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06화 (106/204)

106화

종로문화센터의 휴게실.

나와 김미소 작가 그리고 협회의 인사들이 들어섰다.

협회장은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름이… 설치미술가 이용식.

난 그에게 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는 게 어떤….”

“아, 다름이 아니라 저희 미술가 협회 쪽이랑 전시를 한번 해 보실 마음이 있으신가 해서요.”

“전시요?”

“네. 저희 협회가 매년 초마다 전시를 하는데… 이번에 낭독회도 잘 끝났고, 또 작가님들이 선생님 소설을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등>을 주제로 하는 전시회를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요.”

<등>을 주제로 하는 봄 전시라.

“구체적으로 어떤 전시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음, 종합적인 현대 미술 전시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회화, 조형, 조각, 설치까지 다양한 작가님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셨고요. <등>을 모티프로 여러 작품을 창작하는 거죠.”

<등>에 모티프를 받은 회화, 조형, 조각, 설치.

궁금하긴 했다.

현대 미술가들이 <등>을 어떤 식으로 재해석했을지.

“어떻게… 선생님께서 허락을 해주시면 바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만.”

“저야 영광입니다. 하지만 저는 뭘 하면 될지….”

“아, 그것도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이용식 협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본래 <등>의 인상적인 구절들을 전시회장 벽에 흩뿌려 놓는 형식으로 진행할까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좀 심심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가 조심스럽게 내게 권유했다.

“혹시 <등>을 모티프로 한 시를 한 편 써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를요?”

“예. 그 시 역시 <등>의 재해석일 테니까요. 그럼 저희 쪽 작가님들의 작품과 잘 어우러지지 않을까 싶은데….”

시라.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긴 했다.

시 쓰기의 재미가 좋긴 하지만… 일정이 좀 빡빡하긴 했다.

또, 마음먹는다고 바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이렇게 하죠.”

내가 말했다.

“<등>을 가지고 전시를 여는 건 찬성입니다. 현대 미술 작가님들의 작품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오,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시를 드릴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긴 합니다. 최대한 써 드리는 방향으로 노력을 하긴 하겠습니다만….”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시를 허락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시는 너무 부담을 갖지 마시고, 영감이 떠오르시면 한 작품 내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먼저 행정적 절차를 위해 지훈의 번호를 건넸다.

“제 매니저의 연락처입니다. 진행 과정은 이쪽과 공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때아닌 전시 약속을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김미소 작가가 슬쩍 물었다.

“전시라니. 생각지도 못한 걸 하시겠네요?”

“그러게요. 시를 쓸 시간이 될지 모르겠어요.”

“요즘 바쁘세요? 사실 낭독회에 시간을 내주셔서, 여유가 있으신 줄 알았는데.”

여유라니.

그런 거 전혀 없다.

“지금 시 생각할 때가 아니긴 해요. 독일의 교양 프로와 원격 토론을 하게 됐거든요. 그 주제가 <등>이랑 관련이 있어서 오늘 낭독회에 와 본 거고요. 머리를 좀 정리할 겸.”

김미소 작가가 멈칫했다.

그리고 못 믿겠다는 듯 말했다.

“독일 방송에서… 원격 토론이요? 작가님 작품을 가지고?”

“네.”

“어, 언제요? 준비 안 해도 돼요?”

김미소 작가가 놀라서 허둥거렸다.

아니, 뭐… 준비할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라 물었으니 대답은 해 줘야겠지.

나는 휴대폰 시계를 봤다.

지금이 일곱 시니까 한국 시간으로….

“열 시간 뒤쯤이네요.”

“…뭐라고요?”

김미소 작가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이었다.

* * *

그리고 열 시간 뒤.

새벽 네 시 오십 분.

독일 시간으로는… 밤 아홉 시 오십 분.

그리고 ‘철학 스터디’는 십 분 뒤에 시작한다.

지훈이 졸린 눈으로 카메라를 세팅하고 있다.

“형, 멍하지 않아요? 커피 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뒤에 배경 좀 꾸밀 걸 그랬어요. 책도 좀 꽂아 놓고….”

“촌스럽게 책은 무슨. 조명이나 잘 틀어 줘.”

그때, 지훈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 네. 준비 다 됐습니다. 연결할게요.”

“다이앤이야?”

“네. 형, 거기서 화면 자막 잘 보이시죠? 바로 동시통역해서 음성이랑 자막으로 나온대요. 딜레이 최대한 없도록.”

“응. 잘 보여. 이제 곧 시작하겠다.”

나는 무선 이어폰을 꼈다.

토론이 시작되면, 통역사가 동시통역을 해 줄 거였다.

“으… 떨려. 파이팅이에요!”

지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D― TV 쪽에서 제공해 준 URL로 접속하자, 마침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 내 모습이 그쪽에 송출되진 않았다.

나는 편한 마음으로 화면을 통해 틸 버켈을 관찰했다.

다리를 꼰 채 소파에 푹 눌러앉은 모습.

희고 덥수룩한 수염과 고집 있는 눈빛.

독일어판 <등>을 평가하는 딱딱한 말투.

― <등>이 좋은 소설이라는 건 확실합니다. 특히 클래시컬한 서사는 독일인이 사랑할 만하죠. 주제 의식도 확실합니다. 예술과 예술가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던지니까요. 광기… 천재성… 그 모든 것들이 예술 안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사회자와 틸 버켈은 <등>의 줄거리에 대해 한참을 말했다.

어느 정도 이야기 소개가 끝나갈 무렵.

사회자가 틸 버켈에게 물었다.

― 그런데, 이 좋은 소설의 작가님께 물어볼 게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맞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고, 철학자로서 꼭 던져야 할 물음을 발견했죠.

― 비판적인 건가요?

― 어느 정도는요.

― 와우! 기대되는군요. 틸 버켈의 비판이라. 주제도 직접 정하셨잖아요. ‘미래에도 예술가는 필요한가’라고요.

틸 버켈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자, 더는 기다릴 수 없군요. 그렇지 않아도 한국 현지의 이상 작가님과 원격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은 상태인데요, 지금 바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사회자가 제작진과 눈빛을 교환했다.

지훈이 긴장된 말투로 말했다.

“형, 연결할게요?”

“응. 바로 해.”

화면 안에 내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저쪽의 스튜디오 화면에 말이다.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내 모습.

그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틸 버켈이 화면 속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소설가, 이상입니다.”

내 말이 바로 독일어로 번역이 되어 자막으로 떴다.

굉장히 빠른 통역이었다.

― 네. 이상 작가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저, 유로문학상 비유럽부문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독일 방송은 처음이실 텐데 긴장되지는 않으십니까?

“오히려 졸립니다. 여긴 새벽 다섯 시 거든요.”

내 농담에 사람들이 웃었다.

틸 버켈만 빼고.

― 처음에 저희 쪽에서 토론을 요청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갑작스러우셨을 텐데요.

“충분히 제시할 수 있는 명제라 생각했습니다. <등>을 쓰면서 저도 생각했던 것들이기도 하죠.”

― 좋습니다. 그럼 틸, 바로 토론을 진행할까요?

― 그러죠. 작가님께서도 준비가 다 되신 것 같으니.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말했다.

“준비한 물음을 해 주시죠.”

틸 버켈은 소파에 더 깊이 앉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카메라 쪽에 내가 나오는 화면이 또 있는지는 몰라도,

그는 마치 나를 마주 보는 것 같았다.

― 이상 작가님, 저는 <등>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제가 문학에 대해 논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예술가의 존재가치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존재 가치.

즉, 예술가의 필요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

그는 아주 거침없이 말했다.

‘예술혐오론자’라는 별명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군.

― <등>에서 ‘남자’라고 표기되는 화가가, 예술가의 이데아나 마찬가지로 표현이 되었는데요. 아, 이데아라 칭한 이유는 그의 형상이 마치 ‘신’과 같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데아.

어떤 존재의 궁극적이고 완성된 형상을 의미한다.

일종의 완벽한 상징이랄까.

나는 대답했다.

“네. 그렇게 표현했지요.”

― 하지만 저는 ‘남자’라고 표기되는 이 인물의 캐릭터가, 예술가의 이데아처럼 묘사되고 있긴 하지만, 그의 행위는 너무 낭만적으로 쏠려있지 않나 하는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낭만적이라.

‘남자’라는 인물은 예술을 위해 인생을 바친다.

지극히 감정 중심적인 행위.

그래, 충분히 ‘낭만적’이지.

‘낭만’이라는 말 자체가 ‘감정 중심적’이란 말이니.

“그런 괴리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술의 이데아 자체가 사실은 감정이고, 낭만의 다른 말이 감정 중심주의이기 때문이죠. 즉, 예술과 낭만을 떨어뜨릴 수 없는 존재예요.”

― 예술의 이데아가 감정이다? 지나친 확신입니다. 세상이 수많은 예술품엔 감정 외에도 이성적 판단과 계산이 들어가 있을 텐데요.

그의 눈썹이 꿈틀했다.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또한 적어도… 제 예술의 목적은 감정의 표현이니까요. 이제 이 명제를 ‘예술가’의 입장에서 풀어 보죠.”

틸 버켈은 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의 본질을 예술품으로 구현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가의 역할이죠. <등>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남자는 바다를 보고 얼굴 없는 여자의 그림을 그리죠. 하지만 그가 표현하려 하는 건 바다에서 느낀 자신의 감정입니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을 얼굴 없는 여자라는 이미지에 담아, 보는 이에게 느끼게 해 주려는 겁니다. 남자는 알고 있어요. 감정을 전달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는 걸요.”

나는 이와 관련된 몇 개의 예시를 더 들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 그렇다면 이런 전제를 깔아 보죠. 이상 작가님의 말처럼, 감정과 낭만이 예술의 본질이라면….

그가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 미래 사회에서 여전히 예술가가 쓸모 있는 존재로 남아 있을 거라 장담하십니까?

“질문의 요지를 한 번 더 정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 어떤 감정을 전달하는 것. 그게 예술가의 목표이자 본질이라고 하셨습니다. 맞나요?

“맞습니다.”

― 하지만 고도로 발달된 기계가 이미 그런 그림을 그려내고 있어요. 인간이 회화에서 감정을 느끼는 코드를 익히고 그걸 인용하여 그림을 그려 내는 거죠. 기계가 그렸다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인간은 그 예술품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이건 이미 증명된 실험이에요.

“예술가의 개념을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에서 보다 현대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예술가라는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이 말이군요.”

내 말에 그는 조금 놀란 듯했다.

그의 질문은 사뭇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건 ‘우려’에 가까웠다.

그의 책에서 몇 번이나 강조했듯… 그는 예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전혀 걱정처럼 보이지 않아 문제이지만.

― …정확하게 파악하셨습니다. 바로 그걸 묻고 싶었어요.

틸 버켈의 말에 방청객들이 오오 하며 놀라워했다.

사회자의 눈도 동그래졌다.

아마 그가 토론에서 저런 반응을 하는 건 처음이리라.

“저도 그 말엔 동의합니다.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빼앗기면… 예술가는 사라지겠죠.”

― …그게 자연스럽다는 건가요?

나는 바로 대답했다.

“자연스럽지 못할 것도 없죠.”

스튜디오가 술렁거렸다.

틸 버켈이 안경을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 진심이십니까? 당신도 한 사람의 예술가잖아요. 그런데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고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예술가는 사라지고 만다고요?

“이론적으로는요.”

― 그럼 실질적으로는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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