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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50) - 수정완료
다시 사는 천재 작가 50
2021학년도 1학기 한국대 특강 마지막 날.
나는 국문과 학과장 김진하 교수를 찾아갔다.
그는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하고 마주앉았다.
“어떻습니까. 한국대에서 한 학기 강의를 맡으신 소감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좋은 인연도 만났고요.”
“김미소 말씀이시군요. 제 지도제자지요.”
김진하 학과장은 내게 차를 한잔 내주었다.
“미소 학부 시절에 조인창 교수님께서 특강을 오셨다가 우연히 만났죠. 미소가 대학원에 올 때 제게 지도를 부탁하셨을 정도로 아끼는 학생입니다.”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추모사를 맡기신 것만 봐도...”
“그래도 미소는 워낙 씩씩하니까요. 잘 이겨낼 겁니다. 자,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
“잘 됐군요. 저도 여쭤볼 게 있었는데.”
“먼저 말씀하십시오.”
“일단, 우리 둘 다 같은 질문을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가 빙그레 웃었다.
“다음 학기 특강 말입니다.”
“다음 학기 특강 말이군요.”
우리는 거의 동시에 말했다.
주제는 던져졌고, 이제 의견이 남았다.
시작은 조인창 교수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난 지금.
이젠 나와 한국대의 선택에 달렸다.
달칵...
그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한국대 국문과는 이상 선생이 계속 특강을 맡아주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상 선생을 대체하는 건 조인창 교수님을 대체했던 일보다 힘들게 됐거든요.”
대답 대신 웃었다.
사실 나 역시 특강을 무척 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강의를 하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교수 자리를 위한 ‘스펙 쌓기’가 아니기에 더욱.
하지만 굳이 내색을 하진 않았다.
나는 한 가지 더 원하는 게 있으니까.
“특강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학과장님.”
“뭡니까?”
“방학에 하계 학기 대학원 2차 모집이 있죠?”
1차 모집은 학기 중에 일반 학생들을 위해,
2차 모집은 방학 중에 등단자 등 기성 문학인을 대상으로 열린다.
일종의 특채.
뽑아봐야 한 명이고, 아예 안 뽑는 경우도 있다.
“이상 선생... 혹시...?”
“박사과정에 재입학하려 합니다. 오늘은 지원자로서, 인사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그는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하, 하지만... 이미 지도교수 이현강 선생이 계시잖습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학과장님은 저를 받아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대학원은 결국 인재 싸움.
국문과, 문창과 대학원의 이름값은 등단자 보유에 따라 갈린다.
등단자를 보유한다는 것 자체가 과의 업적 심사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대 국문과 교수들이 걸릴 게 있다면... 한 가지.
가라사대 편집위원과 척을 지는 일이겠지.
“저희야 당연히 이상 작가님이 오시면 좋지요. 아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아, 그런데 왜 굳이 대학원에 다시 오시려 하십니까?”
“논문을 쓸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심이십니까?”
“하하... 제가 소설가라 논문을 안 쓸 것 같았나요?”
논문도 글이다.
문학 논문은 더욱 문학적인 글이고.
또, 쓰고 싶은 논문 주제도 있다.
김진하 학과장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학생으로서의 이상 선생은 참 탐이 나면서도, 어딘지 두렵기도 합니다만.”
“한낱 학생일 뿐입니다. 낮은 자세로 배우겠습니다.”
“제 생각엔... 입학을 하신다 할지라도 수업은 안 들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특강을 하시면, 그걸로 대체할 수도 있겠죠.”
바로 그거였다.
한국대 특강으로 수업을 대체하는 것.
그리고 빠르게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는 것.
그 편이 인수대에서 박사를 따는 것보다 빠를 거다.
김진하 학과장은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흐음... 다른 교수님들과 상의는 해봐야겠군요.”
“어쨌건, 말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학생 된 입장으로, 때가 되면 원서를 제출하겠습니다. 공정한 심사 부탁드립니다.”
***
<내외인>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두 남자는 이제 하나의 인물처럼 움직인다.
남자1은 간혹 남자2의 감정을 느끼고,
남자2는 간혹 남자1의 존재를 느낀다.
병렬적인 두 개의 이야기.
비로소 하나로 모인다.
나는 이 두 남자의 마지막을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내인과 외인이 만나는 순간 말이다.
두 남자가 눈을 마주친다.
흰 빛이 두 남자의 사이를 채운다.
이윽고...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내외인>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다 썼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그리고 신-문학 오픈이 두 시간 십 분 남았을 때.
나는 내 첫 장편 소설을 완성했다.
가만히 모니터를 보았다.
A4용지로 103매.
길고도 긴 여정이었다.
...이걸 해냈구나.
설명 못할 뿌듯함이 차올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에야 비로소 전생의 가난과 폐병, 그리고 외로움을 이겨낸 게 아닐까.
<내외인>의 두 사람을 연결하고, 하나의 하얀 빛으로 만듦으로서.
“후우....”
나는 깊이 심호흡을 했다.
작업실에 함께 있던 지훈이 뒤를 돌았다.
“다 썼어요?”
“어.”
“대박.”
지훈이 후다닥 달려온다.
“저 읽어봐도 돼요?”
“어. 퇴고도 다 했어. 오탈자 있으면 봐주고. 좀만 있다가.”
나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넋 나간 사람 같았는지 지훈이 물었다.
“괜찮아요? 얼굴이 반쪽이 됐는데.”
‘소설의 몸’은 길게 유지할 만한 게 아니다.
운동량도 식사량도 적어져서, 막바지엔 체중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쓰길 잘 한 것 같아.”
“네?”
“장편 소설 쓰길 잘한 것 같아.”
“....”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마음이 가벼운 걸 보면 말이다.
지훈은 뭐라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훈아, 이거 잘 좀 올려줘. 홈페이지랑 신-문학 전부.”
“옙. 맡겨두십쇼.”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9시 55분.
“오 분 안에 샤워하고 자야 하는데...”
신-문학은 여러모로 문단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이상이 첫 장편소설을 연재한다’는 사실도 어느정도 힘을 보탰다.
나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내외인>에 빼앗긴 기력을 채우기 위해.
다음 날 아침.
마침 주말이기도 해서, 느지막이 일어났다.
평소보다 좀 더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아침을 차려 먹었다.
지훈은 어딜 갔는지 집에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맞다.”
나 소설 올렸지.
아무리 지훈에게 맡겼어도, 확인은 내가 해야 했다.
나는 바로 작업실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먼저 홈페이지.
벌써 수천 명의 사람들이 1화를 결제했다.
한 달 전부터 SNS에 홍보를 한 효과가 있군.
다음은... 신-문학.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다.
출판사가 만든 플랫폼.
과연 괜찮을까.
모양새는 자체는 깔끔했다.
웹진과 연재란도 분명하게 구별되어서 헷갈리지 않고.
연재란의 첫 번째 글.
놀랍게도 <내외인>이 아니었다.
이지수 시인의 시 <젠장, 브로콜리>
한지온 작가의 소설 <스프링 윈터>
그 뒤에 올라온 게 나의 <내외인> 1회였다.
내 글 뒤에도 이어지는 열댓 개의 글.
...기분이 묘했다.
다른 작가들 사이에 들어있는 내 글이라니.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들인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반갑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재밌는 것이 있었다.
바로 ‘댓글’이었다.
내 홈페이지엔 댓글 시스템이랄 게 없었다.
결제를 하고 보면 그뿐.
신라문학은 이 댓글 시스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홈페이지처럼 독자의 공간을 두지 않을 건지,
독자만의 게시판을 따로 마련할건지,
아니면 댓글 시스템을 쓸 것인지.
신라문학은 과감한 결정을 했다.
댓글창을 만들어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없애버린 것이다.
...그런데 왜 내 소설에만 댓글이 마흔아홉 개나 달린 것인가.
다른 작가들은 많아봤자 두세 개인데.
혹시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지훈이 실수를 했을 수도.
나는 얼른 댓글을 확인했다.
새로운 창이 열리고, 마흔아홉 개의 글들이 쏟아졌다.
그것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독자들의 날것의 목소리가 툭툭 튀어나왔다.
-잘 봤습니다! 남자1이 너무 불쌍해요. 그런데 남자2도 어딘지 모르게 결핍이 느껴져요. 둘은 무슨 사이일까요? 기대하고 보겠습니다.
-이상 작가님. <세사노> 때부터 팬이었슴다. 이번 작품도 멋질 거라 예상합니다. 그런데 남자2 인생 부럽네요. 젠장.
-이 작가가 이상임? 뭔말 하는지 잘 모르겠음. SNS에서 난리길래 한 번 돈 써봤는데 다시 읽어보고 계속 써야할지 고민해야 할 듯.
-두 남자의 행동, 묘하게 비슷한데?
-으으 기분 이상해, 이 소설. 무서워서 하차하차.
-기묘한 소설이네요. 남자1의 애인과 남자2의 부인은 정말 다른 사람 같아요. 남자1의 애인은 매력적이지만 훨훨 날아갈 것 같은. 남자2의 애인은 안정적이지만 어딘가 답답한 데가 있어요. 말로 설명 못 할 기분이에요. 오늘 자정까지 또 기다릴게요.
-나중에 남자1이 남자2 죽이러 갈 것 같은데.
-이거 책 나오면 사야겠다. 소장각이다.
-<내외인>은 내인과 외인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인이 남자2일 테고, 외인이 남자1인가?
나는 댓글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었다.
소설을 쓰면서 이렇게 기묘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물론 내 소설에 대한 평론가와 논문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렇게 문학을 ‘즐기는’ 독자들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던 중,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가님 스릴러 쓰시면 대박이겠는데요? 분위기를 무섭게 몰고가시는 데에 탁월하심. 난 이거 스릴러라고 생각하고 읽을래.
“하하... 스릴러라...”
내 작품이 이렇게도 읽힐 수 있구나.
***
그 시각.
방금 <내외인> 1회를 읽은 한 남자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건...”
말조차 제대로 중얼거리지 못하는 남자.
조인후 감독이었다.
“...대단하다.”
이미 한번 들어 본 내용이었다.
하지만 잘 다듬어진 글로 보는 <내외인>
그것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조인후 감독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내외인>이 제멋대로 상영됐다.
남자1과 남자2가 말하고, 움직였다.
“큰일이군.”
그가 중얼거렸다.
“이런 작품을 봐버리다니.”
모니터에는 쓰다 만 시나리오 원고가 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썩 괜찮은 원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눈에 차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 더 와닿는 건,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은 건 <내외인> 쪽이었다.
스타일은 또 얼마나 뛰어난가.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좋았다.
살아움직이는 듯한 인물의 행동 묘사.
장면과 장면의 절묘한 연결.
‘소름이 끼칠 정도군. 천재야, 천재.’
“흠....”
그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연필로 메모지에 이렇게 갈겨 써보는 것이었다.
‘<내외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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