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19화 (119/204)
  • 119회

    다음 날 아침.

    지훈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날 불렀다.

    우리는 작업실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다.

    “형님. AL 영화사, 왜 <그 집>을 보고 형한테 연락했는지 알 것 같아요.”

    “이유가 뭔데?”

    “제가 이 제작사가 만든 영화에 대해서 좀 알아봤거든요. 그런데 좀 정치적인? 작품을 만들더라고요.”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내가 의아해하자 지훈이 계속 말했다.

    “동양인 차별을 다루는 영화들이요. 드라마나 시트콤 쪽에도 손을 뻗는 것 같고요. 아, 동양인 스탠딩 코미디언한테 지원도 해 준대요. 대부분 중국계지만.”

    “중국계라고? 그럼 이쪽 자본은….”

    “중국계 자본이죠.”

    “…어떻게 된 건지 알겠네.”

    미국에서 ‘이상’은 신인이다.

    게다가 ‘스릴러를 쓰는 이상’은 더더욱.

    그런 작가에게 대뜸 영화화를 제안할 정도의 자본력.

    중국계가 아니면 쉽지 않지.

    결국, 중국 자본이 어떤 ‘목적’을 위해 내게 연락을 한 거라고 봐도 되겠군.

    “그래도 AL이 정치적으로는 되게 올발라요, 형님. 미국계 동양인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고요.”

    “그렇겠지. 차별을 고발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만든다면 어떤 아시아인이 싫어하겠어.”

    인정한다.

    <그 집>에서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다고.

    그리고 내가 동양인이란 점에서, 이 제작사에서 영화를 만들면 적잖이 홍보가 되겠지.

    이쯤 되면 누들도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작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좀 꺼려지는데.”

    “적정선에서 타협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치적 메시지랑 예술성 둘 다 취할 수 있게.”

    “음… 그래. 그게 이상적이긴 하지.”

    정치적 경향성 때문에 AL을 거부할 것까진 없다.

    어떤 영화건, 정치적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들어가니까.

    그것을 조금 더 강조하는 방향이라면… 타협도 가능하지.

    “일단 그쪽이랑 대화를 좀 나눠 보시죠. 제가 메일로 연락처는 보내 놨어요. 지금 즈음 전화를 달라고요.”

    지금은 오전 열시 반.

    잘은 모르지만 LA라면… 오후에서 저녁 사이.

    AL 쪽도 웬만한 회의를 끝냈겠군.

    그리고 정말로 지훈의 휴대폰이 울려 댔다.

    우웅― 우웅―

    휴대폰 액정에 뜬 번호는… 국제전화.

    “제가 받을까요?”

    “아냐, 내가 받을게. 통역사도 끼고 있을 테고.”

    나는 전화를 받고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국제전화 특유의 살짝 좋지 않은 음질.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여긴 미국의 AL 제작사입니다. 이상 작가님 되시는지요?

    살짝 중국 억양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

    “네. 맞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희가 더 감사하죠. 저는 AL의 직원 순양이고, 작가님 담당 통역사입니다. 지금 장지환 대표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낸 메일의 제안을 살펴보셨습니까.

    그는 다소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전문 통역사는 아닌 듯했다.

    딱 알아듣기에 무리가 없는 정도.

    “네. 그렇지 않아도 AL 쪽과 상의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만.”

    ― 뭐든 좋습니다. 저흰 <그 집>을 읽고 좋은 작품이라 생각했고, 저희 회사의 정체성과도 대단히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미국에 작가님의 이름을 알리는 최적의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저희 쪽과 <그 집>을 영화로 만들게 되시면, 좋은 대우와 제작비를 약속드리는 바입니다.

    아니.

    대우나 제작비는 문제가 아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 말씀하십시오.

    “<그 집>의 어떤 점을 좋게 보시고 연락을 주셨는지요?”

    ― 미국은 참 어려운 나라입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 백인은 포함이 안 됩니다. 흑인은 반쯤 포함되고 동양인은 완전히 포함됩니다.

    백인, 흑인, 동양인 순으로 차별을 느낀다 이건가.

    ― <그 집>은 미국 이민자의 트라우마를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미국의 동양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지점입니다. 그걸 집어내는 작품입니다.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소설에서 강조했던 그 부분.

    그 부분을 명확하게 집어냈기 때문이었다.

    지훈도 작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얘길 좀 더 들어봐요.”

    “만약 AL 쪽에서 제 소설로 영화를 만든다면… 제작사와 작가인 저 사이의 권리와 이익을 명시할 표준계약서를 갖고 계신가요?”

    ― 그럼요. 당장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표준계약서도 있겠다… 그렇다면, 소설을 영화화할 때 가장 중요한 점.

    “작품의 수정 권한은 어떻게 됩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저들끼리 상의하며 말을 골랐다.

    민감한 질문이기에 단어를 잘 고르려는 걸까.

    ― 모든 수정의 최종결정권자는 감독님과 작가님 두 분이십니다.

    최종결정권자가 두 사람이라.

    어불성설이었다.

    “그럼 그 점은 명확하게 명시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작품의 유일한 최종결정권자이고 싶습니다만. 당연히 감독님의 말씀은 존중하겠지만, 유사시의 경우에 작가로서 제 작품을 지키고 싶습니다.”

    ― 이해합니다. 그러시다면….

    그들은 또 뭔가를 상의했다.

    ― 한 가지만 저희와 약속해 주시면 나머지 결정은 작가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 주인공은, 동양인으로 했으면 합니다. 백인 가정에 동양인 여자아이가 입양이 된 겁니다.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주인공의 인종을 바꾸자고?

    “그건… 해 드릴 수가 없는데요.”

    ― AL 쪽은 그게 확실한 마케팅 포인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작품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있을 거고요. 가족 서사에서 인권의 문제로 메시지를 확장시키는 겁니다. 소설 <그 집>의 판매에도 이득이 될 겁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말이 없자 그가 얼른 덧붙였다.

    ― 스토리는 전혀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한 인물의 인종, 그 한 가지를 바꿨으면 합니다. 긍정적으로 살펴봐 주십시오.

    “그래도 안 됩니다. 그 한 가지를 바꿀 수 없는 이유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수지의 인종을 동양인으로 바꾸면 가족 서사에서 인권 문제로 메시지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하셨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 ….

    “<그 집>은 수지와 가족 간 인종의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여기서 수지는 이민자나 외부인이라 취급되는 모든 집단을 대표할 수 있죠. 하지만 수지가 동양인으로 표현된다면….”

    나는 짧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동양인의 인권만 말하는 작품이 되겠죠. 메시지가 축소되는 겁니다.”

    수화기 너머에선 말이 없었다.

    수지의 인종.

    그건 그쪽도 절대 양보 못 할 요소일 것이다.

    이쯤 되니 각이 나왔다.

    이들은 인권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동양인’ 인권에 관심이 있는 거지.

    “AL에서 제 작품에 보인 관심에는 무한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나, 영화화는 다음 기회에 추진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잠시 수화기 너머가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잠시 후, 통역사가 말했다.

    ― 이상 작가님.

    “네.”

    ― 작가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더는 조르지 않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외로 말이 통하는 건가?

    좀 더 귀찮게 할 줄 알았는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만, 저희 대표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라 하셨습니다.

    “네?”

    ― 미국 시장은 보기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

    ― 데뷔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명성을 얻는 건 더 어렵습니다. 어떤 작품이건 확실한 캐릭터와 메시지가 없으면 잊힐 겁니다. 금방.

    결코 유쾌하지 않은 말.

    나아가 무례하기까지 한 말.

    물론 저 말도 거짓은 아니리라.

    내가 저 말을 듣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과 별개로.

    “네. 잘 알았습니다. 그럼 이만 통화를 마쳐도 될까요?”

    ―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현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AL은 작가님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동양인 예술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 설립된 곳이니까요. 미국 시장에서 이름이 사라질 것 같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진심을 다해 기다리겠습니다.

    “…끊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뭐 이런 곳이 다 있어요?!”

    지훈이 바로 노발대발했다.

    괜히 연락했다는 둥, 번호를 지워야겠다는 둥.

    어지간히 열이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난 좀 달랐다.

    저런 말을 들으니, 오히려 머릿속이 식는달까.

    “지훈아.”

    “네.”

    “누들 판매 순위랑 판매량 확인해 봐. 지금 당장.”

    “아, 네.”

    지훈은 바로 작업실로 들어갔다.

    더듬더듬 영어로 통화를 하는 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출력기 소리.

    잠시 후. 지훈이 종이를 한 장 뽑아 가지고 나왔다.

    지훈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여기요.”

    나는 종이를 살폈다.

    판매율은… 한 마디로 지지부진.

    아무리 5위라 하지만 4위와의 차이도 컸다.

    이럴 만도 했다.

    다른 당선자들은 필모가 하나같이 화려했다.

    이미 걸출한 작품을 낸 기성 작가도 있었고, 하반신 마비를 이겨 내고 소설을 쓴 여자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난 유로문학상 실적도 써먹지 않았으니.

    외국인이라는 것 외엔 홍보 포인트가 없었을 거다.

    AL이 내게 그런 말을 한 것도… 이해는 간다.

    “…괜찮겠죠?”

    “안 괜찮을지도. 이대로 아예 순위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고.”

    “앗… 서, 설마요….”

    “AL이 말했잖아. 미국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그건 그냥 흘려들을 말이 아니지.”

    “설마… 나중에 AL과 합작을 하시려는 건 아니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하지만 힌트를 좀 얻었어.”

    “힌트요?”

    “AL이 내게 연락을 했다는 점. 그건 <그 집>이 영상화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란 뜻이기도 해.”

    그리고 그 가능성을 가능성의 상태로 두고 싶지 않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드라마건 영화건… <그 집>을 영상화할 수 있는 방향을 알아봐야겠어.”

    * * *

    독일 베를린.

    틸 버켈의 저택.

    그는 뮌 출판사가 보낸 원고를 읽고 있었다.

    이상이 쓴 <갈림길>.

    갓 번역을 마친 따끈따끈한 작품이었다.

    ‘소설가의 역사철학 에세이… 과연.’

    그가 제안하긴 했지만, 사실 반신반의였다.

    이미지의 활용은 철학자보다 나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철학과 역사로 풀어내는 지점은 과연?

    에세이는 그리 길지 않았다.

    틸 버켈은 그 글을 후루룩 읽었다.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지도.

    무리한 역사적 사실을 갖다 대지도 않았다.

    그저 한 지식인의 하루를 담담한 필체로 보여 주는 글.

    하지만… 틸 버켈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글.

    “…이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어 대고 있었다.

    창가로 가서 커튼을 꽉 잡았다.

    식민지 예술가만이 볼 수 있는 전쟁의 이면.

    황폐한 지식인의 내면과 그것의 역사적 의미.

    가해국이었던 독일인의 후손은… 절대 넘볼 수 없는 글.

    틸 버켈을 그렇게 커튼을 쥔 채 밖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존재한 적도 없던 동양의 과거.

    그 역사에, 그는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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