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프랑스 파리 8지구 리브레 출판사.
해외문학팀.
에바 편집위원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내외인>의 프랑스판을 발매한 지 열흘이 지났다.
할 수 있는 홍보는 다 해 봤지만, 판매 실적은 최하위.
“큰일이네….”
에바 편집위원이 입술을 씹었다.
큰 소리를 치며 발매한 책인데.
이러면 마리옹 편집장에게 면이 서질 않았다.
“에바 편집위원님.”
‘…왔구나.’
마리옹 편집장이 파티션에 기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건 신인 저서 판매 지표.
바닥에 깔린 듯한 <내외인>의 그래프에 붉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마리옹 편집장은 그 지표를 에바 편집위원에게 보여 주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하시죠?”
서리가 맺힐 듯한 말투.
해외문학팀 사원들의 등골이 시릴 정도였다.
옆자리 장 사원은 모른 척 화면만 뚫어지게 보았다.
그의 화면엔 리브레에서 주최하는 독서클럽 프로그램 개요가 떠 있었다.
‘무섭다… 에바 팀장님 어떡하나.’
에바 편집위원은 애써 덤덤히 말했다.
“초반이니까요.”
“해외 문학, 게다가 신인은 초반 지표가 반 이상인 걸 아실 텐데요? <내외인>, 좀 걱정이 되네요. 홍보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죠?”
“장 사원.”
에바 편집위원이 장 사원을 찾았다.
장 사원은 눈치 빠르게 판매 자료를 추려 그녀에게 넘겼다.
에바 편집위원은 자료를 보며 말했다.
“보시면… 독자 반응 자체는 정말 좋아요. 만족도도 높고요. 하지만 책을 사서 읽기까지의 벽이 좀 높은 것 같아요. 저희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홍보도 계속하고 있고….”
한 마디로 이런 말이었다.
읽기만 하면 만족스러운 책인데, 읽질 않는다.
홍보는 하지만, 먹히질 않는다.
원인은 하나.
‘한국 작가’에 대한 낯섦.
예상했던 일이었고, 그래서 더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을까.
마리옹 편집장은 판매 자료를 가만히 들춰봤다.
잘못을 문책하려는 게 아니었다.
문제는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국적에 있으니.
“…이 건은, 어려운 시도를 해 봤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걸로 끝내야 할 것 같군요.”
“편집장님.”
“에바 편집위원.”
“…네.”
“난 기회를 줬어요. 그리고 에바 편집위원의 그 도전정신, 높게 사요. 하지만 우리가 내야 할 책이 줄을 서 있어요. <내외인>은 잠시 접어 두고, <심슬리 저택>에 집중해 주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구구절절 맞는 말.
에바 편집위원은 할 말이 없다.
또각― 또각― 또각―
마리옹 편집장의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사라져 갔다.
“하아….”
에바 편집위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으세요?”
장 사원이 물었다.
“괜찮아. 후우…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그런데 이 지표는 좀 심하긴 해요. 제가 SNS 홍보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장 사원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에바 편집위원이 말했다.
“프랑스는 굉장히 보수적으로 책을 골라. 자기 취향이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유럽인 취향에 머물러 있지. 유럽인의 취향이 뭐라고 생각해, 장 사원?”
“…글쎄요? 철학적인 책?”
에바 편집위원이 고개를 저었다.
“SNS 같은 홍보물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고집이야.”
“아….”
“그래서 동양계 작가들이 유럽 시장을 뚫기 힘든 거고.”
장 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동양인으로서, 어쩐지 기분이 씁쓸했다.
에바 편집위원도 할 만큼 했다.
이 한계를 알면서도 <내외인>을 고집했으니.
그만큼 훌륭한 작품이기도 하고.
“장 사원.”
“네.”
“일단 <내외인> 건, 당분간 장 사원이 맡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메일 써 줄 테니 장 사원이 한국어로 옮겨 줘. 그쪽도 애타고 있을 거 아냐.”
“아, 네.”
장 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정말 한계인 건가?’
장 사원은 곰곰이 생각했다.
마리옹 편집장의 말을 거스를 순 없다.
이제 에바 편집위원은 <심슬리 저택>에 집중해야 한다.
자신이라도 뭐라도 더 해야 할 것 하는데… 뭐라도….
그는 복잡한 마음으로 다시 컴퓨터 화면을 봤다.
여전히 떠 있는 리브레가 주관하는 독서클럽 프로그램.
이름하여 ‘리브레(Livre:책) 클럽’.
장 사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정 안 되면 이거라도?’
* * *
작업실에서 책을 보고 있을 때였다.
우웅― 우웅―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다.
미쯔하루 편집장이었다.
“네. 편집장님.”
― 아, 이상 작가님. 미쯔하루입니다.
그는 간략하게 전화를 건 목적을 말했다.
도마크 연말 작품집에 들어갈 작품의 키워드를 ‘가족’으로 해 줄 수 있느냐는 거였다.
많은 작가들이 가족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키워드를 통일해 보자면서.
“안 그래도 그런 방식의 온라인 앤솔로지를 내긴 했습니다만.”
―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살짝 벤치마킹했지요. 하하하!
역시 그렇군.
차라리 솔직하니 얄밉지 않았다.
― 어떻게, 가능하시겠습니까?
“가족이라….”
― 사실 이상 작가님께서는 직전에 가족에 대한 작품을 쓰셔서, 글감이 있을까 걱정이 되긴 합니다. 무리시라면 편하게 자유 주제로 가셔도 됩니다.
“음… 아닙니다. 쓸 이야기가 남았거든요.”
― 아하. 그렇습니까? 구체적인 키워드를 여쭤봐도 될까요?
“…여동생입니다.”
나의 여동생, 옥희.
옥희 이야기는 좀 더 나중에 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운명이라면, 지금 써야겠지.
옥희에 대해선 할 말이 참 많다.
1936년.
우리 집안은 옥희의 애인을 반대했다.
그의 가난이 싫어서였다.
옥희는 그나마 막역한 혈육이던 날 찾아와 말했다.
당장 애인과 만주로 야반도주를 할 거라고.
나는 당연히 말렸다.
그러자 옥희는 말을 바꿨다.
그를 먼저 만주로 보내겠다고.
대신 서울역에서 만나 함께 배웅하자고.
나는 그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약속했던 그 날.
나는 혼자 서울역에 갔다가 혼자 돌아왔다.
옥희는 이미 애인과 만주로 떠나 버린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바람을 맞았다.
얼마 후, 옥희는 만주에서 전보를 보냈다.
잘 도착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에 대한 답장을 신문에 실었다.
어딘가에 있을 옥희가 봐 주길 기대하며.
<동생 옥희 보아라 ― 세상 오빠들도 보시오>
나는 그 글에서 옥희의 결정을 이해했다.
그리고 동생 부부의 미래를 축복했다.
하지만 서운하게도, 답장은 받아 본 바가 없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만약 내가 옥희의 야반도주를 알아차렸더라면.
그래서 서울역에서 그들을 붙잡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만약 이런 상상을 소설로 쓴다면….
소설 속 우리 남매는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그런 생각에 빠져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었다.
“형, 형!”
“어, 어?”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지훈이 몸을 쭉 빼고 날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요? 몇 번이나 불렀는데.”
“그랬어? 미안. 무슨 일이야?”
얼마나 옥희 생각에 빠져 있던 건지.
그런데 지훈의 표정이 별로 좋질 못하다.
“왜 그래?”
“리브레 쪽에서 메일이 왔어요.”
“…예상했던 대로야?”
“…네.”
<내외인> 프랑스어판이 발간된 후.
지훈은 매일같이 리브레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내외인>의 판매 추이는… 언제나 최하위.
“어디 한번 보자.”
나는 지훈의 옆자리로 의자를 밀었다.
메일 내용은 역시 한국어였다.
스태판 장은 에바 위페르의 말을 이렇게 옮겼다.
― <내외인>의 홍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아 잠시 여유를 가지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입니다. 독자 반응은 정말 좋으나, ‘한국 문학’에 대한 장벽 때문에 판매율은 더딥니다.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들여 시장에 노출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진 판매 지표는… 처참했다.
각오는 했지만 충격적이군.
한국에서의 인기는 아무 쓸모가 없다 이건가.
SNS를 통한 홍보나 이슈를 만드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내 문학을 알려 왔고.
하지만 유럽은….
“고지식하군.”
내 말에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홈페이지를 보면 판매 순위 높은 건 죄다 유럽 문학이었어요. 당연한 거긴 한데….”
지훈이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지훈의 어깨를 두어 번 쳤다.
“괜찮아. 일단 신경 써 줘서 고맙다고 답장 좀 보내 줘. 그리고 이전에 말했던 <내외인>과 관련된 행사가 잡히면 무조건 가겠노라고. 알겠지?”
“네, 형….”
어딘지 풀죽은 지훈이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슬쩍 밖으로 나왔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독자 반응은 좋으나 진입 장벽이 높다?
그렇다면 가지고 있는 패를 모두 사용할 때다.
나는 조인후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조인후 감독이 전화를 받았다.
― 이상 작가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인후 감독님. 잘 지내셨습니까?”
― 그럼요. 이번에 신―문학에 발표하신 앤솔로지,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책으로도 나온다죠?
“하하… 네, 일이 잘 풀렸습니다.”
우리는 먼저 가벼운 안부를 나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인후 감독은 영화 <내외인>을 슬슬 해외 예술 영화제에 출품한다고 했다.
“흠… 사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 아,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내외인>을 유럽에 보내실 때, 원작 소설에 대한 표기를 해 주실 수 있나 해서요.”
― 그건 당연한 일이죠. 아, 그러고 보니 소설 <내외인>을 프랑스에 보내셨죠? 프랑스 홍보에 그 점을 더 강조해야겠군요.
조인후 감독은 내가 원하는 바를 바로 알아들었다.
“프랑스 쪽에는 언제쯤 진출하게 될까요?”
― 지금 막바지 번역 작업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 작가님. 저와 오준이가 한 달쯤 뒤에 <내외인>을 가지고 유럽을 돌며 영화제에 참석합니다. 하늘이는 앨범 녹음이 겹쳐 어렵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되신다면 함께 가시죠.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였다.
독자들이 내 책에 다가가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제가 따라가도 좋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 오준이가 좋아하겠군요. 하하하….
전화를 끊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럽 시장을 뚫을 바늘구멍.
영화 <내외인>을 통해 겨우 그 틈을 벌렸다.
나는 작업실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복잡한 마음은 잠시 접자.
그리고 내가 할 일에 집중하자.
유럽에 가기 전에, 도마크 연말 작품집에 낼 소설의 초고를 쓰는 거다.
옥희 이야기를 쓰기로 다짐했으니, 남은 건 구상이다.
그러나 내 계획은 다시 한번 비틀어졌다.
“형….”
지훈이 날 불렀다.
“왜?”
“리브레 출판사에서 메일이 하나 더 왔는데요?”
또? 지표를 빼먹은 게 있나?
“뭐? 무슨 내용인데?”
“음… 형이 와서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지훈의 자리로 다시 갔다.
정말로 새로운 메일이 와 있었다.
이번에는 장 스테판의 메시지가 담긴 메일이었다.
그 메일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상 작가님.
해외문학팀의 스테판 장입니다.
갑작스럽지만, 리브레의 행사 중 공석이 있어 연락을 드립니다. 한국에서 프랑스까지 먼 길 오실 만큼의 규모가 있는 출간 기념회가 아니라서 제안 드리기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에바 편집위원님께 허락을 맡고 이 메일을 보냅니다.
저희 리브레에서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독서클럽의 진행 작가를 모시고 있습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