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83화 (83/204)
  • 83화

    말로만 듣던 마리옹 편집장.

    그녀가 온다고 한다.

    “그렇군요.”

    난 장 스테판에게 덤덤히 대답했다.

    하지만 긴장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대형 출판사 리브레를 이끄는 여장부라….

    어떤 사람일까.

    리브레 출판사 관계자들이 발간 기념회를 준비했다.

    행사장은 점점 소란스러워졌다.

    수십 개의 의자가 더 깔리고, 문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내 책을 쥐고 있었다.

    나는 장 스테판에게 슬쩍 말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요?”

    “파리 사람들은 독서 행사를 좋아하거든요. 작가님의 책, 입소문도 많이 났고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렇다 해도?

    “저, 아랍인들이 저희 행사에 이렇게 많이 온 거 처음 봐요.”

    발간 기념회에 온 사람들의 인종은 다양했다.

    아무래도 비율이 제일 높은 건 백인.

    그다음이 아랍인이었다.

    아마 첫 낭독 영상의 효과이리라.

    아랍인들이 프랑스어로 책을 읽는 모습.

    인종의 벽을 무너뜨리는 언어의 힘.

    그 기묘한 느낌에 그들도 끌린 거겠지.

    그간의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내심 뿌듯했다.

    <내외인>이 기대보다 빨리 활로를 탄 것도.

    “어? 에바 팀장님 오셨네요. 편집장님이랑.”

    장 스테판이 문 쪽으로 날 안내했다.

    그곳에는 에파 편집위원과 금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가 바로 마리옹 편집장이리라.

    회색 투피스를 깔끔하게 입은 중년의 여자.

    에바 편집위원이 불꽃 같은 에너지를 내는 사람이라면, 마리옹 편집장은 냉철한 푸른 눈을 빛내고 있었다.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리브레의 출판장, 마리옹 비누쉬입니다.”

    “이상입니다.”

    “작가님에 대한 말씀,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리브레의 이름을 빛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장으로서, 발간 기념회에 참석하려 하는데 괜찮으시겠죠?”

    “영광입니다. 편하게 즐겨 주십시오.”

    나는 이미 장 스테판에게 그간의 일을 들었다.

    <내외인>에 관한 리브레의 내부 사정 말이다.

    마리옹 편집장이 <내외인>을 기꺼워하지 않았다는 것도.

    의심과 기대가 뒤섞이니 푸른 눈.

    마리옹 편집장의 눈은 전형적인 경영인의 것이었다.

    “기대하겠습니다. 작가님.”

    나는 대답 대신 가볍게 목례를 했다.

    리브레 관계자들이 단상을 거의 다 꾸며 가고 있었다.

    장 스테판이 내게 물었다.

    “후우… 긴장되세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게 긴장했냐고 묻다니.

    나는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떨지 마세요. 그럼, 시작하면 될까요?”

    “네. 시작하시죠.”

    우리는 단상에 올라가 비스듬히 마주 앉았다.

    내 옆으로 검은 정장 차림의 통역사도 함께 했다.

    기자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자, 지금부터 한국에서 오신 신인 작가 이상의 <내외인> 발간 기념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한국식으로.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이상입니다.”

    발간회는 평범하게 진행됐다.

    간단한 이력 소개.

    <내외인>에 대한 인터뷰 등등.

    올 법한 질문과 할 법한 대답들.

    한참을 그렇게 수다를 떨었고, 사람들은 웃었다.

    “자,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요. 이번에는 질문을 좀 받아 볼까요? 기자, 시민. 어느 쪽 질문부터 받으시겠어요?”

    장 스테판이 다소 심술궂게 물었다.

    사람들이 낮게 웃었다.

    장 스테판, 보기보다 진행에 재능이 있는데?

    “기자 질문부터 받죠. 기자분들은 언제나 절 실망시키지 않거든요.”

    “오호, 민감한 질문을 즐기시는 건가요?”

    “그렇다기보단… 항상 흥미로운 질문을 주시니까요. 그게 기자의 일이기도 하고요.”

    “좋습니다. 그럼 기자 질문부터 받아 보죠.”

    기자 몇몇이 손을 들었다.

    장 스테판은 한 기자를 지목했다.

    그 기자는 자신의 소속을 소개한 후 이렇게 물었다.

    “한국은 유럽과 상당히 먼 나라인데, 어떻게 프랑스에 진출하실 생각을 하셨나요?”

    그거야 프랑스가 ‘전략적 요충지’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솔직할 필욘 없지.

    “프랑스여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만 상징적인 면에서 프랑스였으면 하는 욕심은 있었습니다.”

    “어떤 상징을 의미하는 건지요?”

    “가장 현대적인 나라에 오고 싶었거든요. 완벽하게.”

    ‘현대적이어야 한다. 완벽하게.’

    랭보의 말을 패러디하자, 사람들이 낮게 경탄했다.

    자국의 예술가에 대한 자부심이 큰 사람들이다.

    단, 여기서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제가 생각하는 문학의 현대성 중 하나는, 언어의 자유로움입니다. 인종이나 국적으로 규정지어지는 언어를 거부하는 거죠. 한 마디로… 제 작품이 프랑스어로 번역이 됐지만 프랑스인의 전유물이 되지 않았으면 했어요. 지금 여기 앉아계신 분들을 보면….”

    나는 다양한 인종의 시민들을 훑어보았다.

    “프랑스를 선택하길 잘한 것 같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고,

    또 몇몇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외람된 질문이긴 합니다만…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게, 동양 작가라는 작가님의 상황과도 연결될 수 있을까요?”

    돌리고 돌려 던지는 질문.

    “어렵게 말씀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동양인이기에 그런 생각을 했느냐는 거죠?”

    기자가 흠칫 놀랐다.

    “음… 네. 무례한 질문이라면 죄송합니다.”

    “무례한 질문이 아닙니다. 제가 사람인 이상, 국적과 인종은 당연한 꼬리표니까요. 저를 ‘동양인’ 작가로 보는 건 아무 상관 없습니다. 사실이잖아요. 다만, ‘동양인스러운’ 작품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걸 증명해 내고 싶었어요.”

    “답변 감사합니다!”

    기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이 짧은 박수를 보냈다.

    이 문답의 흐름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다음으로 지목을 받은 기자가 물었다.

    “<내외인> 이후 행보는 어떻게 됩니까?”

    벌써 다음 행보를 말하다니.

    기자들 성격 급한 건 어딜 가든 비슷하구나.

    장 스테판이 질문을 이어받았다.

    “그러고 보니 에세이집 원고가 있지 않으십니까? 그걸 발간하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나는 하하… 하고 웃었다.

    “리브레 직원분이 그런 얘기를 하신다는 건, 제 책을 내주실 용의가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아…! 음… 어… 저는 일개 직원이라서요. 하지만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장 스테판이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장난입니다. 해 본 소리였어요.”

    에세이집은 예전에 끝낸 일이다.

    만약 <다시 사는 일>을 리브레에서 낸다 해도… ‘출간’을 ‘행보’라 할 순 없지.

    작가에게 ‘행보’란 무엇을 고민하고 쓸지의 문제니까.

    “저의 다음 행보는… 또 다른 장편 소설을 쓰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동요했다.

    그럴 수밖에.

    이들에게 나는 이제 막 첫 장편을 낸 신인이다.

    그런데 벌써 두 번째 장편을 집필한다고 하니….

    기자들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예상치 못한 답에 장 스테판도 조금 당황했다.

    “어떤 소설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천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천재요? 구체적으로 어떤 천재일까요?”

    “죄송합니다. 아직은 이것밖에 말씀드릴 수 없군요.”

    “프랑스에도 책을 내실 거죠?!”

    객석에서 질문이 날아왔다.

    난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제가 더 바라는 바입니다.”

    저 멀리 서 있는 마리옹 편집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속 모를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더 말해 줄 수 없다고 했는데도, 차기작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 날아왔다.

    장 스테판은 질문의 방향을 제법 능숙하게 돌렸다.

    “혹시 <내외인>에 대해서 더 해 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없는데.

    작가가 작품에 대해 길게 말하는 건 좋지 않다.

    독자의 즐거움을 빼앗는 일이니.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외인>이 곧 영화로 나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한국의 예술 영화죠?”

    “네. 예술 영화의 거장 조인후 감독의 작품입니다. 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이번 몽테뉴 예술 영화제에 출품했죠.”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들끼리 수런거렸다.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내외인>을 찾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덧붙였다.

    “<내외인>을 재밌게 읽으셨다면, 꼭 봐 주시길 바랍니다.”

    * * *

    <내외인> 발간 기념회가 끝났다.

    이상은 혼자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리브레의 세 사람은 장 스테판의 차를 탔다.

    “일단 리브레 쪽으로 갈게요.”

    “그래요. 부탁해요.”

    에바 편집위원이 말했다.

    그녀는 정말 즐거웠다.

    자신이 밀어붙인 <내외인>이 점점 잘 팔리는 것도.

    그 작가인 이상이 발간 기념회를 멋지게 마친 것도.

    한편 마리옹 편집장은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발간 기념회에 대해 한마디 할 법도 한데, 내내 침묵할 뿐이었다.

    ‘이 얼음 공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정적을 깬 사람은 마리옹 편집장이었다.

    “에바 편집위원.”

    “네. 편집장님.”

    “당신이 매일 입에 달고 다니던 ‘문학적’이라는 말.”

    “…네.”

    “사실 진심으로 와닿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프랑스는 문학 출판업 규모가 대단히 크다.

    큰 자본이 오가는 다이나믹한 산업.

    그 산업에 필요한 건 문학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다.

    문학을 ‘상품’으로 보는 경영학적 마인드 역시 중요하다.

    정확한 지표를 토대로 문학 ‘상품’을 파는 경영인.

    그게 바로 마리옹 편집장이었다.

    그런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 그 ‘문학적’이란 게 뭔지 좀 알 것도 같네요.”

    에바 편집위원과 장 스테판은 동시에 룸미러를 보았다.

    거울로 마주친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리옹 편집장님 맞아요?’

    ‘내 옆에 앉은 여자 누구야?’

    하는 얼굴들.

    평소의 그녀였다면 우쭐대며 빈정거렸겠지만.

    그러기엔 마리옹 편집장이 너무 진지했다.

    “장 사원.”

    “네, 편집장님.”

    “리브레 홈페이지 메인 한 칸에 <내외인>을 넣으라고 전달 부탁해요.”

    “아…! 네, 네.”

    에바 편집위원이 놀라서 마리옹 편집장을 보았다.

    ‘메인은… 유럽 작가가 아니었던 적이 없지 않나? 확실하게 팔릴 책만 걸어야 한다고 하면서.’

    마리옹 편집장은 도도하게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사이 차는 리브레 출판사 앞에 도착했다.

    마리옹 편집장이 문을 열며 말했다.

    “자, 저는 먼저 갈 테니 두 분은 참았던 축배를 드시면 되겠네요.”

    탁 하고 문이 닫혔다.

    장 스테판은 뒷좌석으로 몸을 돌렸다.

    에바 편집위원이 멍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이내,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대박이에요!!”

    “편집장 얼굴 봤어?! 이거 꿈 아냐?!”

    두 사람은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들은 차 안에서 한참을 낄낄거렸다.

    삼십 분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리브레 본사로 들어갔지만.

    * * *

    조인후 감독은 호텔 침대에 벌렁 누웠다.

    오랜만의 파리행.

    만날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게다가 매일 같은 와인 파티.

    영화인들은 어째서 국적을 불문하고 말술이란 말인가.

    도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옆방의 오준이도 뻗었겠구만. 날 따라와서 고생이야.’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무거운 몸으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와인에 절여진 속이 그나마 좀 씻겨 내려갔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이상 작가를 못 만났네.”

    사실 오자마자 만나곤 싶었다.

    하지만 피차 바쁜 마당에, 시간 내기가 어디 쉽나.

    이러다간 영화제에서 보게 생겼다.

    ‘소설 <내외인>이 좀 팔리기 시작했다지.’

    그나마 한 가지 걱정을 덜었다.

    하지만 조인후 감독은 내심 서운했다.

    ‘멋지게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두 사람은 나이 차가 꽤 났다.

    인생의 선배로서 도움을 주고 싶은데, 사사건건 도움만 받는 형국이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영화 <내외인>으로 그 빚을 갚아 볼 계획이었던 것이다.

    우웅― 우웅―

    전화가 걸려 왔다.

    다른 방에 묵고 있는 비서였다.

    “어, 무슨 일?”

    ― 감독님. 잘 들어가셨어요?

    “같은 호텔에서 그런 걸 뭘 물어.”

    ― 하하… 다름이 아니라 좋은 기사가 나서 바로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감독님 톡 잘 안 보시니까.

    “뭔데 그래?”

    ― 보시면 아실 거예요. 지금 보내 드렸어요! 영어 번역본이니 그냥 보세요.

    “어어, 그래. 알았다.”

    전화를 끊고 조인후 감독이 중얼거렸다.

    “녀석이, 뭔데 호들갑이지?”

    그러나 그는 곧 알게 됐다.

    비서가 호들갑을 떨 만했다는 걸.

    톡에 올라와 있는 건 프랑스의 인터넷 기사.

    소설 <내외인>의 성공적인 발간 기념회 소식.

    그리고.

    “어?”

    이상 작가의 영화 <내외인> 홍보.

    그때, 톡이 하나 더 왔다.

    몽테뉴 영화제에서 <내외인>이 전석 매진이 되었다는 기사였다.

    영화제 상영관이 작긴 하다.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결국 전석 매진이 될 테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빨랐다.

    [이 이례적인 매진 기록은 한국의 작가 이상의 소설 <내외인>의 인기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허!”

    조인후 감독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야말로 나잇값 좀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이렇게 역으로 당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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