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14화 (114/204)

114화

― Oh my god.

수화기 너머의 파멜라.

그녀는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 그럼 대체 어떻게… 그런 글을….

“이쪽도 마찬가집니다. 대체 어떤 글인지 궁금하군요.”

도미닉 팀장이 파멜라에게 대답하듯 중얼거렸다.

파멜라는 헛기침을 좀 하더니 말을 이었다.

― 아, 아무튼 당신의 투고작 <그 집>이 이번 누들 공모전에 5위로 입선했다는 걸 알려 드립니다. 수상과 함께 단행본도 발간된다는 점 역시도요.

5위라.

아슬아슬했군.

피터 한이 말한 문장이 발목을 잡긴 했구나.

뭐, 상관없다.

1위건 5위건.

책을 낼 수 있다는 건 똑같으니.

― 혹시… 현역 작가신가요?

“네. 말씀드렸다시피, ‘이상’이라고 합니다. 구글링을 해 보면 나올 것 같은데요.”

― 이상…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저희 쪽에서 표절이나 도용 여부에 대한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입선 사실을 언론에 공개를 하겠습니다. 괜찮겠죠?

“네. 아, 그리고 다음 연락은 메일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네. 그래야 할 것 같군요. 후… 한국 분이라… 다시 생각해도 정말 놀랍군요. 그럼, 또 연락드리죠.

그녀는 얼떨떨한 채로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내 이름을 들어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미국과 유럽의 문학 시장은… 이렇게 다르구나.

“와우!”

올리버 PD가 말했다.

“지금 제가 뭘 본 거죠?”

“저의 차기작이 발간된다는 소식을 함께 들으신 거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순위를 떠나서 <그 집>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

내 첫 스릴러 소설이 장르 문학적 가치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난 진심으로 기뻤다.

“누들 출판사라… 들어 본 적이 없는데. 혹시 글의 장르가 뭡니까?”

“스릴러입니다.”

“…흥미롭네요. 이상 작가의 스릴러라.”

“책이 발간되면 뮌 쪽에도 보내 드리죠.”

“무슨 말씀을요. 저희가 번역을 해서 발간을 해야죠.”

그는 조금 흥분해서는 그렇게 말했다.

내 수상을 신기해하는 두 사람을 두고, 난 잠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팀 이상’의 단톡방에 들어갔다.

― 누들에서 연락 왔어요. 5위 입선이래요.

― 진짜요?!! 정말 축하해요! 혜경 샘!!

― 형!!!!! 대박!!!! 와!! 2등보다 기분 좋은 5등!

― 아슬아슬했다. 메일이 아니라 전화로 연락이 올 줄은 몰랐어.

― 축하 파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시간 알려 주시면 저 시간 비워 놓을게요.

― 그럴까요? 그럼 조만간 한번 보죠.

― 아, 피터 한 교수님께도 알려 드릴게요.

맞다. 피터 한 교수.

내 수상을 내심 바라고 있겠지, 그 사람.

그 재밌는 사람을 조만간 또 볼 수 있겠군.

<그 집>의 누들 공모전 당선.

파멜라가 말처럼, 언론공개까진 시간이 좀 걸릴 거다.

미국 언론 그리고 한국 언론.

그 두 언론에 공개가 될 때 즈음에는… 독일의 ‘인간과 세계’ 다큐를 통해서도 방영이 되겠지.

의도한 건 아니지만 타이밍이 나쁘지 않다.

* * *

다음 날, 월요일.

틸 버켈과의 대망의 대담일이 밝았다.

나는 시간에 맞춰 정오 즈음 강남으로 향했다.

월요일은 갤러리의 정기 휴관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D―TV 제작진들이 들어차 있었다.

이젠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도미닉 팀장과 올리버 PD, 그리고… 틸 버켈이 있었다.

그는 거대한 여인 흉상 앞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덥수룩한 흰 수염.

생각보다 왜소한 체구.

삐딱한 자세.

확실히 어딘가 고집스러운 풍채였다.

나는 다이앤 박과 함께 그에게 다가갔다.

“작품이 마음에 드십니까?”

그가 고개를 돌려 날 보았다.

“아, 작품엔 별 흥미 없습니다. 워낙 거대하게 만들어 놔서 쳐다본 것뿐입니다.”

쓸데없이 솔직한 말이었다.

“틸 버켈입니다.”

“이상입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예술의 무용한 낭만은 역설적으로 유용함의 차원으로 치환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갑자기 날아온 묵직한 질문.

알 것 같았다.

그가 왜 어제 식사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는지.

“재밌는 얘기는 카메라가 돌아가면 시작하죠.”

“아, 그리고 하나 더.”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십니까?”

“어떤 역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되물었다.

그리고 틸 버켈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역사 말입니다. 1900년부터 1950년까지라고 볼 수 있겠죠. 그 시기 한국도 갈등이 많지 않았습니까.”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2차 세계대전 때라면… 일제강점기와 겹친다.

1910년에 태어난 1937년에 죽은 내 전생과도.

“관심이 있으십니까?”

“…있지요. 많이.”

그러자, 그는 씨익 웃었다.

“다행이군요.”

그리고 내 어깨를 가볍게 치고 가 버렸다.

나는 얼떨떨한 채로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는 어딘지 신난 채로 제작진과 대화를 나눴다.

어쨌거나 대담은 시작되었다.

전시회장의 작품들을 등 뒤에 둔 채.

나와 틸 버켈은 비스듬하게 마주 앉았다.

대담이 시작되자마자,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저번 ‘철학 스터디’의 대담은 제게 잊지 못할 충격을 남겼습니다. 예술의 낭만이, 무용하기에 가치 있다는 의견 말입니다.”

“맞습니다. 철학자님의 입장에서는 궤변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궤변이죠. 확실하게 궤변입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요. 저 역시 무용함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고, 스스로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부분에서 충격을 받으셨나요?”

“당신이 정의한 인간의 존재에서 말입니다.”

아하, 알 것 같았다.

“인간을 합리적 동물로 보셨군요.”

“네. 저는 동물이란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은 할 수가 없는 합리적인 존재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예술론으로 들어왔을 땐 바뀌더군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예술은 합리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생존의 측면에서… 오히려 인간의 예술적 본능은 인간을 도태되게 만들죠. 시간을 낭비하고 약육강식을 거부하니까요. 하지만 예술이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는 결론으로 미리 제시한다면….”

“인간의 개념이 바뀌는 거죠.”

“네.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것을 떠나… 무용함을 받아들이는 세포가 있다는 겁니다. 무용할지라도 아름답다면, 생존에 방해가 되어도 그것을 따라갑니다. 물론 모든 인간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죠. 하지만 반대로 인간만이 그런 행동을 합니다. 결국 무용함을 추구하는 건 인간에게만 발현 가능한 경향성이라는 답이 나오죠. 그래서 저는 그런 경향성을 강하게 가진 이들이 예술가 지망생이라 생각하고, 경향성과 더불어 천부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정말로 예술계에서만 통할 인간론이군요.”

“특별한 인간론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예술적 세포의 특별함을 말해 주죠.”

대담은 이런 식이었다.

때로는 서로의 말을 인정하면서.

때로는 반대 의견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몇 시간이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덧 올리버 PD가 신호를 보냈다.

이제 슬슬 녹화를 끝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시간이 빠르군요. 대담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런. 할 말이 산더미 같은데.”

그가 툴툴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긴 대담이어도 그를 만족시킬 순 없을 것이다.

“자, 그럼 마무리를 해 주시죠.”

나는 틸 버켈에게 멘트를 넘겼다.

그런데 그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진… 같은데?

“그게 뭔가요?”

“아까 녹화 들어가기 전에 작가님에게 묻지 않았습니까?”

대담이 길어지다 보니 잠깐 잊었다.

그가 내게 보냈던 뜬금없는 질문.

“2차 세계대전에 관심이 있느냔 말씀이요?”

“네. 저는 오랫동안 이 두 사진을 품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추모하는 기념관에서 산 사진들이죠. 이 사진의 이미지는 대단히 강렬했고, 이걸 가지고 어떤 글이건 쓰고 싶었습니다.”

그가 내게 두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하나는 재로 덮인 대성당.

또 하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행렬 중인 일본군과 좌판의 조선인들.

그들 뒤로 보이는 개화기 가옥들.

“이건… 일제강점기 경성이네요.”

“맞습니다. 나머지 한 장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폭격으로 재로 뒤덮인 독일 드레스덴시의 대성당이죠. 이 성당은 여전히 검은 재가 묻어 있는 거로 유명합니다.”

드레스덴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있다.

몇몇 문학 작품에서도 소개된 바 있었고.

하지만 좀 이상하지 않은가.

“독일은 전범 국가가 아닙니까. 경성은 전범국에 지배당했던 도시고요. 이 두 사진을 함께 가지고 다니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나는 가감 없이 말했다.

독일에 방영될 프로라고 해서, 짚어야 할 걸 넘기고 싶진 않았다.

틸 버켈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이 전범이라는 점은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지점에서 흥미로운 상상이 시작된 거죠.”

흥미로운 상상이라.

“어떤 겁니까?”

“역사가 주는 두 가지 폭력의 이미지입니다. 가해자가 받은 일종의 죗값과 같은 폭력, 피해자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온 폭력… 전 이 이미지들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철학 에세이를 쓰고 싶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곤 있지만, 그가 말하는 건 사실 대단히 어려운 경지였다.

‘이미지’를 보고 ‘철학’을 떠올리는 것.

그 ‘철학’으로 결과적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

이것을 해내기 위해선….

이미지를 보고 느끼는 감각.

역사적 지식.

그것을 철학으로 연결하는 포괄적 시선.

이 모든 것이 필요했다.

“어떻습니까? 관심이 있으십니까?”

틸 버켈이 내게 물었다.

나는 내 손안의 두 장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틸 버켈은 독일인이다.

드레스덴 대성당을 보고는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반면 경성의 사진에서는… 막연한 매혹만을 받았겠지.

“경성의 사진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신 거군요.”

“정확합니다. 독일인으로서, 드레스덴 대성당에 대한 글을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성의 사진은 어렵더군요. 그 묘한 이미지에 이끌리곤 있으나… 저는 그 세계를 확실히 모릅니다. 그래서 언젠가 이 사진을 이해할 사람이 나타나면, 보여 드리려 했죠. 바로 지금처럼.”

말인즉슨, 함께 에세이를 써 보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나는 좀 망설여졌다.

그는 철학자고, 나는 소설간데?

“한국에도 철학자는 없지 않습니다. 제게 이런 제안을 하신 건….”

그는 나를 꿰뚫어 보듯 바라보며 말했다.

“철학적 사고와 이미지를 느끼는 예술적 감각. 이 두 요건을 모두 갖춘 사람은 작가님이기 때문입니다.”

“….”

“피해국과 가해국의 이미지를 나란히 두는 것… 파격적인 시도이긴 합니다. 하기에 따라 욕을 먹을 수도 있죠. 하지만 끌리지 않습니까?”

그는 정말로 날 꿰뚫어 보는 걸까.

나는 아까부터 경성의 사진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그 시절 경성 거리에서 느낀 수많은 기분들.

긴장감, 열패감, 동경, 자책감, 아쉬움….

그런 것들이 가슴 속에서 거품처럼 올라왔다.

그래서 이 사진을 가만히 보기만 해도… 잊고 있던 이야기가 저절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드레스덴 대성당의 사진을 돌려 주었다.

“이건 가져가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경성의 사진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건 제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틸 버켈이 환하게 웃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대담을 마무리하며 악수를 했다.

그와 나눈 예술철학 이야기는 이미 휘발되어 버렸다.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바로 경성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지,

그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