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72화 (72/204)
  • 72화

    <내외인>이 프랑스로 진출했다.

    책 발간에 관련한 모든 업무는 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내 담당 편집자는 에바 위페르라는 편집위원.

    그녀의 메시지는 한국계 직원인 장 스테판을 통해 전달되었다.

    장 스테판이 일종의 통역인인 셈이었다.

    정식 계약이 끝날 무렵, 에바 편집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 책 발간과 관련한 행사가 잡힌다면 파리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기회를 보고 진행해 보죠.

    파리라.

    1930년대라면 꿈도 못 꿀 여정이긴 하지.

    뭐,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엔솔로지도 마무리해야 하고, 도마크 연말 작품집 원고도 준비해야 하니.

    또… 유럽 진출은 한국이나 일본만큼 쉽진 않을 거다.

    초반에는 꽤나 고전할지도.

    일단은 조용히 내 할 일을 하며 일상을 보내야겠다.

    …는 내 생각이었고.

    현실은 달랐다.

    주말 아침.

    주방 식탁에서 시리얼을 그릇에 붓던 중이었다.

    방에서 나온 지훈이 신나게 울려 대는 휴대폰을 들고 말했다.

    “…형, 인터뷰 한번 하셔야겠는데요?”

    휴대폰 화면엔 ‘N일보 문화부 기자’라고 떠 있었다.

    “내 전화도 난리야. 난 아예 꺼뒀어.”

    온갖 신문사의 문화부에서 난리가 났다.

    <내외인>의 프랑스진출 소식 때문이었다.

    지훈이 식탁 의자에 털퍼덕 앉았다.

    “저도 좀 주세요. 많이 주세요. 형 덕에 강제 아침형 인간 됐어요.”

    “그래, 미안.”

    난 지훈의 그릇에 시리얼을 왕창 쏟았다.

    지훈은 숟가락으로 시리얼을 퍽퍽 퍼먹었다.

    난 푸념조로 중얼거렸다.

    “외국으로 진출한 소설이 한둘도 아닌데 무슨 난리들이냐….”

    지겹다. 인터뷰 요청.

    전화, 메일, 문자, 톡은 기본이고, 어떤 기자들은 한국대 한복판에서 따라붙었다.

    수업을 핑계로 겨우 따돌렸지만.

    “저는 당연한 일 같은데요?”

    지훈이 말했다.

    “형 대한문학상 떨어진 걸로 말들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내외인>이 프랑스에 뙇! 그러니까 난리가 나죠.”

    역시 한국 사람들.

    드라마 같은 전개 참 좋아한다.

    소설이고 현실이고, 흐름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자기네들끼리 엄청난 서사들을 만들고 있던데요? 한국이 버린 작가 해외에서 빛을 보다… 뭐, 이렇게.”

    “빛을 보긴. 내 책이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라도 된 것도 아니고. 이제 겨우 표지 나오는데.”

    “예술 계통이 유럽권으로 진출하면 일단 오오― 하고 보는 것도 있고요.”

    “너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안 좋은데. 유럽에 진출했다고 무조건 잘된 일이라 보는 것도 좀….”

    유럽 문학 시장 진출은 모험 중의 모험.

    벌써부터 설레발을 치게 하고 싶진 않다.

    “…인터뷰 한번 해야겠네.”

    나는 시리얼을 우적우적 먹으며 말했다.

    내키진 않지만 어쩌겠는가.

    사람들이 나를 문단의 신데렐라 취급을 하게 두느니.

    나서서 한마디 하는 게 낫지.

    또, 이 관심을 좀 이용할 필요도 있고.

    * * *

    Y일보 문화부 응접실.

    나는 서인희 기자와 마주 앉아 있었다.

    “작가님, 이것부터.”

    서인희 기자는 책 몇 권을 꺼냈다.

    <내외인>과 <다시 사는 일>들이었다.

    “이걸 왜 몇 권씩 가지고 있어요?”

    “동료들도 부탁하더라고요. 사인만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나는 그 책들에 사인을 했다.

    서인희 기자는 웃으며 책을 받아갔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녹음기를 켜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내외인> 나오기 전에 인터뷰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 참 빨라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번에는 인터뷰를 하겠다고 먼저 연락을 주셔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내외인>의 프랑스 진출, 실컷 물어봐도 될까요?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셔서요.”

    “그럼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도 있고요.”

    “그럼… 어떤 과정으로 <내외인>이 프랑스 굴지의 문학 출판사 리브레로 들어가게 된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그간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놓았다.

    막상 말하고 보니 긴 이야기였다.

    서구권에 내 책을 소개해 달란 조건으로 도마크 출판사와 <다시 사는 일> 계약을 한 것.

    <다시 사는 일>이 10쇄가 넘고 소개권을 얻어 낸 것.

    <다시 사는 일> 대신 <내외인>을 밀어붙인 것.

    영미권이 아닌 유럽권을 노린 것.

    서인희 기자의 얼굴에 점점 놀라움이 번졌다.

    “와… 그럼 <다시 사는 일>을 도마크 출판사와 계약했을 때부터 모든 계획을 생각하셨던 거네요?”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때는 어떻게든 세계 시장에 나아가야겠단 생각뿐이어서요. 그때그때 제 눈앞에 있는 산을 넘은 것뿐이죠.”

    “하지만 <내외인>을 프랑스에 보낸 건… 제가 생각해도 꽤 그럴싸해요.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음… 확실히 영미권보다는 유럽권 독자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유럽 시장을 선택했죠.”

    “다시 생각해도 책을 보낸 과정이 정말 독특해요. 대부분 해외의 출판사가 한국의 판매 지표를 보고 컨텍을 하잖아요.”

    “그렇죠.”

    “그렇데 어떻게 작품을 ‘소개 보낼’ 생각을 하셨어요? 게다가 일본 출판사를 통해서요.”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기 싫었어요. 마침 도마크에 그런 시스템이 있으니, 이용하자 싶었죠.”

    “진취적이시네요.”

    서인희 기자가 씩 웃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 이왕 작가로 사는 김에.”

    “일본을 넘어 유럽으로, 그럼 결국 세계 문학 시장에 나아간 건데… 소감을 좀 들어 봐도 될까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인터뷰를 하려고 했어요.”

    “네?”

    “많은 분들이 제가 작은 한국 시장을 버리고 큰 유럽 시장으로 나가 버린 줄 아세요.”

    “아하.”

    “하지만 전혀 아니거든요. 저는 그냥 여기, 한국에서 계속 글을 쓰고 있어요. 한국어로요. 프랑스 시장은 제 문학을 내보이는 또 다른 하나의 시장일 뿐이에요.”

    “저는 독자 분들께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은데요. 이건 오프더레코드 할게요.”

    서인희 기자는 녹음기를 껐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상 작가님이 한국 문단에 실망을 하고 유럽 시장에 진출했다…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불편한 이야기긴 하지만, 대한문학상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잖아요.”

    “오프더레코드 안 하셔도 돼요.”

    “네?”

    “전 이 내용 나가도 상관없거든요.”

    “…그럼.”

    서인희 기자가 다시 녹음기를 켰다.

    “언젠가 제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어요. 제 소설의 가치는 제 방식으로 증명하겠다고.”

    “그러셨죠. 저도 그 기사 봤어요.”

    “유럽 문학 시장은 한국 문학 시장보다 특별하지 않아요. 다만 유럽 문학 시장이 한국 문학에 익숙하지 않아서, 작가로서 좀 어려운 점이 있을 뿐이죠. 두 시장 모두 제 소설의 가치를 증명할 동등한 장이에요.”

    “그럼 한국 독자 분들은….”

    “제 소설의 가치를 가장 먼저 증명해 주신 감사한 분들이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이 이야기를 정말 하고 싶었어요. 다들 저를 신데렐라 취급하셔서.”

    서인희 기자가 아하하 하고 웃었다.

    “신데렐라라. 재밌는 말이네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럽 문학 시장은 왕자님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직 거기서 제 책은 단 한 권도 안 팔렸어요. 앞으로 한 권도 안 팔릴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잘 팔릴 것 같은데요? 저만의 생각일까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하하… 유머가 느셨네요. 그럼 요새는 계속 집필을 하고 계신 건가요?”

    “네. 이번에 무라카미 히루키 작가의 새로운 단편집 <밤 11시의 공사>가 나와요. 거기에 들어갈 추천사를 어제 겨우 다 썼어요. 그리고… 재미있는 일을 준비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일이요?”

    나는 씩 웃었다.

    <내외인>의 이야기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홍보.

    “몇몇 작가들과 앤솔로지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어머, 앤솔로지요? 그 소식은 처음 들어 봐요.”

    “아직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아서요.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현민상 시인과 김미소 작가, 한지온 작가, 그리고 저까지 네 명이 작품을 써서 신―문학 플랫폼을 통해 올릴 예정이에요.”

    “기억이라… 멋진데요? 그런데 왜 갑자기 앤솔로지를 기획하시게 된 거예요?”

    음… 구인회 이야기를 할 순 없겠지.

    하지만 이번 생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제가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장하늘 씨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해 봤잖아요.”

    “아, 그렇죠. 저 <은은> 좋아해요. 그 노래, 작사가가 이상 작가님으로 올라가 있죠?”

    “네. 개사는 장하늘 씨가 했지만, 올리는 건 그렇게 됐죠. 아무튼 작가는 외로운 직업이잖아요. 동료가 있어도 함께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고.”

    “음… 그럴 것 같아요.”

    “많은 분야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는 순간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문학에서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획해 보게 됐어요. 소재를 함께 생각하고, 작품을 나누고… 다른 작가와 자신의 상상력을 비교도 해 보는 거죠.”

    “그렇군요. 나중에 책으로도 나오겠죠?”

    “반응이 좋으면 그렇게 되지 싶어요.”

    “각자 어떤 내용을 쓰셨는지 궁금한데요. 이상 작가님은 어떤 작품을 쓰셨어요?”

    “거기에 관해선 한마디만 해 드릴 수 있겠네요. 시가 아니라 소설을 썼다고요.”

    “소설! 많이 기다렸어요. 이상 작가님, 시도 멋지지만 단편 소설을 내신 지 오래됐잖아요.”

    “맞아요. 오랜만의 단편 소설이죠.”

    “그래도 한 가지 힌트를 주실 수 있을까요?”

    “음… 지금의 제가 바라보는 저의 옛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요?”

    “결국 이상 작가님의 이야기네요.”

    “작가의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소설이란 없으니까요.”

    나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저희 네 사람의 작품 모두, 다음 주 자정에 신―문학 앤솔로지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인터뷰가 끝난 후.

    서인희 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외인> 프랑스 진출에 대해 말씀하시려는 줄 알았더니, 앤솔로지 홍보를 하러 오셨군요?”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나는 서인희 기자와 가볍게 악수를 했다.

    내 행보가 이슈가 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 이상 대한문학상과 엮여 가십으로 소비되긴 싫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이야기되어야 하니까.

    * * *

    Y일보와의 인터뷰 이후.

    인터넷 뉴스는 내 말들을 무한대로 복제 재생산했다.

    역시 인터넷 세상이란 무섭다.

    여론의 관심은 ‘신데렐라 이상’에서 ‘앤솔로지’로 서서히 옮겨 갔다.

    신라문학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독자들에게 다소 낯선 앤솔로지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해 올렸고, 배너까지 달아 줬다.

    앤솔로지의 마감은 한 달 뒤.

    슬슬 집필을 시작해야 한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지금에야 글감을 정했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의 김해경.

    ‘이상’이라는 작가의 자아를 만든 시작점.

    한 번쯤은 그 기억을 짚고 넘어가고 싶었지.

    그리고 그 유년의 시간을 마주하려면….

    ‘그곳’으로 가야 한다.

    집을 나서는 내게 지훈이 물었다.

    “형, 어디 가요?”

    “소설 때문에.”

    “엥? 작업실 두고? 학교 도서관에서 쓰시게요?”

    “아니. 쓰려는 게 아니라, 취재를 나가려고.”

    어리둥절해 하는 지훈을 두고 집을 나섰다.

    차도 가져가지 않았다.

    목적지는 종로구 통인동 154번지 골목.

    내가 태어나고 자란 ‘터’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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