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회
단편 소설 <실족>을 완성했다.
어떤 소설이 작가에게 중요하지 않겠냐마는, 이 단편 소설은 의미가 남달랐다.
<실족>은… 앞으로 시도할 연재소설의 맛보기나 마찬가지니까.
첫 독자는 역시 지훈이었다.
나는 어젯밤 지훈에게 소설을 보여 주었다.
지훈은 워낙 글 읽는 속도가 빠르다.
못해도 오후까지는 한마디 해 줄 줄 알았는데, 저녁이 다 될 때까지 말이 없다.
작업실에서 나는 슬쩍 지훈을 보았다.
지훈은 다른 일에 빠져 있었다.
“야, 지훈아.”
“네?”
“<실족>, 다 읽었어?”
“네? 아… 네.”
하고 좀 난감한 얼굴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읽었어?”
“그게….”
지훈이는 잔뜩 쌓인 책들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실족>을 프린트 한 원고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회의용 테이블로 왔다.
지훈이 테이블에 원고를 올려두었다.
이러쿵저러쿵 적은 것도 많아 보이는데… 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을까?
“사실 굉장히 많은 내용을 썼어요. 시대가 다른 과거를 얼마나 훌륭하게 묘사했는지, 역사에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얼마나 세련되게 표현했는지, 우리 현대인 역시 그 숙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까지요.”
지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좀 머뭇거렸다.
나는 넌지시 물었다.
“뭔가 걸리는 게 있어?”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소설은 제가 판단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느낌? 생각이 아니라?”
“네. 생각 정리는 충분히 했어요.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읽고 또 읽었어요. 하지만 읽으면서 그 느낌은 더 강해지더라고요.”
지훈은 원고를 내 앞에 스윽 내밀었다.
“이 작품의 ‘아우라’는 저 같은 젊은 평론가가 감당할 만한 게 아니에요.”
아우라.
지훈은 그렇게 말했다.
아우라란 예술품에 담긴 고유의 분위기.
그 단어를 듣자 지훈이 이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소설이 허구의 산물이라지만… 작가의 실제 경험을 기반한 소설의 분위기는 남다르다.
작가의 피와 살이 묻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지훈은 내가 1930년대에 종로를 거닐었다는 걸 모른다.
그러니 <실족>의 리얼리티를… ‘아우라’로 느낀 거겠지.
“좀 더 원로 평론가에게 보이는 게 나을 거예요. 연세가 있으신 분은 더 객관적으로 이 작품을 보실 테니까. 괜찮으시면, 제 지도 교수 정미현 교수님께 평을 부탁드릴게요.”
정미현 교수는 베테랑 평론가다.
근현대사를 담은 과거의 작품들에 대한 눈도 밝고.
하지만 난 지훈에게 ‘평론’을 바란 게 아니다.
<실족>의 ‘느낌’을 바란 거지.
“음… 일단 <실족>에 대한 네 감상은, ‘아우라’가 있다는 거지?”
“있다는 수준이 아니에요. 아… 설명을 잘 못 하겠는데… 마치, 과거를 흠뻑 묻히고 온 소설 같아요.”
과거를 흠뻑 묻히고 온 소설.
난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정미현 교수님께 굳이 보여 드릴 필요 없어. 네 평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그럼.”
내가 <실족>을 쓸 때 가장 힘을 줬던 부분.
바로 ‘지난 과거’가 아닌 ‘지금 살아 있는 일’로 느껴지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점에서… <실족>은 성공을 거둔 듯했다.
* * *
나는 <실족>을 홈페이지에 공개한 후, SNS로 홍보를 시작했다.
SNS 문구는 지훈이 기막히게 잘 뽑았더랬다.
‘틸 버켈과의 <두 역사>를 잇는 글’이라던가.
‘<갈림길>을 소설화한 이상의 신작’이라던가.
그런 지훈의 노력 때문이었는지, <실족>의 결제 수는 안정적으로 늘어났다.
해외 쪽도 그냥 둘 순 없었다.
나는 금홍과 피터 한에게 영어 번역을 맡겼다.
그들이 열심히 번역을 하는 동안,
나 역시 <실족>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한국 문단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일례로, 한 원로 평론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이상의 <실족>은 한국의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갈림길>부터가 한국인들이 가진 역사적 숙명의 아픔을 잘 건드리지 않았는가. <실족>은 그것의 후속편이자 완성편으로, 더욱 살아 넘치는 듯한 디테일로 우리를 그 아픔의 시절로 데려간다. 시간을 초월하게 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힘이다. 그런 면에서 이상은 이번 작품 <실족>을 통해 문학의 힘을 전면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이런 식의 극찬은… 주로 원로들 사이에서 나왔다.
사실 지금까지의 내 소설은 젊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원로들의 이런 호감 어린 관심을 받아 본 적도 처음이라,
좀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실족>에 대한 논의가 문단 밖으로 번진 것이다.
내가 한국대 도서관에 갔을 때였다.
슬슬 <실족>도 반응이 오니… 연재소설을 준비할 때가 된 것 같아서였다.
나는 근현대사 역사서들을 잔뜩 빌렸다.
그렇게 낑낑대며 책을 나르던 때였다.
우웅― 우웅―
난데없이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보니, 지도 교수인 심 교수의 이름이 떠 있었다.
“네, 교수님.”
― 어어, 이상 작가. 학교인가요?
“아, 네. 마침 도서관입니다만.”
― 잘됐네. 잠깐 내 연구실로… 아니다. 우리가 그리고 가지. 도서관 앞에서 봐요.
뚝.
…응?
나는 좀 당황스러운 채로 서 있었다.
연구실로 오라는 것도 아니고… 여기로 오겠다고?
게다가 ‘우리’는 또 누군데?
그렇게 멀거니 책을 들고 있을 때였다.
“이상 작가!”
도서관 입구에서 심 교수가 다가왔다.
“교수님!”
그는 정말로 혼자가 아니었다.
웬 중년 무리를 데리고 왔는데… 유행을 타지 않는 양복, 역시 유행을 타지 않는 머리 스타일, 하나같이 수더분한 인상.
아마도… 교수들인 것 같았다.
심 교수는 내게 일행을 소개했다.
“사학과 교수들이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이 맞았다.
나는 그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어딘가 설레어 하는 눈으로 나를 봤다.
그리고 내가 든 역사서들을 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뿌듯한 표정까지 짓는 거다.
나만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심 교수가 그들을 데리고 온 연유를 말했다.
“이 작가 이번 소설 말입니다, <실족>. 그게 요즘 근현대사 학회에서 굉장히 유명하다고 해요.”
한 교수가 말을 이어받았다.
“맞아요. 그래서 저희가 작가님 한번 뵐 수 있느냐고 심 교수님을 졸랐죠. 마침 학교에 계시다고 해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허허….”
근현대사 학자들이 나를?
게다가 한국대 사학과 교수들이면,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학 석학들이 아닌가.
나는 일단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이라서요. 시간 되시면 저희와 저녁이라도 한 끼 같이 하시죠.”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그들과 함께 도서관에 나섰다.
우리는 학교 근처 중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심 교수가 팔꿈치로 날 쿡 찔렀다.
“놀랐죠, 이상 작가?”
“조금요. 책만 빌리고 얼른 갈 생각이었는데.”
“<실족>은 나도 읽어 봤어요. 좋은 소설이더군요. 우리야 내용이나 메시지, 표현 방법에 집중하지만… 역사학자들은 다르거든요. 소설 안에 들어있는 1930년대의 디테일이나 시대적 감성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나 봐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실족>을 필두로 한국 소설의 역사적 풍경 재현의 문제를 가지고 국문과와 사학과가 같이 학회를 열 계획도 해 보고 있어요.”
“학회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내 소설로 사학과에서 학회를 열 수도 있다고?
그러자 심 교수는 침착하게 말했다.
“네, <실족>이 역사학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거죠. <실족>과 같이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소설들을 골라서 그 가치에 대해 깊이 이야기해보는 거죠. 사학과 학계에서는 이미 꽤 논의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문단이나 한국문학계도 아니고,
역사 학계에 <실족>이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중식당으로 들어간 후.
교수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내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그래, 그 종로를 묘사한 부분 있지 않습니까, 어디에 어느 카페가 있고, 그 카페 옆에 어느 기방이 있고, 또 고서점의 주인장은 어떻고… 하는 그런 배경 정보들은 어디서 가져오셨습니까?”
…난감한 질문.
‘내 기억’이라고는 절대 답할 수 없겠지.
“기존 자료를 토대로, 상상을 가미했죠.”
“허, 그런데 정말 자료 조사를 잘 하신 것 같습니다.”
한 교수가 저쪽에서 끼어들었다.
“작가님께서 묘사하신 종로의 거리 풍경이라는 게…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나눠져 있던 자료들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져있었거든요. 그걸 소설 속에서 지도처럼 펼쳐 놓으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른 교수가 말을 받았다.
“맞아요. 종로라는 곳이 워낙에 복잡한 거미줄처럼 생겨서, 자료들을 가지고 그 시절 풍경을 하나로 모으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이 단편 소설에서 그걸 해내셨으니 저희가 놀랄 수밖에요.”
“그것도 참 절묘하게 만들어 내셨어요. 아무리 상상이라지만… 내용을 읽고 상상해 보면 정말 그럴듯하다니까요. 마치 그 시절에 종로를 살아 보신 것 같은 착각마저 들지 뭡니까, 하하하하!!”
교수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난 덧붙일 말이 없어 어색하게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히야― 이렇게 책을 빌리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자료 조사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 작가인지를요.”
한 교수가 내가 빌린 책을 보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어렴풋한 감동마저 느껴졌다.
“뭐, 이상 작가가 여간 성실한 게 아니긴 하지요.”
말이 없는 나 대신 심 교수가 말했다.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실족>을 쓸 때 자료 조사에 힘을 쓰진 않았다.
내 기준에서 1930년대 종로를 돌아다닌 건, 5년도 채 되지 않은 근래의 일이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 풍경이 선연할 정도로….
어쨌건 나의 그 기억이 이토록 잘 먹혔다니.
민망할 정도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몇 잔의 술을 주고받았다.
사학과 문화가 원래 그런 것인지, 그들은 꽤 말술이었다.
심 교수와 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가 계속될 즈음.
나는 좀 알딸딸한 상태로 심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
“왜요?”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나는 평소보다 좀 더 솔직하게 굴었다.
“<실족>을 기반으로 대하소설을 만들려고 하는데, 좀 걱정이 돼요.”
“대하소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가지고 대하소설을 쓰려 하는데요?”
“음… 한 남자의 인생이죠.”
“<갈림길>과 <실족>의 주인공?”
그는 눈치가 빠르게 말했다.
역시 교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맞아요. 그 인물을 다시 한번 변주하려고요.”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거기까진 괜찮은데… 뭐가 마음에 걸리는데요?”
“대하소설은 호흡이 대단히 길잖아요. 저도 긴 집필 시간을 보내야 하고 독자들도 긴 독서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데….”
“하는데?”
“스마트폰 시대에 과연 그게 어울리는 발상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사학과 교수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와중에… 그와 나 사이에만 침묵이 깔린 듯했다.
이윽고 심 교수가 입을 열었다.
“맞아요. 시대착오적 발상.”
…역시.
“하지만 이상 작가가 잘하는 거 있잖아요. 이슈를 만드는 것.”
“이슈를 만든다면….”
“독자들과 ‘밀당’을 하는 거죠. 가능하면 전 세계의 독자들과. 연재소설의 장점 아닌가요?”
“…?”
“기대감과 아슬아슬함을 주는 거. 그러는 동안 욕도 먹겠지만, 사실 욕 먹으며 쓰는 것도 요즘 트렌드잖아.”
심 교수는 장난조로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 마침 말을 걸어온 사학과 교수와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말을 이해하고선…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