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87화 (87/204)

87화

― 오늘부로 <내외인>은 리브레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하!”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라니.

그것도 내가 채 프랑스를 떠나기도 전에….

창밖의 하늘을 봤다.

눈이 부실 정도로 청명한 하늘.

…뿌듯하다.

내가 파리에서 한 모든 일.

그것이 ‘베스트셀러’라는 말로 다시금 인정받는 기분.

―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지금 여기 해외문학팀도 축제 분위기예요.

“함께 기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 덕이라고 꼭 전해 주세요.”

―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저번에 독일과 영국 출판 시장에 대해 물으셨죠? 그들도 프랑스 쪽 베스트셀러는 무조건 내려 할 거예요. 아마 여러 출판사에서 연락이 올 테니… 작가님께서 잘 고르시면 됩니다.

출판사를 고른다라.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지.

장 스테판은 이어 말했다.

― 이어 저희 리브레에서 한국 작가분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든 건 처음이라… 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보내 주시면 성의껏 답변하겠습니다.”

그때였다.

탑승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전화를 끊고 일어나 탑승줄로 향했다.

내 첫 번째 프랑스행.

마무리까지 정말 완벽했다.

* * *

프랑스에서의 들뜬 마음을 채 가라앉히기도 전에, 한국에 돌아온 나는 곤욕을 겪어야 했다.

기자들이 공항에서부터 날 따라다닌 것이다.

국가대표나 연예인 만큼은 아니었지만… 사회문화부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루브르 앞에서의 낭독회.

<내외인>의 프랑스 베스트셀러.

대한문학상에 대한 생각 등등.

물을 게 산더미 같다는 그 얼굴들.

하지만 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작품으로, 행동으로 모든 걸 보여 줬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덧붙인단 말인가.

그렇게 도망치듯 공항을 벗어난 후.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웬걸.

집 앞에까지 기자들이 잔뜩이었다.

미련 없이 뒤를 돌아 걸어갔다.

이미 오랜 비행에 찌든 몸이었다.

더 이상 어떤 인내도 발휘할 수 없었다.

나는 지훈에게 톡을 보냈다.

― 나 오늘 못 들어간다. 호텔에서 자고 감.

그렇게 가까운 호텔에서 하루를 꼬박 잔 후.

다음 날 오후에야 일어났다.

“…살 것 같네.”

시차 적응을 마친 가뿐한 몸.

그리고 맑아진 머리에 할 일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도마크 연말 작품집 원고 <희>를 보내는 일.

생각 난 김에, 지금 해치워 버리자.

<희>는 귀국 비행기 안에서 퇴고를 마쳤다.

마지막 점검을 하고 보내면 끝이었다.

형식보다는 이야기와 감정이 살아 있는 소설.

이런 류의 소설을 발표하는 건 처음이다.

‘이상’이 썼다기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하지만 내 마음에는 쏙 들었다.

‘진정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작가의 진심이 작품에 얼마나 잘 투영이 됐냐는 것.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작품이 얼마나 ‘진심처럼’ 보이냐는 거지.

어떤 작가는 경험하지 않은 일도 진정성 있게 쓴다.

어떤 작가는 경험을 한 일도 진정성 있게 쓰지 못한다.

결국, 작가의 역량에 딸린 것.

진정성과 스타일은 양립하기 어렵다.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멋’을 부리는 일이니.

하지만 진정성이 살아 있는 소설만의 장점이 있다.

좀 투박하고 촌스러워도,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는 점.

나는 <희>가 그런 작품이 되어 줬으면 한다.

내 동생 옥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마지막으로 <희>를 확인했다.

사소한 수정을 하고 나니 더는 고칠 곳이 없었다.

도마크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이상입니다. 도마크 연말 작품집 원고가 마무리되어 보내 드리는 바입니다. 제목은 <희>이며,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여동생’이란 소재로 풀어 봤습니다. 마감이 많이 남았지만, 완성이 되어 보내드립니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후우….”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지.

배도 고프고.

캐리어를 끌고 체크아웃을 했다.

집 앞을 슬쩍 보니, 다행히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갔다.

캐리어를 대충 내버려 두고 주방부터 들렀다.

그쯤되니 허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테이블엔 빵이 좀 있었다.

지훈이 사다 놓은 건가.

빵… 이젠 지겨운데.

작업실로 들어섰다.

마침 지훈이 컴퓨터 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뭐 하냐?”

푹 잠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얼마나 집중을 하고 있던 건지,

녀석이 살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어? 언제 오셨어요?”

“방금. 밥 먹자. 나가서.”

“이것 좀 하고요.”

“뭐 하는데?”

“저 논문 발표 했어요. 본발표.”

맞다.

파리에 있는 동안 송지훈 논문 발표 했지.

바쁘다 보니 챙겨 주지도 못했네.

“잘했어?”

“완전 합격.”

하고 자랑스럽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사소하게 수정할 게 있어서, 지금 해서 제출하게요.”

“축하한다. 송 석사.”

“조금만 기다리세요. 안 그래도 형 너무 피곤해 보여서 말 못 한 거 있었는데. 밥 먹으면서 해요.”

“알았어.”

막 나가려는 내게 지훈이 물었다.

“그런데 뭐 드시게요?”

“…순대국밥.”

* * *

내 취향은 원래 좀 이국적이다.

1930년대에 다방을 차린 것,

내 작품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외국어.

그것만 봐도 서양을 내심 동경했다는 걸 알 수 있지.

그 시대 지식인 치고도… 난 좀 그런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다.

한 달 동안 빵과 고기, 와인에 절여진 내 몸.

어느새 얼큰하고 짭짤하고 뜨거운 국물을 원하고 있다.

새삼 느낀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지훈도 한마디 한다.

“웬일이래요? 형 원래 이런 거 잘 안 먹지 않아요?”

“너도 유럽 다녀와 봐라. 몸에서 자동으로 땡겨.”

우리는 그렇게 순대국밥을 우적우적 먹었다.

뱃속에 국물이 들어가니 좀 살 것 같다.

그렇게 어느 정도 배를 채웠을 무렵.

나는 지훈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 못 했다는 게 뭐야?”

“아. 형, 이거 한번 보세요.”

지훈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엑셀로 정리한 그 자료는 유럽의 출판사들이었다.

“<내외인>을 내겠다고 연락이 온 출판사들이에요. 형이 루브르에서 한 행사 덕을 크게 본 것 같아요. 한국 뉴스에서도… 휴, 말도 마세요. 난 형 프랑스에서 금메달 딴 줄 알았다니까요.”

“신데렐라 스토리가 완성됐으니 그럴 만도 하지. 시간 지나면 사그라들 거야.”

“어쨌건 연락 온 출판사들은 나라별로 분류해뒀고, 제가 따로 각 출판사 자료들 드릴 테니까 골라서 말씀해 주시면 돼요. 그리고….”

“그리고?”

“잘 보면 영국 출판사도 있어요. 두 곳이나.”

“뭐?”

나는 놀라서 종이를 가져왔다.

정말로 영국 출판사가 리스트에 있었다.

장 스테판의 말이 맞았다.

그들이 먼저 내 작품을 원할 거라는 말.

…독일만 빼고.

“독일은?”

“거긴 아직이에요. 알아보니까 독일이랑 프랑스랑 라이벌? 그런 거라던데요. 뭐 그런 걸로 고집을 부리나 몰라?”

고집도 고집이겠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문학풍은 완전히 다르다.

프랑스가 자유로움과 형식적인 실험을 표방한다면, 독일은 정해진 형식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니까.

<내외인>은 실험적인 작품이다.

그들의 취향은 아니겠지.

오히려… 안정적인 분위기의 <등>이면 모를까.

뭐, ‘독일’에 얽매이지 않기로 하자.

일단 연락이 온 출판사에 집중해야지.

“알았어. 오늘까지 결정해서 알려 줄게. 메일은 네가 좀 보내 줘. 계약서 받는 것도.”

“그럼요. 맡겨 주십쇼.”

나는 지훈이 준 표를 다시 살펴봤다.

이탈리아 세 곳, 벨기에 두 곳, 오스트리아 세 곳, 영국 한 곳, 그 외 중부유럽과 동유럽의 출판사들….

뿌듯한 마음으로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순대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역시 맛있다.

* * *

오랜만에 온 한국대.

특강에 앞서 심 교수에게 인사를 갔다.

심 교수는 날 보자마자 말했다.

“알아? 이상 선생 뉴스에 나온 거.”

“아… 듣긴 했어요.”

“사람 참 기가 막히네. 그런 대단한 짓을 하고도 아직 뉴스를 안 봤어?”

그가 장난스레 면박을 줬다.

“시차 적응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요. 잘 지내셨죠?”

“나야 잘 지냈지. 아직 안 봤으면 이거나 보라고.”

심 교수는 구형 스마트폰으로 뉴스 영상을 보여 줬다.

앵커는 자료 화면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 예술과 낭만의 나라 프랑스. 그중에서도 프랑스 파리는 예술가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죠. 그런데 한국 시간으로 어제저녁,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자신의 소설로 낭독회를 연 한국의 작가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내외인>으로 잘 알려진 이상 작가인데요. 프랑스 시민들과 함께한 이상 작가의 낭독회. 지금부터 살펴보시죠.

자료 화면이 시작됐다.

해가 뉘엿뉘엿 져 가는 파리의 오후.

투명한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 앞, 의자에 걸터앉은 나.

내가 한국어로 책을 읽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수많은 관광객의 얼굴.

다시 보니 좀 쑥스러운데.

심 교수는 싱글벙글이다.

뉴스는 인터뷰로 넘어갔다.

앵커는 리브레 클럽에 참여한 한 시민에게 물었다.

― 이 행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 원래부터 리브레에서 나온 책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특별히 ‘낭독회’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요. 홈페이지의 홍보 영상이 좋았거든요.

또 다른 시민의 인터뷰.

― 이 행사에서 뭐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 동양의 글이라 하면 왠지 우리와 다를 거라는 편견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상 작가의 글은 정말 인간 본연의 이야기에 충실하더라고요. 재밌었어요. 편견이 깨진 기분도 들고요.

“국위선양하셨네, 이상 선생.”

심 교수가 영상을 중지하며 말했다.

“딱히 그런 걸 노리고 한 건 아닌데 말이에요.”

“뭐, 좋은 글을 쓰면 자연히 얻는 보상 같은 거지. 사실 글 써서 얻는 돈이나 명예, 다 그런 거잖아.”

자연히 얻는 보상이라.

어쩐지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말이었다.

언론의 이 지대한 관심.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거겠지.

똑똑!

누군가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조교가 얼른 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미소 작가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어? 이상 작가님 오셨네요.”

“네. 엊그제 귀국했어요.”

“오랜만이네요. 루브르의 남자~”

루브르의 남자라니.

당분간 신나게 놀려 대겠군.

난 그만하라는 의미로 말을 돌렸다.

“특강은 잘 하셨어요?”

“이상 작가님 대신 들어간 특강이요? 말도 마세요. 얼마나 떨었는지. 하하!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런데 넓은 곳에서 계속 강연을 하시는지.”

“무대 체질인가 보지. 미소, 무슨 일이야?”

심 교수의 말에 김미소가 자리에 앉았다.

“교수님, 저번에 말씀하셨던 거 말인데요….”

일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특강 준비를 하러 가야겠어요.”

“어어, 그래. 잘 가요.”

“조만간 언니, 오빠랑 커피나 한잔해요.”

언니, 오빠란….

한지온 작가와 현민상 시인을 말하는 거겠지.

그 두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그래요. 안녕히 계십시오.”

심 교수와 김미소 작가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마침 딱 특강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인문대 대강당으로 가니 차 조교가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작가님. 파리는 잘 다녀오셨어요?”

“그럼요. 바로 올라가야 하죠?”

“네. 한 달 만의 특강이라 그런지, 다들 눈빛들이 장난 아니에요.”

나는 객석을 한번 훑어봤다.

과연 차 조교의 말대로였다.

나를 보는 호기심과 기대.

파리로 떠나기 전보다 몇 배는 더 부풀어 있는 듯했다.

그 눈들을 보니 더 실감이 났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는 걸.

그러니, 저 기대마저도 즐겨야 한다는 걸.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미소를 짓곤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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