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74화 (74/204)

74화

앤솔로지를 업로드한 건 12시 정각.

앤솔로지에 관한 기사가 나온 건 12시 2분.

한국 기자들, 여러 의미로 정말 대단하다.

<신―문학의 첫 앤솔로지, 독서 문화를 바꿀까?>

<‘대한문학상’ 탈락 논란 이상 작가, 앤솔로지로 창작 재가동>

<‘프랑스 진출’ 이상, 한국 작가들과 앤솔로지 시도>

등등.

앤솔로지를 나의 이슈와 엮은 기사들.

자극적이기도 하다.

나는 거기까지만 보고 바로 잠이 들었다.

취침할 시간이 이미 한참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막 아침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웬일로 일찍 일어난 지훈이 작업실에서 나왔다.

“작가님, 송지훈 브리핑 들어갑니다.”

“앤솔로지?”

“네. 지금 들으셔야 해요.”

“그래. 알았어.”

나는 밥을 한 술 입에 넣었다.

지훈은 앞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보며 브리핑 내용을 줄줄 읊었다.

“지금까지, 12시간 만에 결제 인원 칠천 명. 형 개인 작품 빼면 신―문학에서 신기록이에요.”

“좋네.”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작품을 한 개씩 구매하는 게 아니라 네 개를 한꺼번에 구매하게 한 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작품 간 결제 수 편차가 크면 위화감이 조성되니까.”

“작품 자체의 평도 좋아요. 이건 형이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지훈은 내게 댓글창을 보여 줬다.

― 헐… 재밌어.

― 주제는 같은데 다른 스타일로 변주되고 있어서 신선합니다.

― 앤솔로지 기획한 사람 이상이지? 어떻게 이렇게 쩔어 주는 작가들만 모았대?

― 현민상 시 웃기지 않냐? 뭔가 위트 있음.

― 이런 작품들 보다 보면 문청멍청에서 지망생으로 레벨업 가능한 겁니까?

― 한지온 작가 글, 뭔가 읽으면 꿈꾸는 것 같은 느낌.

― 한지온 작가님은 원래 내 존잘님이시다.

― 김미소는 이번에 워홀 얘기 썼네? 워홀도 노동은 노동이지. 이 작가 주제 의식 강한 만큼 좀 질리기도 했었는데 워홀 얘긴 좀 신선하다.

― 그런데 이상도 취향 소나무네. 소설 추상적이고 스타일리쉬한 거 보소.

― 아냐, 이번엔 좀 달라. 가족 얘기가 나와서 그런가. 이제 좀 사람 같은 느낌.

“사람 같은 느낌?”

“지금까지 형 소설이 좀 건조했잖아요. 상징적이고. 가족 서사를 간접적으로 풀어내니 인간미가 느껴졌다는 거겠죠.”

인간미라.

하긴, 내 글은 그쪽이랑은 거리가 있지.

“<새>, 일본어판 결제는 어때?”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홈페이지에 올린 거 말이죠? 그쪽도 나쁘지 않아요. 아직 SNS에 홍보도 안 했으니, 하면 더 오르겠죠.”

독자 반응이 나쁘지 않다.

앞으로 계속 앤솔로지를 기획해 봐도 좋을 정도로.

하지만 독자 반응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

신―문학의 ‘독자 공간’ 게시판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 앤솔로지를 보고 영감을 받아 저도 한 편 써 봤습니다. 제목은 <꿈>.

한 독자가 ‘기억’을 주제로 짧은 소설을 쓴 것이다.

그 글을 시작으로 수많은 독자 소설이 올라왔다.

― 저도 한 편 써 봤습니다. 제목은 <회상 이후>.

― 쑥스럽지만 올려 봐요. <엄마의 화장대>.

― 요새 이게 유행이라면서요? <낮 두시, 여자>.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글들을 읽었다.

처음 소설을 써 봤는지 서툰 작품도 있었고,

제법 능숙하게 필력을 뽐내는 작품도 있었다.

이 글들을 묻어 두기엔 좀 아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신라문학에서 호출이 왔다.

― 신라문학입니다. 앤솔로지에 참여한 네 작가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라도 한번 하려고 합니다만.

* * *

합정동의 고급 중식당.

우리 네 작가는 함께 안내받은 룸으로 들어왔다.

먼저 와 있던 이준환 편집위원이 우릴 맞았다.

“다들 어서 오십시오.”

“편집위원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군요, 이상 작가님. 한지온 작가님, 현민상 시인도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김미소 작가님은 초면이군요. 반갑습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한지온 작가나 현민상 시인은 워낙 인지도가 높다.

이준환 편집위원과도 안면을 텄던 모양이다.

작품 활동의 ‘필드’가 다른 김미소 작가만이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요리가 나오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시작됐다.

“신―문학이 안정기에 접어든 것도, 이번 앤솔로지가 잘 된 것도 다 작가님들 덕입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돈 많이 벌었어요. 시인이 돈 벌기 얼마나 어려운데요.”

현민상 시인이 너스레를 떨었다.

웃자고 한 얘기였지만 뼈가 있는 말.

소설의 원고료는 몇 푼 안 된다.

하지만 시 원고료에 댈 바는 아니다.

시 원고료는 ‘푼’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

영세한 출판사는 원고료로 돈 대신 쌀이나 음식을 주기도 한다지.

기가 막힌 일이다.

한지온 작가가 말했다.

“민상 시인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제 주위에서도 앤솔로지에 대해 관심들이 많아서요. 작가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상, 앤솔로지 자체는 계속 생겨날 것 같아요.”

“좋네요. 이상 작가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군요.”

이준환 편집위원이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냥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말았다.

“엔솔로지 활성화에 대해선 저희 신라문학도 고민을 해 봐야겠군요. 사실 이건 부차적인 얘기고, 여러분의 앤솔로지를 가지고 한 가지 일을 더 해 보려 하는데요.”

한 가지 일을 더 한다고?

우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 독자들이 여러분들을 흉내 내서 ‘기억’이라는 주제로 소설을 많이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첫 앤솔로지의 의미도 있고 하니… 거기서 수상작을 뽑는 게 어떨까요?”

“수상작을요?”

“네. 수상작 한 편을 뽑아서 여러분의 작품 네 편과 함께 종이책으로 제작하는 게 어떨까 하는데요.”

“그건… 문단 데뷔나 마찬가지잖아요.”

김미소 작가가 놀라서 말했다.

그녀의 말이 맞다.

애초에 ‘등단’이란 문단에의 ‘첫 등장’을 의미한다.

한국은 그 의미가 신춘문예나 공모전 ‘수상’으로 축소된 경우고.

일반인의 작품이 작가들과 함께 책에 실린다?

반쯤은 ‘등단’이라 봐도 무방하다.

“등단의 기회를 다양화할 필욘 있죠. 저는 찬성이에요.”

내 말에 다른 작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환 편집위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신―문학은 그 어느 때보다 언론의 집중을 받고 있어요. 이번 기획이 발표되면 더 말들이 많겠죠. 여러분들도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처음이란 다 그런 법이니까.”

“괜찮아요. 전 이제 겁날 것도 없습니다.”

현민상 시인이 묘한 말을 하며 씩 웃었다.

마치 뭔가를 내려놓은 사람처럼.

“아, 그리고 심사위원 말인데요. 저희 쪽에서도 초빙을 하겠지만… 여러분들 중 두 분이 참여를 해 주셨으면 해서요. 시에 한 분, 소설에 한 분으로요.”

“시는 민상 시인이 당첨이네요.”

김미소 작가가 말했다.

현민상 시인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귀찮은 모양이지만 별 수 있는가.

시인이 한 명뿐인 걸.

소설 심사는 한지온 작가가 맡기로 했다.

가장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아무튼 나는 겨우 일거리를 피했다.

우린 그렇게 신라문학 측과의 만남을 마쳤다.

그리고 합정동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현민상 시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겁날 것도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이었어요?”

“어? 이상 작가님 눈치 빠르시네.”

그리고선 다들 말들이 없다.

몇 초간의 침묵 후.

한지온 작가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희. 대한문학상 본심 심사 안 받겠다고 했거든요.”

“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말이 많지만, 대한문학상은 큰 상이다.

본심까지 올라갔으면 당연히 욕심이 났을 텐데?

“문학상 자체에 좀 환멸이 들어서요. 부정 심사를 해 놓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도 더는 못 봐 주겠고… 저희도 오래 고민하고 결정한 거예요.”

한지온 작가가 말했다.

현민상 시인이 거들었다.

“맞아요. 이젠 뭐… 받아도 쪽팔리지 않겠어요? 지금 멋지게 내려오는 게 낫지. 앤솔로지도 잘 됐고, 전 미련 없습니다아~”

멋지게 내려온다라.

두 사람에게 그 말이 딱 어울렸다.

그래도 포기하긴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한 사람들이다.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 것 같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유력 수상 후보들이었던 두 사람이 포기를 했으니, 대한문학상 권위가 한 번 더 추락하겠군.

* * *

일본 도쿄.

무라카미 히루키의 작업실.

히루키는 일본어판 <새>를 막 다 읽은 참이다.

“…대단해.”

<새>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이렇게 터프한 문체로 쓴 가족 소설이라….”

‘이런 게 이상 작가 작품의 힘이지. 보는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만들어. 항상….’

<새>도 그렇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건조한 문체.

그 문체로 쓴 세 남자의 싸움은 마초적이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가족’이란 감성적 요소가 살아 있다.

어우러지지 않는 것을 어우르게 하는 힘.

그것이야말로 이상의 소설이 가진 매력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도 가족 소설을 준비하고 있는데.’

히루키가 도마크 연말 작품집을 위해 준비한 소설.

그 소설의 소재도 ‘가족’이었다.

“하… 이거, 부담스러운걸.”

히루키는 원고 파일을 열었다.

마감은 한참 남았지만 벌써 초고가 나와 있었다.

평소보다 더 부지런을 떤 글이었다.

이상의 소설과 나란히 발표할 소설.

밀리고 싶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퇴고해야겠는걸.’

다시 의지를 잡는 히루키였다.

그때, 미쯔하루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히루키입니다.”

― 아, 히루키 작가님. 저 미쯔하루입니다.

“압니다. 허허… 잘 지내셨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 다름이 아니라, 이번 연말 작품집 진행 상황을 좀 파악하려고요.

“안 그래도 어제 초고가 나왔습니다.”

― 벌써요?! 빠르십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 그… 혹시 소재나 주제를 물어도 될까요? 분위기에 맞춰 책 표지 디자인을 미리 뽑아 두려 합니다만.

“일단은, ‘가족’입니다.”

― 네?

“‘가족’이요.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 어어… 이게, 그렇게 됐군요. 사실 지금 연말 작품집을 내실 열 분 중에 다섯 분이 소재를 확정하셨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가족’과 관계가 있네요? ‘집’, ‘어머니’, ‘부부’… 뭐 이런 식이죠.

“이상 작가님도요?”

― 이상 작가님은 아직 미정이라 하셨고요.

“그렇군요… 그럼…?”

― 지금 든 생각이지만, 이번 연말 작품집은 아예 키워드를 ‘가족’으로 통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히루키는 바로 눈치를 챘다.

‘미쯔하루 편집장, 한국의 온라인 앤솔로지를 봤군.’

한국의 신―문학 온라인 앤솔로지의 효과는 컸다.

독자들이 나서서 소설을 따라 쓰고 있을 정도니.

그만큼 건전하면서 흥미로운 독자 문화가 또 어딨겠는가.

사업에 눈이 밝은 미쯔하루 편집장도 이 기회를 놓치긴 싫을 거였다.

히루키는 바로 대답했다.

“키워드가 있는 소설집이 나오면 집중도도 더 높아지겠군요. 저는 찬성입니다.”

― 앗, 감사합니다. 그럼 추진해 보지요.

미쯔하루 편집장은 기뻐하며 전화를 끊었다.

히루키는 팔짱을 끼고 자신의 소설을 바라봤다.

미쯔하루 편집장의 제안을 바로 수락한 것.

그것은 어쩌면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을지도.

“…더 긴장해야겠는데.”

‘천재’의 작품에 밀리고 싶지 않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를 이겨 보고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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