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39화 (139/204)

139회

<실족>의 반응이 여러모로 나쁘지 않다.

이제 남은 건 해외 문학 시장.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실족>을 발간하잔 연락이 왔다.

단, 일본 출판사들만 빼고.

예상했던 일이긴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식사 시간.

지훈은 내게 말했다.

“형, 어쩔까요? 연락 온 출판사 추려 볼까요?”

“음… 아니.”

“엥? 아니라고요?”

“응. 이번 작품은 책으로 발간하지 않을 거라고 전해줘.”

“그게 뭔 소리예요? 책으로 발간을 안 한다니.”

“영문판 결제 수가 어떻게 돼?”

“삼십만 회 정도에요. 아마 유럽 쪽에서 많이 결제한 것 같아요.”

영어판을 올린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그 정도면 반응이 굉장히 좋다.

“일본판은?”

“…만 회?”

평소 결제량을 비교해 보면 턱없이 적은 수.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다는 소문이라도 난 걸까.

“아무튼, 출판사들한테 얘기 좀 잘해 줘.”

“얘기해 주는 거야 문제는 없는데…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돼?”

“갑자기요? 네, 뭐… 되긴 하는데요.”

“그럼 금홍 샘이랑 피터 한 교수랑 같이 저녁 식사 하자. 좋은 데 좀 잡아 놔 줘.”

“아…? 아, 네… 그럴게요.”

지훈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하니 저 형이 쓸데없는 짓을 하겠냐는 얼굴.

하지만 오늘 저녁에 내 이야기를 들으면… 한 번 더 기겁을 할 수도 있겠군.

* * *

이른 오후, 나는 신라문학으로 향했다.

어젯밤 이준환 편집위원과 약속을 잡은 상태였다.

미리 약속을 잡은 덕이었을까.

신라문학 직원은 나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매일 편집위원실만 들락거려서인지, 깔끔하고 우아한 응접실의 분위기가 어색했다.

“이상 선생.”

이준환 편집위원이 날 맞았다.

우리는 향긋한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당연히 <갈림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속이 좀 상하지 않던가요?”

그가 넌지시 물었다.

“뭐가요?”

“일본에서는 <갈림길>이 발간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서요.”

맞다.

이준환 편집위원은 처음부터 그랬지.

<갈림길>의 일본 발매가 쉽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그의 말은 사실이 되었고… 역시 그의 말처럼 속이 좀 상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런 속상함 같은 건,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제 새로운 소설 말입니다. <실족>.”

“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특히 학계에서 인기가 많다죠?”

이준환 편집위원은 업계의 동향 파악이 빠르다.

신라문학이 그만큼 트랜디한 이유가 있겠지.

“그렇지 않아도 그 책, 아직 홈페이지에만 발표를 하셨으니 다른 단편들과 함께 단편집으로 묶어 발간하는 게 어떻겠냐 이야기를 드리려 했습니다.”

나는 웃으며 고갤 저었다.

“아니요. <실족>은 책으로 발간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네…? 아니, 왜….”

“<실족>은 일종의 맛보기였거든요.”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한 채,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가 쓰고 싶은 글은… 훨씬 긴 소설입니다.”

“흠… 뭐, 작가가 마음에 드는 단편을 장편으로 늘리는 경우는 왕왕 있으니까요.”

“장편 정도가 아니라….”

“….”

“대하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이준환 편집위원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 역시 대하소설이라는 말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그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이내 삼켰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겸허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한마디 했다.

“…저는 반대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대하소설은 신문에 소설이 연재될 시절에 인기를 끌었던 장르입니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책을 사서 보기 좋은 시절엔… 어울리지 않죠. 사람들은 다양한 책을 보길 원하지 긴 책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

“일리 있는 말씀이십니다. 서점에만 가도 예쁘고 화려한 표지의 책들이 수없이 많은데… 짧게는 대여섯 권, 길게는 열댓 권이 되는 소설을 꾸준히 사서 볼 독자는 흔치 않겠죠.”

“네. 대하소설의 단점은 또 있습니다. ‘요즘 트렌드’와 전혀 맞지 않아요. 아마 1권은 성공을 하실 겁니다. 지금 문단에서 작가님만큼 인기 있는 작가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2권, 3권… 이렇게 뒤로 갈수록 이슈는 사그라듭니다. 당연한 일이죠. 2권이 나왔을 때 즈음, 사람들은 1권의 내용을 잊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이준환 편집위원은 도저히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이런 난점을 알고 있으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건지.

나는 그에게 말했다.

“맞습니다. 대하소설은 책으로 보기에 지루하죠. 끝까지 보기에 어려워요. 대하소설은 책이라는 매체와 어울리는 글이 아니거든요. 매일매일 발행되는 신문과 어울리죠.”

“그럼….”

“네. 저도 매일매일 글을 발행해 볼까 합니다. 연재의 형식으로.”

이준환 편집위원은 깜짝 놀랐다.

“이상 작가님,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편 소설을 열 개의 장으로 나눠서 열흘 동안 내보이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매일매일 오차 없이 쓰셔야 하고, 한번 쓴 글은 수정할 수도 없죠. 하시는 일도 많은데 그 긴 시간 내내 한 작품에만 매달리셔야 합니다.”

“제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미국에서 발간된 스릴러는 이미 시나리오화해서 적당한 영화감독에게 넘겼습니다. 물론 제작사가 잡히고 소소한 수정 요청이 있겠지만… 이미 제 손을 떠난 글이죠. 제가 써야 할 글은 단 하나입니다.”

나 ‘이상’의 생애를 통째로 담은 그런 글 말이다.

“그리고 그 소설은… 허락해 주신다면 ‘신―문학’과 제 홈페이지에 동시 연재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초반 홍보를 좀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내가 신라문학은 찾은 이유.

그것은 바로 연재가 시작되기 전에 들어갈 홍보 때문이었다.

이준환 편집위원은 걱정이 가시지 않은 듯 말했다.

“홍보야 당연히 해 드리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고가 덜어지는 건 아닐 겁니다. 어디에 연재를 하건 힘이 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문단의 기라성같은 선배들도….”

“….”

“오랜 기간 신문 연재를 하셨습니다.”

1930년대의 나, ‘이상’도 그랬다.

<오감도> 연작으로 신문 연재를 했지.

독자들의 항의로 연재가 중간되고 말았지만.

문득,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이토록 연재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가… 그때의 상처를 극복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하는.

“그러니, 저도 할 수 있습니다. 편집위원님.”

내 말에 이준환 편집위원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만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사실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할 이윤 없었다.

다만, 이번 도전은 내 작가 생활의 큰 전환점이다.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동의 정도는 얻고 싶었다.

“후우… 꽤나 그 글을 쓰고 싶으신 모양이네요.”

“네. 맞습니다.”

“제가 뭐라고 작가님을 말리겠냐마는….”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 내 마음 깊은 곳의 욕망을 파헤치려는 것이리라.

“비단 한국 문학 시장을 겨냥한 계획은 아니겠죠?”

역시.

이준환 편집위원은 눈치가 빨랐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세계 무대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작가의 저력을 보여 주는 데에는 긴 글 만한 게 없으니까요.”

이제는 이상의 이름을 제대로 못 박을 때다.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세계’라는 무대에 말이다.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도… 이 정도까지 원대한 계획을 세워 본 적이 없다.

이렇게까지 절실하게 뭔가를 쓰고 싶었던 적도.

* * *

압구정의 파인 레스토랑.

‘팀 이상’과 피터 한 교수가 만났다.

아니, 이제 피터 한도 ‘팀 이상’이라고 해야 하나.

최대한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하라 한 건 나지만,

이렇게까지 고급스러운 곳을 잡을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피터 한 교수의 입김이 작용한 모양이다.

그는 아주 품위 있는 자세로 식사를 했다.

우리야 뭐, 그를 열심히 따라 했고.

이 과하게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금홍이가 내게 물었다.

“혜경 샘, 그런데 왜 갑자기 우리를 부르신 거예요?”

“맞아요. 친목 모임치고는 좀 화려한데?”

지훈도 한마디 했다.

나는 슬슬 본론을 꺼내 보기로 했다.

“당분간 여러분이 좀 바빠지실 것 같아서, 미리 로비 좀 하려고요.”

“로비요?”

금홍이 되물었다.

그녀는 아는 게 있냐는 듯 지훈에게 눈짓했다.

당연히 지훈은 멋모른 채 고개를 저었고.

피터 한 교수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물끄러미 날 봤다.

이젠 더 간을 볼 것도, 숨길 것도 없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조만간 소설을 하나 연재할까 해요. <실족>의 내용과 인물을 토대로… 아마 대하소설 분량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금홍이가 아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홍에게는 일본에서 이 얘길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머지 두 사람인데….

지훈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 이후로는, 낮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준환 편집위원이 그랬던 것처럼, 지훈 역시 우려 섞인 걱정을 쏟아 냈다.

사실 <갈림길>을 쓸 때부터 지훈은 날 좀 걱정했다.

내가 독일이건 일본이건… 미움받는 꼴을 못 본다며.

그때마다 적잖은 설득의 과정이 있었기에, 나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왔다.

하지만 의외로 지훈은 이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해 보는 게 맞겠죠.”

“…더 반대 안 해?”

“제가 반대한다고 형이 제 말 듣나요.”

라는 서운한 소리를 했다가도.

“그리고 대체로 형 말이 맞으니까요.”

라고 또 웃으며 말하는 것이다.

뭐, 말려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을지도.

이제 남은 사람은… 피터 한 교수였다.

그는 별말 없이 냅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금홍의 번역도 외국인들이 읽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번역을 위해선 그가 필요하다.

‘팀 이상’ 밖에서 내 작품이 번역되는 것도 바라지 않고 말이다.

내내 침묵하던 피터 한.

가만히 입을 열었다.

“세계의 많은 문호들이… 작가님과 같은 방법으로 이름을 남겼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빅토르 위고… 장편 소설이 작가의 정수라면, 대하소설은… 작가 자신이죠. 그만큼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용이한 장르가 없어요.”

그는 냉철하게, 그리고 분석적으로 말했다.

심각해지는 분위기.

남은 두 사람은 괜스레 눈치를 보았다.

피터 한 교수는 쿡 하고 웃었다.

그리고 몸을 살짝 기울이며 내게 말했다.

“목적을 확실히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작가님께서는, 이 대하소설로… 노벨문학상이라도 노리시려는 겁니까?”

노벨문학상.

그 단어에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피터 한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는 애초에 농담 같은 걸 뱉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도, 지금껏 한 말 중에 단 한 마디도 농담은 없었다.

나 역시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

“노벨문학상을 노리면 안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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