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24화 (124/204)
  • 124회

    조인후 감독이 물었다.

    “자… 그럼, 컬트영화 공부는 좀 하셨나요?”

    “주어진 시간에서 가능한 만큼은 했습니다. 이론을 다 꿰뚫진 못해도 작품을 많이 봤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컬트에 대해선 전문가가 아닙니다. 대중영화와 예술영화가 다르듯, 예술영화와 컬트영화는 또 다르거든요.”

    다소 겸손한 발언.

    대중영화와 컬트영화의 간극은 대단히 멀지만,

    예술영화와 컬트영화는 비교적 가깝다.

    지식이야 내가 댈 바가 아니겠지.

    나는 천천히 얘길 풀어 가기로 했다.

    “저는 <그 집>이 하드코어한 컬트영화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본 토대가 스릴러라는 건 변하지 않아요. 다만 ‘컬트적인 요소’나 ‘컬트적인 분위기’가 필요할 뿐이죠.”

    “흐음… ‘컬트적인 요소’ 몇몇을 잘 섞어야겠군요. 나머지는 기존 스릴러 영화의 문법을 따라가고요.”

    “네.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누들은 마이너한 출판사가 아니에요. 마이너성을 추구하는 출판사지, 그 규모과 유통 판매 시스템은 이미 메이저 출판사죠. 이건 팬들에게도 적용되는 거고요.”

    김미소 작가에게 한 이야기였다.

    소수파를 지향하는 다수파.

    그런 모순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영화가 필요하다.

    그들의 취향은 이미 어느 정도 ‘대중적’이다.

    완전한 컬트영화를 만들었다간 김미소 작가처럼 극장을 뛰쳐나갈 수도.

    “전략적이네요.”

    조인후 감독이 말했다.

    나는 긴장 섞인 한숨을 뱉어냈다.

    “잘 짜여진 전략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감독님. 잘 만들어진 영화가 탄생하길 바라고요.”

    “그럼 ‘컬트’라는 것에 대해 확실하게 정립하고 넘어가죠.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컬트’란 뭔가요?”

    그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마치 영화를 처음 만드는 새내기를 보듯.

    저런 표정은… 꼭 조인창 교수를 닮았다.

    뭐, 내가 새내기인 건 맞다.

    하지만… 적어도 <그 집>과 관련해서는 정확한 의견을 내야겠지.

    “컬트란, 사실 상대적인 개념이죠. 누군가에겐 대중적인 것이, 누군가에겐 소수적인 걸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컬트영화’라고 하는 건 비교적 구분이 가능해요.”

    “어떻게 가능한가요?”

    “작가와 감독의 의도죠. 영화를 컬트화하겠다는 의도는 작품에 어떻게든 드러나잖아요. 이미지건 사운드건 몽타주건 미장센이건….”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내가 봐 온 컬트영화들.

    그 영화들의 공통점은… 작가의 강력한 자의식이었다.

    “그렇다면… <그 집>은 어느 지점에서 컬트화를 해야 할까요?”

    “몽타주죠.”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영화에서의 몽타주.

    그것은 장면과 장면의 연결을 의미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A라는 장면과 B라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A―B의 순서로 배치, 연결한다.

    그 연결 사이에서 새로운 C라는 의미가 탄생한다.

    즉, C는 ‘A―B’라는 몽타주로 탄생한 의미가 된다.

    조인후 감독은 내 대답을 반가워했다.

    “저도 몽타주라고 생각합니다. <그 집>은 장편 소설입니다. 장면과 장면 간의 연결이 긴밀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나는 덧붙일 말이 있었다.

    조인후 감독이 부정할지도 모를 의견이지만.

    “저는 일반적인 몽타주 기법을 사용하고 싶진 않아요.”

    그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렇다면 어떤 기법을…?”

    “‘뒤틀린 몽타주’를 보여 주고 싶거든요.”

    “‘뒤틀린 몽타주’요?”

    “네. 장면의 연결을 오히려 꼬아 주는 겁니다. 붙어 있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이질감을 줬으면 해요. 뭔가 불편하고 이상한 느낌으로… 하지만 저어― 앞에 있는 장면과 저어― 뒤에 있는 장면은 미학적으로 연결을 시키는 거죠.”

    A와 B의 연결은 이질적으로.

    A와 Z의 연결은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연결.

    그것이 내가 생각한 <그 집>의 몽타주였다.

    “왜 굳이 그런 몽타주를 만들려 하죠?”

    조인후 감독이 물었다.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모든 예술품의 형식은, 예술품의 내용과 맞물려야 합니다. 내용과 동떨어진 형식은 예술가의 과시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 집>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실패의 서사예요. 수지라는 아이는 온갖 실험에 실패해요. 그리고 집안의 비밀을 알고 나서는 도망치죠. 양오빠를 체포한 것도 그녀 본연의 힘이라기보단 경찰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만들어 준 우연한 복수일지도 모르고요.”

    수지가 양오빠를 체포하는 것.

    멀리서 봤을 때 그건 계급적 전복이다.

    하지만 그녀 개인으로는… 사실 우연에 가깝다.

    양오빠가 살인마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경찰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계속 도망치며 살았을 테니.

    “그러므로 그 실패의 서사가 흘러가는 영화 전반부의 몽타주는 불편하고, 무의미한 느낌을 줬으면 해요. 그래서 장면과 장면의 연결을 이질적으로 해 주는 거죠. 어딘가 말이 안 되는 느낌을 주도록. 하지만 양오빠를 만나고 취조를 하는 장면에서는… 모든 게 바뀌어야 해요.”

    양오빠를 취조하는 장면이 Z라면.

    Z는 A, B, C, D… 모든 장면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럼 A―Z, B―Z, C―Z, D―Z… 라는 새로운 몽타주가 생성될 테고.

    “취조 장면은 앞선 모든 장면의 해답이 되어야 해요. 그 결과 전반부는 새로운 몽타주를 형성하는 거죠. 그럼 이질감은 사라지고 서사는 하나로 모이게 될 거예요.”

    조인후 감독은 말이 없었다.

    그저 눈만 깜빡이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름답네요.”

    “하지만 감독님이 도와주셔야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치사가 아니었다.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이론이야 겁 없이 말할 수 있지.

    하지만 그걸 실현시키는 건 다른 문제다.

    조인후 감독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아름답다’고 말한 것 치곤, 고민이 많아 보였다.

    “가능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그 집>의 원고에 어울리는 기획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하지만?

    “굉장히 어려울 거예요. 영화의 몽타주… 연결을 통해 파생되는 의미라는 건… 사실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니까요. 관객들이 느끼는 거지.”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죠. <그 집>의 스토리를 잘 살려서 스릴러 영화를 만든다면… 웰메이드가 만들어질 거예요. 장담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이어 말했다.

    “하지만 작가님이 말씀하신 방향으로 컬트적 성격을 살린다면… 복불복입니다. 우리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아니, 그 전에 이 극본을 받아 줄 제작사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 역시 각오한 바였다.

    하지만 ‘복불복’이라는 말.

    좋지 않은가?

    잘만 하면… 큰 성공을 거둔다는 뜻이니까.

    “복불복을 선택하겠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는 가만히 웃더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빌딩이 비죽비죽 솟아 있는 푸른 하늘.

    가늘게 뜬 눈으로 어떤 미래를 보고 있을까.

    “…좋아요. 해 보죠.”

    조인후 감독은 내게 숙제를 내줬다.

    <그 집>의 전체적인 구성을 짜 오라는 거였다.

    “구성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편하신 방식으로요. 단, 제가 알아볼 수 있도록.”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막연한 숙제를 받을 줄이야.

    하지만 알고 있다.

    지금 불평이나 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일단, 알았습니다.”

    “시원시원하니 좋네요. 저도 기대가 됩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일어났다.

    조인후 감독인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해 보자고요.”

    나는 그 손을 꽉 붙잡았다.

    “좋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말… 조인창 교수에게도 했던 것 같은데.

    사람 일이란 참 신비롭고도 신기하다.

    * * *

    미국 시애틀.

    조나단 란스마이어 영화감독의 사무실.

    느지막이 사무실에 온 조나단.

    그는 하품을 하며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마침 들어온 직원이 걱정하듯 말했다.

    “괜찮으세요? 요새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완벽하게 괜찮아. 새벽 내내 영화를 봐서 그래.”

    그는 보란 듯 충혈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직원은 마음을 놓은 듯 미소를 지으며 나갔다.

    “후우… 일만 안 하면 밤낮이 바뀐단 말이야.”

    양심이 있으니 이렇게 매일 사무실에 나오긴 하지만.

    영화를 찍지 않을 땐 그는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다.

    먹고, 영화를 보는 게 일과의 전부일 정도로.

    지금도 그는 소파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냥 눕고 싶은데.’

    그렇게 소파를 보고 입맛만 다시던 조나단.

    소파 밑에 뭔가가 있는 걸 발견했다.

    “뭐야, 이게?”

    그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었다.

    얇은 푸른색 봉투는…?

    ‘편지네? 정리하다가 떨어뜨렸나.’

    봉투 겉면에 박힌 누들 출판사의 마크.

    그는 편지를 탁자에 대충 툭 던졌다.

    “출판사 놈들 책 홍보는 안 볼란다.”

    그리고 결국 소파에 벌렁 누웠다.

    “…잠 와.”

    똑똑.

    노크 소리에 조나단은 바람같이 일어났다.

    아무리 부하직원이라도…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은 창피하니까.

    물론, 그동안 그런 모습을 수십 번쯤 들키긴 했지만.

    달칵,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이 물었다.

    “커피 드릴까요?”

    “괜찮아. 하나도 안 졸려. 편지나 읽으려고.”

    그는 얼른 편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직원은 웬일로? 라는 얼굴로 사무실을 나갔다.

    조나단은 엉겁결에 편지를 뜯었다.

    평범한 비즈니스 편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 안녕하세요. 조나단 감독님. 저는 누들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크리스라고 합니다. 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감독님의 작품을 지지하는 팬이기도 하죠. 이렇게 편지를 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편지의 요는 이런 것이었다.

    누들의 신간 중, 영화화에 적합한 소설이 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적절한 감독을 못 찾는 중이다.

    조나단 당신이 작품을 살펴봐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보낸다.

    조나단 감독은 거칠한 턱을 매만졌다.

    이런 식의 편지는 한 해에도 수십 편씩 받는다.

    하지만 이 편지는 조금 달랐다.

    마지막에 덧붙인 크리스의 말 때문이었다.

    ― 제가 이 작품을 보내 드리는 건, 제가 누들의 직원인 동시에 이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흑인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 보시면, 어떤 말인지 아실 겁니다.

    그 말이 조나단의 구미를 당겼기 때문이다.

    조나단은 편지 이곳저곳을 살폈다.

    심지어 봉투까지.

    “…그래서 그 책이 뭐라는 건데?”

    조나단 감독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국 사회에 살아가는 흑인으로서 공감할 소설?

    읽진 않아도 제목은 알고 있어야지.

    얼마 전에 직원이 정리한 선물함.

    아무리 뒤져 봐도 그 안에 책은 없었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선물함이다.’

    조나단은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는 아무 직원이나 붙잡고 물었다.

    “저기, 비즈니스용 선물함 어딨어?”

    “음… 저쪽 창가에 있을 거예요.”

    조나단은 창가로 가서 선물 상자를 뒤졌다.

    직원들이 함부로 헤집어 놓은 상자.

    어쩌면 그 책은 다른 사람이 차지했을 수도 있었다.

    한참을 상자를 뒤적거리던 조나단.

    ‘없네. 뭐… 별수 없나. 만날 운명이 아닌 걸지도.’

    라고 생각하던 차에, 손끝에 딱딱하고 각진 것이 닿았다.

    그는 힘겹게 그것을 꺼냈다.

    땅속 깊게 묻힌 보물상자를 꺼내듯.

    그가 끄집어낸 한 권의 소설책.

    조나단은 비로소 그 제목을 가만히 읊조렸다.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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