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45화 (45/204)
  • #   45 - 3846658

    #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4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44

    나는 조인창 교수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

    평소와 다름없는 방의 풍경.

    창문을 제외하고 천장에 닿을 듯 빼곡하게 꽂힌 책들.

    온갖 출판사에서 나온 내 글을 담은 책들,

    나를 주제로 한 연구서와 에세이들,

    나에 대한 모든 논문들.

    어떤 것은 절판되어 구하기도 힘든 것들이었다.

    이 공간은 마치 전생의 나 자체 같았다.

    조인창 교수의 원목 책상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던 건지, 스탠드마저도 치워놓았다.

    다만 그 위엔 작은 문진으로 눌러놓은 편지 한 장과, 원고지 묶음이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펼쳤다.

    간결한 글씨로 쓴 몇 줄의 문장.

    -이 방의 모든 것은 이상 작가에게 유산으로 남긴다.

    평생을 나와 함께 한 것들이나, 주인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 믿는다.

    원고지는 나의 새 책이자 마지막 책이다.

    완성이 되었다면 신라문학에 보내고, 미완이라면 이상이 마무리를 해주길 바란다. 조인창.

    편지를 꽉 쥐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방을 다시 둘러보았다.

    이 방의 모든 것, 그러니까 나의 모든 기록들.

    조인창 교수는 평생을 모아서 내게 남겼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김혜경의 몸에 들어온 날 이후, 사람 때문에 울어 본 적은 없는데.

    겨우 눈물을 참고 다시 편지를 읽었다.

    마음에 걸리는 문장이 있다.

    ‘주인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 믿는다’

    이 말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었다.

    소중한 연구 자료를 후학에게 물려주는 너그러운 마음일 수도,

    내가 자신이 연구하던 ‘그’ 이상임을 알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난 그 무엇도 확신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가 남겨준 모든 유산을 그러모아 부끄럽지 않게 사용하고 싶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후, 원고를 살펴보았다.

    꽤나 두꺼운 원고.

    책 한 권의 분량이었다.

    제목은...

    <위대한 문학에 대하여>

    그것은 조인창 교수의 에세이집이었다.

    조인창 교수는 지금껏 에세이집을 낸 적이 없다.

    자신의 이야기보단, 문학의 이야기를 하기에 바빴던 삶이었으리라.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순간... 그 순간부터 이걸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원고지를 전체적으로 넘겨보았다.

    초반부의 힘찬 필체가 뒤로 넘어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읽어보자.

    나는 조인창 교수의 자리에 앉아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문학은 삶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그러지 않은 이들이 삶이 부럽기도 했다. 삶의 가장 큰 절망을 문학으로 배웠다. 하지만 삶의 가장 큰 행복과 사랑 역시 문학으로 배웠다.(...)

    -내게 ‘문학’이 뭔지 알려준 건 이상의 글이다. 그는 겨우 28살에 요절했다. 젊었던 날, 나 역시 28살에 죽고 싶을 만큼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서른이 넘었고 삶에 미련이 많았다. 그처럼 불꽃처럼 살다 갈 천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글을 그런 식으로 전개되어 갔다.

    젊은 날 나의 문학에 매료되었을 때,

    내 소설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았을 때,

    그리고 김미소 작가와 처음 만난 순간도 있었다.

    -위대한 소설가가 될 재목을 발견했다. 한국에 죽고 없는 노동문학을 쓰려는 학생이었다. 독자 없는 그곳에 그 어린 학생을 밀어 넣지 말아야 했으나, 욕심이 생겼다. 그 아이의 재능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그곳이 불모지임이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나는 좋은 선생은 분명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이었다.

    -내가 평생을 두고 사모한 이상과 가장 비슷한, 아니 이상 그 이상인 신인 작가를 만났다. 그의 필명 역시 이상이다. 그는 내 여남은 삶을 모두 집어삼켰다. 연명치료를 시작하지 않은 게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사후세계가 있기를 빌었다. 그가 한국 문단에서, 세계 문학의 장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사무치게 보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 이상 앞에 있는 문학의 장은 무한하다. 그가 무엇을 하건 나는 진심으로 응원한다.(...)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이상의 소설은 미래지향적이다. 이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고

    그가 남긴 원고는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그는 그 뒤에 무엇을 더 쓰려 했을까.

    내가 이 원고를 완성해야 한다.

    그것이 조인창 교수의 뜻이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만히 그 원고를 바라보았다.

    이어 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편지와 원고를 그러모았다.

    조인후 감독에게 전화를 거니, 바로 받았다.

    “이상입니다. 교수님께서 남기신 유산을 확인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저흰 전적으로 아버님의 뜻에 따를 것이니, 부담 갖지 말아주십시오.

    “저... 원고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죄송한 일이지만... 저도 그 편지를 봤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원고를 마무리해서 신라문학 측에 전달해주시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해도 괜찮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 방에 있는 모든 자료를... 정말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이 방의 어떤 자료들은 국립중앙도서관 보존서고에 들어가도 좋을 만큼 귀한 것이었다.

    기증을 하면 조인창 교수와 조인호 감독의 명예도 높아질 텐데...

    -예. 얼마든지요. 저는 그 자료가 이상 작가님에게도 꼭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염치없는 부탁입니다만, 당분간 이 자료를 이 방에 둬도 되겠습니까? 당장은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아서요.”

    -안 그래도 말씀을 드리려던 점입니다.

    “예?”

    -그 방은... 제가 보존할 수 있는 날까지 보존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필요하실 때마다 들러서 작업을 하시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해주시면 아버지께서도 좋아하실 겁니다.

    조인창 교수의 방을 보존한다.

    그의 인생이 담긴 이 방이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이 방에 찾을 수 있다는 것.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었다.

    ***

    조인창 교수의 마지막 책.

    공교롭게도 그 책을 내 손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다음날 교학팀 사무실.

    유난히 일찍 출근한 나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원고의 마무리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원고의 분량 상, 한두 문장을 보태는 것으로 마무리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적당한 말로는 그 공간을 채울 수 없던 것이다.

    “저기, 혜경 샘.”

    “금홍샘?”

    금홍이도 일찍 왔구나.

    항상 먼저 와 있어서 이렇게 빨리 다니는지 몰랐다.

    한쪽 옆구리엔 너덜너덜한 영어 책.

    “일찍 오셨네요.”

    “이거...힘 내시라고.”

    금홍이가 내민 건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커피였다.

    내가 조인창 교수 일로 낙담할까 사온 모양이구나.

    그런 마음이 들어있어 그런지 향이 정말 좋았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향 정말 좋은데요? 감사해요. 어디에서 사셨어요?”

    “어... 사실 제가 내렸어요. 아침에.”

    “정말요?”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잠이 일찍 깨서요.”

    하고 모니터 뒤로 쏙 숨어버리는 것이다.

    커피향을 다시 음미했다.

    고소함도 고소함이었지만, 신선한 향이 압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는 금홍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걸 컵에 담아서 조심히 들고 오는 모습도.

    “정말 고마워요, 금홍 선생님.”

    “아니에요. 저번에 부적도 사다 주시고... 항상 신세지는 일만 있었잖아요.”

    “....”

    “힘내세요. 힘!”

    금홍이는 모니터 위로 손가락 브이를 만들어보였다.

    그래. 언제까지 힘 빠져 있을 순 없다.

    조인창 교수도 내가 그러길 바라지 않을 테고.

    어쨌건 이 원고를 완성하자.

    <위대한 문학에 대하여>가 세상의 빛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펜을 들었다.

    평소 글을 쓸 땐 키보드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육필을 쓰고 싶었다.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이상의 소설은 미래지향적이다. 이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레 써내려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지없이 지우고 다시 썼다.

    종이가 몇 장이나 들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갔을 때, 나는 문장을 완성했다.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이상의 소설은 미래지향적이다. 이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고 위대한 소설가의 미래지향성은 위대한 학자의 눈 없이는 증명되지 않는다. 바로 이 글처럼.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담은 원고.

    나는 그것을 소중하게 서류봉투에 넣었다.

    ***

    조인창 교수의 원고를 마무리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다시, 나의 글을 쓸 때가 된 것이다.

    지훈과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힘들다~”

    지훈은 거실의 소파에 몸을 눕혔다.

    “너 오늘 작업할 거 있어?”

    내가 묻자 지훈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아뇨. 이따가 SNS 좀 보긴 해야 하는데, 그건 누워서도 할 수 있어요.”

    “그럼 나 작업실 좀 쓸게.”

    “그러세요. 뭘 허락을 맡고 써요.”

    “소설 쓰려고.”

    지훈이 자리에서 스윽 일어났다.

    “...신작?”

    “어. 아무튼 웬만한 일 아니면 부르지 말고.”

    지훈이 경건한 표정으로 살짝 경례를 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나는 커피를 한 잔 타서 작업실로 가져왔다.

    고요한 공간 속에서, 내 책상에 앉아 집중했다.

    써야 할 건 정해져 있다.

    미쯔하루 편집장과 약속한 그 글.

    한 마디로, ‘일본 특전’

    소설 구상을 위해 펼친 노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본’

    일본은 내게 다양한 의미를 갖는 나라다.

    그곳은 내 죽음이 담긴 서러운 공간이자,

    나를 알아봐 준 기회의 공간이기도 하다.

    영원히 미워할 수도, 영원히 사랑할 수도 없는 공간.

    “공간... 공간...”

    나는 ‘공간’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읊조렸다.

    그리고 백지에 조심스럽게 썼다.

    ‘시가룸’

    히루키와 함께 갔던 시가룸을 기억한다.

    국적과 경계에 대한 생각이 잠시 사라지던 곳.

    폐결핵으로 죽은 내가 시가를 입에 물게 됐던 곳.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낸 곳.

    히루키가 ‘아시아 작가로서의 열등감’을 드러낸 곳.

    그 공간에 있던 건 그저 두 명의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편안하게 자신을 내보일 수 있었고, 솔직하게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었다.

    소설의 방향이 슬슬 잡혀간다.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그들이 등장하는 공간은 창문 하나 없는 검은 방.

    그 곳의 위치도, 시간도 명시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객관적인 조건을 모두 지우자.

    성별, 인종, 국적, 나이, 신체 등.

    오로지 그들이 ‘인간’임을 드러내자.

    소설은 오직 대사만으로 이루어진다.

    묘사나 설명은 불필요한 사족이다.

    적어도 이 소설에선.

    모든 대화는 추상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없이 이야기한다.

    특히 시간과 역사에 대하여.

    사실 이 소설은 태생적 핸디캡을 갖고 있다.

    ‘한국인이 일본에 발표한 소설’

    내가 어떻게 써도, 독자들은 이 두 사람을 한일관계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편의 소설이 거대 역사를 잊게 할 순 없다.

    다만 독자의 내면에 따라 이 두 ‘인간’의 해석과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누군가는 죄책감을, 누군가는 화해를, 누군가는 과거를, 누군가는 미래를. 누군가는... 그냥 ‘인간’을 보겠지.

    그렇게 독자들의 수많은 내면을 비출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성공이다.

    소설의 얼개를 짠 후 바로 컴퓨터를 켰다.

    구조를 짠 이상 망설일 것 없다.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문득 제목이 하나 스쳐간다.

    나는 얼른 그것을 타이핑했다.

    <거울, 인간>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