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불가능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말했다.
틸 버켈은 미간을 찌푸렸다.
― 하지만 이미 많은 기계가 예술품을 창작해 내고 있습니다만.
“네.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계들이 ‘예술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 기계는 예술가를 대신할 수 없다… 예술가란 존재를 우월하게 생각하시는군요.
“전혀 반대입니다. 예술가만큼 쓸모없는 존재도 없죠.”
스튜디오가 술렁거렸다.
사회자마저도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등>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화가의 아내가 그에게 말하죠. 당신이 하는 일은 무용하다고. 바로 이 ‘무용’이란 말이 바로 핵심입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먹고 사는 일과 관계가 없거든요. 하지만 인간만이 이 무용한 존재에게 가치를 느끼죠. 정말 모순적인 일 아닙니까?”
그는 말이 없었다.
아니, 사실 그 누구도 말이 없었다.
틸 버켈은 턱을 쓰다듬으며 내 말을 가만히 들었다.
“무용함에서 느끼는 가치. 이 모순은 수식화가 불가능합니다. 수식화가 불가능하다는 건 기계화를 할 수 없단 뜻이겠죠. 즉, 기계는 예술품을 창작할 순 있으나 예술가와 같은 ‘의도’를 갖진 못한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인간의 예술은 무용과 모순을 의도했단 겁니까?
“네. 예술은 무용하고, 모순되기 때문에 영원히 생존할 겁니다. 인간이 그런 존재로 설계됐기 때문이죠.”
내 말에 논리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또, 내가 기계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걸 수도 있지.
하지만 난 철학자가 아니라 작가다.
작가라는 예술가로서 가진 예술론.
그것을 확실하게 밝힐 뿐이다.
틸 버켈이 딱 잘라 말했다.
― 궤변입니다. 인간은 생물인 이상 모든 기능이 생존을 지향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심미적 감각도 정신적 쾌락을 위해 존재하죠. 이 정신적 쾌락은 몸의 기능과도 직결되고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생존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죠.
“그렇게 일반화를 하기엔 예술가의 광기라는 요소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나는 반박했다.
“예술품 소비자의 입장에서 예술품은 간접적 생존용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는 아닙니다. 광기는 정신적 쾌락이 아니죠. 생존이 아닌 파괴의 행위이고요.”
― 그렇다면 인간이란 존재의 전제를 다시 깔아야 할 텐데요?
“바로 그겁니다. 적어도 예술이라는 영역 안에서, 인간은 생존적 조건을 벗어난 존재 혹은 무용한 낭만의 지지자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때였다.
틸 버켈이 흠칫 놀라더니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그는 내게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사회자가 먼저 그를 막아섰다.
― 틸, 이를 어쩌죠? 토론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만.
― 벌써 말입니까?
나 역시 놀랐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고?
― 저희 프로가 두 분을 너무 얕본 모양입니다. 틸, 오늘의 토론 어땠나요?
틸 버켈은 겨우 진정하곤 말했다.
― 정말… 흥미로웠어요. 생각지도 못한 말들 때문에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군요.
― 생각지도 못한 말이라면?
―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재설계 말입니다. 인간이 무용한 낭만의 지지자라는 점이… 놀랍군요.
나는 얼른 덧붙였다.
“인간이 그 무용함을 지지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예술은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 바로 그 발상의 전환이 놀랍다는 겁니다. 저는 <예술 무용론>이라는 책을 통해서 예술을 가치로 환산하여….
― 저기, 저기, 틸! 갑자기 토론을 다시 시작하시는 건가요? 라이브 방송이라 정말 시간이 부족한데요.
사회자가 눈을 찡긋했다.
틸 버켈은 말을 겨우 삼켰다.
그리고 화면을, 정확히는 날 향해 말했다.
― …아쉽군요. 할 말이 잔뜩인데.
“기회가 되면 다시 뵙죠, 틸.”
― 자, 두 분이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시는군요. 이상 작가님. 마지막으로 독일의 독자분들께 남기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독일의 독자들이라….
대부분 유로문학상을 통해 날 알고 있겠지.
“많은 독자께서 <등>을 천재성이나 광기를 중심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사유의 범위를 넓혀 예술가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많은 글을 쓸 것 같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무용한 걸 사랑하는 사람이거든요.”
― 네.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럼 시청자 여러분, 오늘도 ‘철학 스터디’와 함께해 주셔서….
사회자가 마무리 멘트를 시작했다.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내 얼굴이 사라졌다.
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쉬운 논쟁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자꾸 논지에 어긋나려 했고.
철학이라, 역시 어렵다.
지훈이 물을 한 잔 떠다 주며 말했다.
“고생했어요. 평론은 형이 해야 할 것 같던데요? 그런 거 다 생각하면서 쓴 거예요?”
“그럼 복잡해서 글 못 쓰지. 다 쓰고 나서 알게 된 거야. 내가 왜 이런 문장을 썼나, 왜 이런 이야기를 썼나… 돌이켜 보면 글에 담긴 내 무의식적인 생각이 보이기 마련이거든.”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시원하다.
“무의식이라… 무의식이라 해도 엄청나네요. 그런 게 머릿속에 담겨 있단 뜻이잖아요.”
담겨 있다고 해야 하나.
그냥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해야 하나.
창밖은 슬슬 해가 뜨고 있었다.
나는 갓 일어난 사람처럼 기지개를 켰다.
“읏샤―”
그래도 큰일을 해결해서 마음이 후련했다.
이 방송으로 독일에서 <등>이 잘 알려졌으면 좋으련만.
* * *
틸 버켈은 스튜디오를 나섰다.
사회자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틸, 오늘 토론 어땠어요? 평소와 좀 다르던데요?”
틸 버켈은 오만한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토론을 중단하기도 일쑤.
그런 그가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토론을 하려 하다니.
‘철학 스터디’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틸 버켈은 아직도 좀 넋이 나간 듯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말했다.
“허점을 찔린 듯한 기분입니다.”
“어떤 점에서요?”
“사실 예술이 무용하고, 무용하기에 가치 있다는 명제를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일찍이 폐기했죠. 궤변이니까.”
“음… 그런데요?”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의 전제를 바꾸니… 말이 되더라 이겁니다.”
인간의 합리성과 생존 지향성.
이상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무용함의 지지자’라는 새로운 전제를 제시했다.
적어도 예술가라는 인간에 한해서.
“그의 소설 <등>을 읽었을 때와 비슷해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들어요. 아마 시청자들도 같은 걸 느꼈겠죠.”
틸의 말에 사회자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농담처럼 말했다.
“틸,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니… <등>이 잔뜩 팔리겠네요.”
그는 어서 보라는 듯 주위를 가리켰다.
주위에는 기자들이 열심히 그의 말을 적고 있었다.
틸 버켈과 이상의 대담.
그것은 독일 언론에서도 꽤 주목하는 이벤트였다.
“다음에 보죠.”
틸은 뒤돌아 걸어갔다.
그 역시 기자란 족속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가 우뚝 멈춰섰다.
“흠….”
‘이대로 끝내기엔 아쉽단 말이지. 철학자도 아닌 사람한테 개인적으로 토론을 요청하는 것도 실례일 테고… 무슨 수가 없나.’
순간, 틸 버켈에게 아이디어가 하나 스쳐 갔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텝들이 모여있는 곳.
그 한가운데에 ‘철학 스터디’ PD가 앉아 있었다.
틸 버켈은 빠른 걸음으로 그를 향해 갔다.
* * *
토론의 효과는 굉장했다.
사실 유럽에서 나는 <내외인>으로 유명했다.
아마 유로문학상의 효과 때문이겠지.
상이란 양날의 검이다.
받는 순간에는 좋아도, 그 후속작을 초라하게 만드니.
<등>이 <내외인>에 가려질까 내심 걱정했는데… 의외로 상황이 좋게 풀려 간다.
내가 클래식한 분위기의 <등>을 썼던 것.
클래식을 추구하는 독일에서 <등>의 판권을 사 간 것.
그리고 ‘철학 스터디’에서 <등>을 다룬 것.
모든 일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뮌 출판사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우웅― 우웅―
“여보세요?”
― 작가님. 저 뮌의 다이앤입니다.
“아, 예.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리려 했습니다. <등>의 판매율 추이를 좀 알 수 있을까 하는데요.”
― 도미닉 팀장님께서….
그녀는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열광하고 계십니다, 지금.
“네?”
― ‘철학 스터디’의 반응이 제대로 오고 있거든요. <등>이 <내외인>과 함께 베스트셀러 20위에 들었습니다. 한 작가의 작품이 게다가… 외국인 작가분의 작품이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역시.
꼭두새벽부터 토론을 한 보람이 있구나.
그런데 수화기 너머가 소란스러웠다.
도미닉 팀장 목소리인 것 같은데?
― 음… 도미닉 팀장님께서, 독일에서 작가님의 예술관을 다루는 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또… 그것과 관련하여 뮌 출판사에서 책을 내시는 건 어떨지 물어보시네요.
“하하… 책은 좀 갑작스럽습니다. 제가 철학자도 아니고요.”
― 저희 쪽도 본격적인 철학서보다는 대중서 쪽으로 기획을 하고 있긴 합니다. 아직 확실한 사항이 아니라서, 좀 더 계획이 구체화되면 상의하신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나를 가지고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는 모양.
대중서라면… 거절할 이윤 없지.
얘긴 더 들어 봐야겠지만.
“그럼 구체화 되는대로 말씀해 주세요. 그때 함께 살펴보죠.”
― 네. 알겠습니다, 작가님. 그럼, <등>의 베스트셀러 진출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축하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 즐거운 기분으로 향한 곳.
바로 강남의 모 대형 갤러리였다.
며칠 전, 이용식 협회장에게 연락이 왔다.
전시회를 열 갤러리를 살펴보고 싶지 않냐고.
마침 시간이 날 것 같아서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보내 준 주소의 갤러리로 갔다.
“이상 선생님, 오셨습니까?”
미리 와 있던 이용식 협회장이 날 맞이했다.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했다.
그는 나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칭했다.
그에게 ‘작가’라는 말은 미술가에게 더 익숙한 걸까?
“작품은 잘되어 가십니까?”
나는 웃으며 물었다.
그 역시 이번 전시회에 출품을 하기 때문이다.
“허허… 아직 아무것도 안 나와서 큰일입니다. 또 모르죠. 선생님과 함께 얘길 하다 보면 뭐가 나올지. 이상 선생님께선… 시는 좀 어떻게…?”
“아… 저도 백지입니다. 완전히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타깝게도 사실이었다.
토론 이후 며칠을 고민해 봤지만… 이렇다 할 시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내 시 없이 전시회가 열릴지도.
이용식 협회장이 껄껄 웃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글 쓰는 게 어디 쉽나요. 자, 갤러리를 한번 돌아보시죠.”
그는 친절하게도 갤러리의 구석구석을 소개했다.
“이쪽은 조형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등>의 ‘바다’ 이미지에 영감을 받은 송백훈 작가의 작품이죠. 선생님께서 소설에 묘사하신 바다를 보고 그린 여자의 얼굴을 송 작가가 재해석해서 전시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이쪽은 벽화 예술가 장미호 작가가 채울 예정입니다. <등>을 보면 여관 벽에 벽화를 그리는 장면이 있죠?”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정확하게 묘사하진 않았는데요.”
“네. ‘신성한 모든 것이 그려졌다가, 불타 버린 흔적 같았다.’ 이렇게 쓰셨죠.”
난 조금 놀랐다.
정확히 그렇게 썼기 때문이었다.
“제 소설을 외우신 겁니까?”
“외워진 거죠. 워낙 좋은 소설이니.”
그가 씩 웃었다.
“아무튼 그 이미지를 장 작가가 이 벽 전체에 채울 겁니다. 어떤 방식을 쓸지는 모르지만…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군요.”
나는 그렇게 설명을 들으며 갤러리를 걸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이 갤러리… 독특하게 생겼네요?”
“아, 네. 도넛 모양이죠. 이 정도 크기의 대형 홀이면 입구와 출구를 분리하지만, 여긴 문이 하나입니다. 시작한 곳으로 돌아와야죠.”
“이런 형태의 갤러리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그는 음… 하고 말을 골랐다.
“대형 갤러리 중에 예약이 가능한 곳이 몇 없기도 했습니다만… 이 공간이 어쩐지 <등>의 내용과 어울리잖아요. 홀연히 집을 떠났다가, 또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죠. 그래서 명확한 출구도 입구도 없었으면 했어요. 이거, 제가 너무 억지 해석을 한 건가요?”
그가 쑥스럽게 웃었다.
전혀 억지 해석이 아니었다.
나 역시 정확히 그와 같은 생각을 했다.
이 도넛 형태의 구조.
그것을 조감하듯 상상해 보면….
문득 며칠 전의 토론이 생각났다.
예술의 무용한 낭만.
그것은 이 돌고 도는 원의 모양과 닮았다.
순간, 어떤 이미지가 내 안을 파고들었다.
‘한 인간의 제자리걸음’
나는 이용식 협회장에게 말했다.
“잘 하면… 아주 잘 하면….”
“네?”
“<등>에 관한 시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