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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59)
다시 사는 천재 작가 59
합정동 지하 모 녹음 스튜디오.
나는 장하늘 배우와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오늘은... 배우라기보단 가수인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니 유리문이 있었다.
유리문 안에는 긴 복도.
인기척을 느꼈는지 복도 끝 녹음실에서 장하늘이 나왔다.
“작가님! 어서 오세요!”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녹음실 안에는 그녀 말고도 두어 명의 스텝이 있었다.
녹음기사인 듯한 남자 한 명과 매니저인 듯한 여자.
그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와 장하늘의 만남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장하늘 역시 그들을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연예인의 사생활이란... 이런 거구나.
“촬영 때문에 바쁜 거 아니에요?”
“저 나오는 씬은 거의 끝나서요. 오준 오빠가 고생중일 거예요. 편하게 앉으세요.”
우리는 녹음실 한쪽의 소파에 편하게 마주앉았다.
복잡하게 생긴 기계와 그 너머의 녹음 부스.
나는 신기함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기하죠? 여기 오준 오빠도 와서 놀고 갔어요.”
“원래 친한 사이에요? 최오준 배우님이랑.”
“아뇨. 상견례 때 만났어요.”
최오준 배우도 낯을 좀 가리는 것 같던데...
그녀의 친화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럼 제 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내 말에 장하늘이 자세를 바로잡는다.
중대한 허락을 받으려는 것처럼 긴장한 얼굴.
“그 시. 봐서 아시겠지만 ‘사랑’을 주제로 쓴 거예요. 하지만 가사로 쓸 만큼 쉽게 읽히는 시는 아니죠.”
장하늘이야 시를 보고 눈물을 보였지만...
그건 그녀의 감성이 유독 풍부한 덕이다.
최오준 배우와 조인후 감독의 반응이 보통이겠지.
어젯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잊고 있던 옛날 기억들도.
내 시는 난해하고 복잡하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는 글과는 거리가 멀다.
전생에 연작시 <오감도>를 신문에 연재했다가, ‘해괴하다’는 이유로 연재를 강제 중단한 적이 있을 정도로.
물론 난 그 이후에도 시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 일이 상처가 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대중’들이 내 시를 이해해줄 거란 기대는, 버렸다고 해야 하나.
이번 생은 보다 독자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
그래서 ‘시’ 대신 ‘소설’을 중심으로 작품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제 시가 대중가요의 ‘가사’가 될 수 있을까요?”
나는 다소 회의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장하늘은 실망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덤덤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제가 좀 금사빠거든요.”
“네?”
“금방 사랑에 빠지는 거요.”
...나도 그 정돈 알아.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그런데 항상 마지막엔 차여요. 저 좋다던 사람들이 헤어질 땐 다들 그러더라고요. 하늘이 넌 좀 부담스럽다고.”
“뭐가 부담스럽대요?”
“다 좋은 말로 둘러대긴 했지만, 한 마디로 그거죠. 친한 남자가 많다는 거.”
...확실히 인기가 많을 타입이긴 하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할 거고.
“저, 상처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이젠 정말 절대 누구 안 좋아해야지- 싶다가도 또 누군가를 보면, 가슴에서 은은하게 어떤 온기 같은 게 퍼지는 걸 느껴요. 그 느낌에 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또 누굴 좋아하고 말거든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솔직한 표현이었다.
“작가님 시, 물론 어려워요. 저도 반 정도는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는 걸 보고... 작가님이 그 ‘은은한 마음’을 아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장하늘이 말한 ‘은은’의 느낌은,
내가 ‘은은’을 쓸 때의 기분과 너무도 비슷했다.
이성과는 상관없이 퍼져가는 마음 같은 것.
나 역시 사랑에 빠질 때 한 번도 이성적인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내 시는 여전히 난해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안에서 어떤 공감의 지점을 찾아낸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요?”
“네?”
“어느 부분에서 그런 생각이 들던가요?”
장하늘이 뭐라고 하려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럴 게 아니라, 들려드릴게요.”
장하늘이 후다닥 녹음부스로 들어가더니 통기타를 가지고 나왔다.
그녀가 무대에서 항상 들고 있는 하늘색 통기타.
“이 부분이 특히 좋았어요.”
맑은 통기타소리가 울렸다.
시작은 허밍이었다.
길고 낮게 이어가는 허밍 끝으로, 노래가 시작됐다.
“당신이 들으면 웃을 마음... 그 이면... 무한히 흩어지는 현명한 어제... 어제 아닌 오늘...”
내 시를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는 음색.
주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격정적이나 음역대를 화려하게 넘나들진 않는다.
“‘당신이 들으면 웃을 마음’은 상대가 아직 알지 못하는 짝사랑의 느낌이 들어서 좋고... ‘이면’은 마음의 안쪽이죠? 뒷부분의 의미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흩어진다’는 표현이 좋아서요.”
“'무한히 흩어지는 현명한 어제'는 잊겠다던 어제의 다짐이 한없이 흩어진다는 뜻이에요. 그 결심은 현명했지만, 오늘도 현명하지 못한,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하루를 맞이하고 만 거고요.”
“맞아요! 딱 그런 기분! 어제 했던 다짐이 다 사라지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바보로 돌아가는 그 기분이요! 아... 제가 바로 그 부분을 공감했나 봐요. 저도 모르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를 읊조린다.
완전히 몰입해버린 얼굴.
그녀는 어느새 흥분한 것 같았다.
“후렴구! 후렴구 들어보실래요? 시의 어느 부분을 붙여야 할지 몰라서 비워 놓은 상태이긴 한데....”
“좋아요. 들려주세요.”
디리링-
장하늘이 기타줄을 한 번 튕겼다. 그리고,
“음음... 음음...”
허밍을 시작했다.
조용하며 몽환적이고, 편안한 멜로디.
내가 <은은>을 쓰며 느낀 감정을, 마치 노래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글을 통해, 그리고 노래를 통해,
누군가와 이토록 공감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이 아니면 내 글이 ‘가사’가 될 기회가 없을지도.
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그리고 장하늘에게 말했다.
“제가 가사를 쓸 순 없어요. 그런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그녀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비쳤다.
“가사는 맡길게요. 제 시를 기반으로, 대중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고쳐주세요. 제목은 <은은>으로.”
“그, 그럼 허락하시는 거예요?”
“네. 저도 홈페이지를 통해 제 첫 시 <은은>을 공개할게요.”
용기를 내서 말이다.
<오감도> 때처럼 욕을 먹는 일이 있을지라도, 장하늘처럼 내 시를 이해해 줄 사람도 있을 거란 믿음으로.
“! 정말요?”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하죠, 그런 거.”
“....”
“그거 한번 해보죠, 우리.”
장하늘이 비로소 활짝 웃었다.
음악과 시의 콜라보레이션이라, 멋진 작업이 될 것 같았다.
***
장하늘과의 콜라보레이션은 당분간 비밀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고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면 SNS에 ‘짠’하고 발표를 하자고.
그 덕에 나도 그 사실을 함구한 채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한편, <내외인>의 일본판 발매가 시작되었다.
도마크 편집부는 내게 간간히 판매 현황을 알려왔다.
초판은 예약만으로 품절.
2쇄 역시 거의 다 팔렸다고 했다.
지훈은 내게 일본 SNS의 반응을 정리해서 보여주었다.
대부분 호평이었는데, 간간히 눈에 띄는 말들이 있었다.
-<내외인> 뭔가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소설.
-미스테리에 있어선 일본이 동양의 최고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을 반성. <내외인>을 읽다보면 은근히 긴장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소설은 확실히 어둡다. <내외인>도 예외는 아니다. 남자1과 같은 인생을 살게 될까 두렵다.
-이번 이상 작가의 소설. 장편이라 그런가 이야기 전개에 힘을 준 느낌이다. 한편의 스릴러를 맛본 기분.
-<내외인> 한국에서 영화로 나오는 모양이다. 영상으로 보면 심장이 더 떨릴 듯.
“지훈아.”
나는 함께 작업실에 있던 지훈을 불렀다.
“네.”
“<내외인>이 스릴러 같아?”
<내외인>은 내 삶을 투영한 소설이다.
‘스릴러’나 ‘공포’ 같은 장르를 의식하진 않았다.
물론 내 문체의 난해함과 추상성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야 있지만...
지훈이 의외의 대답을 했다.
“조금은 그렇죠?”
“어떤 점에서?”
“비밀을 계속 숨기고 있잖아요. 그걸 마지막에 열린 결말로 제시하는 형식도 그렇고... 남자1이니 남자2이니 하는 이름 자체도 은근히 긴장감을 주고요. 난 형이 어느 정도는 노린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전혀 아닌데.”
“그럼 그쪽에 재능이 있나보죠, 뭐.”
지훈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작업에 다시 집중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상’과 ‘스릴러’라.
2021년이 아니면 절대 연결될 수 없는 조합이긴 하지.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려고 하던 때였다.
마침 잔이 비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을 들고 나가려는데, 지훈이 꽤 바빠 보였다.
나는 슬쩍 지훈의 뒤로 갔다.
그의 발 옆의 커다란 상자엔 인쇄된 종이가 가득했다.
지훈은 정신없이 뭔갈 읽고 있었고.
... 소설 같은데.
“너 뭘 그렇게 읽어?”
“아. 이거요?”
지훈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저 이번에 ‘한국문학상’ 단편부분 예심 심사위원으로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올해 발표된 단편소설들 읽는 중이에요.”
‘한국문학상’
그것은 문단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었다.
소설 부문은 단편, 중편, 장편.
신문이나 문학잡지를 통해 정식으로 발표된 작품만 심사의 대상이라 해도, 1년 치면 꽤 많을 거다.
평소 문학잡지의 작품들을 다 챙겨보는 평론가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심사.
“송지훈, 아무리 예심이라 해도 ‘한국문학상’ 심사위원이라니. 대단한데?”
“형. 이거 진짜 허울만 좋은 노가다예요. 저처럼 어린 평론가들 갈아서 작품 추린 다음에 윗선에서는 심사 편하게 보는 거라니까요? 우리한텐 심사료도 별로 안 주면서....”
지훈은 투덜댔다.
그래도 책상에 쌓인 원고를 보니, 꽤 열심히 예심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몇 편이나 뽑는데?”
“열 명의 예심 심사위원이 각각 칠십 편씩은 보고... 인당 다섯 편씩 추려요. 그리고 본심 심사위원 어르신들이 그 중에서 대상 뽑는 거죠.”
딱 예상한 대로의 시스템이다.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시스템.
“하지만 지금은 가을인데? 상을 주는 건 연말이잖아. 좀 이르지 않아?”
“연말부터 심사 시작하면 고생스러우니까 미리 하는 거죠. 이제 나올 것들은 연말에 또 예심 보고 본심으로 올려요.”
내 홈페이지에 올린 작품들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문학잡지나 신문 개제라는 심사 범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단, <세사노>만 빼고.
그건 Y일보 신문에 실렸으니.
그런데... 혹시 지훈이 <세사노>도 심사하나?
그럼 공정성에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너, 내 작품도 심사해?”
“아, 그게- 아니요.”
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제가 맡은 파트에 <세사노>도 있었는데, 제가 다른 평론가랑 파트 바꿨어요. 다들 친한 소설가 심사는 그런식으로 피하거든요.”
“역시, 송지훈 평론가 현명해.”
“뭐, 제가 심사 안 해도 형은 본심 올라갈 테니까요.”
지훈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문학상이라.
본심 심사위원엔 한국 문단의 여러 원로들이 뒤섞여있다.
한 마디로, 권력의 각축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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