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그의 이름은 한서훈.
나이는 서른.
미국 남부 출신.
큰 키, 다부진 몸, 박시한 옷 스타일, 공간을 많이 쓰는 자세까지.
확실히 미국에서 산 태가 났다.
그는 내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좋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그의 스타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 점은 오히려 내 흥미를 끌었다.
내 기존 작품이 그의 구미를 당기게 하지 못했다는 것.
그건 오히려 그가 ‘미국식 감성’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으니.
처음에는 사소한 이야기로 말문을 텄다.
주로 그가 살아온 이야기들이었다.
그의 태생은 한 마디로 ‘금수저’.
학교 입학과 동시에 미국으로 보내진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는 이모의 집에서 거주.
유명 사립 학교를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
하지만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사신 기간을 생각하면 한국어를 꽤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아~ 그게… 원래 많이 잊어야 정상인데, 집안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허락하지 않았다고요? 언어 잊는걸?”
그게 허락의 문제인가?
“네. 언젠가 한국에서 사업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한국어는 무조건 잘했어야 했거든요. 한국 애들 중에 영어 유창한 경우 있잖아요. 그 반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의 말엔 묘한 체념이 묻어났다.
세상의 피곤한 일은 모두 겪었다는 듯.
“미국 생활은 어땠어요?”
“뭐, 좋았어요. 너드(nerd)… 그러니까 공부만 하는 아시안 괴짜 소리도 잘 안 들었고. 운동 좋아하고 덩치 좋으니까 백인 흑인 가릴 거 없이 어울리고.”
“대학 전공은요?”
“경영학이요.”
미국 대학의 경영학과 졸업이라.
돈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들었을 텐데.
“경영학을 그만두고 문학 통번역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내 말에 그가 입을 다물었다.
입을 꾹 다물더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잔의 빨대를 빼더니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에… 뭐… 별일 아니죠. 문학 번역, 나름대로 돈이 되니까요.”
그는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다.
문득 프랑스에서 봤던 유럽인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마음이나 기분을 숨기는 데에 능숙하다.
섬세하고 예민한 사교적 태도.
그런 것들이 배어 있었지.
하지만 한서훈은… 완전히 반대.
기분을 가리는 데에 서툴고 행동도 묘하게 과장되어 있다.
‘미국 남성’의 이미지에 맞춰진 마초스러움이랄까.
그런 것들이 학습된 태도.
하지만 굳이 짚고 넘어갈 이윤 없지.
그의 심리를 파헤치러 온 게 아니니까.
“미국에서 다닌 학교는 어때요?”
“좋다니까요. 아까 말씀드렸는데.”
그는 툴툴 맞게 대답했다.
…방어적으로 말이다.
난 좀 더 부드럽게 물었다.
“학교의 문화라는 게 있잖아요. 다인종 사회이지만, 그 안에서 ‘미국적인 것’을 배워야 했을 것 같아서요.”
“….”
“학교도 나름대로 생존의 장이잖아요. 그 생존 노하우가 있지 않나요? 어찌됐건… 동양인이잖아요. 제 편견인가요?”
그가 푸핫 하고 웃었다.
“와… 작가분 아니랄까 봐. 예리하시네.”
“부담 갖지 마세요. 서훈 씨라는 한 사람에 대해 묻는 게 아니라, 미국 문화에 대해 묻는 거니까요.”
그는 마음을 내보이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보이는 것보다 실제론 자존감이 낮을지도.
“미국은… 하하, 이건 좀 미친놈 같은 말이긴 한데요.”
“네.”
“전 미국인만큼 보수적인 인간들을 본 적이 없어요.”
…아하.
자유의 나라에 사는 보수적인 인간들이라.
흥미로웠다.
“왜죠? 대부분 미국을 기회의 나라, 자유의 나라라고 생각하잖아요.”
“말 잘 듣는 놈들한테 만요.”
“모범생이요?”
“너드들 말고요.”
그는 좀 아리송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미국은 법에 저촉되지 않은 이상 개인의 자유대로 알아서 하라는 주의에요. 겉으로는.”
“속은 어떤데요?”
“꽉 막혔어요.”
그가 빨대로 커피를 휘휘 젓기 시작했다.
괜히 딴청을 피우는 어린애처럼.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애는 애다워야 하고… 그런 규율이 핏속에 흐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굳이 강요하지도 않는 거죠. 말 안 해도 당연히 알고 있으니까.”
그 말에 난 좀 놀랐다.
‘―다워야 한다’는 건 동양적인 규율 아닌가?
그가 갑자기 키득거렸다.
“오죽하면 게이다운 것도 정해 놓은 나라예요.”
“이를테면요?”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그제야 진지한 태도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 할머니가 저를 굉장히 예뻐하셨거든요. 미국에 가기 전에 직접 인형을 만들어 주셨어요. 액운을 막는다나… 뭐 특별하게 예쁘지도 않았어요. 탁구공처럼 둥근 인형이었으니까.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졸업반이었나… 이모가 자전거를 사 줬어요. 당연히 방범용 체인과 자물쇠도 샀죠. 그 자물쇠의 열쇠에 그 인형을 달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는 예전 일을 회상하는 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까의 과장된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그런데 애들이 그걸 보고 저보고 게이냐고 묻는 거예요. 놀리는 것도 아니었어요. 되게 심각하게 물었으니까.”
“게이요? 인형을 달아서 그래요?”
“아뇨. 그게 보라색이었거든요. 미국에서 보라색은 좀… 그런 쪽으로 해석된다는 걸 커서야 알았죠.”
“아하. 그런데 그냥 궁금해서 물었던 걸 수도 있잖아요.”
“아니에요. 그 눈빛이 있거든요.”
눈빛?
“난감해하는 눈빛이요. 네가 게이면 우리랑 같이 놀 수 없는데? 뭐… 이런 눈빛.”
인형은 아이의 문화니까 오케이.
보라색은 게이의 문화니까 노.
대충 이런 분위기인 건가?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그 열쇠고리를 그 앞에서 바로 버렸어요. 대수롭지 않은 척.”
“왜요? 설명하면 되잖아요.”
그가 피식 웃었다.
“그게 제일 나쁜 방법이에요. 한국에서 보라색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거. 그거, ‘나 사실 미국인답지 않아, 너희랑 다른 종류의 인간이야’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거거든요.”
침묵이 감돌았다.
그는 내 시선을 가만히 피했다.
치부를 말해 버린 기분인 걸까.
“애들이잖아요. 애들은 원래 노골적이고.”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차라리 노골적이어서 다행이었어요. 티라도 내주니까. 고등학생만 돼도 티를 안 내거든요. 속으로 가만히 선을 긋지.”
“그 뒤로도 미국인답기 위해 노력했나요?”
“…네. 정신 똑바로 차렸죠. 그놈들 피에는 흐르지만 동양인인 제 피에는 흐르지 않는 어떤 것을 익히려고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쿨해지려고 노력했죠. 안 그러면 은근히 배척당하니까. ‘남자답고’, ‘잘 나가고’ 동시에 ‘학생답고’… 제게는 이게 가장 큰 과제였어요.”
“남들은 어땠을 것 같아요? 이민자가 아닌 사람들이요.”
“남의 사정이야 잘 모르지만… 적어도 백인이 아니면 노력해야 하는 지점이 있죠. 뭐라 정의할 수도 없는 ‘백인 문화’를 따라가지 않으면 좀… 불안해지거든요. 사회 분위기가 좀 그래요.”
난 그에 대해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그 과제들에 지쳐서 결국 한국에 왔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금홍이 정말 적당한 사람을 소개시켜 줬다고.
“제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국인의 관점으로.”
“하하… 제가 뭐라고 그걸 말하겠어요.”
“괜찮아요. 그건 ‘독자다운’ 거니까.”
내 농담에 그가 피식 웃었다.
“음… 저는 미국 문학은 좀 좋아하거든요. 미국 문학은 그런 게 있어요. 겉 다르고 속 다른 말은 잘 안 하죠.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요. 미국인들은 속이야 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정해진 규율이 있으니까. 그런 담백함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가, 작가님 글은 좀….”
“…어려워요?”
“즐기기가 어려워요. 책 읽을 땐 좀 즐기고 싶거든요.”
역시 그렇군.
인물의 속내를 파악하거나,
숨겨진 주제를 알아내는 일.
그런 것보단… 서사의 흥미로움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무슨 소설을 써야 할지 대충 감이 왔다.
그가 말해준 미국이란 사회.
그 사회에 숨겨진 ‘적응’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내게 내재한 어떤 긴장감.
그것들을 잘 융합하면… 한 편의 스릴러가 탄생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헤어지기 직전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인터뷰를 허락하셨어요? 말씀하시기 쉬웠을 것 같진 않은데.”
“작가님의 유럽 행보가 좋았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난 좀 쑥스러웠다.
작품에 대한 칭찬은 기꺼이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칭찬은 아직도 좀….
“저도 미국에서, 딱 그렇게 살고 싶었거든요.”
그는 약간 씁쓸하게 말했다.
그리고 들어가 봐야겠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 가 버렸다.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인터뷰를 기반으로 책이 나오면 그에게 제일 먼저 보내 줘야겠다고.
* * *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슬슬 북콘서트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신라문학도 SNS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행사의 실질적인 결정은 지훈과 내 몫.
“대략 몇 명 정도 올 것 같아요?”
“스무 명 정도?”
“…지금 홈파티 합니까? ‘콘서트’잖아요. 누가 스무 명 두고 콘서트를 해요?”
면박 주기는.
“왜? 단란하잖아. 그리고 행사 공간도 한정되어 있어. 신라문학 1층 카페야.”
“형, 대한문학상 시상식은 종로에 있는 한국 프레스센터 빌려서 한대요. 엄청 크잖아요, 거기.”
한국 프레스센터.
굵직한 신문사와 출판사의 시상식이 열리는 연회홀.
지훈이 승부욕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공간은 우리가 불리하다는 걸 깔아 두고, 양보단 질로 밀고 나가요. 첫째, 인맥 총동원.”
“내 인맥… 아, 우리 부모님 모실 거야.”
“그러셔야죠. 좋은 날인데.”
지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내게는 꽤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혜경의 부모를 찾지 않았다.
다달이 돈을 부치기도 했지만… 얼굴을 보거나 대화를 하는 건 좀 꺼려졌다.
‘좋은 아들’ 노릇을 할 자신이 없어서.
하지만 연말이지 않은가.
어찌됐건 혜경의 몸으로 이룬 일들.
그들도 아들의 성공을 함께 누릴 자격이 있지.
“그 외의 인맥은 김미소 작가, 한지온 작가, 현민상 시인?”
“조인후 감독님이랑 강인춘 PD님도요.”
“그렇게까지?”
바쁘실 텐데.
“그 정도는 되어야죠. 형님… 가능하면 장하늘도 부를 수 있을까요?”
“야, 니 속 훤히 다 보인다.”
“안 되면 말고요. 희망 사항. 아무튼 연락은 해 보는 게 좋겠어요. 장하늘이 기타 치면서 <은은> 부르면 분위기 살잖아요.”
“어휴… 알았다. 얘긴 꺼내 볼게. 안 되겠지만.”
지훈이 헤벌쭉 웃었다.
그리고 신나게 계획을 이어 갔다.
“외국에 계신 분들 스카이프로 연결해 보죠?”
“외국에 누가 있는데? 히루키?”
“아, 맞다. 히루키도 있구나. 형님이 연락해 보세요. 저는 도마크, 리브레, 뮌 쪽에 연락해 볼게요. 비즈니스적으로 각 딱 잡아서.”
상상도 못한 사람들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난 어이가 없어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거 다 성사시키면, 나 너 존경한다.”
“일단 송지훈을 좀 믿어 보시고요.”
“알았다, 인마. 식음료는 좋은 걸로 알아봐. 호텔 쪽으로. 음식에 들어가는 돈은 아끼지 말고. 카페 쪽 음료도 충분히 준비하자.”
“네. 얘기 나온 김에 지금 좀 보죠. 가격이나 규모나.”
지훈은 휴대폰으로 SNS에 접속했다.
요즘사람답게 SNS부터 뒤지는 모습이 듬직하구나.
그러던 중 지훈이 어? 하고 놀랐다.
“왜 그래?”
“…형, 큰일났는데요.”
“뭐가?”
“…유로문학상 시상식 일정 나왔어요.”
지훈이 휴대폰 화면을 보여 줬다.
SNS 피드에 올라 온 유로문학상 관련 기사.
“12월 28일… 오후 1시?”
우리는 눈이 동그래진 채 서로를 보았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지?
12월 28일.
그날은 나의 북콘서트 날이자,
대한문학상 시상식 날이기도 했다.
“파리랑 한국이랑 시차 얼마나 나지?”
“…7시간이요.”
“그럼… 파리에서 1시면, 한국에선 8시….”
“…북콘서트 할 시간인데요. 딱.”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 여실히 드는구나.
사실 나는 지훈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들도 곧잘 하는 북콘서트.
그저 친한 사람들과 한바탕 재밌게 놀려 했다.
뭐 그리 자랑할 일도 아니니.
하지만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운명이었다.
북콘서트를 ‘제대로’ 해내라는.
“지훈아.”
“네, 형님.”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넵.”
“가장 럭셔리하게 가자. 북콘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