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소설을 좀 투고하려 하는데요.”
“투고요? 새 원고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신작을 쓰신다는 얘길 듣긴 했는데, 혹시 벌써 다 쓰신 겁니까?”
“사실 완성본은 아닙니다. 1차 퇴고만 되어 있는 상태라서요.”
“그래도 이렇게나 빨리….”
그가 못 믿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야 할 일이 글 쓰는 것뿐이니까요.”
“어째 인터뷰다 뭐다 모조리 거절하신다 했습니다. 아직 신―문학이나 홈페이지에도 올리지 않은 겁니까?”
“네. 책을 내주신다고 하면 바로 최종 퇴고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홈페이지와 신―문학에도 동시 연재를 할 거고요.”
“흠… 평소보다 종이책을 일찍 내시려는 것 같습니다?”
바로 맞췄다.
종이책은 언제나 마지막 고려 대상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매혹을 느낀 건 온라인 시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유럽이, 특히 독일이 반드시 지켜볼 이번 소설.
확실한 ‘판매 지표’를 확보하며 출발해야 했다.
“유럽 시장을 확고하게 잡고 싶어서요. 그러려면 아무래도 종이책 판매율이 중요하고.”
“그런 거라면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들은 온라인 지표를 ‘도서 판매’ 지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유럽 시장은 덩치가 큰 만큼 고지식하거든요.”
이준환 편집위원은 이어서 말했다.
“저야 이상 작가님 소설은 언제나 대환영이지만… 원칙적으로 심사는 거쳐야 합니다. 그 후에 연락을 드리죠.”
“네,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신라문학에 <등> 원고를 맡기고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
우웅―
지훈으로부터 톡이 왔다.
― 형, 몽테뉴 영화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이에요. 혹시 모르니까 보시라고 주소 보내요.
지훈의 톡엔 링크가 하나 덧붙여져 있었다.
나는 차에 들어가 라이브를 봤다.
영어 자막이 자동으로 생성됐다.
이런 걸 보면 세상 참 좋아졌단 말이지.
마침 영화제는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먼저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
아쉽게도 <내외인> 팀은 없었다.
남은 건 영화제의 세 하이라이트.
감독상, 극본상, 작품상.
가장 큰 상인 작품상은 모두 유럽의 작품들….
피해 의식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게 유리천장일까.
어쨌건 여섯 명의 감독상 후보.
그 중엔 조인후와 로베르 공드리 감독이 있었다.
수상자는… 로베르 공드리 감독이었다.
자국의 감독이 상을 받자 엄청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조인후 감독도 사람 좋은 웃음과 박수를 보냈다.
다음 순서는 극본상.
후보들의 얼굴을 비추는 카메라.
그중엔 긴장한 얼굴의 조인후 감독도 있었다.
음악이 고조되고, 시상자가 등장했다.
시상자는 유럽 영화계의 원로 감독.
그는 봉투 속 이름을 보더니 살짝 놀랐다.
― 저도 이 영화를 아주 흥미롭게 봤는데요. 아주 멋진 작품이죠.
그가 씩 웃고는 말을 이어 갔다.
― 2021년 몽테뉴 영화제 극본상은… <내외인>!
― 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조인후 감독은 그제야 긴장이 가신 듯했다.
사람들은 내심 놀란 것 같았다.
조인후 감독이야 유명하긴 했지만, 동양권의 영화는 <내외인>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조인후 감독은 단상에 올라 상패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상 소감.
― 먼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아, 이 아버지는 주님이 아니라 돌아가신 저의 진짜 아버지이긴 합니다만.
화면이 객석으로 넘어갔다.
로베르 감독이 못 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나 역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못 살겠네, 진짜….”
외줄 타기를 하는 듯한 조인후 감독의 위트.
세계무대에서의 그의 관록을 보여 주는 듯했다.
― 이 영화가 있기까지 제게 영감을 주시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가족, 스텝, 수많은 영화인들 말입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영화 <내외인>은 세상에 나올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는 잠시 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 아주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내외인>의 원작자이신 이상 작가님. 당신이 <내외인>을 공개했을 때… 저는 그것을 수십 번 읽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돌처럼 굳어진 제 영감을 녹인 오아시스 같은 글이었죠.
덤덤한 말투.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긴 진심.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 저는 당신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조인후 감독은 트로피를 한번 들어 보였다.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알고 있다.
영화는 영화고 소설은 소설이라는 걸.
저 상 역시, 조인후 감독이기에 가능했다는 걸.
그래도….
뿌듯한 기분이야 어쩔 수 없었다.
언론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온갖 매스컴에서 영화 <내외인>을 추켜세웠다.
이준환 편집위원의 말이 맞았다.
상의 권위는 국내보단 외국이라더니.
그 여파는 당연히 소설 <내외인>에도 번졌다.
[천재 영화감독에게 영감을 준 천재 소설가.]
[몽테뉴 영화제가 인정한 천재 소설 <내외인>]
[<내외인> 프랑스를 점령하다. 소설은 루브르로, 영화는 몽테뉴로.]
[한국 문단이 경시한 작가 이상, 프랑스에서 빛을 보다.]
기사는 계속 쏟아졌다.
파리에 가기 전에는 이런 기사들이 불편했다.
아직 그곳에서 이룬 게 없었으니.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내외인>이 안겨다 준 영예.
심 교수의 말대로… 즐겨 볼 만하지 않은가.
* * *
김미소 작가에게 연락이 왔다.
영화 <내외인> 수상을 축하해야 하지 않겠냐고.
어버버 하는 사이에 자리는 뚝딱 만들어졌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냥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강남역의 한 이자카야.
나는 지훈과 함께 들어섰다.
“이상 작가님!”
날 알아본 현민상 시인이 외쳤다.
김미소 작가, 한지온 작가도 내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에요. 여기는 송지훈 평론가.”
“안녕하십니까.”
지훈이 넉살 좋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돌아가며 지훈에게 악수를 청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평론가님도 함께 오신다고 해서 기대하던 중입니다, 하하.”
“반가워요. 한지온이에요.”
“김미소예요. 어서 앉으세요.”
우리 다섯 명은 그렇게 둘러앉았다.
그들도 방금 온 건지 안주들에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현민상 시인과 한지온 작가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앤솔로지 심사는 잘 끝나셨어요?”
“그럭저럭요. 어려운 심사는 아니었어요. 소설 투고가 많아서 지온 누나가 고생 좀 했죠.”
“말도 마세요. 어휴.”
한지온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심사란 거, 말만 들어도 피곤한 일이다.
“수상작 골랐으니 발표 후에 바로 책 나올 거예요. 워낙 온라인 반응이 좋은 앤솔로지니까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자, 일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이상 작가님, 정말 축하드려요.”
한지온 작가가 나와 지훈의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제가 뭘 했다고요. 상 받은 건 영환데.”
“원작이 기깔 나야 영화도 기깔 나게 뽑히는 거 아닙니까.”
현민상 시인이 킬킬대며 말했다.
“아~ 부러워. 내 시는 누가 영화로 안 만드나?”
“오빤 시집 꽤 잘 팔리지 않아? 한 5위 되나?”
“몰라. 더 떨어졌을걸? 순위 안 쳐다본 지 오래다.”
“난 아직 책도 못 냈으니 날 보고 위안 삼으슈.”
김미소 작가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작가님 원고 많이 모이지 않았어요? 단편집 내실 때도 된 것 같은데.”
내 물음에 김미소 작가가 음― 하고 말을 끌었다.
“저는 필드가 좀 독특하니까요. 제 책은 노동서적 출판사에서 나왔으면 해서요. 그런데 그런 곳들은 좀 영세하니까… 쉽지 않죠.”
그것도 또 그렇군.
마이너 중의 마이너 문학의 현실일까.
그래도 김미소 작가는 잘 감당하는 것 같지만.
현민상 시인이 새삼 진지하게 말했다.
“이상 작가님, 저희가 진짜 감사드리는 거 알죠?”
…뭘?
내가 어리둥절하자, 현민상 시인이 픽 웃었다.
“역시 이런 쪽은 둔하시다니까.”
한지온 작가가 덧붙였다.
“저희 대한문학상 심사 포기했잖아요. 그 뒤로 별일이 다 있었거든요.”
“지온 누나는 워낙 이미지가 좋으니까 그나마 소신 있다는 소리 들었지만… 저는 미친놈 소리 들었거든요.”
“미친놈 소리를 왜 들어요? 대한문학상 그것 좀 포기했다고?”
지훈이 발끈해서 물었다.
“젊은 작가 주제에 건방지다 이거죠. 이상 편에 붙는 거냐, 그런다고 쿨해 보일 줄 아냐, 문단을 무시하고도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아냐….”
“그런 소리까지 들었다고요?”
그건 좀 심각한데?
…그렇군.
내게 오는 비난들은 그나마 눈치를 좀 본 거였어.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어요. <내외인>이 프랑스 베스트셀러가 되고 몽테뉴 영화제에서 상을 타고 난 뒤로.”
한지온 작가가 흥분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현민상 시인이 덧붙였다.
“맞아요.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를 먹은 작가를 한국 문단이 예선 탈락을 시켰다? 체면 제대로 구긴 거죠, 대한문학상도.”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대한문학상 쪽도 답답한 노릇 아닌가.
“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돼도 국내 문학상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건데. 작품이 같은 것도 아니고. 이럴 때일수록 대한문학상이 권위를 지켜야 할 것 같은데요.”
내 말에 김미소 작가가 피식 웃었다.
“맞아요. 그게 상식이지만… 애초에 상식적이지 않게 작가님 작품을 떨어뜨렸으니. 이제 와서 권위가 살겠어요?”
하기야 그렇지.
대한문학상이 날 떨어뜨린 것.
보는 눈이 너무 높거나, 특별해서 생긴 일은 아니니.
사실, 상 따위야 알 바 아니다.
다만, 문단 돌아가는 꼴이 애처로운 게 문제지.
“아무튼! 이제야 저희들이 좀 이해받는 느낌? 그런 거죠.”
“민상이 말이 맞아요. 작가님 덕이 커요.”
“제 덕은요. 제가 뭘 했다고.”
과감하게 대한문학상을 포기한 건 이들이다.
욕을 먹을 거란 리스크를 감당한 것도 이들이고.
이들이 문단에서 잘 버텨 준다면….
한국 문단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전생의 ‘구인회’가 떠올랐다.
그들 모두 뛰어난 작가들이었다.
그 척박한 시대에서 피어났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하지만 시대가 그들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몇몇은 요절을 했고, 납북을 당하거나 월북을 한 이들도 있었다.
짧고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 같던 그들.
이번 생에 찾은 내 동료들은, 부디 오래 타오를 수 있길.
“자, 기쁜 일이 많으니 한잔하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들었다.
그들도 차례로 잔을 들었다.
“건배사는 뭘로 하죠? 베스트셀러 축하? 유럽 진출 축하?”
지훈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베스트셀러는 기록일 뿐이다.
“다들 새 작품 쓰고 있죠?”
세 사람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이 너는?”
“쓰고 있죠, 평론.”
“그럼 지금 쓰는 글이 잘 되길 기원하죠.”
내 경우에는 <등>이겠지.
부디, 별 탈 없이 신라문학이 책을 내주길.
“좋아요. 다음 작품을 위하여!”
김미소 작가가 신이 나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우렁차게 따라 외쳤다.
“위하여!”
우리는 신나게 잔을 부딪쳤다.
* * *
며칠 후.
이준환 편집위원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먼저 영화 <내외인>의 수상을 축하하더니, 바로 본론을 꺼냈다.
― 내부심사 결과, <등>을 출간하기로 했습니다.
“아,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편집위원님.”
내줄 거라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툭툭 벌어지는.
그래도 이번에는 별탈 없이 책을 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이준환 편집위원이 조금 주저하듯 말했다.
― 저, 작가님. 혹시 신라문학에 한번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신간 발간에 대해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