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그 집>의 누들 공모전 당선.
드디어 한미 언론에 공개가 됐다.
내가 스릴러를 썼다는 점과,
공모전을 통해 스릴러 데뷔를 했다는 점.
그것이 사람들에겐 꽤 파격적으로 느껴진 모양이다.
[다시 한번 공모전을 노린 이상, 그 이유는?]
[공모전,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작가의 모범.]
[이상은 어째서 탈락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하지만 미국의 상황은 달랐다.
다른 당선작들과 함께 기사에 이름이 몇 번 올랐을 뿐.
확실히 한국이나 유럽과는 다르다.
땅덩어리가 큰 만큼 기회도 많다.
하지만 그와 비례하게 이름을 알리기도 어렵다.
그간의 고생에 비해 기운이 빠진 건 사실.
그래도 일단 책이 나오길 기다리자.
언론보다 중요한 건 독자들의 반응이다.
이런 와중에… 전시회 <등>은 끝이 났다.
그리고 전시 마지막 날, 간단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강남의 전시회장.
나와 미술가들은 기자들 앞에 주욱 앉아 있었다.
기자들은 정신없이 작품과 우리들을 찍어 댔다.
“자, 그럼 먼저 작품을 전시하신 소회를 들어 볼까요?”
사회자는 능숙하게 행사를 진행했다.
나는 모든 순서를 양보하고 기다렸다.
미술가들은 저마다의 작품론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소설의 색채 이미지는 상상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잖아요. 따지고 보면 검은색 활자일 뿐이니까. 그 검은 활자에 색감을 부여하고, 하나의 설치 미술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대단히 흥미로웠어요. 이상 작가님의 상상에 저의 상상을 더한 거죠.”
“낭만적인 작업이었어요. 저도 현대 소설을 즐겨 읽는데… 사실 소설들이 많이 시니컬해졌거든요. 인간의 본질이랄까, 그런 것들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더라고요. 그런 것에 비해서 <등>은 고전적인 낭만이 살아있죠. 미술도 똑같은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신뢰, 희망, 낭만… 이런 것들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관객의 사랑을 받으니까요.”
진지한 소감들.
이 전시에 참여한 그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자, 마지막으로 이상 작가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이 전시를 하심으로서, 느낀 점이랄까. 이런 게 있으셨을까요?”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시의 효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들 공모전 당선.
그 점 역시 언론의 구미를 당기고 있으니까.
“이번 전시는 제가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평을 한 발 더 넓힌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문학은 문학, 미술은 미술, 음악은 음악… 각각의 예술은 각각의 장르 안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그게 아니란 걸 알았죠. 각 장르를 연결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예술의 영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모두 여기 계신 미술가분들 덕분이겠죠.”
“누들 공모전 수상소감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한 기자가 외쳤다.
내 분명 이럴 줄 알았지.
“이 자리는 전시회 기자회견이므로, 공모전에 대한 건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그 집>에 대해 말하는 건… 미술가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뭐, 그래도 간단하게 한마디 해 주시죠.”
이용식 협회장이 말했다.
“하지만….”
“워낙 인터뷰를 안 하시니, 저희도 소감이 좀 궁금해서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좀 황당해서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수상소감 발표라니.
하지만 수상소감이야 별로 할 말이 없고,
언론에서 하는 말들에 대해 간단하게 대답을 해야겠다.
“어… 많은 분들께서 제가 왜 공모전에 도전했는지, 왜 스릴러를 선택했는지 궁금해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먼저,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와 스릴러의 결이 맞았습니다. 또, 그것을 발표하기에는 공모전의 형식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고요. 장르문학에 한해서 저는 신인이 맞으니까요.”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물론 그 이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회자가 애써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기자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는… 틸 버켈과 다이앤 박이었다.
* * *
“아니, 어쩐 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강남의 모 스타벅스.
나는 커피 세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산책을 하던 중에, 뭔가 행사를 하는 것 같아서요. 그냥 들어와 봤는데 이상 작가가 있더군요.”
“다른 분들은 다 어디 가고요?”
“관광을 간다던데 난 관심 없어서 안 갔어요.”
다이앤 박이 슬쩍 덧붙였다.
“여행사 가이드랑 같이 인사동을 가셨어요. 같이 가 보시라 말씀은 드렸는데 싫으시대요.”
이렇게 산책을 할 시간이 있으면서 관광은 싫다니.
그도 참 보통 사람은 아니다.
“산책은 자주 하시나 봐요?”
“글 쓸 게 있을 때마다 합니다.”
아하.
글을 쓰는 사람들은 집필의 관성이 있다.
어떤 행위를 하거나 공간에 있어야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
내 집필 관성이 작업실이라면… 그의 경우는 산책이다.
하긴, 철학자는 생각하는 시간이 중요할 테니.
“그래서, 오늘 산책에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검은 성>.”
“네?”
“드레스덴 교회의 모습 말입니다.”
“아, 이미지의 키워드를 잡으셨군요.”
“네.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방향이 있긴 했지만, 막상 하기로 하니 단어들이 떠올라서요.”
“궁금하네요.”
그는 살짝 경계하듯 물었다.
“작가님의 키워드는?”
경성에 대한 키워드.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은 정한 바가 없습니다. 아, 형식을 정하긴 했죠.”
그가 말해 보라는 듯 고갤 끄덕였다.
“소설적인 에세이로 써 볼까 해요. 생각을 나열하기보다는, 이야기로 풀어 가는 거죠.”
“작가님답군요. 그게 다입니까?”
…지금 따지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다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를 좀 듣고 힌트를 얻어 볼까 해요.”
내가 너스레를 떨어도 그는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생각을 덤덤히 펼쳐 놓기 시작했다.
“교회는 유럽에서 대단히 신성하고 위대하게 여겨집니다. 서민들이 들락거릴 수 있는 유일한 ‘성’이죠.”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내가 본 프랑스의 교회들도 마치 성 같았으니.
“몇백 년을 유지했던 무결한 권위에 재가 뒤집어 씌워진 겁니다. 여기서 검다는 색감은 아주 상징적인 이미지죠. 독일이 시작한 세계대전의 폭력이 유럽에서 가장 신성하다고 여겨진 건축물에 남은 거예요.”
“신성이 사라지고 오욕이 남은 성이군요.”
“맞습니다. 또한, 검다는 이미지엔 하나의 상징이 더 부여되죠.”
이번에는 내가 고갤 끄덕였다.
난 그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거죠. 신의 시대가 완전히 저물고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시작되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제2차 세계대전도, 그 원인을 파고들면 결국 경제 대공황의 문제.
“그 전의 유럽은 경제적 문제를 숨겼어요. 귀족들처럼 우아한 척을 했죠. 하지만 세계대전 이후로는 그러지 않아요. 돈이야말로 진정한 힘이자, 신이고, 동시에 골치 아픈 문제라는 걸 인정한 겁니다. 이때 검은 성의 이미지는 변화된 신의 이미지와 직결되죠.”
한 마디로, ‘신’의 자리를 초월적 신 대신 돈이 차지했다는 것.
그리고 검은 교회는 그것을 상징한다는 것.
“…흥미롭군요.”
사실 좀 놀라웠다.
제2차 세계대전을 자본주의의 연결,
그것을 상징하는 ‘검은 성’의 이미지.
굵직굵직한 사고의 흐름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미지를 상징으로 만드는 과정이 섬세했기 때문이다.
예술에 관심이 없다더니… 재능이 아예 없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자, 이상 작가님은 경성의 사진을 어떻게 풀어 갈지 궁금하군요.”
다이앤 박은 상냥한 말투로 통역을 했지만… 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가 꽤 도전적으로 물었다는 걸.
나는 경성을 돌아다녔던 예전 날을 떠올렸다.
기모노를 입고 게다를 신고 돌아다니던 여인.
일본군과 여기저기 보이던 일장기.
조선인 아이의 흐느끼는 소리 같은 것들.
양복을 입고 그사이를 지나다니던 나.
“그때의 경성은 뒤죽박죽이었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치 살아 보셨던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나는 대답 대신 그냥 웃었다.
“하지만 결코 어우러지진 못했습니다. 이미지 자체가 분열되었다고나 할까요.”
“분열된 이미지라.”
순간, 내 머릿속에 또 다른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를테면, 소금입니다.”
“소금이요?”
“네. 소금은 아무리 해도 뭉쳐지지 않죠? 당시의 조선인과 일본인이 그랬습니다. 경성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저 공간을 공유할 뿐이죠.”
“….”
“조선의 백성들이 느끼는 일제강점기란 그런 거였습니다. 일본 순사에게 끌려갈지 모르는 두려움을 차치하고서도… 일상에 낯선 존재들이 침투해 있는 거예요. 게다가 절대 섞일 수 없는.”
“심리적인 거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틸 버켈이 이미지로 역사를 설명하려 했다면,
나는 이미지로 역사 속 인물의 심리를 표현할 생각이었다.
“뭐, 생각난 건 이 정도입니다. 전쟁이 주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죠. 스멀스멀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오는.”
틸 버켈은 내 말에 좀 놀란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그것참, 잔인한 상상이군요.”
그의 말이 맞다.
역사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 가능하다.
하지만 그 역사를 뒤집어쓴 개인의 내면은… 온통 분열되고 부서져 있다.
한때 내 마음이 그랬던 것처럼.
일제강점기를 살던 나의 불편했던 마음.
나는 그 마음을 경성의 사진과 연결시킬 생각이었다.
틸 버켈과의 그런 갑작스런 만남 이틀 후.
독일인들은 모두 제 나라로 돌아갔다.
나는 지훈과 함께 그들을 공항까지 배웅했다.
도미닉 팀장은 곧 나올 대담집을 보내 주겠다 했고.
올리버 PD는 다큐 편집본이 나오면 바로 보여 주겠다 했다.
그리고 틸 버켈은….
“기대하겠습니다.”
그 말 한마디뿐이었다.
그들이 떠나고 돌아오는 길.
“휴우… 한바탕 난리가 끝난 기분이네요.”
운전을 하던 지훈이 한 시름 덜었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대담집이 나오면 신라문학에 연락해 봐. 혹시 번역본을 낼 생각이 있느냐고.”
“네. 그렇게 할게요.”
그때였다.
우웅―
지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거 금홍 샘일 텐데.”
“금홍 샘?”
“네. 누들에서 메일 와서 제가 번역 부탁드렸거든요.”
“그래? 그럼 내가 본다?”
“그러세요.”
나는 운전 중인 지훈을 대신해 톡을 확인했다.
과연 금홍의 연락이 와 있었다.
나는 금홍이 보낸 내용을 소리 내어 읽었다.
“누들 출판사입니다. 어제부로 작가님의 작품 <그 집>이 이번 수상작 네 편과 함께 미국 출판 시장에 공식적으로 판매가 시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희 누들 출판사는 이전에 작가님과 오갔던 출간 계약을 준수할 것을 알려 드립니다. 덧붙여.”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집>의 영화화를 제안하는 제작사가 있어, 연락처를 전해도 좋을지 여쭤보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