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23화 (123/204)
  • 123회

    뮌 출판사에서 메일이 왔다.

    ― 이상 작가님께. <두 역사> 발간에 대해 안내를 드립니다. 본래 뮌 출판사는 원고가 모이면 교정과 인쇄, 출간까지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현재 독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다큐멘터리 <철학자와 소설가>와 틸 버켈 철학자의 적극적인 홍보로 본사는 <두 역사>를 최대한 빠르게 발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작가님께 미리 충분히 말씀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리며….

    그러잖아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두 역사>가 이번 달 안에 나온다는 틸 버켈의 인터뷰.

    아무리 그래도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출판사의 일정이야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지만 정말로 이렇게 빠르게 책을 내다니.

    뮌 출판사에서 적잖이 힘을 썼단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바로 답장을 썼다.

    책을 빨리 내주어서 오히려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아.

    걱정도 되긴 했다.

    <두 역사>.

    경성에서의 기억을 담은 에세이.

    전쟁 피해국 지식인의 내상을 담은 글.

    독일인과는 심리적 거리가 있을 게 분명한데… 그들은 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한편, 난 며칠 동안 한국대학교에 틀어박혀 있었다.

    내 안에 막연하게 자리 잡은 ‘컬트 영화’에 대한 개념.

    그것을 보다 확실하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

    한국대학교는 시설이 좋았다.

    신청만 하면, 소극장을 빌려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종일 영화에 대한 책을 읽다가 좀 지루해진다 싶으면 소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조바심은 별로 들지 않았다.

    컬트 영화는 애초에 그 수가 적다.

    ‘컬트’라는 말 자체가 소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아진 컬트 영화는 더는 컬트 영화라고 볼 수 없는 모순도 있고.

    아무튼 난 소극장에서 별 황당한 영화들을 다 봤다.

    그들이 영화에서 의미를 창출하는 방식.

    장면과 장면을 잇는 방식.

    이미지를 나열하는 방식.

    그런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꽤 볼만한 작품들이었다.

    그렇게 소극장에서 한참을 있다가, 물이나 마실까 하고 나왔을 때였다.

    “이상 작가님?”

    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익숙한 회색 트레이닝복.

    익숙한 돌돌이 안경.

    익숙한 민낯.

    “김미소 작가님.”

    “요새 열람실 다니세요? 따로 작업실 있으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됐어요. 논문 쓰세요?”

    논문 얘기가 나오자 어깨가 축 처졌다.

    “저 박사 못 따면 어쩌죠….”

    …이런.

    괜한 말을 꺼냈다.

    “따, 따시겠죠. 원래 대학원생들 이맘때에 제일 힘들어해요.”

    “하아….”

    김미소 작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그리고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온 얼굴로 날 본다.

    “후배님.”

    “…예.”

    “밥이나 한 끼 드시죠.”

    “…예, 선배님.”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사람은 무서우니까.

    아무튼 우리는 학교 근처의 덮밥집에 갔다.

    식사 때를 비껴가서 그런가, 사람은 많지 않았다.

    “후배님 요즘 유럽에서 괜찮던데요? 문화부 기사에 거의 매일 이름이 나는 것 같아요.”

    “제가 기사는 잘 안 봐서요.”

    “뭐… 기사 보는 걸 추천해 드리는 건 아니지만, 작가님에 대해서는 대부분 우호적이에요. 아, 독일 언론에서 작가님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요?”

    “독일 언론도 보세요?”

    “아뇨. 한국 기자들이 또 그대로 옮겨 주니까요.”

    “아하. 뭐라고 부르는데요?”

    “예술철학자 이상.”

    예술철학자.

    사실 예술철학자라는 단어는 좀 애매하다.

    예술에 대한 철학은 ‘미학’으로 수렴되니까.

    하지만 미학자는 또 ‘예술가’는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깊게 따지고 싶진 않다.

    예술가면서 철학자다 이런 의미일 테니.

    하지만 개념은 개념일 뿐이고, 막상 저런 얘길 들으니 쑥스러워 말이 안 나온다.

    내가 어물쩍거리자, 김미소 작가가 픽 웃었다.

    “조만간 독일로 팬 사인회라도 가셔야겠어요. 신간도 나오잖아요. <두 역사>.”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한국 분들은 <두 역사>가 나오는 걸 대체 어떻게 아신 거예요?”

    며칠 전 본 유튜브 댓글도 그렇다.

    벌써부터 <두 역사>를 기다리는 한국인들이 많다.

    아직 한국 출판사와 계약도 안 했는데.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지금 언론에 쫙 깔렸는데요. 독일에서 작가님 철학 서적 나온다고.”

    “이를 어쩌나. 에세인데요.”

    “사실 이쯤 되면 독자들에게 그게 중요한 건 아닐 거예요. 작가님 책이라는 게 중요하지.”

    마침 덮밥 두 공기가 나왔다.

    막상 음식을 보니 배가 고프다.

    김미소 작가도 허기가 졌는지 잘 먹는다.

    하긴, 한국대에서 논문 쓰는 일이 보통 일인가.

    “그런데, 진짜 열람실엔 왜 오신 거예요?”

    “아, 그게… 제가 영화를 좀 공부해야 하거든요.”

    “영화요?”

    “네. 그것도 컬트 영화.”

    나는 김미소 작가에게 그간의 일을 말해 주었다.

    그녀는 대단히 흥미롭게 내 말을 들었다.

    그리고 못 믿겠다는 듯 다시 내 말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의 <그 집>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데, 누들이라는 출판사의 이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컬트적인 스릴러 영화를 만드신다는 거?”

    “역시. 똑똑하십니다.”

    나는 장난스레 박수를 쳤다.

    김미소 작가는 좀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그냥… AL 쪽과 협의를 하시는 건요? 주인공을 동양인으로 안 하면 계약 안 하겠대요?”

    “네. 바로 그 점이 그들도 양보 못 하는 마지노선인 거죠.”

    “흐음… 정치적 메시지를 포기 못 한다?”

    “동양인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그들은. 저는 인간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거고. 가는 방향이 다르니 얼굴 찌푸리지 않게 거절했죠.”

    김미소 작가는 생각에 잠겨 기계적으로 우물거렸다.

    그리고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내게 말했다.

    “세계 시장이란 거, 복잡하네요.”

    “상당히 복잡해요. 알면 알수록 더. 하나의 산을 넘었다고 생각하면 또 하나의 산이 있어요.”

    내가 세계 시장을 ‘산’이라고 표현한 이유.

    사실 요 근래 <그 집>의 성적 때문이다.

    한국과 유럽 시장은 <그 집>을 내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정작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율은 점점 떨어지는 중이다.

    특히, 다큐멘터리가 나온 후 판매율은 더 떨어졌다.

    ‘이상’이 유명해지면 <그 집>도 잘 팔려야 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오류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집>이 ‘누들’을 통해 나왔다는 점.

    ‘누들’의 독자들은 ‘힙’한 것을 좋아한다.

    가볍고, 확실하며, 신선한 작품 말이다.

    그들의 취향엔 ‘예술철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예술철학자’로 유명해진 만큼, 누들의 팬들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이 클 수밖에.

    “컬트 영화를 선택한 것도 산을 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고요.”

    내 말에 김미소 작가가 의아해했다.

    그녀는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컬트 영화는 말 그대로 ‘소수’를 위한 영화인데, 왜 그런 전략을 쓴 거지?

    “‘누들’의 독자들 자체가 자신이 소수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다수들이 모인 집단이거든요.”

    “…아하.”

    김미소 작가는 비로소 알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리고 날 향해 씩 웃었다.

    “좋아요. 응원할게요. 작가님의 컬트 영화가 인기가 많아져서 더는 컬트 영화로 불리지 않기를.”

    “그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죠.”

    식사 후.

    소극장에 간다고 하니 김미소 작가도 관심을 보였다.

    자리는 많으니 소화도 시킬 겸 같이 극장에 들어갔다.

    영화는 <세인트 롤랑>이라는 컬트 영화.

    나도 몰랐는데, <세인트 롤랑>은 정말 잔인했다.

    사람을 죽이고 자르고 꿰매고를 반복하고….

    “하하… 전 안 되겠네요.”

    김미소 작가는 그대로 탈주.

    나만 혼자 남아서 영화를 끝까지 봤다.

    썩 좋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바로 죽음과 살해의 ‘이미지’.

    그 이미지의 충격을 과장하고 과시하듯 보여 주는 것.

    누군가는 그 이미지로 황홀감을 느낄 것이고.

    그렇게 <세인트 롤랑>의 팬이 될 것이다.

    영화를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컬트’에 대한 개념이 점점 잡혀감을 느낀다.

    속이 메스꺼운 거야 어쩔 수 없지만.

    * * *

    강남의 모 빌딩 앞.

    “…높다.”

    나는 하늘로 솟은 빌딩을 보며 말했다.

    이 빌딩 어딘가에 조인후 감독이 사무실이 있다니.

    새삼 놀라울 따름이었다.

    조인후 감독의 사무실은 거의 꼭대기.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엘리베이터를 오래 타야 했다.

    층에 내리자마자 날 맞이하는 깨끗한 복도.

    간판도 없는 큰 유리문.

    벨을 누르자, 한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달려 나왔다.

    “이상 작가님?”

    “아, 예. 안녕하세요. 감독님을 뵈러 왔는데요.”

    “어서 들어오세요. 기다리고 계세요.”

    그녀는 상냥하게 나를 안내했다.

    사무실에는 그녀 말고도 직원이 몇 명 더 있었다.

    규모에 비해 적은 인원.

    편해 보이는 옷차림과 표정.

    신기한 듯 날 보는 시선까지.

    다들 직원이라기엔… 대학원생 같은 느낌이었다.

    안내된 사무실에는 조인후 감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사무실이 굉장히 좋네요. 편안해 보이고.”

    “이편이 직원들이 일하기 좋으니까요. 아, 작가님 사무실로 안내하죠.”

    내 사무실?

    난 밖의 아무 자리에나 앉아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러나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가 앞장을 섰다.

    나는 그를 따라 복도 안쪽 끝 방으로 들어갔다.

    다섯 평쯤 되어 보이는 꽤 넓은 공간.

    한쪽 벽엔 강남 대로가 보이는 통유리창.

    컴퓨터와 테이블, 소파 설비까지 끝난 그 공간은 아무도 써 본 적 없는 듯 깨끗하고 깔끔했다.

    “여길… 저 보고 쓰라고요?”

    “네. 원래 제작사 대표들 응접실로 쓰려고 비워 둔 공간인데, 대표들이 여길 올 일이 별로 없어요. 가면 제가 갔지. 그래서 이번에 이렇게 리모델링 했습니다.”

    리모델링까지?

    나 때문에?

    적잖이 놀란 내 표정에 조 감독이 파하하 웃었다.

    “아, 속이 다 시원하군요.”

    “네?”

    “이제야 이 작가님께 진 빚을 갚을 수 있어서요.”

    “빚이라뇨…?”

    그는 대답 대신 보고 씩 웃었다.

    조인후 감독이 내게 진 빚이라.

    <내외인>을 영화화하는 걸 허락한 일을 말하는 걸까.

    하지만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우스운 일.

    나는 대신 감사 인사를 했다.

    이 사무실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직원이 커피를 두 잔 내려다 주었다.

    나는 그 직원에게 말했다.

    “커피 머신 있는 곳 알려 주세요. 내일부턴 제가 내려서 마실게요.”

    조인후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사용해 주실 생각이시군요. 다행이네요.”

    “여기, 정말 마음에 들어서요.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아요.”

    나는 소파 등받이를 등으로 꾹꾹 눌렀다.

    새 소파의 탄력이 꽤나 좋았다.

    직원이 나간 후, 조인후 감독이 손을 모으고 말했다.

    “자, 그럼 사무실 자랑은 여기까지 하고.”

    “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 보죠.”

    주위의 공기가 갑자기 가라앉는 듯했다.

    평소 조인후 감독은 한 마리 곰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의 ‘선생’ 역할을 할 그는…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매 같았다.

    그 눈빛을 보자, 나 역시 정신이 확 들었다.

    내 작품을 내가 시나리오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을 내가 잡지 않으면 안 된다.

    필요한 조언은 받아들이되,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한다.

    작가는 어디까지 나니까.

    상대가 아무리 조인후 감독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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