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61화 (6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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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60)

다시 사는 천재 작가 60

드라마 <무너지는 날> 12화.

엠플릭스를 통해 보는 중이다.

매번 본방송을 챙기진 못해도, 이렇게라도 확인을 하고 있다.

폐가에 남아있는 기억을 읽은 김유한.

1930년대에 이 집에 살았던 사토미 유우와 마주하게 된다.

그는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부모의 죽음이 예전부터 예견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 중심에는 삼촌이 있다는 사실 역시.

극의 감정이 최고조로 끌려올라가는 부분.

분노와 혼란으로 어쩔 줄 모르는 김유한.

그런 김유한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토미 유우.

사토미 유우 역을 맡은 한예린 배우의 일본어 연기.

얼마나 제대로 배웠는지, 정말 자연스럽다.

그녀는 요즘 예능에 얼굴을 많이 비친다.

강인춘 PD의 장난스러운 말에 따르면

‘예능 끼라고는 1도 없는 최오준이를 대신해서 고군분투하는 중’이라고.

지훈이는 매 화가 끝날 때마다 시청률과 시청자 반응을 정리해서 보여줬다.

12화가 끝나고 시청자 반응도 최고조로 들썩였다.

-한예린 너무 예쁘다ㅜㅜ 발음도 진짜 일본인 같고. 드라마 흐름 자체가 진짜 자연스러워서 하나도 이질적이지 않음.

-감독도 감독이지만 이 드라마 소설가가 쓴 거 맞아? 한국 소설은 죄다 우울하기만 한데 어떻게 이런 긴장감 있는 드라마를 썼지?

-이 작가 작품 영화로도 나온대. 나 책으로는 안 읽었는데 영화관으로는 가려고. 그런데 예술영화라서 일반 영화관에선 상영 안 할걸?

-나 진짜 오준앓이ㅠㅠ

-최오준 이 작가 영화에도 나옴. 감독은 조인후. 진짜 대박 아님?

-이상 작가랑 조인후 감독이랑 각 잡고 예술영화 찍는다 이거지? 거기다 최오준 끼얹는 거고? 됐다. 이대로 오스카로 가즈아-!!

-오스카 가즈아!

-가즈아!!

다들 즐거워해주니, 뿌듯하다.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건 대중문학만의 매력이지.

이제 <무너지는 날>도 2주 후면 종영이다.

등단 직후, 우연한 기회로 해 본 드라마.

끝이라 생각하니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한편 영화 <내외인>도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있다.

촬영지는 조인후 감독의 저택.

나와의 약속대로 조인창 교수의 방을 쓰기로 한 것이다.

-이 작가가 와줬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촬영이니만큼, 함께해야 의미가 있잖아요.

조인후 감독이 구상한 마지막 장면.

어떻게 구현할지 나 역시 궁금하던 차였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연희동으로 향했다.

조인후 감독의 저택은 부산스러웠다.

평소에 항상 닫혀있던 주차장 문도 열려 있었고,

촬영차량을 오가는 스텝들은 전깃줄이다 뭐다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이상 작가님.”

누군가 아는 체를 한다.

조인후 감독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정원에서 스텝들에게 주스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인사를 나누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 집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 봐요.”

“말도 마세요.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괜히 죄송하네요. 없던 장면이었는데 괜히 저 때문에.”

“아니에요. ‘그 방’은 작가님 건데요.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 얘기 들어보니 정말 좋던 걸요.”

예전에 조인후 감독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그녀도 한때 예술영화의 배우였다고 했다.

지금은 가정주부지만 남편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길 즐긴다고.

“들어가 보세요. 지금 ‘그 방’에 다들 모여 있거든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1층의 가장 안쪽 방.

조인창 교수의 방 근처에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작가님!”

마침 장하늘 배우가 날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와주셨네요!”

“네. 촬영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제가 방해되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계시면 더 든든하죠.”

“그런데, 최오준 배우님은요?”

“오준 오빠는 방 안에 있어요. 마지막 장면 촬영 준비 중이거든요. 지금 배경 세팅하고 정신 하나도 없어서 나와 있는 중이에요.”

“배우님도 오늘 촬영 있으세요?”

장하늘은 편한 차림에, 긴 머리를 발랄하게 올려 묶었다.

<내외인>을 찍었을 법한 모습은 아니다.

“제 촬영은 예-전에 끝났죠. 저도 그냥 구경 왔어요. 이 마지막 촬영 부분. 책에는 없는 영화만의 오리지널이잖아요. 어떻게 찍을지 궁금해서 와봤어요.”

장하늘은 <내외인>을 잘 알고 있었다.

겨우 이십대 초반인데, 작품 몰입력이 대단하지 싶다.

“아, 그러고 보니 <은은>은 잘 되어가요?”

내가 물으니 그녀가 마침 잘 됐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제 휴대폰과 이어폰을 꺼냈다.

“저, 녹음해봤거든요.”

“벌써요?”

“작사 끝나자마자 바로 녹음 들어갔죠. 들어주시겠어요?”

장하늘은 내게 이어폰을 내밀었다.

그리고 씩 웃더니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버렸다.

촬영은...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노래 한 곡 정도 들을 여유는 되겠지.

나는 이어폰을 귀에 끼고 휴대폰의 음악 어플을 재생했다.

통기타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장하늘의 길고 낮은 허밍.

몽환적인 음율을 타고 나의 가사가 흘러간다.

시의 느낌을 살려 미묘하게 나뉜 악장.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내뱉는 가사들.

-당신은 웃을 마음...

흩어진 다짐 뒤 남은 건...

어제와 같은 오늘, 그댄...

내 마음 속 퍼지는 은은...

한 노래를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밥 딜런이란 가수가 있다.

서정적인 가사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천재 가수.

갑자기 그의 생각이 난다.

가사가 예술이 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멜로디를 만나야 한다.

멜로디가 예술이 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가사가 만나야 하고.

이 가사와 멜로디의 조화.

<은은>이 그 조화를 성공시킨 건, 장하늘과 나의 공감 덕분이겠지.

그리고 후렴구.

-은은... 은은... 은은...

후렴구는 별다른 가사 없이 ‘은은’으로만 채웠다.

이건 내 아이디어였다.

녹음실에서 들었던 장하늘의 허밍이 인상적이어서.

과감하게 '은은'만으로 후렴구를 채워 본 것이다.

들어보니 역시, 잘한 일 같았다.

내 시야에 불쑥 장하늘이 나타났다.

나는 이어폰을 뺐다.

“어때요?”

“엄청난데요? 진심으로.”

“그쵸? 제가 들어도 그래요.”

“이 노래, 앨범에 내실 거예요?”

장하늘은 SNS를 통해 우리의 콜라보를 밝히기로 했다.

하지만 정식 앨범 이야기는...아직이었다.

조금은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건 좀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서...”

“내주세요.”

그녀가 의외라는 듯 나를 보았다.

“정말요? 부끄러워하실 줄 알았는데. 인터뷰같은 것도 잘 안 하신다고 해서...”

“아뇨. 꼭 내주세요. 온 세상 사람들이 이 노래를 다 들었으면 좋겠네요. 요새 음악은 싱글로 한 곡 한 곡 나오잖아요.”

이렇게 좋은 노래가 발매가 안 되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핸드폰과 이어폰을 장하늘 배우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럼 허락하신 거예요?”

“콜라보레이션인 거, 꼭 밝혀주시고요.”

“‘이상의 시에서 영감을 받음!’ 이 말 안 넣으면 저 고소하셔야죠.”

장하늘이 장난스레 말했다.

그때, 스텝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작가님, 지금 촬영 시작할 것 같은데요. 조인후 감독님께서 찾으세요.”

“아, 예.”

우린 조인창 교수의 방으로 갔다.

그 방은... 어느새 ‘세트장’이 되어 있었다.

벽에 꽉 차 있는 책들.

방 한가운데에 놓인 원목책상과 의자.

그리고 그것들을 덮는 햇빛.

그 햇빛은 인공조명이 섞여 오묘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의자는 비스듬한 각도로, 책상이 아닌 책장을 향하고.

살짝 살짝 떠다니는 먼지와 구겨진 커튼.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허무한 풍경.

딱, 내가 상상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조인후 감독은 예민한 눈빛으로 방 안의 모든 사물들을 재점검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멋지네요. 마치, 생겨날 때부터 빈 방이었던 것 같아요.”

“후... 이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 좀 썼습니다.”

“연출은 그대로 가는 거죠?”

“그럼요.”

우린 예전 날 바로 이 곳에서 <내외인>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불현 듯 떠올린 ‘이 방’의 이미지.

조인후 감독이 불현 듯 떠올린 ‘이 방’에서의 연출.

그것이 바로 오늘 영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마지막 촬영이 시작되었다.

최오준 배우가 의자에 앉았다.

“오준아. 편하게 있어. 원작의 느낌을 떠올리면서.”

최오준 배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자신이 둬야 할 시선을 찾았다.

창밖을 보다가,

책장을 보다가,

천장을 보다가,

마지막엔 책장과 창문 사이의 빈 공간에 시선을 맞췄다.

뒤에서 봤을 땐 살짝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

“...준비 된 것 같아요.”

조연출부 막내가 슬레이트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씬 121. 테이크 1.”

탁-!

슬레이트가 내려갔다.

조인후 감독이 작게 말했다.

“...액션.”

위이잉- 하고 카메라가 돌아갔다.

많은 스텝들이 긴장된 얼굴로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최오준 배우의 뒷머리를 찍던 화면.

등으로,

다리로,

발을 훑더니 이내 바닥으로 내려온다.

최오준 배우가 아주 조심스럽게 일어나 화면각에서 사라진다.

카메라가 다시 위로 올라간다.

이제 화면에 보이는 건 빈 의자와 쏟아지는 햇빛.

“...컷.”

조인후 감독이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

스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촬영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 대한 경탄이었다.

나는 조인후 감독에게 말했다.

“...아름답네요.”

“이 방이 아니었으면, 건질 수 없는 이미지였죠.”

내 소설의 ‘빛’

그것이 영화에서 ‘흰 햇빛’으로 재구성되었다.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허무를 보여주며.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악수했다.

짝짝짝짝짝짝짝!!!!!!

박수소리가 더욱 커져갔다.

우리는 말없이 시선을 나눈 채 미소를 지었다.

그도, 나도, 영화 <내외인>의 성공을 장담하고 있었다.

***

원래 뒤풀이자리에는 잘 따라가지 않는다.

술도 그렇고, 왁자지껄한 걸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영화 <내외인>의 모든 스텝, 배우가 모인 뒤풀이.

연희동의 고깃집을 통째로 빌렸으니, 실컷 마시고 떠드는 중이었다.

“이 작가는 영화도 잘 될 것 같고... 드라마도 잘 됐고. 아주 재주가 많은 것 같아요?”

연출부 감독이 내게 말했다.

“그냥 되는대로 했던 건데... 일이 잘 풀렸어요. <내외인>도 조인후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영화화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내가 조인후 감독이랑 일을 오래 해봤는데... 저 양반 둥글둥글해 보여도 고집이 장난이 아니거든.”

“영화감독이면 당연히 그러셔야죠.”

“남의 말 절대 안 듣는 걸로 유명한데... 원작 있는 작품 하는 것도 그렇고, 시나리오도 상의해서 좀 바꿨다죠? 우리로서도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아마 다신 없을 거야.”

하고 껄껄 웃었다.

“무슨 쓸데없는 얘기 해?”

조인후 감독이 귀신같이 잔을 들고 이쪽 테이블로 찾아왔다.

“감독님 얘기요.”

“뻔하지 뭐. 나 고집 세다고 욕했지?”

“아이고, 난 우리 연출팀 식구들한테 가봐야겠네~”

연출부 감독은 술잔을 들고 쏙 다른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조인후 감독이 앉았다.

“영화 해보니까 어때요? 드라마랑은 또 다르죠?”

“각자의 매력이 있는 거죠. 영화는... 시 쓰는 것 같아요.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

“맞아요. 그 작업에 빠지면 영화 못 놓거든.”

그리고 날보고 씩 웃더니 말했다.

“어때, 영화 시나리오 해볼 생각 없어요? 진지하게.”

"시나리오요?"

"이미지에 대한 이해, 깊잖아요."

드라마를 썼을 때처럼, 또 이런 제안을 받는다.

감사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할 일은 정해져있다.

글을 쓰는 것.

내가 대답하지 않자, 조인후 감독이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래요. 결국 이 작가님은 글로, 문학으로 모든 일을 해내니까."

문학으로 모든 일을 해낸다는 것.

작가에겐 그보다 더 멋진 칭찬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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