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41화 (41/204)
  • #   41 - 3837985

    #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40)

    다시 사는 천재 작가 40

    일본에서의 공식적인 일정이 마무리됐다.

    남은 건 일박 이일의 자유시간.

    지훈과 나는 느즈막이 일어나 도쿄 옆 사이타마 현으로 갔다.

    고마 신사에 가기 위해서였다.

    고마역부터 신사까지 올라가는 길.

    한산하기 그지없는 길이다.

    1930년대에도 딱 이랬는데.

    “부적은 도쿄 아무 신사에서도 다 파는데 왜 여기까지 왔어요?”

    지훈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게시판의 한국어를 보더니 어? 하고 가서 달라붙어 읽는다.

    “이 신사 고구려인들이 지은 거네요? 고려 신을 믿는다고... 특이하네.”

    지훈이 어색하다는 듯 날 빤히 본다.

    “형 보기보다 되게... 나라사랑꾼이네요? 안 그렇게 생겨선....”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자. 오래 안 있을 거야.”

    나는 얼른 가자는 의미로 지훈의 등을 밀었다.

    내가 죽던 해, 나는 도쿄에 왔다.

    내 작품이 조선에만 머무르는 게 싫어서.

    새로운 문학적 영감을 받고 싶어서.

    하지만 조선인으로서 일본에서 글을 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조선에서 나름 유명한 작가였지만...

    일본인에게는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

    ‘조선땅의 천재라더니 별 거 아니네.’라는 평가들.

    나는 내가 천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상처를 안 받는단 뜻은 아니었다.

    아는 이 하나 없던 도쿄 생활.

    외로움이 사무칠 때마다 찾았던 곳이 고마 신사였다.

    나는 딱히 애국자도 아니었다.

    그 당시에도, 이용할 수 있다면 일본을 이용하고 싶었고.

    다만 여기에 오면 조선인들이 항상 있었다.

    그들도 믿고 기도할 곳은 필요했을 테니까.

    그냥 그들이 여기 있는 걸 보고,

    ‘아 그래. 여기 조선인들이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되돌아가면 어쩐지 외로움이 좀 사라졌던 것이다.

    우리는 신사로 들어갔다.

    여전히 작고, 낡았구나.

    그래도 관광객이 별로 없는 곳이라 깨끗하고 고즈넉했다.

    “저쪽에 부적 파는 데 있는 것 같아요. 형, 그러고보니 부적 믿어요?”

    “원래는 전혀 안 믿었는데.”

    난 신을 믿지 않는다.

    전생에서도 여기서 기도 한 번 올려본 적 없다.

    게다가 건축 기사와 신이라.

    전혀 안 어울리지 않는가.

    하지만... 혜경의 몸으로 들어온 이후엔 달라졌다.

    “지금은 믿어. 날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있다는 걸.”

    이것이 내 삶이 되었고, 내 운명이 되었다.

    그런데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럼 부적 파는 데로 갈까요?”

    “좋지.”

    절 한 쪽에 부적을 의미하는 ‘오마모리’라 적힌 가게가 있었다.

    부적은 다 한자라서, 지훈은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너 찾는 부적 있어?”

    “네. 만사형통 부적.”

    “만사형통은 좀 어중간하지 않아? 확실한 걸 사는 게...”

    “아니에요. 형.”

    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진짜 팔방미인이 되어야 해요. 비평가 일도 잘 하고 있고, 형 매니저 일도 잘 하고 싶어요. 또... 저 석사 3학기잖아요. 곧 석사 논문도 써야죠.”

    맞다 논문.

    만약 내가 박사논문을 써야 한다면... 지도교수 이현강을 만나야하겠지.

    도망칠 마음은 없다.

    소설가가 되었다고 해서 학업을 놓을 이유도 없고.

    논문을 쓰며 얻게 되는 문학의 깊이를 왜 포기한단 말인가.

    “너, 지도교수 정했어?”

    지훈이 씩 웃었다.

    “정했어요. 정미현 교수님.”

    정미현 교수는 평론 교수다.

    비평으로 등단을 하더니, 아예 길을 잡았구나.

    적어도 이현강 밑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니. 장하다.

    “잘 했다. 선물로 만사형통 부적 사줄게.”

    “정말요? 좋아요!”

    나는 지훈을 위해 만사형통 부적을 하나 골랐다.

    그리고 나는 신중하게 다른 부적을 살폈다.

    아, 찾았다.

    “그건 뭐예요?”

    “합격 기원. 금홍 선생님 거.”

    “금홍 샘 시험 봐요?”

    “모르지. 그런데 학원 다니신다고 하니까. 곧 뭔가를 시작하실 것 같아서. 취업이건 학업이건 합격하는 게 먼저잖아.”

    그리고 또 하나.

    “그건 또 뭔데요?”

    “이건... 조인창 교수님 거. 건강 기원.”

    조인창 교수의 건강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좋은 선생님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길 바라는 마음.

    난 그렇게 총 세 개의 부적을 손에 쥐었다.

    “형 건 없어요?”

    “없어.”

    “왜요? 형도 만사형통이라도 하나 하시지? 사 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얼른 계산하자.”

    나는 지훈이 부적을 집기 전에 얼른 계산대로 갔다.

    내게 부적은 필요 없다.

    두 번째 삶을 얻은 것보다 더 큰 행운이 있겠나.

    이 만족스러운 삶에 억지로 행운을 더 얹고 싶지 않다.

    그렇게 슬슬 신사를 벗어나려던 참이었다.

    한 무리의 인파를 지나가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 혹시 이상 작가님 아니세요?”

    어딘가 어색한 한국말.

    일본어의 어투에 한국어를 얹은 것 같은.

    “맞습니다만.”

    “정말 이상 작가님이시네요! 저희 재일교포예요. 어제 있었던 히루키 작가와의 인터뷰 영상도 다 봤어요.”

    “아, 재일교포 분들... 반갑습니다.”

    나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들은 소란스럽게 나와 한 번씩 악수했다.

    “저희 재일교포들 사이에서 작가님 정말 유명해요. 일본에 오신다고 해서 기대도 많이 했어요. 이제 책이 나오시는 건가요?”

    들뜬 얼굴들.

    나는 할 수 있는 한 상냥하게 대답했다.

    “곧 에세이집이 나올 거예요. 홈페이지에 있는 글이지만, 히루키 작가의 추천사도 들어가니까요.”

    “저희에겐 히루키 작가님보다 더 대단하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진을 함께 찍어도 될까요?”

    ...썩 내키진 않았다.

    하지만,

    “좋죠. 지훈아. 사진 좀 찍어줘.”

    “네? 아, 예...”

    지훈은 당황하더니 얼른 사진을 찍어줬다.

    그들은 사진을 재일교포 커뮤니티에 올려도 되겠느냐 물었다.

    “그럼요. 올리세요. 제가 더 영광이죠.”

    “정말 친절하세요, 이상 작가님!”

    “...하하.”

    견뎌본다.

    이런 면전의 칭찬.

    그들은 내 시간을 뺏지 않겠다는 듯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제 갈 길을 갔다.

    지훈은 그들을 슬쩍 보더니 내게 물었다.

    “형, 저런 사람들 불편해 하지 않았어요? ‘팬’이라고나 할까나.”

    “불편해. 얼굴 근육 떨려.”

    “그래도 꽤 친절하시네요?”

    “감사하잖아. 멀리서 알아봐주는 거, 그거 정말 대단한 거거든.”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

    재일교포들은 고맙게도 먼 곳에서 날 알아봐주었다.

    좀 더 서비스를 해줘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역에 다 와갈 무렵.

    나는 뒤돌아서 신사를 한 번 바라보았다.

    저기 나무벤치에 외로움에 허덕이던 1930년대의 내가 앉아 있는 듯했다.

    그 시절도 이젠 보내줄 때가 됐다.

    -굿바이.

    ***

    사박오일의 일본 일정이 끝났다.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교학팀 업무는 시작이었다.

    엄청나게 피곤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운동의 힘이란 이런 걸까.

    회의가 끝난 사무원들이 자리로 우르르 돌아온다.

    “잘 다녀오셨어요?”

    금홍이 밝게 인사를 했다.

    “일본에서 한 인터뷰, 벌써 번역되어서 SNS에 돌아다니고 있어요. 우익 기자에게 한 방 먹였다고 다들 좋아하던데요?”

    아, 그 무례한 기자.

    “어딜 가나 그런 사람들은 있으니까요. 아, 금홍 샘, 이거.”

    나는 금홍이에게 부적을 내밀었다.

    “진짜 사오신 거예요?”

    금홍이는 부적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것을 열쇠고리에 달았다.

    “감사해요. 너무 예뻐요.”

    금홍이가 내 앞에서 부적을 살랑살랑 흔든다.

    “그런데 무슨 부적이에요?”

    “합격 기원이요.”

    “네?! 어떻게 알았어요?!”

    “...뭐가요?”

    왜 이렇게 놀래?

    “뭘 하든 합격이 되어야 시작하실 테니까요.”

    “아... 그... 그렇구나... 감사해요.”

    하고 뭔가에 홀린 얼굴로 부적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다.

    대체 요즘 뭘 준비하고 있는 걸까.

    “형, 형.”

    지훈이가 우리 자리로 찾아왔다.

    아침부터 피곤해 죽겠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얼마나 엎드려 잤는지 뺨에 옷소매 자국이 선명하다.

    “지금 커뮤니티, 형 때문에 난리 났어요.”

    “커뮤니티? 아, 재일교포?”

    “아뇨. 한국 커뮤니티.”

    한국 커뮤니티가 왜?

    “봐요.”

    지훈이는 내 컴퓨터 쪽으로 쏙 왔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알 만한 대형 커뮤니티로 접속했다.

    ‘이슈’ 갤러리로 들어가자, 모두 다 ‘이상’의 이야기뿐이었다.

    지훈이 아무 게시물을 클릭했다.

    호텔에서 기자 인터뷰를 한 영상이었다.

    어찌나 발들이 빠른지, 그새 편집과 번역까지 되어 있었다.

    -혹시 한국에서 출판하지 않는 책을 일본에서 출판하려 하는 건, 한국의 문학 시장 수준이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자님이야말로, 그런 전제를 까신 걸 보면, 한국 문학 시장이 일본 문학 시장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아닙니까?

    -혀,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일단은 시장의 규모도 다르고-

    -일본의 인구수는 한국의 두 배에 달합니다. 시장의 규모가 같을 수 없지요. 그렇다면 질적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본에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많지 않습니까!

    -성공한 작가의 수를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한국 문학 시장과 일본 문학 시장의 현주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겁니다. 이런 곳에 오신 문화부 기자라면 그 정도 조사는 되어 있으실 텐데요.

    -가, 각각의 나라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존중해야 하는 부분... 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맞습니다. 기자님.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다니 정말로 반가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와하하, 하고 터지는 웃음소리.

    그 게시물의 제목은,

    [일본 기자에게 사이다 날리는 갓이상]

    댓글은 열광적이었다.

    -미친. 봐도 봐도 사이다야. 못 떠나겠다.

    -이 작가 한국 문단에서도 저렇게 사이다 팍팍 먹이던데.

    -나 한국 소설 1도 안 보는데 이 작가 글은 봐야겠다.

    -필명도 이상이래. 닉값 오지네.

    -본명도 김혜경이래.

    -김혜경이 왜?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 이상의 본명이 김해경이거든.

    -대환장. 환생한 거 아냐?

    -소름끼치네. 전생체험 해봐야 할 듯.

    -야, 일단 홈페이지 주소 남긴다. 사이다 먹었으면 돈 내고 소설 좀 봐라. 이천 원이다. www.strange2021.net.

    “마지막 댓글은 제가 남겼어요.”

    “넌 정말 준비된 영업 인재구나.”

    “기본이죠.”

    그런데 저 기자회견을 이렇게 좋아해줄 줄이야.

    커뮤니티에는 내 인터뷰와 내 소설 이야기가 가득했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한국 소설가와 소설에 대해 저렇게 열띤 이야기를 이어가다니.

    게다가 웹소설이나 장르소설도 아니고, 순문학으로.

    퇴근 후, 나는 조인후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인창 교수에게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인후 감독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혹시 문병을 가도 되겠느냐는 문자를 남겼다.

    의외로 답은 바로 왔다.

    -지금 아버님의 치료로 정신이 없습니다. 면회가 가능하게 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치료로 정신이 없다고...

    어쩐지 마음에 걸렸지만 나로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그날 밤,

    지훈과 나는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헐.”

    지훈이 입을 틀어막았다.

    <부활>의 한국어와 일본어 페이지의 결제수가 엄청나게 뛴 것이다.

    “한국어 페이지는 그렇다 쳐도, 일본어 페이지는 왜?”

    “...이것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방금 확인한 건데...”

    지훈이 재일교포 커뮤니티를 열었다.

    그곳 역시 내 이야기가 종종 보였다.

    한 게시글을 누르자, 사이타마에서 재일교포들과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고마 신사로 간 모습이 점수를 딴 모양이에요.”

    “하지만 고작 그걸로?”

    “하긴. 그렇죠?”

    나는 잠시 고민했다.

    문득, 머릿속에 뭔가가 스쳤다.

    핸드폰으로 일본 대형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이거다, 지훈아.”

    “이게 뭔데요? 제가 아직 일본어가... 이상... 한국...? 모르긴 몰라도 형 얘기 진짜 많은데요?”

    “지금 얘네 싸우는 중이야. 자국 기자를 엿 먹인 한국 작가를 두고.”

    정말이었다.

    글들을 딱 두 패로 나뉘어졌다.

    -기자가 잘못했네. 저게 작가한테 할 말이냐?

    -꼬우면 한국에서 책 내던가. 한국에서 쫓겨나서 일본으로 온 거 아님?

    -분명히 일본 문학을 동경해서 온 거야. 뻔하잖아.

    -헛소리 하지 마라. 니네 저 사람 소설 보지도 않았잖아. 게다가 히루키랑 도마크 출판사가 ‘초대’해서 온 거라고.

    -아... 나의 히루키 상이... 말도 안 돼. 한국 작가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고개를 숙이다니? 니 뇌는 그렇게밖에 안 돌아 가냐? 우정 몰라?

    -하. 대체 어떤 글을 쓰는데? 두고 보자. 별 것 아닌 거면 가만 안 둬.

    -책 나오면 확인하면 되잖아. 다들 흥분하지 말라고.

    나는 거기까지 보고 핸드폰을 껐다.

    그리고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훈에게 말했다.

    “지훈아, 내가 아무래도 일본에서 ‘어그로’를 끈 것 같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