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회
일본 나리타 공항.
금홍과 나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밖의 날씨는 굉장히 좋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정을 좀 늘려 볼걸 싶을 정도로.
마찬가지로 창밖을 내다보던 금홍이 말했다.
“아~ 아쉽네요. 돌아가기 싫어요.”
“대학원에서 할 일 많죠?”
“그렇죠. 기숙사도 관리해야 하고, 공부할 것도 많아요. 죽도록 해도 겨우 따라잡는 수준이에요. 혜경 샘은….”
금홍이 날 보곤 말했다.
“돌아가면 소설 쓰셔야죠? 단편.”
“네. 써야죠.”
“스케줄 최대한 비워 놓을 테니, 번역 맡겨 주세요. 피터 한 교수님께도 말씀드려 놓을게요.”
“든든하네요. 감사해요.”
“아, 어제 강연은 어땠어요?”
“어제요?”
나는 조금 웃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우스운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음… 평소와는 달랐어요. 평소에 강연이 끝나면 사인을 해 드린다거나 사진을 찍어 드리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그런 요청이 하나도 없었어요. 강연이 끝났는데….”
“….”
“아무도 박수를 안 쳤고요.”
“네?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그간의 일을 금홍에게 말해 주었다.
<갈림길>을 일본에서 내지 못하게 된 일부터, 어제의 강연 내용까지.
금홍은 적잖이 놀랐다.
“…전면승부를 하셨네요.”
“그런 셈이죠.”
“무섭지 않았어요? 아, 그 사람들이 무섭다기보다는, 혜경 샘이 일본에서 쌓아 온 커리어랄까… 그런 것들이 무너질 수도 있잖아요.”
아, 그런 무서움.
나도 사람인데 왜 없었겠나.
하지만 그 무서움보다 더 컸던 건….
“무섭다기보단 화가 나서요.”
“네?”
“제가 에세이에 표현한 1930년대가 마치 없었던 시간처럼 취급받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
“아, 물론 그렇다고 제가 그 시절을 살았다는 건 아니지만.”
난 그렇게 농담처럼 말을 넘겼다.
마침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슬슬 줄을 서야 할 타이밍이었다.
“가죠.”
내 말에 금홍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 캐리어를 끌며 날 따라왔다.
“무슨 생각 해요?”
금홍이 날 빤히 올려다봤다.
그 동그란 눈으로, 아주 빤히.
“혜경 샘의 그 전면승부가 무섭지만… 설렌다는 생각이요.”
‘설렌다’라….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일차적으로는 내 소설에 대한 기대를 말하는 것이겠고.
이차적으로는 그 소설이 세상에 미칠 영향을 말하는 거겠지.
“패스포트?”
탑승 직전.
승무원이 내게 여권을 요구했다.
그녀는 내 여권을 기계에 갖다 댔다.
나는 다시 여권을 받고, 탑승구를 향해 갔다.
마찬가지로 절차를 마친 금홍이 날 따라왔다.
나는 그렇게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뒤를 돌아봤다.
정돈된 분위기의 나리타 공항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전생에서 내 죽음에 일조한 나라지만,
이번 생에서는 일찍이 날 알아봐 준 나라.
그리고 지금은 금방이라도 날 미워할 것 같은 나라.
생각해 보면… 일본과는 항상 기묘하게 얽히는구나.
“혜경 샘…?”
금홍이 왜 들어가지 않느냐는 듯 날 불렀다.
“저도 설레요.”
“네?”
나는 대답 대신 그냥 웃어 보였다.
일본에 내 작품을 보여 줄 생각을 하면… 설렐 수밖에.
* * *
한국으로 귀국한 후.
나는 요 며칠 새에 또 달라진 분위기에 놀랐다.
<갈림길>이 한국에서 적잖은 인기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신라문학에서도 <두 역사>가 발매가 된다.
틸 버켈과도 계약이 잘 돼서 <검은 성>과 <갈림길> 모두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 되니… 지훈이 고생이 많았다.
여기저기서 오는 인터뷰 요청들.
그것을 거절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고 했다.
<그 집> 시나리오 작업이 일차적으로는 끝난 지금.
더 어물쩍거릴 거 없었다.
나는 새로운 소설 집필에 돌입했다.
물론 <갈림길>을 그대로 소설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에세이에서 소설로 몸체를 바꾼 지금.
더 ‘소설다운’ 이야기를 풀어낼 필요가 있다.
연재소설의 기반을 닦는 작업이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
소설에 쓸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선…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필요가 있겠지.
일본행의 여독에 하루를 꼬박 자 버린 다음 날이었다.
아침부터 신발을 신는 내게 지훈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흐아암… 형, 어디가요?”
“종로.”
“종로? 웬 종로? 서점 가요?”
“아니. 소설 쓰러.”
“엥?”
녀석이 궁금해하거나 말거나.
나는 차도 가져가지 않고 집을 나섰다.
내 목적지는 서점이 아니었다.
아니, 목적지가 있다고 할 수 있으려나.
나는 ‘종로’ 그 자체에 갈 생각이었다.
1930년대의 종로는 작가들의 거리였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종로가 아니면 놀 곳이 별로 없었다는 게 맞겠다.
나는 버스를 타고 종로1가에서 내렸다.
전생에서 셀 수 없이 쏘다녔던 이 거리.
물론 겉모습은 전부 바뀌었다.
소를 몰고 다니던 시장 거리가 모두 빌딩이 됐으니.
그나마 그때와 같은 점이 있다면… 비슷하게 번잡하고 시끄럽다는 거겠지.
난 그렇게 한참을 종로를 걸어 다녔다.
대형 서점이 세 군데나 있었지만 가진 않았다.
그저 예전의 기억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에 주력했다.
멋을 낸답시고 차려입은 양복과 구두.
흙길을 걷다 보면 뽀얗게 흙먼지가 묻곤 했지.
공기는 지금과 비교도 안 되고 깨끗했고,
무엇보다 차 소리가 없어서 훨씬 조용했다.
빌딩이 없던 하늘은… 하늘이라기보단 창공이었지.
카페가 아닌 다방들이 즐비한 거리에는, 작가도 많고 기생들도 많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람 구경을 하며 다니다 보면, 심심한 겨를도 없이 밤을 맞이했다.
기생들과 노는 게 가장 재미난 일이었지만… 그럴 돈이 없으니 작가들이 모일 법한 술집에 갔다.
가난한 작가가 누릴 몇 안 되는 유희라고나 할까.
그런 술집에서 참 많은 걸 했다.
구인회 동료들과 문학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글을 쓰기도 했다.
물론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 ‘싸움들’이었다.
종로의 술집은 거기서 거기다.
아무 데나 들어가도 아는 얼굴들이 불쑥불쑥 나온다.
그중엔 반가운 사람만 있으랴.
이른바 ‘문학적 지향성’이 다른 이들도 많았다.
아니, 우리 구인회 작가들 외에는… 많은 작가들이 나를 미워했다.
그들은 툭하면 내게 시비를 걸었다.
구인회 작가들 중 내게 유난히 그런 못난 짓을 해 댔다.
아마 내가 가장 몸집이 작아서였겠지.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 나는 말이지. 자네들처럼 비겁하게 문학을 하지 않을 거야. 자네들은 조국의 현실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잖아. 우린 지식인들이라고. 지식인이라면 응당 ‘역사의식’을 가지고 민중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 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똑똑하다고 젠체나 하는 자네들은, 어째서 자기밖에 모르냔 말이야. 사랑이니 권태니 무기력이니 하는 부르주아들 말장난이나 하며 인기를 끄니 좋아?
그들의 신랄한 비판의 마지막에 들어가는 말.
― 특히 이상 자네. 자네는 일본어로 글을 발표하지? 그게 조선의 작가가 할 짓인가?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일본어로는 절대 글 안 써.
그들이 말이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애국이니 조국이니 독립이니 하는 거창한 가치들.
구인회는 문학에 그런 메시지를 담지 않았다.
작가란 애국이 아니라 문학을 하는 예술가니까.
난 그런 말을 한 당사자에게 꼭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자네 정말 훌륭한 애국지사군. 자네 말이 다 맞아. 우리의 글은 조선의 미래에 대해 무관심해. 일본어로 글을 발표하는 나는 고약한 놈이 맞고.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는 천하의 매국노를 보듯 날 바라보았다.
그럼 나는 그 꼴이 우스워 푸하하 웃은 후, 역시 또 꼭 이렇게 한 마디 덧붙였다.
― 그런데 이를 어쩌나? 후세에는 한글로 쓴 자네의 작품이 아닌 일본어로 쓴 내 작품이 남을 것 같은데?
― 뭐라고?
― 아니, 후세까지 갈 것도 없군. 지금 당장만 봐도 문단에선 내 작품만 가지고 떠들어 대는 것 같던데. 조선의 문단이 조국의 미래에 관심이 없어서 자네의 위대한 문학을 무시하고 있네. 그 증거가 뭔지 아나? 사실 난 자네 작품이 뭔지도 몰라. 하하하!
― 이 자식이!
그가 눈이 뒤집혀 내게 달려들었다.
싸움이 붙은 건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운이 없으면 몇 대 얻어맞기도 했다.
내가 반격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는 워낙 허옇고 나약한 체질이었으니.
혜경의 몸이었다면 주먹이라도 휘둘렀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난리를 피운 날에는 난 걸어서 집에 갔다.
종로 밤거리의 찬바람을 맞으며.
난 콧노래를 흥얼거리듯 이렇게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아, 난 참으로 역사의식이 없구나.
아, 난 참으로 역사의식이 없어도 되는 나라에 살고 싶구나.
역사니 조국이니 독립이니… 이런 거창한 가치들에서 자유로운 문학을 하고 싶었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사랑이니 권태니 하는 것들.
그런 작은 것들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싶었다.
물론 그런 마음 역시 위악이긴 했다.
내 내면 깊숙한 곳에 조선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왜 없겠나.
하지만 그런 걸 찾는 건 평론가들의 몫이다.
작가의 역할이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이 아닌가?
난 사랑하고 싶고, 자유롭고 싶다.
그게 나란 인간의 전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역설적인 바람이었다.
조선 작가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결국 역사에 발목이 잡히지 않았나.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보라.
사상범이란 누명으로 수감됐다가 병이 악화돼 죽었다.
독립 만세를 외쳐 본 적도, 글에 절절한 애국을 담아 본 적도 없는데.
내게 죄명은 ‘일제강점기 지식인’, 그 한 가지다.
아무리 내가 역사를 무시하려 해도.
아무리 다른 이들이 내가 역사의식이 없다 비난해도.
나는 그놈의 역사 때문에 죽은 셈이었다.
그렇게… 옛 생각을 하며 종일 종로를 돌았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나는 내가 무엇을 쓸지 알 것 같았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 후 아무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통유리창 앞에 앉아 노트를 꺼냈다.
노트 첫 장.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이렇게 적어 봤다.
‘실족’
실족이란 발이 걸려 넘어지는 걸 의미했다.
나의 경우에는… ‘역사’에 걸려 넘어진 셈이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식민지인들은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자유가 없으니.
소설의 첫 장면.
나는 술집에서의 싸움을 가져와 보기로 했다.
그런 싸움이야 수없이 많이 해봤다.
장면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 비난을 빈정거림으로 넘길 정도로 무덤덤한 인간.
한 마디로 전생의 ‘이상’을 닮은 인간.
그 인간은 사상범이라는 아이러니한 오해로 죽는다.
지식인이 이렇게 역사에 무심할 수 없기에, 오히려 더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란 오해 말이다.
문체는 조금 가볍게 가자.
첫 장면이 술집에서의 싸움이니.
희극적이면서도, 어딘가 한심하게.
그 톤을 끝까지 유지한 채로 마지막을 맞자.
소설 마지막에 주인공의 숨이 끊길 때까지.
그러면 그 희극적인 시선은 슬픔으로 바뀔 것이다.
제목은… 처음 발상 그대로 가자.
<실족>.
멋진 제목 아닌가.
그렇게 종로에서 소설 구상을 마친 후.
나는 한동안 <실족>에 매달려 있었다.
내가 직접 겪은 사건들.
내가 직접 느낀 감정들.
자전 소설이나 다를 바 없는 만큼, 소설은 술술 써 내려져 갔다.
때론 소설 속 상황에 빠져 킥킥 웃기도 하고, 때론 괜히 서글퍼져서 더는 쓰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단편 소설 <실족>의 원고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