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70화 (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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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69)

다시 사는 천재 작가 69

종로의 오뎅바.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우린 술집으로 왔다.

테이블 가운데에서 부글부글 끓는 오뎅탕.

가을밤 찬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기는 유리창.

사교성과는 거리가 먼 성인 남자 둘.

어색하고 적막한 분위기.

이렇게 급하게 만나놓고, 우린 말이 없었다.

그저 각자 오뎅을 먹었다.

난 속으로 고민중이었다.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어떻게 내 시를 해석했냐고?

놀라운 해석에 감탄했다고?

생각 끝에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요.”

“뭐가요?”

전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

내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거다.

내 ‘시’에만 관심이 있는 거지.

“아니에요.”

나는 그냥 그러고 말았다.

내 칭찬을 받고 싶어 비평을 쓴 게 아님을 알기에.

이 사람은 아마 내 고마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사람이다.

남들이 다 어렵다하는 내 시는 잘도 이해해 놓고선.

비평가에게 고마움을 느낄 일이라.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겠지.

오뎅을 우물거리던 오진우 평론가가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꺼냈다.

“작가님의 시, ‘이상’의 시와 닮았습니다.”

나는 막 잡았던 오뎅꼬치를 내려놓았다.

“<오감도>를 쓴 ‘그’ 이상이요?”

“네.”

“어떻게 닮았는데요? 그 사람도 나도 시에 숫자를 써서?”

“아니요. 그런 피상적인 시도는 다른 여러 시인들도 지겹게 해왔던 겁니다. 두 분의 유사점은... 근본적인 데에 있습니다.”

“흥미롭네요. 들어보고 싶은데.”

“‘그’ 이상의 시도 그렇고 작가님의 시도 그렇고, 세상을 수식화해서 바라본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자기 주관과 내면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일 겁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이야기를 듣다가, 그에게 물었다.

“그럼 차이점은요?”

“흠... 작가님 시의 감정이 더 풍부한 느낌이긴 합니다.”

“이를테면요?”

“단순하게 말하긴 힘든데...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이상도 지금 제 앞에 있는 ‘이’ 이상도 모두 시에 숫자나 수식을 쓰길 즐겼습니다. 관건은 그 목적입니다. ‘그’ 이상은 그 수식의 난해함이 보여주는 삶의 미스터리에 집중합니다. 그러다가 내면이 아름답게 침몰되어버린 느낌이에요. 하지만 작가님의 시는 좀 더...”

좀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감정적으로. 삶의 긍정성과 부정성, 이면을 보두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은은>을 통해 불균형한 삶과 에로스적 삶을 모두 드러낸 것처럼요.”

“영광이네요. ‘그’ 이상과 견주어 주시다니.”

“두 분 모두, 어느 쪽도 특별히 영광일 이윤 없을 겁니다.”

편견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에게 나는 등단도 안 한 아마추어 시인이다.

그런데 ‘그’ 이상과 나를 동급으로 생각하다니.

시 앞에선 어떤 이름값도 신경 쓰지 않는 줏대.

무조건 ‘시’만을 보는 맹목성.

...마음에 들었다.

또, 내게서 1930년대의 ‘이상’을 읽어낸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전생에 이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다.

“오진우 평론가님.”

“네.”

그를 만나러 오는 길.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제게 <내외인>이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 책이 곧 프랑스 출판사에 소개될 예정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는 시종 심드렁했다.

정말이지 시 외에는 관심이 없군.

“하지만 그들이 제 작품을 발간해줄 거란 장담은 할 수 없죠. 냉정하게 말해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기엔 작품 편수가 빈약하거든요.”

“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제 시도 함께 노출시켜보고자 합니다. SNS를 통해서.”

그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날 보았다.

나는 이어 말했다.

“가능하다면, 당신의 비평도 덧붙여서 말입니다. 마치 하나의 ‘짝패’처럼.”

“짝패... 말입니까?”

짝패.

한 마디로 짝을 이루는 두 패를 의미했다.

비평을 문학의 부산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잘 쓴 비평 다르다.

문학과 짝패가 되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오진우의 평론이 그런 경우다.

“제 시가 모두에게 이해받고 사랑받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굉장히 아름답지만... 굉장히 난해한 시인 것도 사실입니다. 난해함 속에서 아름다움이 탄생하는 경우죠.”

난해함 속의 아름다움.

그것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미학을 가졌지만,

그만큼 대중은 다가올 수 없을 테니.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시를 꼭 모두에게 이해시켜야만 합니까?”

“...”

나도 한때는 딱 저런 말을 했다.

내 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을 받았을 때.

일종의 자기합리화랄까.

속으론 그 누구보다도 이해받고, 인정받길 바라면서도.

나는 오진우 평론가에게 말했다.

“이해시키는 게 아니라, 더 잘 보여주는 겁니다.”

“....”

“문학의 목적은 작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일이지 난해한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흠.”

“물론 오진우 평론가의 글을 제 시에 대한 ‘정답’처럼 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 답 중 하나로 제시하고는 싶어요. 감상의 길을 열어둔다고 해야 할까요.”

시의 감상을 어디까지나 독자들의 몫이다.

다만 그 의미를 궁금해 할 독자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할 순 있지.

“어떻습니까? 제 시와 함께 당신의 비평을 프랑스 쪽에 노출시키는 게.”

그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프랑스와 내 시, 그리고 자신의 비평을 열심히 연결해보는 것 같았다.

“확실히 프랑스 문학계가 좋아할 만한 시풍입니다.”

“당신의 비평도 마찬가지죠.”

오진우 평론가가 픽 웃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좋습니다. 번역해서 SNS에 올리는 것 정도는. 단, 하나만 약속해주십시오.”

“뭡니까?”

“시를 계속 써주세요.”

그건,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남에게 관심 없기로 유명한 오진우 평론가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작가님의 시에 대한 비평을 쓸 때, 머리가 환해지는 걸 느꼈거든요... 그런 기분 아니, 쾌감.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제 시에 대한 비평을 계속 쓰고 싶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네. 그런 시를 계속 보고 싶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

한국 문학계의 발전이나 작가의 의무를 운운하며 포장할 법도 한데.

이 사람도 참 나 못지않게 뻔뻔하다.

하지만 그 뻔뻔함에서 어쩐지 솔직함과 듬직함이 느껴졌다.

이런 비평가가 동시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인에게 큰 힘이 되지.

“좋습니다. 앞으로도 시를 써보도록 하죠.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는 약간 실망하는 눈치였다.

“다음 작품은 시가 아닙니까?”

“당분간은 단편 소설을 써야 해서요. 그렇지 않아도 산문을 좀 쓰고 싶기도 하고요.”

“그럼 저는 다시 시를 쓸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소설 읽어보겠단 소리는 죽어도 안 하는군.

하지만 강요할 일은 아니다.

이런 타입의 사람은 멋대로 살아야 좋은 비평이 나오는 걸지도.

어쨌건 허락은 받은 셈이었다.

어서 나와 그의 글을 프랑스어로 번역해야겠다.

***

적당한 번역자를 찾는 일.

그건 지훈에게 맡겼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어와 프랑스어는 언어적 특질이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언어적 미학을 극한으로 올리는 ‘시’라는 장르.

최고 수준의 문학 번역가만이 제대로 해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훈이 열심히 번역자를 알아봤지만, 좀처럼 구해지지 않았다.

실력이 입증된 사람은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맞는 사람은 실력이 부족했다.

우리의 마지막 방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라문학에 연락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그런 번역자는 저희 쪽도 귀합니다. 교수급이나 되어야 가능하죠. 없진 않습니다만... 돈이 굉장히 많이 들 겁니다.

지훈은 이 말을 내게 그대로 전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얼마가 들건 상관없어. 무조건 연결해달라고 해.”

신라문학 급의 출판사라면 믿을 만 했다.

아니, 현재로선 최선이었다.

번역자는 다름 아닌 대한외대 불문학과 교수.

그는 번역료 치곤 어마어마한 금액을 불렀다.

나는 그 금액 그대로 주겠다고 했다.

단 하나의 조건을 달고.

“일주일 안으로 부탁한다고 해. 원고는 바로 드리겠다고.”

교수는 조금 갑작스러워했지만...

금액이 금액인 만큼 결국 계약이 성사됐다.

번역을 기다리는 동안 한국 문단도 말들이 많았다.

내 시가 비평과 함께 논란이 된 것이다.

신-문학의 독자들은 대부분 내 시에 우호적이었다.

오진우 평론가의 비평이 더해지고 나서는 더욱.

-이 시, 이렇게 읽는 거구나.

-미쳤다. 이상도 천재, 오진우도 천재.

-내가 저번에 디지털 어쩌고 말했죠? 시 공부한 보람이 있네.

-대부분 시 읽고 비평 읽으면 김빠지는 느낌인데, 이건 비평까지 읽으니 시가 더 풍부해 진 느낌. 시너지 효과 오지네.

-크으. 삼각형 천재 아니냐? 그런데 이 비평 나오기 직전에 이상이 한국대 강의하면서 삼각형 구도 얘기 했다며? 두 사람 소울메이트냐.

-나 지방 잡지로 등단한 시인이야. 지금은 시 안 쓰고 회사 다님. 아무튼 시인은 소설가랑 달라. 대중들이랑 거리가 있는 만큼, 비평가를 잘 만나야 해. 나는 그런 비평가를 못 만났지만...

-이거 보니까 나도 시 쓰고 싶어졌어. 뭐부터 시작하면 됨?

한편, 문단의 반응은 딱 반으로 갈렸다.

<시인을 흉내 내는 이상>

<아마추어 시인과 그에 반응하는 비평>

등등.

내가 시로 등단하지 않은 것에 딴지를 거는 쪽과

<등단제를 허물고 등장한 세 편의 시>

<이상, 시와 소설을 아우르는 천재성의 발로>

등등.

내 작품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는 쪽.

바람 잘 날 없는 문단은 잠시 뒤로해도...

우리 집도 정신이 없는 건 마찬가지.

지훈은 번역을 맡기는 일에,

나는 다음 작품에 대해 고민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현민상 시인과 한지온 작가는 언제쯤 답을 주려나.

***

현민상 시인의 자취방.

그는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화면에 떠 있는 건 오진우의 비평,

<이상의 시 작품론 – 삼각형의 눈>.

현민상 시인은 적잖은 충격에 싸여 있었다.

소설은 노력하면 웬만한 글은 쓸 수 있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노력에 많이 좌우된다.

그러나 시는 아니다.

사물을 보는 천부적인 눈.

그것을 이미지로 만드는 언어 감각.

시는 단연코 재능의 세계다.

처음 이상의 <은은>을 봤을 때,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신춘문예를 통해 그가 시인으로 등단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간혹 가다가 시와 소설 모두 잘 해내는 ‘먼치킨’들이 있으니.

<무한 설계도>와 <입>을 봤을 땐, 어렵고 난해했다.

그러나 두 시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에너지.

현민상 시인은 바로 매료됐다.

그 시들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렇게 끙끙거리고 있을 때, 오진우의 비평을 봤다.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세 개의 시에게도, ‘이상’에게도.

그는 그냥 시인이 아니다.

천재다.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쓰지 못할 시를 쓰는.

게다가...

“비평에게 먹히지 않았어.”

‘먹힌다’는 것.

비평이 시의 의미를 모두 파헤쳐버리는 걸 의미했다.

마치 수학 문제의 답안처럼.

그런 시는 더 이상 읽힐 이유가 없다.

시인들이 비평을 원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상의 시는 아니었다.

오진우가 내린 해석은 독자의 감상에 또다른 출발점 역할을 한다.

비평과 시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낸 것이다.

한국대 앞에서 만났던 이상.

준수한 얼굴에 당당한 태도.

문단에서 자신에 대해 찧고 빻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여유.

이상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만큼,

문단이 보여주는 모습은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등단?

아마추어?

천재에게 등단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가 왜 문단의 인정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는 시인으로서 발끈했다.

또한 문학을 하는 동료로서 이상에게 더 끌렸다.

‘이상 작가님 특강이 화요일이었지 아마?’

그는 한지온 작가에게 톡을 보냈다.

-누나. 다음 주 화요일에 한국대 갈래?

화요일엔 두 사람 모두 한국대 수업이 없다.

똑똑한 한지온 작가라면 이 말 뜻을 이해할 거였다.

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

-가자.

70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번역이 끝났다.

대한외대 불문과 교수는 어제 새벽에 메일을 보냈다.

― 몇 번이나 재교를 봤으니 틀린 곳은 없을 겁니다. 비평과 함께 보니 더 좋은 글이더군요.

이른 아침.

나는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지훈을 불렀다.

“지훈아. 이 프랑스어 번역본, SNS에 태그해서 올려. 유럽 사람들 많이 쓰는 데로. 리브레가 어느 SNS를 쓰는지도 확인하고. <내외인>이랑 내 이름, 리브레까지 꼭 태그하고. 알았지?”

“맡겨 주세요. 기깔나게 뽑아 볼게요.”

잠시 후, 지훈은 모든 SNS에 프랑스 버전의 내 시와 비평을 올렸다.

본격적인 디자인을 넣어 마치 홍보물처럼.

“또 뭐 할 거 있을까요?”

지훈이 시켜만 달라는 듯 말했다.

“아니, 됐어. 이제 우리가 할 건 끝났어.”

할 만큼 하기도 했고.

남은 건 리브레가 이 피드를 발견하길 기다리는 것뿐.

나는 미쯔하루 편집장에게 SNS로 메시지를 넣었다.

― 이상입니다. 궁금한 게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갑자기 연락을 드립니다. 제 책 <내외인>이 리브레 쪽으로 넘어갔을까요?

답장은 바로 왔다.

― 네. 작가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신 다음 날 보냈습니다. 전자 문서로 보냈으니, 지금쯤 다 확인을 했을 겁니다.

그래?

그렇다면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겠군.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SNS에 시와 비평을 올린 지 여섯 시간 후.

작업중이던 지훈이 날 불렀다.

“형!”

“왜?”

“본 것 같아요.”

지훈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시와 비평이 올라간 내 SNS페이지 하단.

‘좋아요’를 뜻하는 하트를 누른 사람 목록에는, ‘리브레’ 출판사가 있었다.

* * *

일주일 전.

프랑스 파리 제8지구.

‘리브레’ 출판사 제1회의실.

오늘의 회의 안건은 도마크의 소개 도서 아홉 권.

이 중 이번 분기 ‘리브레’의 신간이 될 도서는 단 두 권

이 회의의 두 축은 단연 마리옹 비누쉬 편집장과 에바 위페르 편집위원 겸 해외 저서팀 팀장.

그러나 이 두 여자가 함께 회의에 참석한다는 것.

그것은 한바탕 이어질 신경전을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의미 없는 싸움은 아니다.

다만, 문학을 바라보는 입장이 서로 달랐다.

마리옹 편집장은 확실한 지표에 투자를 하는 사업가.

에바 편집위원은 작품의 문학성에 한 표를 던지는 편집자.

트러블이 생기기 쉬운 구조일 수밖에.

“사실….”

마리옹 편집장이 회의를 이끌기 시작했다.

“한 권은 정해진 셈이죠.”

편집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조 유코의 <심슬리 저택>.

이 책은 저번 분기 이 회의에서 아깝게 탈락했고, 그동안 일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버렸다.

한 마디로, 리브레의 판단 미스.

“공포 소설이라 좀 꺼려졌던 게 사실이지만, 이 지표면 공격적으로 홍보를 나가 보죠.”

편집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에바 편집위원은 내심 울컥했다.

저번 분기, <심슬리 저택>을 밀어붙인 건 그녀였다.

하지만 마리옹 편집장이 끝내 퇴짜를 놓았다.

일본에서 7쇄까지밖에 팔리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

회의는 계속됐다.

“이제 한 자리가 남았군요. 영 아니올시다 하는 책부터 좀 빼 볼까요?”

“안노 유스케의 <한 잔의 독>. 이건 빼죠. 작품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독자층이 애매해요. 감성도 프랑스 쪽과는 맞지 않고.”

“이치조 산케이의 <남자 혹은 여자>, 이것도요. 특별할 것 없는 로맨스 소설 같은데요.”

냉정하고 살벌한 회의였다.

‘리브레’의 이름을 달고 나갈 책.

문학성과 성공 지표, 어느 것도 놓칠 수 없었다.

마리옹 편집장이 말했다.

“준 마치의 <노란 글자>는 오랫동안 일본의 베스트셀러였어요. 한 살인자가 평생 지니고 있던 비밀에 대한 이야기고요. 사회에서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뤘는데, 지표나 주제 의식 모두 좋지 않나요?”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에바 편집위원이 말했다.

“그 소설도 물론 웰메이드지만, 강력한 힘이 없어요. 어쩐지 기시감도 있고요. 저는 이상의 <내외인>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두 남자의 자아가 서서히 뒤섞여 가다가 한 명의 사람으로 비춰지면서 끝나죠. 그리고 그 흐름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미학이 아주 뛰어나요.”

다른 편집위원이 거들었다.

“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말에 동의해요. 지금 여기 올라온 모든 책들을 통틀어도… 이런 미학적 성취를 이룬 작품은 없어요. 문학성만 따지면 <노란 글자>는 댈 게 아니던데요.”

그러자 다른 편집위원이 반박했다.

“하지만 지표가 부족해요. 5쇄도 넘기지 못한 신간에 뭘 믿고 ‘리브레’의 이름을 달까요.”

“지표가 부족하다는 말에 일리가 있어요.”

마리옹 편집장이 말했다.

“문학적으로는 뛰어나지만 그것이 성공을 담보하진 않죠. 이 책이 얼마나 많은 프랑스인에게 읽힐 수 있는지가 아직 미지수라는 거예요. 아니면 다음 분기까지 기다려 보고….”

“그땐 늦을걸요.”

에바 편집위원이 말을 잘랐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얼굴에 이런 말이 스치는 듯했다.

‘또 시작됐군.’

“이 책은, 우리가 이번에 잡지 않으면 어떻게든 다른 출판사가 가져갈 거예요. 그리고 큰 성공을 이루겠죠.”

“확신할 수 있나요?”

“확신합니다.”

“근거는요?”

“이 책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어요. 이 작가… 사실 우리는 이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천재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어요. 다들 읽어 보셔서 아실 텐데요. 단지 지표를 이유로 이런 책을 놓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에바 편집위원은 점점 흥분했다.

그녀는 그 유명한 파리 소르본 대학 문학과를 수석 졸업한 수재였다.

단점이라면 다소 다혈질인 성격.

냉철한 마리옹 편집장에게 번번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절대 못 물러나.’

에바 편집위원은 또박또박하게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내외인>은 대단히 전통적인 프랑스 문학풍을 띠고 있어요. 자아가 흔들리고 겹쳐지는 모습, 마지막에 들어간 환상성. 그리고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시니컬한 문체. 프랑스인들에게 아주 잘 먹힐 소설이에요.”

“에바 편집위원.”

마리옹 편집장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딱 잘라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편집장님.”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말, 동의해요. 하지만 출판은 문학성만으로 파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일본도 아닌 한국의 작가… 프랑스인들에게 너무나도 생소해요. 우리도 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요. 적어도 <노란 글자>를 쓴 준 마치는 이미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된 책이 두 권이나 있어요. 이 차이는 커요.”

“이상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단 뜻인가요?”

에바 편집위원은 화를 꾹 눌러 담고 말했다.

“그래요. 그의 작품관, 문학관을 알 만한 자료가 없죠. <내외인> 한 권으로는 부족해요.”

“그럼 제가 그의 작품관을 더 증명할 만한… 그런 자료를 찾으면요?”

그럴 시간이 어딨습니까?

마리옹 편집장은 그렇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저번 분기에 <심슬리 저택>을 놓친 일.

그 일로 마리옹 편집장도 아직 면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소르본 문학쟁이의 말을 들어 줄 때군.’

“그래요, 에바 편집위원. 그럼 그 건은 당신에게 맡기죠.”

에바 편집위원의 얼굴이 그제야 풀렸다.

그러나 마리옹 편집장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한국의 신인 작가다. 프랑스어로… 아니, 적어도 영어로 된 자료도 찾기 힘들 텐데.’

그 순간, 에바 편집위원은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내외인>은 될 작품이야. 자료가 없으면, 작가에게 요청을 해서라도 만들어 버려야겠어.’

회의가 끝난 후 에바 편집위원은 ‘해외 문학팀’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녀 옆자리의 신입 사원이었다.

“장 사원, 한국계였지?”

“네. 그런데요?”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을 할 젊은 남자.

그는 5살 때 한국에서 프랑스로 이민을 온, 장 스테판이었다.

* * *

화요일.

한국대 특강 후 습관처럼 도서관으로 향했다.

인수대에선 구할 수 없던 책들을 잔뜩 빌리는 것.

요즘 나의 새로운 취미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우웅―

톡이 하나 왔다.

김미소 작가였다.

― 작가님, 특강 끝나셨죠? 지온 언니랑 민상 오빠랑 같이 있는데 저녁 드실래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 좋죠.

나는 읽던 책을 추리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한국대 근처의 선술집.

그들은 안주를 저녁 삼아 먹고 있었다.

대학생이라도 된 것마냥 들뜬 분위기.

“이상 작가님.”

현민상 시인이 손을 들어 보였다.

반주를 좀 했는지, 얼굴이 붉었다.

“저희, 그 얘기 하고 있었어요.”

한지온 작가가 내 앞에 잔을 놓으며 말했다.

“무슨 얘기요?”

“앤솔로지요.”

“이 두 사람, 하겠대요.”

김미소 작가가 말했다.

“정말요?”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네. 안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민상이도 같은 생각이에요.”

“사실 좀 고민했거든요.”

현민상 시인이 말했다.

“문단에서 미움받기 싫어서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알죠.”

대한문학상 본심에 오른 상태에서 이상과 함께 활동한다는 것.

정치적으로 썩 좋은 선택은 아니니까.

“그래도 작가님 작품이랑 비평을 같이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민상 시인이 말했다.

“작가님이 더 유명해지기 전에 이번 기회에 같이 ‘놀아 봐야겠다고’요. 상은 개나 주라고 하고요. 하하….”

취했군.

하지만 의외로 한지온 작가도 그 말을 거들었다.

“맞아요. 공신력도 없어진 상 같은 거, 저희도 별로 내키지 않아요. 민상이 말처럼 작가님이랑 놀아 보려고요.”

‘논다’라.

재밌는 표현이었다.

문학은 유희다.

그것도 고도의 미학적 유희.

‘구인회’도 문학을 그렇게 생각했지.

문학이란 그럴듯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게 아니라, 문학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어느새 술이 채워진 잔을 들었다.

“좋아요. 그럼, 같이 한번 놀아 보죠.”

그들이 잔을 부딪쳤다.

“짠!”

우리는 술을 한 모금씩 들이켰다.

계획에 없던 음주였지만 즐겁게 마실 수 있었다.

“그런데… 김미소 작가님 괜찮으시겠어요? 논문 준비랑 병행하시려면….”

“죽었다 생각하고 해야죠. 괜찮아요. 언제나 바쁜 건 똑같으니까.”

“김미소는 한 달에 단편 소설 하나씩 쓰는 괴물이니까 괜찮을걸요?”

현민상 시인이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했다.

“말을 맙시다.”

김미소 작가는 됐다는 듯 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몰골’을 보아하니 어제도 학교에서 밤을 샌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자, 그럼 이제 실질적인 얘기를 해 봐요. 저는 앤솔로지를 책으로 내는 것도 좋지만, 일단 신―문학에서 온라인으로 발표했으면 해요.”

“저희도 그게 좋을 것 같단 얘기를 했어요. 부담도 적고.”

한지온 작가가 말했다.

“그럼 제가 신라문학에 앤솔로지를 위한 게시판을 마련해 줄 수 있느냐고 요청해 볼게요. 그게 잘 되면 출판까지. 동의하세요?”

내 물음에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 작가님, 이번에는 뭘 쓰실 거예요? 소설? 시?”

한지온 작가가 물었다.

그러자 현민상 시인이 졸랐다.

“시 쓰세요, 시.”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소설 쓸 거예요. 단편 소설.”

“왜요? 시 둘, 소설 둘. 딱 좋은데.”

“한동안 시를 붙잡고 있었더니, 산문을 쓰고 싶어서요. 시는 쓰고 싶은 게 있을 때 다시 쓰면 되고요.”

“아니, 그래도….”

“민상 오빠, 그만. 사심 채우지 말고.”

김미소 작가가 현민상 시인의 말을 딱 잘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김미소 작가가 듬직하다.

한지온 작가가 말했다.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얘기만 남았죠?”

가장 중요한 얘기.

나는 대답했다.

“네. 앤솔로지의 주제어. 즉, 키워드를 잡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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