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76화 (76/204)

76화

장 스테판의 설명은 이러했다.

‘리브레 클럽’은 리브레 출판사가 가을마다 주관하는 독서클럽이다.

대상은 파리의 시민들.

초빙 작가는 2명.

총 20구로 나누어진 파리.

홀수 지구는 외국 작가가, 짝수 지구는 프랑스의 작가가 맡는다.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10회의 강연을 하는 셈.

강연의 내용은 작가의 작품에 대한 토론이었다.

나는 바로 지훈에게 말했다.

“무조건 한다고 해. 무조건.”

“형, 괜찮겠어요? 한 달이나 파리에 있어야 하는데… 페이도 그냥저냥이고요.”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그들이 낯설어하는 건 내 작품이 아니라 국적이야.”

“….”

“그러니 당연히 국경부터 넘어야지.”

“하지만 형 학교도 있고.”

…맞다, 학교가 있지.

나는 리브레 클럽의 일정과 달력을 비교했다.

세 번의 화요일이 걸쳐 있었다.

운 좋게도 한 번은 공휴일.

즉 두 번의 특강을 빠져야 했다.

“일단 한다고 메일 보내 줘. 알았지?”

“음… 네, 알겠어요. 형.”

지훈이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 * *

돌아오는 주 화요일.

특강 두 시간 전.

나는 지도 교수인 심 교수를 찾아갔다.

심 교수의 개인 조교가 날 맞이했다.

“교수님 지금 수업 들어가셔서요. 안에서 조금 기다리시겠어요?”

“아,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심 교수의 연구실은 깔끔했다.

책도 그리 많지 않았고, 볕도 잘 들었다.

책이 넘칠 듯 쌓인 조인창 교수의 방과는 달랐다.

그러나 연구실에 꽂힌 책들은 하나같이 명저들이었다.

문학, 사회학, 철학, 건축학을 넘어….

여러 작가들의 자서전과 평전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작가의 삶’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의 방다웠다.

그리고 심 교수의 책상 가장 가까운 곳.

그곳에 ‘이상 존’이 있었다.

나의 저서 전권과 조인창 교수의 연구 논문들.

딱 그 두 종류만 꽂힌 칸.

언젠가 꼭 ‘이상 연구’를 해내고 말리라는 마음.

그 마음을 벌려 둔 공간 같았다.

벌컥!

“아따, 힘들다!”

심 교수가 문을 열고 연구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날 보고 깜짝 놀랐다.

“이상 선생이 웬일?”

“안녕하세요, 교수님.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만.”

“그래? 앉아요. 아이고, 나이 들수록 수업하기 힘들단 말이지.”

그는 테이블에 교재를 내려놓았다.

<문학비평의 이론과 실제>

기본서 중의 기본서다.

1학년 강의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이런 노교수가 1학년 강의라니.

웬만한 열정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인데.

“이상 선생, 그간 재밌는 일을 많이 했던데요? 영화도 만들고, 앤솔로지도 냈다죠?”

“그렇게 됐습니다.”

“아, 내가 선생 지도 교수가 되어 가지곤 사람들이 얼마나 날 귀찮게 하는지 몰라. 특히 대한문학상 일 터졌을 땐 기자들까지 날 찾더라고?”

거침없는 말에 조교가 움찔 하고 놀랐다.

대한문학상 일은 민감한 문제였다.

하지만 심 교수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는 날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그래도 내가 지도 교수랍시고 한마디 하자면… 그따위 상에 신경 쓰지 마세요, 선생.”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신경을 쓰다뇨. 천만에요.”

“나도 그런 심사 자리를 거절한 지 몇 년 됐어요. 저들끼리 알게 모르게 알력 다툼하는 걸 봐줄 수가 있어야지. 뭐, 어쨌건.”

심 교수가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모았다.

“용건이 뭡니까?”

“다름이 아니라… 제가 책 출간 때문에 한 달 정도 해외에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의 특강을 방학 보강으로 돌리고 싶은데, 가능할까 해서요.”

“보강? 학기 당 2회 정도는 휴강해도 될 텐데? 사실 특강은 학생들 돈 내고 듣는 강의도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기엔 강의 인원이 많으니까요. 외부에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고.”

“허허… 고지식하긴. 보강 일자는 학사지원팀이랑 말해 보면 되겠네. 돌아가는 길에 차 조교 한번 만나고 가요. 내가 허락했다고 하고.”

그는 의외로 선선히 허락을 해 주었다.

정식 강의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그런데 무슨 책 출간? 혹시 <내외인> 말이에요? 인터넷 기사로 본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프랑스에서 행사가 잡혀서요.”

“프랑스라… 쉽지 않겠는데.”

“안 그래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습니다.”

내가 농담처럼 말하자 그가 낄낄 웃었다.

“들어나 봅시다. 어떤 행사인데 그래요?”

나는 리브레 클럽에 대해 말해 주었다.

심 교수는 진지하데 듣더니 한마디 해주었다.

“고생 좀 하겠어요.”

“그런가요?”

“결국 지역 독서 모임 같은 거 아니오. 그런 곳엔 선생이랑 말이 통할 만한 젊은이들은 잘 안 오거든. 대부분 나 같은 늙은이들이겠지.”

‘늙은이들’이라.

나쁘지 않은데?

나도 따지고 보면 1910년생이니.

“유럽이랑 한국의 젊은 세대는 비슷할 거야. 하지만 한국 늙은이랑 유럽 늙은이는 완전히 다른 종이라 보면 돼요. 특히 프랑스는 옛날 부자나라라서 자부심이 대단하겠지.”

“옛날 부자나라라… 인상적인 말이네요.”

지금은 부자가 아니라는 뜻이니까.

조금 거칠게 말하면, 현재 가진 것에 비해 자존심들이 강하다는 뜻.

“뭐, 이상 선생이라면 내 말을 잘 이해하겠지. 그나저나 언제쯤 출발합니까?”

“이 주 뒤에 갑니다.”

“그렇게 빨리? 흠… 곧 대강당 특강이 이 주가 빈다는 뜻인데… 자리가 아깝긴 하네요.”

대강당은 예약이 치열한 자리다.

국문과도 특강 외에는 대강당을 쓸 기회가 없다.

그때, 나는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제가 보강을 하긴 할 거지만… 비어 있는 시간에 다른 분들 특강을 넣을 수 있을까요?”

“음? 다른 수업이라면….”

“한국대에 다니는 작가들 강연이라거나, 젊은 작가들을 모아 독자와의 만남을 갖는 것도 좋겠죠.”

“우리 학교에 다니는 작가들… 수진아, 누구누구 있냐?”

자기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던 조교가 뒤를 돌았다.

“평론에는 이지운, 장호수, 송윤지 선배가 있고, 소설에는 김미소 선배 정도요. 시인은 없어요.”

역시 한국대.

창작보다 평론이 강세군.

평론가라곤 송지훈밖에 없는 인수대와 완전히 반대다.

“그 네 명한테 일단 연락해서 내 방에 좀 와 보라 해. 이번 기회에 강의 경험 쌓으면 좋지. 그럼 그렇게 진행해 보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꼭 이걸 의도했던 건 아닌데.

김미소 작가, 엉겁결에 특강을 하게 되겠군.

* * *

그렇게 특강에 대해 학교 측과 합의를 하고, 나는 슬슬 프랑스에 갈 준비를 했다.

한 달 정도는 비자 없이 다녀올 수 있으니 특별히 신경 쓸 일은 없었다.

문제는 도마크 연말 작품집 원고였다.

출국일은 앞으로 이 주 후.

다녀오고 소설을 쓰면 마감까지 빠듯하다.

모든 작품을 잘 써 내고 싶은 마음이야 한결같다.

하지만 이번 원고는 좀 특별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인 ‘옥희’의 이야기니까.

고민 끝에 결심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초고를 완성하리라고.

그리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프랑스에서 다른 작품을 써 보겠다고.

욕심이 있다면, ‘프랑스에서만’ 쓸 수 있는 글이 떠올랐으면 좋겠는데.

다짐을 한 날부터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이 주가 긴 시간은 절대 아니었다.

출국을 앞둔 정신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오랜만에 진지한 기분으로 옥희를 떠올렸다.

하얗고 당돌한 얼굴.

우리 집안의 핏줄이라 그런가….

그 녀석도 꽤나 고집이 세고 자기 생각이 강했지.

한 마디로, 1930년대의 ‘신여성’.

옥희가 애인과 만주로 가 버린 날.

순진한 내가 서울역으로 나갔다가 바람을 맞은 날.

그 날은 비가 오고 있었다.

휴대폰도 뭣도 없던 시절.

서울역에서 우산을 들고 미련하게 서 있던 나.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이미 떠났다는 걸.

하지만 마음으로는 부정했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아직 못 온 것이겠거니….

그러면서 좀처럼 서울역을 떠나지 못했던 것이다.

내 소설은 그 시점으로 시작된다.

옥희는 ‘희’라는 소녀로, 나는 ‘나’로 변한다.

서울역.

‘희’와 ‘희’의 애인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난다.

― 왔구나. 나는 네가 올 줄 알았다.

나는 ‘희’에게 말했다.

‘희’는 대뜸 애인과 어디로든 가서 살림을 차리겠다고 말한다.

어디로 가는지는 끝내 말해 주지 않는다.

‘나’가 부모에게 일러바칠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들을 설득하고 ‘희’는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등신처럼 가만히 서 있는 ‘희’의 애인이 증오스럽다.

역 밖에는 계속 비가 온다.

‘나’는 ‘희’에게 어째서 그냥 떠나지 않고 굳이 내 허락을 받으려 하느냐 묻는다.

‘희’는 이렇게 말한다.

― 가족 중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이 오빠였으면 해서요.

‘나’는 눈물이 왈칵 나려는 것을 참는다.

‘나’는 언제나 동생보다 못난 오빠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계속 진행된다.

키보드 위에서 내 손이 춤추듯 움직인다.

‘나’는 그들을 끌어내 역 밖으로 나온다.

비가 오는 중에 어디로든 그들을 끌고 다닌다.

카페로, 식당으로, 하염없이.

‘나’는 온갖 방법으로 그들을 설득한다.

‘희’의 애인에게 욕을 해 보기도 한다.

등신 같은 ‘희’의 애인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뿐이다.

그 말이 ‘나’를 더 미치게 한다.

그나마 ‘희’의 강단 있는 얼굴이 ‘나’를 위로하는 듯하다.

‘희’는 자신들은 괜찮을 거라고 한다.

오빠 걱정이나 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농을 친다.

나는 그렇게 소설 속에서 그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소설이 다 끝나 갈 때까지.

사실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들을 보내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누군가는 고작 소설이라 할 거다.

하지만 내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과 함께 다시 서울역 앞으로 온다.

두 사람이 ‘나’를 본다.

‘나’가 가지 말라 하면 정말로 안 갈 사람들마냥.

‘나’가 가라고 말만 하면 바로 사라질 사람들마냥.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나는 결국 거기까지 쓰고 멈췄다.

하지만 조만간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나’와 ‘희’라는 오누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나조차도 아직은 알 수 없었다.

* * *

조인후 감독의 사무실.

그는 비서와 마주 앉아 있었다.

비서는 그에게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

“<내외인>, 유럽이랑 미국 영화제에 모두 출품했고요. 대부분 나라에서 다 상영 대기 중입니다. 특히 유럽 쪽에서는 기대가 큰지 감독님께서 꼭 한 번은 와 주시길 바란다고 하는데요.”

“유럽 어디?”

“독일은 베를린 영화제 때문에 완전 픽스입니다. 꼭 가셔야 하고… 프랑스의 몽페르 영화제랑 이탈리아의 베니스 영화제가 겹쳤네요.”

“프랑스는 가고, 이탈리아는 패스.”

‘이상 작가님을 봐서라도 프랑스는 가야지.’

조인후 감독은 이상이 신경 쓰였다.

<내외인>이 프랑스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일정 나오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부탁해. 프랑스 쪽은 꼭 신경 써 주고.”

그때였다.

우웅― 우웅―

조인후 감독의 휴대폰이 울려 댔다.

비서가 눈치 빠르게 사무실에서 나갔다.

조인후 감독은 수고하란 의미로 손을 한 번 들어 보였다.

“여보세요.”

― 감독님? 저 이상입니다.

“오, 작가님. 반갑습니다. 어쩐지 목소리가 별로 안 좋으신데요?”

― 아, 그게… 집필 중이라서요. 작품의 결론이 잘 안 맺어져서 고민이 많습니다.

‘이상 작가도 글 쓸 때 고통받기는 매한가지군. 일필휘지로 척척 써 내는 줄 알았더니.’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는 조인후 감독이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이상은 리브레 독서클럽에 관해서 말했다.

얼떨결에 조인후 감독보다 더 빨리 프랑스에 가게 됐다는 것도.

“프랑스 쪽 행사가 잡히셨다는 거죠? 축하드립니다. 작가가 가면, 독자도 반응을 할 겁니다.”

― 그러길 바라야죠. 그래서… 혹시 가능하면 감독님의 일정과 맞출 수 있나 해서요.

“음… 저희 쪽에서 최대한 맞춰 보지요. 비서와 다시 얘기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찌 됐건 파리에서 만나겠군요! 하하하…!”

― 저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조인후 감독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씨익 미소 지었다.

‘김 새는군… 모처럼 도와줄 기회가 생긴 줄 알았는데. 알아서 잘 해내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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