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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51화 (5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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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50) - 수정완료

다시 사는 천재 작가 50

2021학년도 1학기 한국대 특강 마지막 날.

나는 국문과 학과장 김진하 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하고 마주앉았다.

“어떻습니까. 한국대에서 한 학기 강의를 맡으신 소감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좋은 인연도 만났고요.”

“김미소 말씀이시군요. 제 지도제자지요.”

김진하 학과장은 내게 차를 한잔 내주었다.

“미소 학부 시절에 조인창 교수님께서 특강을 오셨다가 우연히 만났죠. 미소가 대학원에 올 때 제게 지도를 부탁하셨을 정도로 아끼는 학생입니다.”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추모사를 맡기신 것만 봐도...”

“그래도 미소는 워낙 씩씩하니까요. 잘 이겨낼 겁니다. 자,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

“잘 됐군요. 저도 여쭤볼 게 있었는데.”

“먼저 말씀하십시오.”

“일단, 우리 둘 다 같은 질문을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가 빙그레 웃었다.

“다음 학기 특강 말입니다.”

“다음 학기 특강 말이군요.”

우리는 거의 동시에 말했다.

주제는 던져졌고, 이제 의견이 남았다.

시작은 조인창 교수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난 지금.

이젠 나와 한국대의 선택에 달렸다.

달칵...

그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한국대 국문과는 이상 선생이 계속 특강을 맡아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상 선생을 대체하는 건 조인창 교수님을 대체했던 일보다 힘들게 됐거든요.”

대답 대신 웃었다.

사실 나 역시 특강을 무척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강의를 하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교수 자리를 위한 ‘스펙 쌓기’가 아니기에 더욱.

하지만 굳이 내색을 하진 않았다.

나는 한 가지 더 원하는 게 있으니까.

“특강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학과장님.”

“뭡니까?”

“방학에 하계 학기 대학원 2차 모집이 있죠?”

1차 모집은 학기 중에 일반 학생들을 위해,

2차 모집은 방학 중에 등단자 등 기성 문학인을 대상으로 열린다.

일종의 특채.

뽑아봐야 한 명이고, 아예 안 뽑는 경우도 있다.

“이상 선생... 혹시...?”

“박사과정에 재입학하려 합니다. 오늘은 지원자로서, 인사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그는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하, 하지만... 이미 지도교수 이현강 선생이 계시잖습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학과장님은 저를 받아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대학원은 결국 인재 싸움.

국문과, 문창과 대학원의 이름값은 등단자 보유에 따라 갈린다.

등단자를 보유한다는 것 자체가 과의 업적 심사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대 국문과 교수들이 걸릴 게 있다면... 한 가지.

가라사대 편집위원과 척을 지는 일이겠지.

“저희야 당연히 이상 작가님이 오시면 좋지요. 아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아, 그런데 왜 굳이 대학원에 다시 오시려 하십니까?”

“논문을 쓸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심이십니까?”

“하하... 제가 소설가라 논문을 안 쓸 것 같았나요?”

논문도 글이다.

문학 논문은 더욱 문학적인 글이고.

또, 쓰고 싶은 논문 주제도 있다.

김진하 학과장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학생으로서의 이상 선생은 참 탐이 나면서도, 어딘지 두렵기도 합니다만.”

“한낱 학생일 뿐입니다. 낮은 자세로 배우겠습니다.”

“제 생각엔... 입학을 하신다 할지라도 수업은 안 들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특강을 하시면, 그걸로 대체할 수도 있겠죠.”

바로 그거였다.

한국대 특강으로 수업을 대체하는 것.

그리고 빠르게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는 것.

그 편이 인수대에서 박사를 따는 것보다 빠를 거다.

김진하 학과장은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흐음... 다른 교수님들과 상의는 해봐야겠군요.”

“어쨌건, 말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학생 된 입장으로, 때가 되면 원서를 제출하겠습니다. 공정한 심사 부탁드립니다.”

***

<내외인>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두 남자는 이제 하나의 인물처럼 움직인다.

남자1은 간혹 남자2의 감정을 느끼고,

남자2는 간혹 남자1의 존재를 느낀다.

병렬적인 두 개의 이야기.

비로소 하나로 모인다.

나는 이 두 남자의 마지막을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내인과 외인이 만나는 순간 말이다.

두 남자가 눈을 마주친다.

흰 빛이 두 남자의 사이를 채운다.

이윽고...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내외인>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다 썼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그리고 신-문학 오픈이 두 시간 십 분 남았을 때.

나는 내 첫 장편 소설을 완성했다.

가만히 모니터를 보았다.

A4용지로 103매.

길고도 긴 여정이었다.

...이걸 해냈구나.

설명 못할 뿌듯함이 차올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에야 비로소 전생의 가난과 폐병, 그리고 외로움을 이겨낸 게 아닐까.

<내외인>의 두 사람을 연결하고, 하나의 하얀 빛으로 만듦으로서.

“후우....”

나는 깊이 심호흡을 했다.

작업실에 함께 있던 지훈이 뒤를 돌았다.

“다 썼어요?”

“어.”

“대박.”

지훈이 후다닥 달려온다.

“저 읽어봐도 돼요?”

“어. 퇴고도 다 했어. 오탈자 있으면 봐주고. 좀만 있다가.”

나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넋 나간 사람 같았는지 지훈이 물었다.

“괜찮아요? 얼굴이 반쪽이 됐는데.”

‘소설의 몸’은 길게 유지할 만한 게 아니다.

운동량도 식사량도 적어져서, 막바지엔 체중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쓰길 잘 한 것 같아.”

“네?”

“장편 소설 쓰길 잘한 것 같아.”

“....”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마음이 가벼운 걸 보면 말이다.

지훈은 뭐라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훈아, 이거 잘 좀 올려줘. 홈페이지랑 신-문학 전부.”

“옙. 맡겨두십쇼.”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9시 55분.

“오 분 안에 샤워하고 자야 하는데...”

신-문학은 여러모로 문단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이상이 첫 장편소설을 연재한다’는 사실도 어느정도 힘을 보탰다.

나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내외인>에 빼앗긴 기력을 채우기 위해.

다음 날 아침.

마침 주말이기도 해서, 느지막이 일어났다.

평소보다 좀 더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아침을 차려 먹었다.

지훈은 어딜 갔는지 집에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맞다.”

나 소설 올렸지.

아무리 지훈에게 맡겼어도, 확인은 내가 해야 했다.

나는 바로 작업실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먼저 홈페이지.

벌써 수천 명의 사람들이 1화를 결제했다.

한 달 전부터 SNS에 홍보를 한 효과가 있군.

다음은... 신-문학.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다.

출판사가 만든 플랫폼.

과연 괜찮을까.

모양새는 자체는 깔끔했다.

웹진과 연재란도 분명하게 구별되어서 헷갈리지 않고.

연재란의 첫 번째 글.

놀랍게도 <내외인>이 아니었다.

이지수 시인의 시 <젠장, 브로콜리>

한지온 작가의 소설 <스프링 윈터>

그 뒤에 올라온 게 나의 <내외인> 1회였다.

내 글 뒤에도 이어지는 열댓 개의 글.

...기분이 묘했다.

다른 작가들 사이에 들어있는 내 글이라니.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들인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반갑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재밌는 것이 있었다.

바로 ‘댓글’이었다.

내 홈페이지엔 댓글 시스템이랄 게 없었다.

결제를 하고 보면 그뿐.

신라문학은 이 댓글 시스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홈페이지처럼 독자의 공간을 두지 않을 건지,

독자만의 게시판을 따로 마련할건지,

아니면 댓글 시스템을 쓸 것인지.

신라문학은 과감한 결정을 했다.

댓글창을 만들어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없애버린 것이다.

...그런데 왜 내 소설에만 댓글이 마흔아홉 개나 달린 것인가.

다른 작가들은 많아봤자 두세 개인데.

혹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지훈이 실수를 했을 수도.

나는 얼른 댓글을 확인했다.

새로운 창이 열리고, 마흔아홉 개의 글들이 쏟아졌다.

그것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독자들의 날것의 목소리가 툭툭 튀어나왔다.

-잘 봤습니다! 남자1이 너무 불쌍해요. 그런데 남자2도 어딘지 모르게 결핍이 느껴져요. 둘은 무슨 사이일까요? 기대하고 보겠습니다.

-이상 작가님. <세사노> 때부터 팬이었슴다. 이번 작품도 멋질 거라 예상합니다. 그런데 남자2 인생 부럽네요. 젠장.

-이 작가가 이상임? 뭔말 하는지 잘 모르겠음. SNS에서 난리길래 한 번 돈 써봤는데 다시 읽어보고 계속 써야할지 고민해야 할 듯.

-두 남자의 행동, 묘하게 비슷한데?

-으으 기분 이상해, 이 소설. 무서워서 하차하차.

-기묘한 소설이네요. 남자1의 애인과 남자2의 부인은 정말 다른 사람 같아요. 남자1의 애인은 매력적이지만 훨훨 날아갈 것 같은. 남자2의 애인은 안정적이지만 어딘가 답답한 데가 있어요. 말로 설명 못 할 기분이에요. 오늘 자정까지 또 기다릴게요.

-나중에 남자1이 남자2 죽이러 갈 것 같은데.

-이거 책 나오면 사야겠다. 소장각이다.

-<내외인>은 내인과 외인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인이 남자2일 테고, 외인이 남자1인가?

나는 댓글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었다.

소설을 쓰면서 이렇게 기묘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물론 내 소설에 대한 평론가와 논문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렇게 문학을 ‘즐기는’ 독자들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던 중,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가님 스릴러 쓰시면 대박이겠는데요? 분위기를 무섭게 몰고가시는 데에 탁월하심. 난 이거 스릴러라고 생각하고 읽을래.

“하하... 스릴러라...”

내 작품이 이렇게도 읽힐 수 있구나.

***

그 시각.

방금 <내외인> 1회를 읽은 한 남자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건...”

말조차 제대로 중얼거리지 못하는 남자.

조인후 감독이었다.

“...대단하다.”

이미 한번 들어 본 내용이었다.

하지만 잘 다듬어진 글로 보는 <내외인>

그것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조인후 감독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내외인>이 제멋대로 상영됐다.

남자1과 남자2가 말하고, 움직였다.

“큰일이군.”

그가 중얼거렸다.

“이런 작품을 봐버리다니.”

모니터에는 쓰다 만 시나리오 원고가 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썩 괜찮은 원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눈에 차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 더 와닿는 건,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은 건 <내외인> 쪽이었다.

스타일은 또 얼마나 뛰어난가.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좋았다.

살아움직이는 듯한 인물의 행동 묘사.

장면과 장면의 절묘한 연결.

‘소름이 끼칠 정도군. 천재야, 천재.’

“흠....”

그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연필로 메모지에 이렇게 갈겨 써보는 것이었다.

‘<내외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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