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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58화 (5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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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57)

다시 사는 천재 작가 57

대학로의 연극센터 지하,

<내외인>의 주연배우 오디션장.

오디션장에는 조인후 감독과 조감독, 연출부 스텝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침부터 오후 2시까지 이어지고 있는 오디션.

문밖에는 감독의 명성과 원작의 인기를 증명하듯, 수많은 연극배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방금 오디션을 마친 배우가 나갔다.

조감독이 한숨을 쉬었다.

“좀만 쉬었다 하시죠, 감독님.”

“그래. 이거 정말 쉽지 않네.”

“미치고 팔짝 뛰겠어요. 이렇게 인물이 없나? 방금 나간 배우 작년 서울 연극제에서 본상 탄 거 맞아요? 플라스틱 인형인 줄 알았네.”

조인후 감독이 웃었다.

“다른 데 가서는 잘 할 걸? 이 시나리오가 쉽지 않아서 그래.”

<내외인>의 캐릭터는 독특했다.

더군다나 두 남자 역을 한 배우가 소화해야 하는 상황.

이 점은 이상도 조인후 감독도 같은 생각이었다.

야누스의 매력을 보여줄 배우가 필요하다.

화를 내면서도 슬퍼하고,

슬퍼하면서도 우스워하는.

아주 독특하고 극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

연극배우를 뽑으려는 것도 그 이유였다.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연극배우들의 연기 스펙트럼이 넓으니.

조감독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여배우는 정말 장하늘로 가는 거예요?”

“응. 내가 직접 연락했다니까.”

“장하늘이 그렇게 발이 넓다더니. 어떻게 감독님까지 알았대요?”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났거든. 싹싹해. 인디씬에서부터 차근차근 이름을 알린 내공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

“저도 장하늘 연기 좋아하긴 하는데, 이거 너무 스타마케팅이 되지 않을까요?”

조인후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조감독을 보았다.

“이미 <내외인>을 영화화하는 것부터가 스타마케팅이야. 이상 작가잖아.”

조인후 감독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급’에 맞는 배우를 뽑아야 하는 거고.’

장하늘이 모험일 순 있다.

그래도 <내외인>에서 여배우 비중은 적을뿐더러, 장하늘의 캐릭터 분석력은 뛰어났다.

음악가만의 짙은 감성이랄까.

조인후 감독은 그녀에게 '감'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감'은 틀린 적이 거의 없었고.

‘이제 남자 배우만 잘 뽑아주면 될 것 같은데...’

조감독을 비롯한 스텝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천재 이상의 원작과 거장 조인후 감독의 각색.

시나리오 자체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이 예술품에 맞는 배우를 부디 뽑을 수 있기를.

“다 쉬었으면 이어서 하지. 다음 지원자 들여보내줘요.”

“네. 감독님.”

스텝이 얼른 나가서 다음 지원자를 불렀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순간 오디션장이 술렁였다.

맨투맨에 청바지.

수수한 차림과 노메이크업.

평범한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는 모습.

하지만 여기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최오준 배우?”

조감독이 놀라서 물었다.

최오준 배우.

<무너지는 날>의 최근화 시청률이 23퍼센트가 넘었다.

그는 지금 온갖 드라마와 영화에서 러브콜을 받을 텐데?

그런 배우가 ‘오디션’이라고?

게다가 상업적인 성공과 거리가 먼 ‘예술영화’에?

조인후 감독이 침착하게 물었다.

“최오준 지원자. 여기가 무슨 오디션인지 알고 오신 거예요?”

“예. <내외인> 주연배우 오디션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외인>은 예술영화예요. 연극배우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오디션이고, 드라마 배우는 안 뽑아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드라마배우이자 연극배우이기도 합니다.”

스텝들이 그제야 지원서를 살폈다.

<무너지는 날>을 하기 전에, 정말로 여러 편의 연극 경험이 있었다.

조감독이 난감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기획사 통해서 연락을 주시지 그랬어요.”

스타 배우들은 아무래도 비밀리에 오디션을 보기 마련이다.

만약에 탈락한다 해도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배우는 오디션으로만 뽑는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지원했습니다.”

고지식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대답이야말로 최오준 배우의 성실함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조인후 감독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여기까지 왔으면 다 같은 지원자지. 시나리오 한 번 읽어볼래요?”

최오준 배우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오디션용 시나리오는 이미 제공받은 상태.

영화 <내외인>의 시작 부분이다.

카페에서 남자2가 여자친구에게 말하는 장면.

최오준 배우의 순한 눈빛이 순간 바뀌었다.

아주 예민하면서도, 서글픈.

“난 말이지. 이 세상 밖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오디션장이 조용해졌다.

“그런데 그거 알아?”

최오준 배우의 목소리를 낮고 담담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빈정거림이 느껴진다.

“너도 똑같아... 그래서 네가 내 앞에 앉아있는 거야.”

조연출이 주먹을 꽉 쥐었다.

‘찾았다’라는 얼굴.

조감독은 조인후 감독을 슬쩍 봤다.

조인후 감독은 최오준 배우를 지긋이 보고 있었다.

약 2분간 이어진 연기가 끝났다.

최오준 배우는 다시 긴장하며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연기를 위해 <내외인>을 몇 번이나 읽었다.

특히 앞부분은, 거짓말 안 하고 천 번은 봤을 거다.

이상의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작품에 다시 한 번 함께하기 위해서.

조인후 감독이 말했다.

“예술영화의 제작기간은 짧아요. 이 주 정도? 길어봤자 삼 주. 그런데 그 동안은 온전히 시간을 비워줘야 해요. 가능하겠어요?”

연기에 대한 '평가' 대신 ‘시간’을 논한다는 것.

반쯤은 합격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최오준 배우는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그리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무조건 가능합니다!”

***

조인후 감독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캐스팅도 다 끝났고, 곧 첫 촬영에 들어간다는 거였다.

배우가 누구냐 물었더니, 반가운 이름이 돌아왔다.

-최오준이에요.

“최오준 배우요? 잘 됐네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배우거든요.”

-하하... 작품을 연달아 한 배우에게 맡기는 게 괜찮으신지 염려를 했는데요.

“전혀요. 최오준 배우라면, <무너지는 날>과는 또 다른 연기를 보여줄 테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디션장에서 아주 압도적이었거든요. 아무튼, 전화를 드린 건 첫 촬영에 혹시 와보실 의향이 있나 해서요.

“그럼요. 안 그래도 가보려고 했습니다.”

<내외인>이 영화화 되는 장소.

안 가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무너지는 날> 때처럼 강원도까지 내려 갈 일은 없었다.

촬영장은 종로 인사동에 있기 때문이었다.

<내외인>의 첫 촬영 날.

나는 인사동 뒷골목의 한 카페로 찾아갔다.

오두막 스타일의 작고 오래된 카페.

그 카페를 그대로 촬영 장소로 쓴다고 했다.

스텝들이 부산스럽게 촬영 준비를 하는 가운데,

조인후 감독과 최오준 배우가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작가님!”

최오준 배우가 날 알아보고 외쳤다.

어쩐지 더 잘생겨진 것 같다.

“오랜만이에요, 배우님. 감독님도 안녕하세요.”

나는 조인후 감독과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최오준 배우는 아예 양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또 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작가님.”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똑같은 작가 작품 연기하는 거 지겹지 않나 모르겠네요.”

“전혀요, 전혀요.”

그는 그런 소리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촬영장 분위기가 아주 좋다.

조인후 감독도 마찬가지고.

시나리오가 안 써진다고 줄담배를 피우던 모습은 간 데 없다.

<내외인>이 그에게 확실한 답을 내려준 것 같았다.

“카페 안을 좀 둘러봐도 될까요?”

“그럼요. 안에 계신 분은 진짜 카페 주인이에요. 촬영 때도 계실 거예요. 커피 한 잔 사 드시죠. 허허...”

조인후 감독은 기존의 공간을 영화에 잘 녹여내는 걸로 유명했다.

그는 카페 주인마저도 이 영화에 녹여낼 미장센의 일부로 본 것이다.

마침 목도 마르고 해서, 나는 커피를 한 잔 샀다.

그리고 카페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색 바랜 나무 벽과 여기저기 걸린 액자.

오래된 잡지들. 한쪽엔 덮개를 씌운 풍금.

테이블은 고작 네 개.

소설에 묘사된 카페와 많이 닮았다.

어느 새 조인후 감독은 카페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최오준 배우는 아까 그 자리에서 시나리오를 보는 중이었고.

“여기서 첫 장면을 찍는 거죠? 카페에서 남자2와 그 여자 친구가 대화하는 장면 말입니다.”

“맞아요. 핑퐁처럼 대화가 오가는데, 말은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이죠.”

<내외인>의 대화들은 조금씩 어긋나있다.

타인과 교류하지 못하고 분절되어있다고 해야 하나.

배우들도 아마 외우기 쉽지 않았을 거다.

“정말 <내외인>과 딱 떨어지는군요. 어떻게 이런 장소를 찾으셨는지 모르겠어요.”

“하하... 영화를 하다보면 온갖 곳을 다 알게 되거든요. 아, 촬영은 저 자리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는 가장 안쪽의 테이블을 가리켰다.

이 카페에서 좁고 허름한 2인용 테이블.

남자2의 느낌과 잘 어우러진다.

“좋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문득, 문가의 4인용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감독님, 안쪽의 저 2인용 테이블, 느낌이 정말 괜찮은데... 위치를 문가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흐음... 카페에 둘 밖에 없는 상황인데, 문가에 앉는 건 부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나는 전생에 여러 번 다방을 운영했다.

비록 경영난에 모두 말아먹긴 했지만,

다방은 사람들을 관찰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이런 카페에서 문가에 앉는 사람은 두 종류인 것 같아요. 그 카페의 주인이거나. 금방 밖으로 나갈 떠돌이거나.”

그래서 나는 항상 내 다방의 문가에 앉았다.

그 때마다 나는 내가 다방의 주인 같기도 했고,

이 세상의 가장자리를 빙빙 도는 떠돌이 같기도 했다.

“남자2는 외인이니까. 문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조인후 감독은 두 개의 테이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기존 장소의 모습을 잘 바꾸진 않습니다만, 작가님 말씀이면 한번 해보는 게 맞겠죠.”

그리고 순순히 스텝을 시켜 테이블의 위치를 바꿨다.

우리는 문가에 놓인 허름한 2인용 테이블을 보았다.

조인후 감독이 말했다.

“확실히 느낌이 좋네요. 좀 더 불안하고, 애처로운 느낌. 남자2를 문가 쪽에 앉히죠. 그 편이 그의 심리를 드러내기 좋겠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작가님이 안 오셨으면 큰일날 뻔했군요."

조인후 감독이 괜한 공치사를 했다.

어쨌거나, 말이 통하는 사람이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다시 카페 밖으로 나왔다.

아, 그런데 중요한 걸 아직 못 물어봤다.

“그런데 여배우 분은 누구시죠? 안 보이시네요?”

“그걸 이제야 물으십니까?”

조인후 감독은 놀려대듯 말했다.

“그게... 어련히 잘 뽑으셨을 거라 생각해서요. 하하...”

“여배우가 오전에 급하게 녹음이 잡혀서요. 지금 오고 있는 길입니다.”

“녹음이요?”

“가수거든요.”

배운데... 가수라고?

그럼 아이돌인가? 걸그룹?

아무리 가수들이 연기도 곧잘 한다지만, 아이돌이 조인후 영화에?

내 표정이 얼마나 얼떨떨했는지, 조인후 감독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저 골목에서 한 여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감독님! 죄송해요!”

검고 긴 머리를 한, 작고 마른 여자.

여배우들만큼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지만 귀염상에 구김살 없는 얼굴.

조인후 감독이 내게 말했다.

“걸그룹이 아니라 싱어송라이터예요.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장하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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