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장 스테판의 차를 타고 오베르로 가는 길.
파리를 벗어난 풍경은, 한국과 다를 바 없는 고속도로.
하지만 어느 순간, 황토색 밀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가 오베르인 모양이군요.”
“맞아요.”
그러고 보니 장 스테판은 내비게이션도 없이 차를 몰았다.
“오베르에 자주 가나 봐요?”
“예전에요. 옛날 여자친구 꿈이 화가였거든요.”
“그 꿈은 이뤘어요?”
“아뇨. 그 꿈도 이루지 못하고, 여자친구랑도 헤어졌죠.”
우리는 웃었다.
“그게 인생이죠.”
“맞습니다, 작가님.”
한때는 나도 화가를 꿈꿨지.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그림에 대한 미련은 없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 때문일까.
화가에 대한 선망은 남아 있다.
장 스테판이 내게 물었다.
“고흐는 좋아하세요?”
“좋아한다기보다는… 그의 일화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에요. 고갱과 싸우다가 홧김에 귀를 잘랐다던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던가, 퇴원하는 길에 자살을 했다던가 하는 얘기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땐 미치지 않고는 화가가 될 수 없는 줄 알았어요.”
“아… 유명하죠, 그런 얘기들. 아, 도착했어요.”
그가 낮은 돌 담벼락 아래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가을의 황금빛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직 전깃줄 하나 없는 시골의 밀밭.
당장 고흐가 돌아다녀도 위화감이 없는 풍경이었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천천히 보세요. 전 하도 많이 와서 별 감흥이 없거든요. 작가님 작품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장 스테판이 길을 열어 주며 말했다.
나는 밀밭의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가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 어디선가 천재가 총으로 자신을 쐈다, 이거군요.”
“네. 어딘지는 확실히 모르지만요. 뭔가 느껴지세요?”
꼭 그렇지도 않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일까.
그때의 흔적은 다 날아가고 없는 듯했다.
나는 장 스테판을 따라 오베르를 돌아다녔다.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묻힌 무덤.
고흐의 장례를 거부했던 동네 교회 등.
조금 실망스러웠다.
여기저기 고흐의 그림을 걸어 놨기 때문일까.
파리의 다른 관광지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장 스테판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고흐가 묵던 여관에 가 보시죠.”
“좋네요.”
나는 어느 정도 체념한 상태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관광이나 제대로 하자 싶었다.
장 스테판을 따라 골목을 올랐다.
담쟁이 넝쿨이 인상적인 3층 건물.
건물 외곽의 철제 계단을 오르면 2층에 입구가 있었다.
장 스테판은 계단 아래에서 말했다.
“여기가 그 여관이에요. 지금은 당연히 ‘고흐의 방 관람소’가 됐지만요. 그래도 방 안은 꽤 인상적이에요.”
“같이 안 가시게요?”
“전 담배를 좀 피우려고요. 저 문 보이시죠?”
장 스테판이 2층의 녹색 문을 가리켰다.
“저 문으로 들어가시면, 복도를 좀 지나 기념품점이 보일 거예요. 거기로 들어가기 전에 오른편에 문 하나가 있는데, 그게 3층 고흐의 방으로 가는 길이에요. 모르는 사람들은 기념품만 구경하다 나오는 거죠.”
“그냥 들어가면 돼요?”
“문이 잠겨 있다면 기념품점 직원에게 문의하면 돼요.”
그렇게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유럽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군.
나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갔다.
복도를 좀 지나자 정말로 기념품점이 나왔다.
그리고 오른편의 문도.
문을 잡고 당기니 정말로 당겨졌다.
기념품점 직원이 나를 흘긋 봤다.
들어가도 되냐는 의미로 안을 가리켰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비로소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멈칫했다.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나무 계단.
등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풍경.
200년 전 허름하고 조악한 여관.
그 여관을 그대로 남겨놓은 듯했다.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전생에 살던 일본 다다미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곳에서 비참할 정도로 빈곤했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2층 복도는 어둡고 좁았다.
한쪽 방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방엔 사람이 가득했다.
큐레이터가 그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슬쩍 그 옆의 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알 수 있었다.
검푸른 회벽.
스프링만 남은 침대.
침대를 향해 비스듬히 놓인 작은 의자.
한쪽 벽에 걸린 작은 거울.
천장에서 겨우 한 바닥 빛을 들여보내는 창문.
그곳이 고흐의 방이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옛날 생각이 더 생생하게 났기 때문이다.
나는 내 글을 사랑했다.
내가 천재란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건 가난과 폐병.
그 현실이 답답할 때면,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떠돌았다.
씻지도 먹지도 않고.
사람들은 그 시절의 나를 ‘광인’으로 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굴지 않으면… 정말 미칠 것처럼 답답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봤다.
기울어진 천장에 손바닥만 한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작은 벽 거울도 봤다.
고흐는 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봤겠지.
순간, 이 자리에서 쾅쾅 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고흐라도 된 것처럼, 이 방을 부숴 버리고 싶었다.
고흐는 그럴 수 없었으니 제 귀를 잘랐을 것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천재의 내면.
‘고흐의 방’과 같단 생각이 들었다.
…됐다.
내가 뭘 써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뒤돌아 계단을 내려왔다.
귀를 자르는 일.
자신에게 총을 쏘는 일.
위대한 시를 쓴 자신의 과거에 대고, ‘그건 다 헛소리였고, 거짓말이었다’라고 말하는 일.
광인처럼 거리를 쏘다니는 일.
남들이 이해 못 할 글을 죽을 때까지 쓰는 일.
그건 일종의 ‘광기’였다.
광기가 없는 천재도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천재들은 모두 광인이었다.
머릿속에 내 소설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그는 천재이자, 광인이었다.
도망치듯 여관을 나섰다.
저 아래 벤치에 장 스테판이 앉아 있었다.
밖은 밝고 맑았다.
방금 전까지 빠져들었던 어둠이 무색할 정도로.
“다 보셨어요?”
장 스테판이 내게 물었다.
그 말이 나를 현재로 쑥 잡아당겼다.
나는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주 인상적이던데요?”
계단을 내려와 다시 장 스테판과 합류했다.
오랜만에 다시 떠올린 광기.
그 꾸물거리는 광기를 뱃속 어딘가에 숨겨 놓은 채.
* * *
나흘의 휴가가 끝났다.
오베르에 다녀온 후, 신작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소설은 장편으로 쓰기로.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루는 것.
그것은 단편보단 장편에 어울렸다.
그동안 조인후 감독과 최오준 배우가 파리에 왔다.
하지만 아직 만나진 못했다.
영화제 준비로 워낙 바쁜 모양이었다.
그리고 오늘, 13지구에서 리브레 클럽이 열린다.
덧붙여 <내외인> 발간 행사까지.
13지구도 그리 ‘파리다운’ 동네는 아니다.
차이나타운 때문에 동양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장 스테판과 나는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문화센터까지 걸어갔다.
문화센터에는 동양인 아이들이 많았다.
이주민 2세대쯤 되려나.
행사장으로 가던 중에 장 스테판이 말했다.
“오늘 독서클럽은 리브레 쪽에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인원도 스무 명으로 늘렸고요. <내외인> 낭독 영상이 많이 유명해져서 기자들도 올 거예요.”
장 스테판이 덧붙였다.
“<내외인> 덕분에 저희 리브레 클럽이 홍보가 될 지경이라니까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나는 점잖게 굴었다.
하지만 속으론 좀 우쭐하기도 했다.
19지구에서 열렸던 첫 리브레 클럽을 생각하면, <내외인>을 유럽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행사장은 굉장히 넓었다.
벽에 붙어 선 기자들과 카메라맨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얼굴.
나와 장 스테판은 나란히 앉았다.
“안녕하세요, 이상입니다.”
짝짝짝짝짝!
박수가 쏟아지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마치 한국으로 돌아온 것 같군.
나는 간단하게 나와 <내외인>의 소개를 했다.
사람들은 집중해서 내 설명을 들었다.
13지구의 독특한 환경 때문일까.
백인, 흑인, 아랍인, 동양인, 히스페닉까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내외인>의 마지막 4장 낭독을 시작하겠습니다. 한 문단씩 돌아가며 읽으시면 됩니다. 앞에 계신 분부터, 먼저 해 주시겠어요?”
“저요? 아, 네.”
백인 아주머니가 긴장된 얼굴로 책을 잡았다.
그녀는 조금 떨고 있었다.
하지만 곧 침착하게 낭독을 했다.
“남자2는 공허한 자신의 검은 구멍을 채우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느꼈다. 그것은 삶을 삶처럼 살아가고 싶은 사람의 본능이었다. 그러나 그에겐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회사 생산직으로 들어온 남자1의 처분이었다. 남자1은 어두운 인상에 실수가 잦은 남자라고 했다. 그를 해고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것은 남자2의 손에 달려 있었다.”
옆자리의 흑인 남자가 낭독을 이어받았다.
“남자2는 그 일이 좀 성가셨다. 그의 처분을 부하 직원에게 맡기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2는 심성이 곧았다. 고용 문제는 대표인 자신이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게 옳단 생각이 들었다. 성가시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지만. 남자2는 생각 끝에 그를 만나 면담을 해 보기로 했다. ‘남자1을 오라고 하세요.’ 남자2는 비서에게 말했다. 비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남자1은 이미 사직서를 냈습니다.’ 문득 남자2는 남자1을 꼭 봐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충동이었다. 남자2는 직접 남자1을 찾아가기로 했다.”
한 시간가량, 낭독은 계속 진행되었다.
남자1과 남자2는 여러 번 엇갈렸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깨닫는다.
자신들에게 떨어져 나간 행복 혹은 불행의 조각이 그들이라는 걸.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
클럽 회원은 물론, 기자들도 숨죽여 낭독을 들었다.
마지막 낭독자.
허름한 차림의 히스페닉계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독특한 발음으로 <내외인>의 마지막을 읽었다.
“남자1과 남자2가 한 번, 두 번, 세 번을 스쳤다. 그들은 세 번을 스치고서야 서로의 특별함을 느꼈다. 그들은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그들은 마치 뒤집힌 거울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생이 끝나 버린 것 같은 기분도. 그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 상대가 울면 나도 따라 울고 싶다고. 그 결과 그 누구도 울지 못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울음 대신 그들을 찾아온 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빛이었다. 그 빛은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지더니, 미간을 찌푸리게 하고, 마지막으로 발끝까지 삼켜 버렸다.”
그가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다시 또 정적.
아니, 여운.
사람들은 <내외인>의 마지막 페이지를 만지작거렸다.
“…끝이군요.”
내가 입을 열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짝… 짝… 짝짝짝!!!!
느릿한, 하지만 좀처럼 멈추지 않는 박수였다.
그들이 느끼는 여운은 닮은.
“13지구 리브레 클럽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낭독을 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첫 완독이라서, 저도 감회가 남다르군요.”
“저희도 영광입니다.”
“맞아요.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
“영상으로 보는 거랑 비교가 안 되네요.”
사람들은 퍽 즐거워했다.
나는 그들의 책에 모두 사인을 해 줬다.
그들은 한 사람도 나가지 않았다.
이어질 발간 기념회 때문이었다.
“작가님. 조금 쉬시고, 발간 기념회로 바로 넘어가도 될까요?”
장 스테판이 물었다.
나는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왠지 긴장하고 있었다.
“그… 그런데 작가님, 저도 방금 전에 연락을 받았는데요.”
“무슨 연락이요?”
“발간 기념회에 마리옹 편집장님이 오신다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