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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43화 (4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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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42)

다시 사는 천재 작가 42

조인창 교수가 위중하다.

나는 바로 집밖으로 달려 나가 택시를 탔다.

가는 길이 왜 이리 막히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애먼 지갑만 만지작거리다가, 지갑 안에 넣어둔 부적이 생각났다.

조인창 교수를 위해 일본에서 사온, 건강을 비는 부적.

나는 부적을 꽉 쥐었다.

택시가 한국대 병원 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튀어나갔다.

안내를 받은 중환자실 층은 서늘하고 어두웠다.

불길한 마음에 복도를 달려갔다.

가장 안쪽 병실 앞.

익숙한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이상 작가님?”

김미소 작가였다.

“김미소 작가님?! 여긴 어떻게...”

김미소 작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위급하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방금 와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이에요.”

“그럼 교수님은...?”

“아직, 아직은...”

내가 얼마나 사색이 되어 있었던 건지,

김미소 작가는 진정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직, 아직은... 살아 계시는 것 같았다.

병실 문에 노크를 했다.

문이 열리고 조인후 감독이 나타났다.

“와주셨군요.”

그는 푹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악수를 했다.

서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맞잡은 손에 땀이 흥건했다.

“교수님께서는...”

“늦지 않게 오셨습니다. 마침 의식이 희미하게나마 돌아오셨어요.”

나는 그의 안내를 받아 병실로 들어갔다.

그곳엔 이미 가족과 친지들이 들어차 있었다.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했다.

구석에서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조용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상황.

그러나 나는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전생에도 그랬고 이번 생에도 그렇고,

나는 무소의 뿔처럼 살아왔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고, 그렇게 살기도 싫었다.

하지만 누구나 의지하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조인창 교수가 그런 사람이다.

1930년대에 그의 아버지 조순호가 역시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나는 그의 곁에 가서 앉았다.

그는 고목나무처럼 검게 말라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엿보았던, 그의 눈에 불타던 문학에 대한 열정은 어디로 꺼졌을까.

희미하게 뜬 눈꺼풀 속의 회색빛 탁한 눈동자가 날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다 꺼져가는 촛불 같다.

나는 조인창 교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부적을 쥐어주었다.

“...죄송해요.”

그냥, 그런 말이 나왔다.

그는 날 알아보기나 하는 걸까.

좀처럼 어떤 말도, 미동도 없었다.

알고 있다.

...그는 곧 죽을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사랑도 모두 실패했고, 아내보다 먼저 죽었다.

그래서 아끼는 사람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에게 어떤 존재인가.

너무 늦게 만난 제자인가.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작품을 쓴 작가인가.

아니면 그의 아버지의 벗인가.

...그에게 무엇을 말해줘야 할지 알 것 같다.

그의 손을 꽉 잡고,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순호에게...안부 전해주세요.”

그 순간이었다.

조인창 교수의 눈이, 순간 크게 떠졌다.

그는 그 떨리는 눈으로 날 빤히 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나도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인사였다.

그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족들과의 마지막 순간을 더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전...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의 가족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병실을 채 나오기도 전이었다.

삐-삐-삐-삐-

심박 측정기가 별안간 요동을 쳤다.

“아버지!”

“아버님!”

“형님!”

사람들이 우르르 침대로 달려갔다.

십 초도 안 되어 간호사와 의사들이 달려 들어왔다.

한참동안 그들은 조인창 교수를 붙잡고 애를 쓰는 듯했다.

그러나 일은 벌어진 후였다.

“...사망하셨습니다.”

의사의 선고가 떨어졌다.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모든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손에서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부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병실을 나섰다.

병실 밖에서는 김미소 작가가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나도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떨림이 느껴졌다.

그녀가 여기에 있는 이유.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한국대 학생으로, 보기 드문 신념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작가다.

아마 조인창 교수 역시 그녀를 눈여겨봤겠지.

알게 모르게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을 테고.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더 아팠다.

조인창 교수가 떠났다는 것은,

한국 문학의 희망을 알아보는 눈도 감겼다는 뜻이기에.

***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룰 거라고 했다.

고인의 뜻이었다.

유족들은 문인들을 위해  한국대 병원 회랑에서 추모식을 열어주었다.

나도 이제 어엿한 문인이 된 지훈과 함께 추모식에 참석했다.

인산인해.

한국의 모든 시인, 소설가, 비평가, 교수, 출판사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듯했다.

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조인창 교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리가 자리여서일까.

문인들끼리 모였을 때 곧잘 부리는 신경전도 없이, 행사는 차근차근 진행됐다.

추모사는... 김미소 작가와 내가 하게 되었다.

어젯밤, 조인호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푹 잠긴 목소리로 추모식에 대해 설명했다.

-추모식이 끝나면 가족장을 치를 예정입니다. 유언에 따라서요. 아버님께서는 추모사를 김미소 작가님과 이상 작가님께 맡기셨어요. 단 두 분께만요. 그 뜻을 따라주시겠습니까?

그런 이유로...

지금 나는 김미소 작가와 회랑의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중이다.

한참 식을 이어가던 사회자가 말했다.

“그럼 추모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김미소 작가님.”

김미소 작가가 단상으로 나가자 사람들이 술렁였다.

정말로 그녀가 조인창 교수의 오랜 제자란 걸 다들 몰랐던 모양이다.

하긴, 알았다면 그녀에게 눈먼 청탁이 갔겠지.

김미소 작가는 그런 청탁이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문단에 남고 싶었을 테고.

그녀는 천천히 노트에 적어 온 추도사를 읊었다.

“제가 소설가 지망생이었을 때, 저는 오늘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노동소설을 쓰려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말렸습니다. 노동문학으로는 문단에서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조인창 교수님만은 제게 말씀하셨지요. 작가라면 운명처럼 자신이 쓰고 공부해야 할 글을 가지고 태어났다고요. 교수님 자신에게 이상의 문학이 그랬듯, 저는 제가 가진 것을 펼쳐놓으라고요.”

김미소 작가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의연하게, 끝까지 추모사를 읽었다.

“저는 그 힘으로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버틸 수 있었습니다. 조인창 교수님은, 그렇게 많은 작가를 살리셨습니다. 그 작가들의 글로, 교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리라 믿습니다.”

짝짝짝짝...

낮은 박수가 이어졌다.

자신이 추모사를 무명의 신인 제자에게 맡겼다는 것.

그것은 조인창의 대쪽 같은 심성을 잘 말해주었다.

“다음 추모사는 이상 작가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랑은 다른 의미로 술렁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부러 헛기침을 내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적어도 젊은 문학가들은 침착하게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

“...저는 평생 혼자서 글을 썼습니다. 아무도 제게 스승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혼자 작가가 되었습니다. 제 생에 스승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조인창 교수님께서 손을 내밀어주었습니다. 조인창 교수님은 문학이 무엇인지,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작가가 무엇인지. 알려주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나는 깊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은 모두를 보고 말했다.

“한국 문학의 큰 어른을 잃은 것을, 다 같이 슬퍼합시다. 그리고 그의 업적 앞에 부끄럽지 않은 문단이 될 수 있도록 이제는... 변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짝짝짝짝짝짝...

박수소리가 얌전하게, 하지만 길게 이어졌다.

추모식이 끝나고 나는 김미소 작가와 잠시 자리를 피했다.

우린 회랑 발코니 자판기 앞 벤치에 앉았다.

나는 그녀와 내 몫의 자판기 커피를 뽑았다.

“드세요.”

“감사해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눈가가 붉었다.

“이상 작가님께서는... 추모사를 외워 오신 모양이에요.”

“...외워왔다기보다는... 할 말만 정리했어요.”

“역시 똑똑하세요. 조 교수님께서 평소에 이상 선생님의 칭찬을 무척 많이 하셨어요.”

“많이 가까운 사이셨나 봐요. 저는 그렇게 사적인 대화는 못 해봐서요.”

김미소 작가가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학부 때부터 제 소설을 봐 주신 선생님이셨어요. 등단을 하고 나서는... 제가 교수님의 후광을 입을 것만 같아서 일부러 거리를 지켰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서운해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어요.”

“저, 한 번도 조인창 교수님께 김미소 작가님에 대한 얘기 들어본 적 없어요.”

“네?”

“교수님도 작가님의 뜻을 알고 일부러 친분을 숨긴 거라고 생각해요.”

“....”

“그만 우세요.”

“...죄송해요. 후우... 정신 차릴게요.”

김미소 작가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 책이 나온다면서요?”

“그렇게 됐어요. 나중에 한 권 보내드릴게요. 기념으로.”

“일본어는 못 하지만 가지고 있을게요. 싸인도 부탁드려요.”

“당연하죠. 김미소 작가님은요? 요새 소설 잘 쓰고 계세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의 글이 발표된 걸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잡지는 잘 팔리지 않는다.

그래서 출판사들도 스타작가를 중심으로 문학잡지를 기획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미소 작가와 같은 이들이 설 자리는... 많지 않다.

“아무래도 기존의 문학잡지들은 제 글을 실어줄 것 같지 않아서요. 그래서...”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잡지를 하나 만들었어요.”

“잡지를요?!”

놀랄 일이었다.

물론 출판은 개나 소나 다 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신인 작가가 잡지를 창간했다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물론 저 혼자는 아니고요. 노동현실에 관심 많은 작가들, 디자이너들, 사진작가들이랑 낸 잡지예요. 계간지라서 일 년에 네 번...아, 다음 달에 창간호 나와요.”

“정말 읽어보고 싶어요. 주소 알려드릴 테니 나오면 꼭 보내주세요.”

“봐 주시면 감사하죠.”

“청탁도 받고 싶어요.”

나는 톡으로 집 주소를 보내며 말했다.

그녀가 만든 잡지라면, 청탁도 달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출판사에서 청탁은 안 받으신다고...”

“동료의 출판사에서는 예외죠.”

“이거 진짜 영광인데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좋아하겠어요.”

“그럼 약속해줘요. 청탁 주기로.”

“드릴게요. 나중에 다른 얘기나 하지 마세요.”

역시.

난 김미소 작가가 뭔가 멋진 일을 시작할 수 있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저기, 이상 선생.”

누군가가 날 불렀다.

회랑으로 이어지는 문가에 서 있는 남자.

노년에 막 들어선 듯한 그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누구지?

“저, 신라문학의 이준환 편집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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