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01화 (101/204)

101화

유로문학상 신인상 수상 이후.

전 세계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인터뷰만이면 다행이게?

신작 요청, 토론의 패널 요청, 웬 사진집을 내자는 출판사까지.

별의별 연락을 다 받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모두 거절했다.

문제는 언론이 멋대로 내게 별명을 붙였다는 거다.

‘신비주의 작가 이상’.

혹은 ‘괴짜 작가 이상’.

괴짜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전생의 내 별명도 ‘광인’이었는데….

어째 좀 비슷해져 가는 기분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사람들의 반응이다.

내게 붙은 ‘괴짜’라는 말에 그들은 더 열광했다.

대중의 취향이란 참 알 수가 없다.

어쨌건 나는 묵묵하게 <그 집>을 썼다.

한 달간, 어두운 오피스텔에서, 혼자 남아.

물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다시 사는 일>과 <내외인>, <등>….

모두 각각 다른 미국의 출판사와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또 하나.

<내외인>이 유로문학상을 수상한 후.

독일의 수많은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들의 생각이야 뻔했다.

<내외인>의 이름값이 탈프랑스 급이 되었으니, 프랑스와 자존심 싸움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

지훈은 괘씸해서 못 견디려 했다.

― 이것들이 진짜… 무슨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도 아니고… 나 몰라라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책을 내 쟤?

좀 더럽고 치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안 낼 순 없는 일.

독일 쪽 계약 건은 지훈에게 맡겼다.

지훈은 지금까지의 설움을 갚듯, 수많은 계약 조항들을 하나하나 따졌다.

녀석은 잘 하지 않던 흥정까지 열심히 하더니… 결국 큰 계약금을 받고 뮌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바로 <그 집>의 번역자 문제.

다행히 금홍이 초벌 번역을 맡아 주기로 했다.

며칠 전에 온 금홍의 톡.

― 해 볼게요. 책임지고.

담백하고, 명료한 답이었다.

이걸로 번역의 첫 고비는 넘긴 셈.

이제 원어민 번역자만 구하면 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공모전 투고의 기본은 무기명이다.

아무에게나 번역을 맡겼다가… 원고가 새어나가거나, 내 이름이 밝혀진다면?

공든 탑이 보기 좋게 무너지겠지.

나는 지훈에게 이렇게 말해 놨다.

― 번역자를 좀 찾아봐. 미국에 있는 사람은 불안하니까, 한국에 있으면서 수준급의 문학 번역이 가능하고, 충분히 소통 가능하고 믿을 수 있는… 미국인으로. 아, 그리고 비밀리에 찾아야 된다? 내가 공모전에 출품을 한다는 게 알려지면 안 되니까.

내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지훈은 이렇게 대답했다.

― …유니콘 찾는 게 빠를 것 같은데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훈이나 나나 알아보긴 했으나…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니.

어쨌건!

나는 오늘 한 달만에 오피스텔을 떠난다.

<그 집>의 초고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집.

극성스러운 기자들도 웬만큼 사라진 것 같다.

‘신비주의 괴짜 이상’의 인터뷰를 포기했겠지.

언론의 입방아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니까.

“오피스텔은 완전히 안녕이에요?”

지훈은 짐 푸는 걸 도와주며 물었다.

“한 달이 계약 기간이었으니까. 쓸 것도 다 썼고. 맞아, 번역자 건은 아직도?”

“네. 아무래도 미국 쪽에서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곤란한데.”

“공모전을 포기하는 건?”

지훈이 슬쩍 물었다.

사실 공모전에 대해 지훈은 아직도 좀 회의적이다.

“그렇잖아요. 이름의 후광을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이런 것도 쓸 수 있다! 이렇게 당당하게 나가 보는 것도 좋잖아요?”

“그렇긴 한데, 내가 날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

“엥? 뭘요?”

“<그 집>이 정말 뛰어난 소설인지 사실 감이 잘 안 와.”

지훈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

“형, 왜 그래요? 너무 어두운 데서 글만 쓰다가 우울증 온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난 장르 소설 써 본 적이 없잖아. <그 집>을 준비하면서 많이 읽기야 했지만… 어쨌건 첫 작품이니까.”

“아하.”

“이게 자연스러운 거 아냐? 내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잘 될 거라 장담할 순 없지.”

“그럼 형, ‘누들 공모전’에서 떨어지면요?”

“안 낼 거야. <그 집>.”

“네?! 아, 왜….”

지훈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내 마음을 이해했겠지.

누들 공모전에서 떨어진다는 건….

내 장르적 재능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 집>이 내 이름값만 못한 작품이란 뜻이고.

작가로서 <그 집>은 물론 소중하다. 사랑스럽지.

하지만 ‘이상’의 후광을 등에 업게 해 주진 않을 거다.

“그래요. 형 고집을 누가 이겨요. 전 죽도록 번역자나 알아봐야겠어요.”

“아, 그리고 송지훈.”

“왜요?”

“<그 집>의 초고를 가지고 회의를 해야 해.”

“아, 그래요. 초고 주시면 읽을게요.”

“우리만이 아니야.”

“네?”

“‘팀 이상’이 다시 모일 때가 됐어.”

그러니까, 금홍이도 말이다.

* * *

독일, 베를린. 뮌 출판사 해외문학팀.

오늘은 이번 달 판매 지표를 확인하는 날.

다섯 명의 팀장이 회의실에 모였다.

도미닉 팀장은 어깨를 쫙 펴고 회의실로 입성했다.

기세등등한 모습.

최근 그의 실적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회의는 시작됐다.

“확실히 유로문학상의 영향이 큽니다. 수상작들의 판매율이 하나같이 급등했어요.”

“수상 작가의 책들을 세트로 판매했던 것도 꽤 좋은 전략 아니었습니까?”

“네. 썩 인기가 없는 동유럽 문학도 골고루 판매했으니 성공적이라 할 수 있죠.”

“이례적으로 한스 모나한의 시집도 많이 팔렸네요.”

“신문 광고가 들어가서 그렇겠죠.”

“SNS 광고를 한 요한 코치의 소설은… 반응이 그닥이고요.”

“SNS는 그리 효과가 좋지 못하니까요. SNS는 책이 아니라 행사 홍보 중심으로 운영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도미닉 팀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언젯적 신문 광고람… 독일 출판 시장은 너무 보수적이야. 산업적인 혁신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런 걸 논하자고 모인 자리는 아니었다.

다만.

이번 유로문학상 일로 뮌의 자세가 바뀔 순 있을 것.

“<등>의 판매 지표가 눈에 띄는군요.”

도미닉 팀장이 한마디했다.

아주 잠깐 정적이 흘렀다.

한 팀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도미닉 팀장님의 혜안이 옳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내길 잘했어요.”

“결국 <내외인>도 내게 됐고 말이죠. 비싼 계약금을 치렀지만.”

도미닉 팀장이 한 번 더 꼬집어 말했다.

팀장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라고 이상이 유로문학상을 받을 줄 알았나.

딱 그렇게 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렇죠.”

한 팀장이 겨우 대답했다.

도미닉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판매 지표도 상당히 좋고요.”

“그거야… 다른 유로문학상 수상작들과 묶여서 팔렸으니까요.”

약간의 볼멘소리.

<등>의 출간 투표에서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반대표를 던진 팀장이었다.

도미닉 팀장은 생각했다.

‘뭐… 투표는 자유니 뭐라고 할 순 없지. 하지만 끝까지 치사하게 굴기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돈이야 알 바 아니에요. 경영팀이 알아서 하겠죠. 다만, 우리가 적어도 처음부터 프랑스를 의식하지 않았다면….”

그는 네 명의 팀장들을 돌아봤다.

그리고 숨을 고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리브레의 마리옹 편집장에게 우려 섞인 조언을 듣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요.”

깊숙한 한 방.

― 음… 독일의 시민들도 훌륭한 문학을 읽을 권리가 있어요. 그 권리를 지켜 주셨으면 좋겠군요.

마리옹의 이 인터뷰에 분개하지 않은 팀장은 없다.

그러나 이상이 유로문학상을 받는 순간.

마리옹의 말은 현실이 됐다.

수상 이후 부랴부랴 <내외인>을 내는 꼴도 보였고.

뮌으로선 이 이상 부끄러울 수가 없는 노릇.

“뭐, 저야 이제 곧 팀장직을 내려놓고 은퇴를 하겠지만… 이번 일이 앞으로도 뮌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하는군요.”

명백한 쓴소리.

팀장들은 내심 놀랐다.

도미닉 크로스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뮌의 개국 공신이지만, 그걸로 유세를 떤 적도 없었다.

그런 그의 말이니만큼… 회의실 분위기는 바로 숙연해졌다.

‘음… 내가 너무 무거운 소리를 했나.’

도미닉 팀장이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려 했을 때였다.

똑똑!

직원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아, 죄송합니다. 팀장님. 그런데 지금 말씀드리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뭔데 그래?”

“그게… D―TV의 ‘철학 스터디’ 제작진이 연락을 했는데요.”

D―TV는 독일의 국영 방송.

‘철학 스터디’는 D―TV의 대담 교양 프로였다.

독일 철학은 수백 년 동안 세계 철학계를 이끌었다.

독일이 자국의 철학에 자부심이 넘치는 건 당연한 일.

그 증거로 D―TV의 ‘철학 스터디’는 오랫동안 ‘국민 프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작가 섭외 때문에?”

한 팀장이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철학 스터디’에서는 종종 문학서를 다루기도 했다.

뮌 출판사 역시 여러 번 협찬을 했고.

“아… 그게, ‘이상’의 <등>을 가지고 대담을 하자던데요. 굳이 작가가 올 필욘 없고, 원격으로 해도 좋다고요.”

팀장들은 놀랐다.

‘철학 스터디’는 대부분 독일 작가를 초빙했다.

외국이라 해도 유럽의 작가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저 먼 동양의 한국 작가를?

“좋은 일이네. 우리가 이상 작가에게 연락을 해 보겠다고 전해 줘요.”

도미닉 팀장이 말했다.

그런데 사원이 머뭇거렸다.

“저기 그런데… 대담의 상대 패널이 말입니다.”

‘철학 스터디’는 명성에 비해 구성은 단촐했다.

사회자와 두 사람의 패널.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은 철학자나 철학 교수였다.

“패널이 누군데?”

“틸 버켈입니다.”

“틸 버켈?!”

한 팀장이 외쳤다.

틸 버켈.

그는 독일에서 현존하는 가장 뛰어나면서도… 공격적인 철학자였다.

팀장들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스쳐갔다.

틸 버켈의 가장 유명한 저서.

<예술무용론>

직원은 주저하며 말했다.

“틸 버켈이 이상 작가와 대담을 나눠보고 싶다고… 직접 D―TV 쪽에 요청을 했다던데요.”

* * *

그 시각 틸 버켈은 전화기 앞에 서 있었다.

방송국에 전화를 건 지 십 분.

지금쯤이면 뮌 출판사에 연락이 닿았을 텐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화기 앞을 떠날 수 없다.

조급하다기보다는 하나에 골몰하는 천성 때문.

‘답답하군.’

그는 덥수룩하게 난 흰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안절부절한 모습을 보이곤 있지만….

이래 봬도 그는 현대 독일 철학의 지성 중 하나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환갑을 갓 넘긴 나이.

부리부리한 눈매에 짜증스러운 미간.

그 외모와 어울리는 촌철살인의 논리와 화법.

그는 테이블에는 이상의 <등>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똑똑해서일까.

문학은 그가 아는 삶의 진리를 유치하게 이야기로 풀어놓은 동화 같았다.

그런 그가 <등>을 본 건 우연이었다.

유로문학상 시상식 후.

독일에서는 <등>이 크게 유행했다.

상을 받은 <내외인>보다 더 큰 사랑을 받으며.

독일의 평론들은 <등>을 추켜세웠고 이상의 ‘예술 철학’에 대해 떠들어 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 이상의 <등>은 예술이 아닌 예술가의 존재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예술가는 예술에 종속되어 있는가. 아니면 예술이 예술가에게 종속되어 있는가. <등>의 화가의 삶은 전자의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전자로 결정했을 때, 그 주체성 앞에 예술은 그의 삶으로 종속된다. 이상은 결국 예술과 예술가의 종속 관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이야기를 통해 형상화했다. 이 점액질과 같은 매혹적인 유동성은 예술이란 존재가 얼마나 인간 친화적인가에 대해 몇 번이고 증명하는 듯하다.

독일 평론 특유의 고차원적이고 철학적 해석.

틸 버켈은 그걸 보고 코웃음을 쳤다.

‘문학 평론가들이 또 오버를 하는군’이라고.

그러던 중 우연히 선물을 받은 책, <등>.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등>을 봤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이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마침, 다가오는 ‘철학 스터디’의 패널로 나갈 차례였다.

틸 버켈에겐 기회였다.

― 다른 패널은 이상으로 합시다. 그의 책 <등>을 가지고 철학적 이야기를 나누면 되잖소. 꼭 그렇게 합시다. 이 조건을 맞춰 주기 전까진 안 나갈 거요.

난데없는 그의 요구에 난감한 건 D―TV 쪽.

그러나 틸 버켈은 그런 것 따위 상관치 않았다.

틸 버켈은 전화기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만약 정말로 이상과 대담을 할 수 있다면….

‘대담 끝에 나는 그에게 실망하게 될까, 아니면 더 놀라게 될까.’

그때였다.

Rrrrrr―

그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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