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31화 (131/204)

131회

나는 요 며칠 동안 몸소 느끼고 있다.

독일에서의 <두 역사>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는 걸.

그리고 그 논란은… 독일에 멈추지 않고 유럽으로 퍼졌다.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곳은 홈페이지였다.

나는 일찍이 <갈림길>을 영어로 업로드했다.

당연히 뮌의 동의를 얻은 후에 말이다.

댓글 시스템이 없어 알 순 없지만,

영어 페이지의 결제 수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갈림길>은 영미권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글이 아니다.

아마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몰려와 봤겠지.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반가운 전화 한 통이 걸려 왔기 때문이다.

― 작가님. 저, 장 스테판입니다.

프랑스 리브레 출판사의 장 스테판 사원.

생각지도 못한 그의 연락에 난 들떠 버렸다.

“스테판 씨! 오랜만입니다! 다들 잘 지내시죠?”

― 그럼요. 작가님, 얼마 전에 멋진 글을 독일에서 발표하셨던데요? 지금 파리 출판계도 그 책 얘기로 난리가 났습니다.

“<두 역사> 말이죠?”

― 네. 틸 버켈은 프랑스에서도 유명한 철학자거든요. 그가 한 인터뷰가 워낙 자극적이었고… 작가님도 멋지게 한 말씀 덧붙이지 않았습니까. 프랑스 뉴스에서도 나올 정도로 화제였어요.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독일 철학자가 ‘나찌’를 입에 올리고,

한국 작가가 ‘유다’에 일부 독일인들을 비유했으니.

독일이야 이 일로 아직 시끄럽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은 어떨지.

난 좀 궁금해졌다.

“제 글 <갈림길>에 대한 여론이 궁금하네요. 프랑스나 다른 유럽 국가들의 여론 말이에요.”

― 프랑스가 유럽을 대표할 순 없겠지만… 프랑스 문단에서는, <갈림길>이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다고들 말해요.

“새로운 시선이라면…?”

― 전쟁이 남긴 내면적 상처 말이에요. 외부적 상처는 복구할 수 있지만, 내면적 상처는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셨잖아요. <갈림길>에서 말한 모순된 감정, 저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조국과 개인의 욕망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그런 감정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단 것도요.

장 스테판 역시 그런 감정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한국계 이민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 역시 한국에 대해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겠지.

― 당연히, 식민지 경험이나 제2차 세계대전에 피해를 입은 유럽 국가들도 그 감정에 정말 깊게 공감할 수밖에 없을 거고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더 바랄 게 없긴 하겠습니다만.”

― 분명해요. 절 믿으세요. 독일이야 저렇게 시끄럽지만, 많은 유럽 국가가 작가님에게 긍정적인 의미로 놀라고 있어요. 유럽 역사의 폐부를 찌르는 글이… 동양권에서 나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요즘에 고민이 많았거든요.”

정말이었다.

저번 신문사 인터뷰 이후, 난 계속 도마 위에 오른 기분이었다.

할 말을 했다고 생각하고, 후회하지도 않지만… 내 말이 얼마나 동의를 얻을까 하는 불안.

사람인 이상 그런 감정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런데 장 스테판은 왜 내게 전화를 했을까.

단순히 프랑스의 반응을 전달하려는 건 아닐 테고.

궁금해하던 차에, 마침 장 스테판이 말했다.

― 저… <갈림길>의 원고를 당연히 프랑스에도 발간하시겠죠?

아하.

이제야 알겠다.

장 스테판은 출간 계약을 위해 연락을 한 거다.

한 마디로, 영업 전화.

뭐, 이렇게 정성 들인 영업이라면 나도 환영이다.

난 장난을 담아 대답했다.

“네. 전 리브레에서 낼 계획이었습니다만, 혹시 리브레는 다른 계획이 있었는지…?”

― 아! 아하하하…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저희도 당연히 작가님의 글을 발간할 계획이었죠. 확인차 전화를 드린 겁니다. 확인차.

그는 당황하면서도,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엉겁결에 ‘영업’을 성공한 장 스테판.

그는 ‘유럽 쪽은 걱정 말라’는 말을 덧붙이곤,

기분 좋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리브레 말고도 여러 유럽 출판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모두 <갈림길>을 내고 싶다는 전화였다.

나는 지훈과 상의하여 출판사들을 골랐다.

개중에는 틸 버켈과도 계약된 곳들이 있었다.

<검은 성>과 <갈림길>은 한 쌍이므로,

우리는 우선적으로 그 출판사들을 선택했다.

이제 남은 곳은… 정말 일본뿐이다.

“나, 많이 기다렸단 생각이 들어.”

출판사 고르는 일을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나는 지훈에게 넌지시 말했다.

“네? 뭐가요?”

“일본 말이야. 도마크 출판사.”

“…아직도 연락 안 왔어요?”

“응.”

“너무하네요. 안 되면 안 된다 말을 할 것이지. 의리 없게.”

“된다, 안 된다를 결정 못 했겠지. 아직도.”

“답답하네요.”

지훈은 툴툴거리며 출판사 자료를 그러모았다.

“차라리 다른 출판사에 연락을 해 보는 건 어때요?”

“아니, 일단은 도마크에게 확답을 받아야겠어.”

“…메일로 재촉해 볼까요?”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재촉이 아니라, 결정을 짓게 만들어 줘야지.”

* * *

다음 날 오전.

휴대폰 통화기록과 문자, SNS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도마크는 여전히 묵묵부답.

이제 더 주저할 이유가 없다.

나는 미쯔하루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엔 연결음이 채 다섯 번이 울리기 전에 받던 전화.

어쩐지 지금은 한참을 뜸 들인다.

하지만 그는 결국 비즈니스맨.

전화를 끊을까 고민하던 찰나, 통화가 연결됐다.

― …이상 작가님.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미쯔하루 편집장의 텐션.

“편집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여쭤볼 게 있어 전화를 드렸는데… 통화 괜찮으실까요?”

― …네, 그럼요. 저도 작가님께 꼭 드려야 할 말이 있고….

결정 났구나.

미쯔하루 편집장과 일을 한두 번 해 보는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갈림길>, 도마크에서 내기 어렵게 된 모양이네요.”

― 아… 아… 송구합니다. 작가님.

역시.

그는 정말 미안한 듯,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미리 알려 주셨다면 저도 다른 출판사를 찾아봤을 텐데, 아쉽군요.”

― 아!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결정이 난지는 하루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사회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요.

“이사회에서 어떤 얘기가 나왔죠?”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좀 당황해하는 듯했다.

사실 출판사 내부 회의를 작가에게 옮기는 건, 편집장으로서 별로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알 권리가 있지 않은가.

― 후… 작가님께 내부 이야기를 해 드리는 건, 저희를 오해하지 말아 달라는 간청이기도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일단, 들어 보고 싶은데요.”

― 저희 역시 불필요한 걱정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닙니다.

그는 좀 뜸을 들이더니, 한 가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 몇 년 전 일본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에세이스트가 정말이지 좋은 에세이를 써낸 적이 있었어요. 자신의 취재한 한 극빈층 가족의 이야기였는데… 학대를 받은 사람들이 모여 가짜 가족을 만들고 연금을 받는 내용이었죠. 그러다가 발각되어 그 가짜 가족은 해체되고 자신을 학대하는 진짜 가족에게 돌아가는….

아, 그 에세이 알고 있다.

일본 사회가 애써 모른 척하는 사회의 밑바닥층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에세이가 가진 ‘개인적 서사’라는 한계를 이겨 냈다고.

― 그 에세이스트는 외국에서도 인정을 받고 상도 많이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아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미움을 감내해야 했죠. 항간에는 그 에세이스트를 일본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말들도 많았고요. 그 에세이를 낸 출판사도 한동안 힘들어하다가 결국 문을 닫았어요.

“문을 닫았다고요?”

그렇게까지?

일본인들이 보기에 아무리 불편한 이야기라도, 결국 에세이는 자기 생각을 풀어낸 것에 불과한데.

― …네, 이를테면 이런 이유였습니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어렵게 말을 이었다.

자신조차도 부끄럽다는 듯이.

― 왜 그런 에세이를 써서, 전 세계적으로 나라 망신을 시키냐… 나라 망신을 시켰으니 민폐다… 이런 거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보수적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였다니.

도마크가 대답을 미룬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됐다.

― 일본은 에세이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생각을 투명하게 보여 준다고 생각하기에, 독자들의 몰입도도 엄청나죠. 작가님의 <다시 사는 일>이 인기를 얻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에세이가 논란이 되면 작가와 출판사는 적잖은 타격을 받습니다… 해서, 도마크는 <갈림길>의 발간을 반려하는 바입니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그랬군.

“…아닙니다, 편집장님.”

출판사를 걸고 책을 내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임에도 말로 설명 못 할 씁쓸함이 몰아닥쳤다.

이윽고 나는 그 마음의 정체를 알게 됐다.

<갈림길>에 담은 내 전생을 부정당한 기분.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상황과 이 기분을 떨쳐낼 방법은… 하나뿐이란 걸.

“편집장님.”

― 예, 작가님.

“조만간 제가 소설을 한 편 더 쓸 생각입니다.”

― …예? 아, 예.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미쯔하루 편집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갈림길>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될 겁니다.”

― 아….

그는 대답을 아꼈다.

자신의 선에서 답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일본 독자들을 의식하고 내린 결정은 아닙니다. 그냥, 거절을 당하고 나니 원하는 게 더 확실해졌을 뿐입니다.”

― …그러시군요.

에세이를 내주지 않는다고 소설을 쓰겠다는 게 아니다.

일본인들이, 아니, 세상 모두가 결국 읽을 수밖에 없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글에 ‘나’ 즉 이상의 삶을 담고 싶어졌다.

난 미쯔하루 편집장에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제 소설을 실어 줄 다른 출판사를 찾아봐야 할까요?”

― 아닙니다.

그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마치 ‘이상’의 글을 놓칠 순 없다는 듯이.

“한 가지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적어도 도마크나 미쯔하루 편집장님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요.”

나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

그렇게 자극적인 방법이 아니고도… 내 이야기를 전달할 방법은 수없이 많다.

― …감사합니다. 작가님. 소설이 나오면 이사회에 다시 안건을 올리겠습니다. 아마 소설은 에세이보단 관대한 잣대로 출간 결정을 내릴 겁니다. 물론 저도 힘을 싣지요.

“…좋습니다. 그럼 부탁드리죠.”

나는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때였다.

― 이상 작가님.

“네, 편집장님.”

― …감사합니다. 도마크에 기회를 주셔서.

그 말에 나는 겸손을 떨거나 하진 않았다.

“네. 그럼 끊겠습니다.”

사실 도마크는 내게 큰 실례를 한 셈이었다.

원고를 가져가며 발간을 하겠다 구두계약을 해 놓고 이렇게나 시간을 끌었으니.

웬만한 작가였으면 도마크에 앙심을 품었을 거다.

다시는 계약을 안 하는 게 자연스러울 만큼.

미쯔하루 편집장도 그걸 각오했겠지.

하지만 난 일단 도마크를 이해하기로 했다.

이건 도마크의 문제라기보단… 일본이란 나라의 특성 때문이니까.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했다.

<갈림길>의 메시지를 담되, 그것을 뛰어넘는 나의 새로운 소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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