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17화 (117/204)
  • 117화

    며칠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영화 제작사 AL.

    고작 이 주 전에 개봉한 AL의 작품 <연화>.

    아직 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사무실.

    직원들도 어딘가 축 늘어져 있는데….

    중국계 미국인 장지환 대표는 깜짝 놀랐다.

    그의 손에 들린 건 한 권의 책.

    그는 심각한 얼굴로 작가를 다시금 확인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어이! 모두 이리로 와 보라고!”

    사무실을 공유하는 건 AL의 제작팀장들.

    그들은 모두 아시아인들이었다.

    장 대표의 측근, 제작 1팀장이 느적느적 다가왔다.

    그는 필리핀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를 둔 혼혈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자네 이 책 알아?”

    심플한 검은 표지에 은색으로 박힌 제목, <그 집>.

    표지만 봐도 누들의 책인 게 티가 났다.

    누들은 항상 이 디자인으로 책을 냈으므로.

    “누들의 신간이네요. <그 집>? 이번 연도 당선작인가요? 처음 봐요.”

    “어제 서점에서 사 온 따끈따끈한 책이야. 한국인이 썼다기에 일부러 사 왔지.”

    “한국인이 누들에서? 제법이네요.”

    제작 2팀장이 약간의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중국계 이민자 2세로, 다소 편협한 데가 있었다.

    “말조심하라고.”

    제작 1팀장이 쏘아붙였다.

    제작 2팀장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는 대표가 같은 중국계인 자신의 편을 들 거로 생각했지만, 대표의 입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미국계 한국인이 아니야. 미국에 산 적도 없어.”

    팀장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미국계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에서 산 적도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이렇게 영어로 소설을 썼고, 누들에 당선됐잖아.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이 쓴 소설이야.”

    “그런데 누들에 당선됐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제작 2팀장이 놀라 물었다.

    그는 못 믿겠다는 듯 책을 가져와 살펴봤다.

    장 대표는 카드를 꺼내 팀 막내에게 내밀었다.

    “지금 당장 가서 우리 제작진 수대로 <그 집>을 사 와. 그리고 모든 작업 중지하고 내일까지 완독해 와.”

    “…네?”

    막내 팀장이 얼떨떨한 얼굴로 카드를 받았다.

    “이 소설이 우리의 다음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이 말이야.”

    “아… 아, 예.”

    막내 팀장은 책을 사기 위해 얼른 사무실을 나섰다.

    다른 팀장들은 한데 모여 <그 집>을 살펴봤다.

    제1팀장만이 대표에게 슬쩍 다가갔다.

    “저 작품이 마음에 드셨나 봐요?”

    “우리 회사의 아이덴티티와 딱 맞거든.”

    AL의 아이덴티티.

    이들은 나름의 목적이 뚜렷한 집단이었다.

    그 목적은 바로 ‘미국계 동양인’ 인권 증진.

    대부분 동양인 차별을 고발하는 영화를 제작하거나, 아시아인 정체성 연구기관에 자본을 투자했다.

    예술은 가장 아름다운 정치적 얼굴이다.

    이것이 장 대표의 신념이었으므로.

    그가 쥐고 있는 거대한 중국 자본.

    그 자본으로도 이길 수 없는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이런 상황에서 영화는 미국인의 편견을 건드릴 수 있는 적절한 무기였다.

    “자네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 집>은 미국계 이민자들이 겪을 수 있는 심리적 트라우마와 정치적 차별 문제를 대단히 우아하게 다룬 책이야. 사람들이 귀찮아하고 머리 아파하는 소재를 가족 서사로 쉽게 풀어 냈다고.”

    “흐음… 그런가요?”

    “멍청한 백인 놈들도 홀딱 반할 거야. 먼저 누들 쪽에 연락을 좀 해 봐.”

    “네?”

    “작가에게 연락을 좀 해야겠어.”

    1팀장은 좀 당황했다.

    장지환 대표의 감은 존경할 만했다.

    하지만 이제 갓 나온 신작인데?

    ‘나라도 좀 브레이크를 걸어야겠다. 아니면 가장 기본적인 거라도 확인해야지.’

    소설을 동양인 중심의 정치적 영화로 만드는 것.

    사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소설이란 수가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으니.

    하지만, 한 가지 요소는 반드시 필요했다.

    “이 소설에서 동양인이 나오긴 해요?”

    그 물음에 대표가 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아니. 나오는 인물들 모두 백인이야. 아쉬운 일이지.”

    1팀장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쳐 갔다.

    ‘그럼 작가가 동양인 차별을 전제하고 쓴 게 아닐 텐데.’

    “하지만… 나와야 하잖아요. 저희 쪽 영화는.”

    “누가 아니래? 나오게 해야지.”

    그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잖아. 이런 거 한두 번 해 봐?”

    1팀장은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누들 쪽으로 메일을 쓰러 자리로 갔다.

    혼자 남은 대표는 생각했다.

    <그 집>은 엄청난 원석이다.

    좀 더 정치적 이슈를 담아만 준다면, 미국계 아시아인들을 위한 영화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제작진들의 대표작이 될 것은 덤 아닌 덤.

    물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수정이 가해지겠지만.

    * * *

    “영화 제작이라니. 벌써?”

    독일의 촬영팀을 배웅하고 인천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

    지훈과 나는 집 대신 카페에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 일어난 사태를 정리했다.

    “그러게요. 책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도 일단 좋은 거 아닐까요?”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를 따지면 한없이 좋다.

    작품의 영화화.

    작가로서 웬만하면 손해 볼 것도 없고.

    “누들도 추천한다잖아요. 조심스럽게 추진해 볼까요?”

    누들의 추천.

    그렇다.

    누들은 메일에 이렇게 덧붙였다.

    ― 현재 다섯 편의 입선작 중에 <그 집>의 판매순위가 5위입니다. 초반 구매율은 당선 순위와 정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순위를 바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올해의 네 편의 당선작들이 모두 눈길을 끄는 소재를 사용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하여 누들은 작가님의 국적을 홍보 삼아 알리는 방법의 일환으로, 영화 제작을 긍정적으로 살펴보시길 권하는 바입니다.

    돌리고 돌려서 하는 말.

    정리해 보자면 이랬다.

    첫째, 누들 신간 판매율 5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둘째, 다른 네 편의 작품 역시 쟁쟁하다.

    셋째, 그걸 타파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라.

    한 마디로, AL의 제안이 중요한 기회라는 거군.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네?”

    “영화 제작이랑 내가 한국인인 거랑 무슨 상관이 있지?”

    “음… 그러게요?”

    뭔가 이상하다.

    보통 제안은 아닌 것 같다.

    또, 평범한 영화 제작사도 아닌 듯하고.

    “지훈아. AL에 연락처는 주되, 거기에 대해서 좀 알아봐.”

    “네. 알았어요, 형님.”

    * * *

    <그 집>의 영화화.

    확실히 마음을 좀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좀처럼 오르지 않는 판매 순위.

    이런 상황에서… 영화화는 더없는 기회가 아닌가.

    하지만 급할수록 신중히.

    겨우 잡은 미국 시장에서의 기회다.

    막연한 꿈을 꾸기보단 현실을 직시하자.

    지훈이 AL에 대해 알아오기까지….

    내가 할 일은 따로 있다.

    바로 틸 버켈이 주고 간 사진을 보고 글을 쓰는 것.

    그렇지 않아도 나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는 중이다.

    드레스덴 교회에 대한 폭격.

    그것은 가시적인 전쟁의 폭력이다.

    그에 비해 경성의 사진은… 전쟁의 심리적인 폭력이지.

    나는 흑백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다시금 그 안의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사진의 구조는 단순했다.

    먼저, 사진의 왼편에 줄을 서서 걸어가는 일본군.

    오른편에는 시장 좌판의 조선인들.

    후자가 한반도에 뿌리 박고 살아온 이들이라면.

    전자는 한반도를 스쳐 간 이들이다.

    혹은 밟고 간 이들이지.

    자, 그렇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였나.

    1930년대의 이상은 과연 오른편의 사람이었나?

    아니,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당시의 내 마음은 대단히 양가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일제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현실에 적응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나는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일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문학 세계를 넓혀 보려고도 했으니.

    그리고 이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겪는 딜레마였다.

    어떻게 보면, 그 역시 전쟁이 안겨 준 폭력이었을지도.

    나는 사진의 중앙을 짚었다.

    일본군과 조선 백성들 사이.

    “…여기가 내 자리였지.”

    어느 쪽으로도 편입될 수 없는, 이방인처럼.

    문득,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일을 하던 시절이었다.

    퇴근을 하고 동료들과 선술집으로 가는 길.

    한 일본인 신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 당신이 김혜경입니까?

    순간 나와 동료들은 모두 긴장했다.

    마침 조선의 지식인들이 일본의 사상 검증으로 고역을 치르던 시절.

    아무리 순사가 아니더라도, 일본인의 부름이라니.

    동료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나는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다.

    ― 총독부에서 일하는 김혜경을 찾는 겁니까? 그렇다면 제가 맞습니다만.

    총독부에서 일한다는 것.

    그것은 일종의 신원 보증이었다.

    내 방어적인 대답에 그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 군인이나 경찰은 아니니 겁먹지 마십시오. 저는 내지(일본) 도쿄대의 문과대 교수 스즈키 이토무입니다.

    도쿄대의 문과대 교수.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보통이 아닌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시나 소설을 잡지에 발표하고 있었다.

    예감이 맞다면… 그가 찾는 이는 건축기사 김혜경이 아닌 작가 이상이었다.

    그에게 한껏 친절하게 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 교수님께서 제게 어쩐 일로….

    ― 여긴 좀 어수선하니 어디 가서 커피나 한잔하시죠.

    하고 그는 나를 능숙하게 다방으로 데려갔다.

    사실 그때까지 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했다.

    그가 교수 흉내를 내는 사복 경찰이면?

    내 사상을 떠보고 경찰서로 끌고 간다면?

    그러나 중절모를 벗은 그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인상.

    중지 마디에 잡힌 굳은살.

    어디로 보나 그는 학자였다.

    ― 먼저, 무턱대고 선생을 찾아와 죄송합니다. 총독부에 연락을 하는 게 내지인들도 쉬운 게 아니라서요.

    ― 그래서, 절 왜 찾아오셨는지요.

    ― 선생께서 잡지에 실은 시들을 봤습니다. 심오하더군요.

    『조선과 건축』에 실었던 시들 말이구나.

    「이상한 가역반응」이나 「삼차각설계도」같은 시들.

    내면의 상념을 과학적 언어로 풀어냈으니, 아무리 교수라도 그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 문과대 교수뿐만이 아니라 물리학 교수까지 데려다가 시를 이해해 보라며 디밀었지만.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사로잡혀 있죠.

    ― ….

    ― 수식을 통해 인간의 심연에 도달하려 하다니. 범상치 않은 시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젊은 분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감사합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는 뭐란 말인가.

    나는 슬슬 조급해졌다.

    그도 뭔가를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 얼굴이었다.

    ― 외람된 말이지만, 대학은 나오셨는지.

    ― 경성고등공업학교를 나왔습니다.

    ― 역시. 엘리트시군요.

    그리고 그는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집안 사정이며, 형제 관계며, 은근슬쩍 조선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질문까지.

    ― 조선의 지식인이면, 내지를 미워하시겠죠?

    ― ‘밉다’라는 단어는 참으로 일본스럽긴 합니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일본에 가진 감정.

    그것은 대단히 복합적이며 혼돈스럽다.

    밉다라든가, 싫다라든가의 말로 표현 가능할 리가.

    난 그렇게 은근슬쩍 적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흐름을 탔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갖고 계신 모양입니다.

    ― 왜 제게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시인으로서, 일본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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