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회
조인후 감독도 참 신기한 사람이다.
어쩌며 이렇게 적재적소에 톡을 보낼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딱 드라마로 기울려 하는 이 때에.
― 이상 작가님, 잘 지내시죠? 해외 구매로 <그 집>을 봤습니다. 작품이 아주 좋던데요? 스릴러를, 그것도 미국 출판사 공모전에 내셨단 소식에 놀랐는데… 작품의 수준을 보고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아주 섬짓했어요. 요 근래 본 스릴러 소설 중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작가들 사이에서 편히 오고가는 인사말.
하지만 공치사는 아닐 거였다.
해외 구매 자체가 성가신 일일뿐더러, 굳이 영어판을 봐야 했을 테니.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팬’이 아니고서야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에게 답장을 했다.
― 안녕하세요. 조인후 감독님. 작품 좋게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그 집>을 가지고 감독님과 상의를 해 봐도 좋을까요?
― <그 집>을, 저랑요?
― 네.
조인후 감독은 잠시 답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지하철에 타고 난 후에야, 톡이 왔다.
― 혹시, <그 집>을 영화로 만들고 싶으십니까?
나는 좀 놀랐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감독이건 PD건 다 귀신들이야, 귀신들.”
이 두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속이겠다.
이쯤 되면 구구절절 말할 필요도 없지.
― 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답이 돌아왔다.
― 그럼 내일 바로 만나시죠.
다음 날 아침.
나는 엄청난 숙취 속에서 잠에서 깨어났다.
이 숙취의 정체에 대해서 한동안 고민한 후.
깨달았다.
어젯밤 강인찬 PD의 집에서 마신 양주 때문이란 걸.
숙취는 좀 괜찮냐고 강인춘 PD에게 톡을 하니….
― 무슨 숙취?
라고 답이 온다.
괴물이 따로 없네.
아무튼 오늘은 조인후 감독을 만나기로 한 날.
아침 운동으로 숙취를 좀 날려 보낸 후.
차를 몰고 연희동으로 갔다.
조인후 감독의 저택의 벨을 눌렀다.
그러자 누구냐 묻지도 않고 문이 열린다.
끼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반가운 얼굴이 정원 나무에 물을 주고 있었다.
조인후 감독이었다.
“이상 작가님. 어서 오십시오.”
난 허리를 꾸벅 숙이곤 말했다.
“실례합니다. 쉬시는 중에….”
“아닙니다. 요즘은 별로 할 일이 없어요. 북 콘서트 이후 처음이죠?”
조인후 감독은 호스의 물을 잠갔다.
그리고 손을 바지에 슥 닦곤 내게 내밀었다.
우린 가볍게 악수를 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간단하게요.”
“그럼 차를 드시죠.”
그는 나를 자신의 2층 작업실로 안내했다.
곧 부인이 차와 다과를 내왔다.
그녀는 둥글둥글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건강에 좋은 구기자차예요.”
“아, 감사합니다.”
부인이 나가고 나서야, 조인후 감독이 중얼거렸다.
“별맛은 없어요. 난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잘 안 줘요.”
“하하… 안 주시면 별수 있나요.”
휑한 집에서 양주를 홀짝이던 강인춘 PD가 떠올랐다.
자유를 만끽하는 강인춘 PD나, 부인의 따뜻한 보살핌은 받는 조인후 감독이나, 좋아 보이긴 매한가지였다.
“그래, <그 집>을 영화로 만들고 싶으시다고요?”
“제작에 대해선 아직 생각한 바가 없습니다. 다만 제 선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까 해서요.”
“그 후에는요?”
“…미국의 영화 제작사에 돌려 볼 생각입니다.”
“후후….”
조인후 감독이 낮게 웃었다.
“만약 생판 신인이 그런 말을 했으면, 혼쭐을 내 줬을 겁니다.”
나는 움찔했다.
드라마와 달리, 나는 시나리오를 써 본 적이 없다.
따지고 보면… 신인인데.
“하지만 이상 작가님이고, <그 집>이라는 좋은 원석이 있으니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까요?”
“그게 좀 미지수이긴 합니다.”
조인후 감독은 냉정하게 말했다.
영화만큼은 절대 공치사를 안 하는 사람이다.
“드라마를 써 보신 적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오히려 그게 더 발목을 잡을 수도 있죠. 드라마의 문법과 영화의 문법은 극과 극이거든요.”
영화가 시라면 드라마는 소설이다.
강인춘 PD도 이렇게 말했지.
역시, 아직 시나리오를 쓸 때는 아닌 걸까.
생각이 많아질 무렵, 조인후 감독이 말했다.
“필요하다면, 시나리오 쓰는 일은 제가 도와드리죠.”
“네? 감독님께서요?”
“그래도 문창과를 나오셨으니 기본기는 갖춰졌을 것 아닙니까. 실질적 집필에서 약간의 조언을 해 드릴 순 있죠. 아 물론, 바라신다면요.”
당연히 좋죠.
라고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그 말인 즉슨, <그 집>을 영화화하란 뜻이었으니.
나는 <그 집>을 둘러싼 고민을 털어놓았다.
AL의 연락을 받은 것부터, 어제 강인춘 PD를 만난 일까지.
조인후 감독은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 주었다.
“고민이 되시겠군요. PD님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저는 드라마를 잘 모르지만, <그 집>이 드라마와 어울리는 서사라는 건 동의해요.”
그는 쿨하게 말했다.
그리고 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영화로 가야죠, <그 집>은.”
강력한 확신이 깔린 말.
나는 조용히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제가 본 <그 집>은 한 장면을 위해 달려가는 영화입니다. 장면을 언어화하는 시와 닮았죠.”
“어떤 장면을 말씀하시는 거죠?”
“수지와 양오빠의 대화 말입니다.”
“소설 후반부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쇄 살인마인 양오빠를 체포한 수지.
취조실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대화.
조인후 감독은 바로 그 장면을 말하고 있었다.
“앞부분의 수지의 실험이나 사연… 물론 흥미로울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빌드업이죠. 물론 내용 전개만을 위한 빌드업은 아닙니다. 취조실 장면이 성공적으로 구현되면서 앞부분 장면도 재조명되거든요. 그렇게 하나의 의미를 향해서 달려가게 되죠.”
“그 하나의 의미라는 건….”
“‘인간이란 무엇일까’죠.”
“좀 더 듣고 싶은데요.”
“이 양오빠가 말하지 않습니까. 수지를 입양한 그들의 선택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겠다’고. 그 부분,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사실 그전까진 사회 내의 이방인, 소외 계급과 수지를 동일화하면서 볼 수밖에 없어요. 구조가 그러하니까. 하지만 양오빠는 이 집안의 최상위층 포식자잖아요. 양오빠가 그런 질문을 함과 동시에 계급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로 확장돼요. 인간의 문제 안에 계급의 문제가 담겨 있다는 말도 되고.”
그는 정확히 봤다.
피터 한의 설득에도, 난 대사를 바꾸지 않았다.
피터 한이란 개인의 캐릭터보다는, 인간사의 아이러니를 보여 주고 싶었으므로.
‘인간이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계급을 만들고 차별을 만들고… 그리고 끝내 ‘모르겠다’는 답을 할까.
이런 무책임하고 아이러니한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걸까.
“감독님 말이 맞습니다. 저는 이민자 얘길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사이코패스 킬러의 얘길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죠. 물론 그런 지점들을 ‘이용’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내 목적은…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조인후 감독은 나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낯익은 영화의 제목을 꺼냈다.
“<양들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아시죠.”
“당연히 압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분위기… 압권인 영화잖아요.”
“그 영화 역시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어디인지 아십니까?”
“살인마 한니발과 여기자의 대면 장면이겠죠.”
그 영화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알 수 있다.
아니, 느낄 수 있다.
그 두 사람의 긴장감 넘치는 인터뷰.
그 한 장면만은 절대 잊을 수 없으니까.
“맞습니다. 저는 <그 집>의 취조실 장면에서 <양들의 침묵>을 다시 본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극찬이었다.
아직 활자에 불과한 <그 집>을 그런 명화와?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 집>을 바로 그런 방식으로 구현하면 좋겠다는 뜻.
그리고….
“<그 집>을 영화로 꼭 만들라는 말씀이네요.”
“눈치가 빠르시군요. 영화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인간의 수많은 면 중 하나의 장면을 ‘정확하게’ 보여 주면 성공이죠.”
“….”
“그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고 싶으시다면, 영화를 선택하시죠.”
조인후 감독의 말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던 강인춘 PD보다 더.
그러므로, 난 이렇게 물었다.
“쉽지 않은 작업이겠죠.”
그는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겁니다. 실패할 수도 있어요.”
* * *
독일의 D―Z 방송국 뉴스 스튜디오.
틸 버켈은 오랜만에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현대의 철학자란, 응당 대중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
촬영이 시작되었다.
기자는 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틸은 그 특유의 시니컬한 태도로 답을 했다.
기자는 웃고 있었지만… 등에는 적잖이 땀이 맺혔다.
그는 얼른 본론으로 넘어갔다.
“틸. 어제 방영된 ‘인간과 세계’에서 의외의 면모를 보이던걸요. 한국에서 이상 작가와 펼친 토론은 어땠나요?”
틸의 인터뷰가 잡힌 이유.
바로 이것이었다.
어젯밤 ‘인간과 세계’ 편.
<철학자와 소설가>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다큐멘터리.
틸 버켈은 직접 한국으로 가서 이상 소설가와 예술론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다.
그 대담이 어찌나 멋졌는지,
철학자와 소설가의 시너지가 어찌나 폭발적이었는지, 이상뿐만 아니라 틸의 이미지까지 쇄신될 정도였다.
물론, 틸은 신경조차 쓰지 않지만.
이상 작가와의 토론.
그 한 마디에 틸의 눈이 빛났다.
“환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기자는 깜짝 놀랐다.
‘환상적’이라니.
틸이 그런 말을 할 줄 안다고?
“어, 어떤 점이 환상적이었나요?”
“미래의 예술론에 대한 초석을 마련했으니까요. 지금까지 학계에서 예술론은 무용성의 인정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AI의 등장으로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었죠. 하지만 인간의 존재성을 귀납적으로 정립하면… 그러니까 인간이 무용한 낭만의 지지자라는 전제를 깐다면….”
기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자는 그의 말을 겨우겨우 알아들었다.
하지만 ‘무용한 낭만의 지지자’는 확실히 알았다.
이상 작가와 틸의 대담으로 유명해진 말이 아닌가.
“역설적으로 예술과 예술가의 무용화에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죠.”
틸은 자동차 브레이크를 잡는 듯한 시늉을 했다.
기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젊은 층 사이에선 자신들도 ‘무용한 낭만의 지지자’라는 선언들을 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대부분은 겉멋이죠.”
싸늘해진 분위기.
기자는 애써 웃으며 되물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당연하죠. 모두가 위대한 예술가나 철학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다만, 그렇게 이야기를 함으로써, 예술의 역사를 바꿀 순 있을 겁니다. 적어도 무용한 낭만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단 뜻일 테니까요. 저는 그들이 예술의 역사를 바꾼다고 생각해요.”
틸 버켈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비난으로 시작하여 존중으로 끝나는 화법.
이 신기한 화법 앞에서 기자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뉴스 인터뷰이기 때문에 끝낼 시간이 됐다는 것.
“어… 자, 틸. 다큐멘터리나 이상 작가에 대해서 더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이상 작가와 저의 책이 나옵니다.”
“대담집 말이죠? 다큐멘터리를 재구성한.”
“아닙니다.”
그는 딱 잘라 말했다.
“이상 작가와 제가 제2차 세계대전의 두 이미지를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뮌 출판사에서 나올 것이며, 우리 독일인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기자는 갑자기 묻고 싶어진 게 잔뜩이었다.
이미지를 가지고 글을 썼다고?
독일인에게 충격은 또 뭐람?
하지만 이건 다큐멘터리에 관한 인터뷰.
그 외의 질문에 한계가 있었다.
기자는 겨우 하나의 질문을 더 던졌다.
“제목이 무엇인가요, 그 책.”
틸이 대답했다.
“<두 역사>입니다. 그 의미는, 읽어 보면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