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52화 (5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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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51) - 수정완료

다시 사는 천재 작가 51

<내외인> 10편.

나는 열흘에 걸쳐 그것을 모두 세상에 공개했다.

마지막 문장,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까지.

신-문학의 댓글을 합치면 수백 개가 넘었다.

하나하나 읽다보면, 하루가 그냥 갔다.

독자란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다니.

정말이지 신기했다.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것.

바로 <내외인>을 가지고 여는 토론이었다.

<내외인>은 추상적인 작품이다.

당연히 여러 방면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사람들의 몰입이 깊어질수록, 댓글도 점점 길어졌다.

예를 들면,

-저는 남자1과 남자2가 현대인이 가진 공포를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남자1이 가난, 외로움, 쇠약에 대한 공포를 보여준다면 남자2는 나태, 포만, 무목적성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이렇게 상반되는 공포를 맞물리게 하는 것도 중요해요. 두 남자는 공포라는 연결고리로 서로 맞물리고 또 맞물리거든요. 둥그런 원처럼요. 마지막 장면도 압권이죠. 하얀 빛. 그 자체로 허무함이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포 자체를 보여주고 있어요. 후... 생각하고 있던 걸 다 썼더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완결까지 세 번이나 봤어요. 정말 멋진 작품이네요. 책이 나온다면 바로 살 거예요.

...이런 식이었다.

꽤 그럴듯한 말들이기도 해서, 나도 집중해서 읽게 될 정도였다.

이런 독자들은 지금까지 어디 있다가 튀어나온 걸까.

가장 신난 건 신라문학이었다.

신라문학은 ‘독자비평란’을 따로 만들었다.

마음껏 비평과 토론을 해보라는 듯.

독자들은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여러 시와 소설을 두고 벌이는 이야기들.

가끔 싸움이 나기도 했는데, 어째서 소설을 읽다 싸울 수 있는지 나로선 잘 이해가 안 갔다.

독자들이 모여 있으니 자연히 작가들도 모였다.

작가와 독자, 모두가 모였으니...

신-문학도 이 정도면 성공적인 출발이 아닌가.

연재가 끝나던 날 저녁.

이준환 편집위원이 나를 신라문학 회식에 초대했다.

합정동의 고급 중식당.

나는 안내를 받아 그들이 있는 룸으로 들어갔다.

“어어- 이상 선생!”

얼굴이 불콰한 박조운 편집장이 날 맞았다.

“우리 한국 문단의 미래! 이상 선생 왔소!”

목청도 크다.

그는 대뜸 나를 억세게 끌어안았다.

“컥...”

숨 막히는 소리가 절로 난다.

다른 편집위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웃는다.

그나저나 날 ‘한국 문단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도 참 요샛말로 ‘츤데레’다.

난 얼른 그에게서 도망을 쳐서 이준환 편집위원 곁에 앉았다.

“편집장님 무섭네요.”

“기분이 좋아서 저래요. 저래 봬도 새 사업에 신경 많이 썼거든요. 적어도 손해는 안 보게 생겼으니, 출판사치곤 이 정도면 성공이죠.”

그는 내 잔에 술을 따라줬다.

“이상 선생 글 덕분이에요.”

“아닙니다. 제 글만 있었나요.”

“다른 작가들에게도 다 연락을 돌렸어요. 고맙다고요. 하지만 선생한테는 좀 더 특별한 감사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불렀어요. 독자비평란도 <내외인> 덕에 만들어진 거고요. 일단 드세요.”

“감사합니다.”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깔끔하니 맛이 좋다.

“앞으론 신-문학에 부담 갖지 마세요. 선생이 문을 여는 데에 도움을 줬으니, 이제 우리가 알아서 해야죠.”

“작가님. 제 술도 한 잔 받으세요.”

젊은 편집위원이 술병을 들었다.

오늘은 왠지 술을 좀 마실 것 같은 느낌이다.

“<내외인> 진짜 재밌게 읽었어요. 소설이 그냥 미쳤던데요?”

“맞아! 우리 천재 이상 선생의 글을 누가 따라와? 한국 문학의 복덩이지! 복덩이!”

박조운 편집장이 괄괄하게 소리를 질렀다.

저러다가 내일 아침에 부끄러워지실 것 같은데.

“편집장님께선 술 들어가시면 애정 표현이 진해지시네요.”

다들 이미 체념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했다.

“저기, 편집위원님.”

“네. 이상 선생.”

“많은 출판사들이 연락을 했습니다. 제게 책을 내자고요.”

“흠... 그랬습니까.”

“하지만 신라문학은 연락을 안 하시더라고요.”

“음... 안 그래도 저희 쪽에 글을 올린 걸로 쓴소리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가라사대의 짓이었다.

내가 신-문학에 글을 올린 것을 두고 별말을 다 했지.

-청탁을 거절하던 이상, 결국 대형 출판사의 품으로.

-그의 퍼포먼스는 끝났다. 이상의 모순.

등등.

다른 작은 출판사들도 비슷한 비판을 반복했고.

“더 부담을 주기가 싫어서 연락을 안 했지요.”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모두들 나와 이준환 편집위원의 말을 숨죽여 듣고 있었다.

“...제가 그런 걸 신경 쓰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안경 너머로 그의 눈이 커졌다.

“제 책을 내주세요.”

“...<다시 사는 일> 말입니까?”

“아뇨.”

“<내외인>?”

“아뇨.”

그들의 얼굴에 궁금함과 긴장이 차올랐다.

“둘 다요. 이젠 낼 때가 된 것 같아요.”

“....”

“제 책, 아무 출판사에게나 맡기지 않아요. 신라문학이 해주셨으면 해요. 정식으로 투고할게요. 심사를 부탁드려요.”

나는 사실 이 말을 하러 왔다.

축하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원고를 투고하려고.

아무도, 아무 말도 못 했다.

내 제안이 이렇게 놀랄 만한 일인가.

작가가 출판사에서 책 내달라고 하는데,

그게 뭐 그리 이상하다고.

드륵...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박조운 편집장이었다.

그는 편집위원들과 내 잔에 돌아가며 술을 따랐다.

사람들은 엉겁결에 술을 받아들었다.

“자, 자... 받으라고.”

술잔들은 채운 그는, 자기 잔을 들었다.

그리고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나, 신라문학의 편집장으로서... 지금 이상 선생의 투고를 받은 거요. 굳이 읽어보진 않겠어. 그 에세이와 장편 소설... 몇 번이고 읽었다고.”

그는 씨익 웃었다.

“선생의 투고, 합격입니다. 반대하는 편집위원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찬성합니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자 그럼, 다 같이 건배!!!”

그가 우렁차게 외쳤다.

“건배!!!”

“건배!!!!”

사람들의 웃음소리. 기분 좋은 술기운.

신라문학의 회식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

요즘은 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신라문학의 회식에 다녀온 후,

며칠 전에는 강인춘 PD에게 연락이 왔다.

-<무너지는 날> 편집이 끝나 가. 피곤해 죽겠다, 이 작가. 아무튼 조만간 종로 그 홍합탕 집에서 보자고.

“그놈의 홍합탕... 알았어요. 연락 주세요.”

타박을 주긴 했지만, 그리운 것도 사실이었다.

드라마라는 공동 작업.

소설가가 해보기 힘든 귀한 경험이니까.

그리고 오늘,

조인후 감독이 저녁 식사에 날 초대했다.

익숙한 연희동 오르막길.

그 끝에 있는 저택이 이제는 편안하게 느껴진다.

“어서 오세요. 이상 선생님.”

언제나 그렇듯, 부인분이 환하게 웃으며 날 맞이했다.

“갑작스러운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마침 쉬고 있어서요.”

<내외인> 집필이 끝나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소설의 몸’ 때문에 떨어진 체력도 올리고 있고.

부인에게 대접받은 식사는 깔끔하고도 정갈했다.

갈비찜과 손만두, 낙지찜...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이걸 다 준비하셨어요?”

“저이가 좋은 음식 내놓으라고 얼마나 유난을 떨었는데요.”

부인이 조인후 감독을 곱게 흘겼다.

조인후 감독은 허허... 웃었다.

없는 말은 아닌가 보다.

“정말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두 사람과 식사를 시작했다.

부부는 금슬이 아주 좋아 보였다.

부러울 정도로.

나도 언젠가... 이런 가정을 꾸릴 수 있으려나.

조인후 감독이 화제를 옮겨 내게 물었다.

“요새 이상 선생은 무얼 하시나요?”

“장편을 다 썼으니, 다음 작품을 구상할 때까지 쉬는 중입니다.”

“그런가요. 하긴 장편의 에너지 소모는 대단하죠.”

“장편 소설을 써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음... 2시간짜리 영화 시나리오 분량이 그 정도 되거든요. 물론 묘사나 설명이 지문으로 처리되니 소설만큼 공들이진 않죠.”

“그래도 힘든 작업인 건 매한가지죠.”

영화의 지문은 먼저 배우를 설득해야 한다.

그 과정 없이는 관객도 설득할 수 없다.

즉, 명확하면서도 예술적이어야 한다.

난 그가 요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지 궁금했다.

저번보단 수척함이 좀 덜하긴 한데...

굳이 묻지 않는 게 좋겠지.

식사를 마친 후, 조인후 감독이 물었다.

“차는 아버님의 방에서 마시지 않겠습니까.”

“감독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저도 좋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조인창 교수의 방으로 갔다.

밤에 여길 와 본 것도 처음이다.

채도가 어두운 조명이 은은하게 방을 비추는 게, 퍽 분위기가 좋았다.

“앉으시죠.”

우리는 낮은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았다.

김이 올라오는 차와 전통 한과.

조인후 감독의 취향을 잘 알 것 같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웬 종이 뭉치가 있었다.

“작가님의 <내외인>. 정말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감독님 덕분이죠. 멋진 제목을 지을 수 있게 해주셨잖아요.”

“제가 한 게 있나요. 아무튼 신-문학에 1회가 올라 온 날부터 매일같이 <내외인>을 봤어요. 독자들의 토론도요. 끼어들고 싶은 걸 겨우 참았습니다.”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마음의 드는 작품을 만났기 때문일까.

그의 얼굴이 예전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작가님. <내외인>은 꼭 저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흥미롭군요. 저는 저의 이야기를 쓴 건데요.”

우리는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내 소설에서 자신의 무엇을 본 걸까.

“추측해 보건데... 결핍이 많은 유년을 보내셨습니까?”

“뭐, 그런 셈이죠. 감독님께서는요?”

그는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삶은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와 돌아가셨을 때로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전자가 내인의 삶이라면, 후자는 외인의 삶이겠군요. 정신적으로 말입니다.”

“정확합니다.”

나와는 반대군.

내가 외인에서 내인으로 변했다면,

그는 내인에서 외인으로 변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럼 지금 여기, 외인과 내인이 만난 것일까?

“전 <내외인>을 보고... 외로움과 결핍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충격적이었어요.”

나는 대답 대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뭔가에 빠진 사람처럼 이야기를 계속했다.

“위로를 받은 거죠, 저는. 당신의 소설을 통해서.”

“...영광이군요. 감독님께 위로를 드릴 수 있어서.”

그는 말없이 테이블의 종이 뭉치를 내게 밀었다.

“이게 뭐죠?”

“읽어봐주십시오.”

손을 많이 탔는지 조금 흐물흐물한 종이 뭉치.

그것은 다름 아닌... <내외인>이었다.

내 홈페이지나 신-문학이나 글 복사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화면을 한 장 한 장 캡쳐해서 출력한 후, 책처럼 묶은 것 같았다.

당연히, 나는 놀랐다.

혹시 모니터나 휴대폰으로 소설을 보는 게 힘들어서 이렇게 한 건가?

“아니, 감독님... 제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이제 곧 책이 나오는데요.”

“독서를 위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종이를 넘겨보니 메모들이 가득하다.

소설의 장면들을 옮겨놓은 듯한 간략한 그림들.

이건...

“영화 스토리보드 아닙니까?”

“...맞습니다.”

조인후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상 작가님... 저, <내외인>을 영화로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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