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회
테이블에 침묵이 흘렀다.
피터 한과 나 사이의 금홍과 지훈.
그들은 놀란 와중에 우리의 눈치를 봤다.
‘노벨문학상’을 운운하는 작가와 번역가.
어쩐지 붕 뜬 소리로 들리겠지.
한국과 노벨문학상은 그만큼 거리가 머니까.
‘노벨문학상을 노리면 안 되는 건가요?’
내 대답에 피터 한도 조금 놀라긴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놀라지 않은 척, 테이블의 올리브를 포크로 툭툭 건드릴 뿐이었다.
“…맞습니다.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죠.”
“….”
“한국인들은 참 웃긴 데가 있어요.”
피터 한은 갑자기 한국인을 찾았다.
그것도 사뭇 심각한 얼굴로.
“전 많은 곳에서 살아 봤어요. 미국, 유럽, 중동… 지금은 한국. 그런데 한국인들만큼 성공에 대한 욕망이 큰 민족은 보질 못했어요. 웬만한 일에는 만족을 모르고 죽을 때까지 부지런을 떨죠.”
피터 한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꽤 동의하는 바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이 있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학판만은 아니에요. 작가들이 하나같이 움츠린 채로 살거든요. 한 다리 건너의 선배, 세계로 나가면 뭣도 아닌 출판 권력의 눈치를 심하게 보죠.”
“그러지 않고는 생존하기가 힘든 구조니까요, 교수님.”
“뭐, 그거야 내 알 바는 아니고요.”
그는 피식 비웃듯 말했다.
“요는, 한국 작가들 중에 진지하게 노벨문학상을 꿈꾸는 사람을… 저는 처음 봤다 이겁니다.”
그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예술은 국가 권력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다.
힘 있는 나라의 예술가가 세계 무대로 나가는 게 쉬운 것처럼.
한국의 경우… 국가 권력이 약한 건 아니다.
다만 ‘언어의 권력’이 약하다.
영어를 쓰는 작가와 한국어를 쓰는 작가.
어느 편이 세계 무대에서 유리하겠는가.
난 툭 까놓고 말했다.
“맞습니다. 한국 작가들의 목표는 대부분 ‘생존’이에요. 문단의 현실이 척박하고 해외로 작품을 내보이기 쉽지 않으니… 곧잘 이런 소원을 생각하곤 해요.”
“….”
“글만 쓰고 살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고요.”
하지만 이 말은… 꽤 웃긴 말이기도 하다.
“글만 쓰고 사는 건… 작가에겐 기본 중에 기본으로 주어져야 하는 환경인데 말이에요.”
글만 쓰고 살고 싶다.
이 말은 퍽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일반인의 상황으로 바꾼다면 이런 말이나 같다.
‘굶어 죽지만 않으면 상관없다’고.
나는 또박또박, 그가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하지만 저는 글만 쓰고는 못 삽니다.”
“….”
“전 글로 성공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훨씬 더. 할 수 있는 데 만큼.”
세 사람이 날 빤히 봤다.
난 그들에게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분들의 힘이 필요하죠. 긴 시간 소설을 연재하려면 그때그때 빨리 피드백을 줄 평론가가, 초벌 번역과 완역을 해 줄 번역 전문가들이 필요해요. 그것도 언제 끝날지 모를 꽤 긴 시간 동안, 꾸준하게.”
이건 그들에게 하는 제안이자 부탁이었다.
앞으로 긴 시간 동안 날 돕는 걸 1순위로 해 달라는.
그렇지 않으면… 연재는 성공하기 힘드니까.
사실 금홍과 지훈은 걱정이 되지 않는다.
지훈은 누구보다도 든든한 내 편이고, 금홍은 일본에서 날 도와주기로 약속했으니.
문제는… 이 까탈스러운 교수지.
만약 그가 나의 연재소설을 번역한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을 이 한 작품에 쏟아야 한다.
작품이 잘되지 않으면… 그로선 손해일 터.
우린 모두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래요.”
“…!”
“해 봅시다.”
“그래 주실 수 있습니까?”
“허접한 작품 수십 개보단, 노벨문학상을 노리는 큰 작품 하나를 번역하는 게 낫죠.”
그는 포크로 올리브를 쿡 찍었다.
그리고 꼭꼭 씹더니 목울대가 오르내리도록 꿀꺽 삼켰다.
난 비로소 한시름 놨다.
새로운 번역자를 찾는 것도 일일뿐더러,
피터 한 만큼의 실력이 있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다.
더불어, 그와 금홍과의 합도 굉장히 좋은 것 같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쉰 후, 그들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조만간 시작해 보죠.”
* * *
한국대학교 인문대 교수 연구실 건물.
내가 지금 계단을 터벅터벅 오르는 이유는 국문과 학과장 김진하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작년 2학기 들어가면서였나.
특강을 계속 맡기로 계약한 이후로는 본 적 없으니, 거의 일 년 만이었다.
그나저나 기말고사 시즌이라 그런가, 학교에 사람이 많이 없다.
나는 학과장실 앞에서 목을 가다듬었다.
…괜히 긴장까지 되는군.
똑똑, 문을 두드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들어와요.
미리 연락을 해 둔 터라,
내 등장에 김진하 교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다만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날 맞이했다.
“아이고,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는 내 양손을 잡고 흔들었다.
“격조했습니다, 학과장님.”
“문화부 기사에서 이상 작가 소식이 떠날 날이 없던데요. 정말 보기 좋습니다. 자자, 앉으시죠.”
그와 나는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다.
조교 하나가 드립 커피를 내리며 날 흘긋거렸다.
그 눈치를 챈 김진하 교수가 껄껄대며 웃었다.
“우리 조교도 작가님 팬입니다. 괜찮으시면 사인이라도 한 장 해 주시죠.”
“아, 그럼요. 아무 종이나 주시면….”
“엇?! 저, 정말요? 잠시만요!”
조교는 헐레벌떡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몇 권의 책들을 한꺼번에 들고 왔다.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낸 모든 책들이었다.
팬이라는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내가 사인을 하는 동안,
조교가 커피 두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손을 왜 떠는지 모를 일이지만.
김진하 교수가 조교에게 말했다.
“자, 사인도 받았겠다, 잠깐 자리 좀 비켜주지 않겠니?”
“아, 네. 알겠습니다.”
조교는 책을 소중하게 챙겨 놓은 후, 조용히 연구실을 나갔다.
비로소 연구실엔 김진하 교수와 나만이 남았다.
“그래. 이상 작가님, 갑자기 저를 왜 보자고 하셨는지….”
조교까지 내보낸 걸 보면, 갑작스러운 내 면담 요청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뭐, 심각하다면 심각한 문제긴 하지.
“저… 돌아오는 2학기에는 특강을 다른 분께 맡겨야 할 것 같아서요.”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만도 했다.
문학창작 특강은 다른 수업과는 달랐다.
조인창 교수의 자리를 이어받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것을 넘기겠단 말을 할 줄은… 그도 몰랐겠지.
“아니… 지금까지 잘해 오셨는데 왜…?”
“이미 일 년 반이나 해 온 특강입니다. 다른 강사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언제까지 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죠.”
“그런 것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문학창작특강은 이상 작가의 전매특허나 마찬가집니다. 문학창작특강이어서가 아니라, 이상 작가를 보고 싶어서 청강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는 나를 달래듯 덧붙였다.
“그리고 이렇게 그만두시면… 대체 누가 이상 작가의 뒤를 잇겠습니까.”
나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조인창 교수님께서 제게 이 자리를 넘기셨을 때도 똑같은 걱정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그는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아쉬움이 잔뜩 쌓인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좀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소설 연재에 온 힘을 싣고 싶었다.
이대로 다음 학기에 특강을 이어 간다면, 어설프게 시간이나 때우는 강사로 전락하겠지.
“교수님들께서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시니, 강단에 설 만한 인재를 알아보실 겁니다. 저보다 더 훌륭한 제자들도 많으실 테고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만두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그는 반쯤 체념한 상태로 물었다.
“저 개인적으로는 갑작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꽤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일이 있었고… 그 일을 이제 시작하려 하거든요.”
“시간이 필요하신 거군요.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시나요?”
“네. 그런 셈입니다. 그리고… 물리적인 시간이라기보단 그 일에 완전히 집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더 붙잡을 수는 없지만….”
그는 손끝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어쩐지 아직도 완전히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얼굴이다.
“생각이 바뀌시면, 이번 방학 언제든 연락을 주십시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김진하 교수도 알 것이다.
내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다는 걸.
연구실을 떠나기 전.
그는 내 손을 다시 잡았다.
“지금까지 특강을 맡아 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나는 문득 작년 초의 일이 생각났다.
김진하 학과장을 비롯한 많은 한국대 교수들.
그들은 내가 문학창작특강을 맡는 걸 반대했었다.
내 지도 교수가 된 심 교수를 제외하고는.
그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특강마저도 내 손으로 내려놓을 때가 됐다.
참 시간도 빠르다.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학과장님.”
혜경은 조교 생활을 오래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파리목숨이나 다름없는 강사들도 한 트럭을 봤지.
강의가 잘리면 언제나 쓸쓸하게 학교를 떠나곤 하는.
그런 뒷모습들을 생각해 보면, 이런 깔끔한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유명한 시구처럼.
* * *
“지훈 샘, 샘 쪽이 아래로 기울었어요.”
“으아… 됐어요?”
“아니, 이번엔 좀 높은데….”
“아오! 팔 아파! 됐어요?”
“네. 얼추 된 것 같아요!”
일요일 아침부터 이 난리를 치는 이유.
바로 거대한 화이트보드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마침 금홍도 놀러 온 김에, 작업실에 칠판 설치를 하는 중이다.
벽에 붙어 있던 내 책상을 다른 한쪽으로 밀고, 그 자리에 칠판을 고정하면 되는데.
수평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겨우 수평을 잡은 후, 칠판을 걸 못을 박았다.
이래 봬도 건축기사 일을 했으니 못 정도야 쉽다.
그렇게 한바탕 요란이 지나갔다.
커다랗고 하얀 칠판이 벽을 가득 채웠다.
우리 세 사람은 한 걸음 물러나서 칠판을 봤다.
“…멋진데요?”
“그럴싸하네요, 형.”
“그러게. 크기도 딱이고. 많은 걸 적을 수 있겠어.”
칠판은 꽤 그럴듯했다.
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듯한 느낌도 나고.
칠판을 설치한 이유는 역시 소설 연재 때문이다.
워낙에 호흡이 긴 소설인지라… 복잡한 내용을 한눈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일엔, 노트보단 칠판이 제격이었고.
띵― 동―
밖에서 벨 소리가 들렸다.
“아, 치킨 왔나 봐요.”
“제가 나가 볼게요.”
아까 저녁 겸 시킨 치킨이 온 모양이었다.
지훈이 나가자, 금홍도 따라 나갔다.
나는 작업실에 혼자 남아 칠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텅 빈 화이트보드.
이 거대한 칠판에는 ‘고작’ 내용정리가 들어갈 예정.
제대로 소설을 쓴다면… 이 칠판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겠지.
문득, 막막함이 몰려왔다.
소설을 처음 쓸 때 마주하는 백지.
그 백지 앞에서 항상 느끼곤 하는 공포처럼.
따각.
나는 보드마카를 뚜껑을 열었다.
새 마카 특유의 화한 냄새가 풍겨 왔다.
칠판의 약간 위편에 가로로 긴 줄을 하나 그었다.
미끌거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한 발 물러나 그 줄을 보았다.
제법 곧고, 길었다.
“형, 일단 치킨 드세요.”
지훈이 작업실 문틈으로 쏙 들어왔다.
그리고 칠판에 별안간 그어진 줄을 보곤 물었다.
“엥? 이게 뭐예요?”
나는 보드마카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그것을 펜 받침대에 올려 두며 말했다.
“인생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