 못 하고,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작가가 되고 싶던가요?”
“….”
“충분히 물을 수 있는 질문 같은데요. 이건 ‘창작특강’이니까.”
뭐… 다 끝나가는 마당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웃기다면 별수 없지만.
학생은 터질 것 같은 얼굴로,
하지만 또박또박하게 대답했다.
“저는 공과대학 학생이고 글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작가님 같은 작가가 되면 행복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계속 들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답이긴 했다.
멋져서도, 돈을 많이 벌어서도 아니고… 행복할 것 같다고?
“제가 행복해 보이나요?”
“네.”
용기를 냈는지, 그는 더 당당하게 말했다.
보기보단 대담한 학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내면을 저렇게 확신하다니.
“맞아요. 행복합니다. 작가가 된 건 행복한 일이죠. 무척이나.”
나는 청중에게 말했다.
“작가가 행복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겠죠. 단, 글로요. 돈은 독자의 인정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척도거든요. 그 외에 명예도 있겠고,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있을 거예요. 회사를 한 번이라도 다녀 본 적이 있다면 이 말을 그냥 넘기진 못할걸요.”
사람들이 어딘가 슬픈 기색을 담아 웃었다.
하루하루 회사 생활을 견디는 자신들을 위로하듯.
“하지만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행복한 작가란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라고. 저는 그 말에 크게 동의했습니다. 쓰고 싶은 글이 아닌 글을 쓰는 작가… 생각만 해도 너무 불행할 것 같거든요. 반대로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은 방법으로, 쓰고 싶은 때에 쓰는 작가란… 말도 못 하게 행복한 사람이죠.”
“….”
“하나의 세계를 마음껏 그리고 즐겁게 창조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신도 부럽지 않잖아요.”
신.
나는 신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작가를 곧잘 ‘신’이라고 표현한다.
그 세계를 창조한 사람이란 뜻이겠지.
하지만 이 ‘신’의 본질은 따로 있다.
“제가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한 모든 강의를 굳이 기억하실 필욘 없습니다.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의 말을 진리인 양 외우는 것도 예술가로서 꼭 좋은 태도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지금부터 말하는 한 가지는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
“언어로 세계를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즐거운 신이 되세요. 그 어떤 신도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진 않습니다. 반드시, 즐겁게 쓰세요. 그게 전부예요. 그럼, 제 특강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레 끝낸 내 마지막 특강.
하나.
둘.
셋을 세자마자.
짝짝짝짝짝짝!!!!!!!
엄청난 박수 소리와 환호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평소 같으면 가 버리기에 바빴겠지만, 오늘만큼은 단상을 지켰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차례로 줄을 섰다.
그들의 책에 사인을 해 주고 사진을 찍어 주는 일.
예전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젠 싫지 않다.
내 질문을 받았던 남학생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나는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그가 내미는 책에 사인을 하며 그에게 물었다.
“신춘문예, 준비하고 있어요?”
“…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나는 그에게 책을 내밀며 말했다.
“다음에는 문단에서 만나요.”
그 말에 그는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거의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작가님을 보면 막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날 보면 글을 쓰고 싶다라.
창작 수업 선생으로서 이만한 극찬이 어딨겠나.
나는 비로소 알 것도 같았다.
조인창 교수가 이 수업을 끝까지 붙잡고 있던 이유를.
* * *
그렇게 마지막 특강을 마친 후.
나는 집이 아니라 연희동으로 출발했다.
목적지는 조인후 감독의 저택.
미리 말을 하고 온 터라, 조인후 감독은 아예 저녁 식사에 날 초대했다.
단정하면서도 정성이 많이 들어간 음식들.
그 음식들을 맛보며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오늘 한국대에서 마지막 특강을 하셨다면서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떻게는요. 일거수일투족이 다 기사로 나오는 세상 아닙니까.”
그새 기자들이 내 마지막 특강 소식을 퍼 날랐나 보다.
참 생각하면 할수록 재빠른 세상이다.
“그래,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조인후 감독이 내게 물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차 안에 가득한 꽃다발과 선물.
차 조교가 학과 차원에서 준비해 준 것 외에도,
많은 학생이 내게 꽃다발을 줬다.
작은 선물이나 마음을 담은 손편지와 함께.
“아쉽죠, 아무래도. 등단을 한 이후로 계속해 온 일이니까요. 독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자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
“떠날 때가 될 것 같아요, 그 단상은. 제 생활을 한번 정리할 시기가 된 거죠.”
조인후 감독이 인자하게 웃었다.
“그래요. 잘 생각했습니다. 적당한 때에 떠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힘든 선택을 하셨군요.”
“당분간 집중하고 싶은 일도 있고요.”
나는 조인후 감독에게 연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놀란 것도 잠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작가님이라면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하세요. 도와드릴테니.”
“그러잖아도 마침 필요한 게 있어서 이렇게 들린 길입니다만.”
“오, 그런가요?”
“네. 조인창 교수님의 방에서 책을 좀 가져가도 될까요?”
“…아버님 방의 책을요?”
“네.”
“그 방의 것들은 작가님의 것이니 말릴 권한은 없습니다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조인후 감독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조인창 교수의 방에 무슨 책들이 있는지 말이다.
“혹시 연재하신다는 소설의 인물이….”
“네. ‘이상’을 모델로 써 볼까 해서요.”
조인창 교수는 한국 최고의 이상 연구자다.
그가 모은 내 전생의 자료는, 나조차도 잊고 있던 내 삶의 흔적이나 마찬가지.
그 어느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조인창 교수님께서 왜 제게 저 방을 물려주시고 떠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
“언젠간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감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했어요.”
“흠… 그렇군요….”
“네. 저 방의 자료가 필요합니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왜 ‘이상’입니까?”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
그저 ‘나’라서?
아니다.
이건 그런 자기만족적 차원의 작업이 아니다.
“슬프고도 매력적인 삶을 살다 간 사람이거든요.”
“….”
“그리고 그 삶을…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해 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해 준다고요?”
“네. 조인창 교수님께서도 평생 그의 삶과 문학을 사랑하셨던 것처럼요.”
조인창 교수가 내 전생에 느낀 매력.
이번엔 내가 그 전생에 다시 숨을 불어 넣고 싶다.
곰곰이 내 말을 듣고 있던 조인후 감독이 말했다.
“좋습니다. 아버님의 방으로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