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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40화 (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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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39)

다시 사는 천재 작가 39

다음 날 아침, 미쯔하루 편집장이 내 방에 찾아왔다.

가방에 새로운 계약서를 넣은 채였다.

우리는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는 내게 서명을 해야 할 곳을 알려주었다.

“한국어 계약서와 일본어 계약서 두 개가 있습니다. 내용은 완전히 같습니다.”

도마크 출판사 측과 나 이상 측, 그리고 두 개의 언어.

총 네 개의 계약서가 오갔다.

“후... 이제 다 끝났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집장님.”

“여기까지 와 주신 작가님만 하겠습니까. 혹시 원고는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어차피 홈페이지에 일본어로 번역해 놓은 원고다.

간단한 퇴고만 마치면 바로 보내줄 수 있다.

“일주일 안으로 드리겠습니다.”

“역시 한국분이라 그런지 시원시원하십니다. 그럼 한 시간 후 언론사 인터뷰 때 뵙겠습니다. 아, 일본 특전 소설은 비밀입니다. 그런 건 발간 직전에 터트려야 효과가 좋거든요.”

“하하... 좋습니다. 그럼 인터뷰 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렇게 도마크 출판사와 계약을 마쳤다.

이제 남은 건 히루키와 함께 하는 언론사 인터뷰였다.

일단 지훈과 간단한 룸서비스를 시켜 먹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단장을 하고 호텔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인터뷰가 열리는 곳은 호텔 로비의 카페.

그곳엔 이미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상 작가님!”

미쯔하루 편집장과 나란히 앉아 있던 히루키가 날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형님, 파이팅이에요.”

지훈이가 속삭였다.

나는 지훈이에게 한 번 웃어 보인 후 카페를 향해 갔다.

“자, 무라카미 히루키 작가와 도마크 출판사의 초청으로 온, 한국의 이상 작가입니다.”

사회를 맡은 미쯔하루 편집장이 나를 소개했다.

플래시와 함께 셔터음 세례가 터졌다.

물론 ‘한국 작가’가 아닌 ‘히루키가 사랑한 작가’에게 보이는 관심이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의 의자에 앉았다.

“자, 오늘 이 자리는 무라카미 히루키 작가님의 신간 <신의 서>의 출간 기념회인 동시에 이상 작가님의 에세이 출간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두 책의 발간을 맡은 도마크 출판사의 편집장, 미쯔하루입니다. 이어서 작가님들의 자기소개가 있겠습니다. 히루키 작가님.”

“무라카미 히루키입니다.”

박수가 쏟아졌다.

히루키는 내게 마이크를 넘겼다.

나는 일본어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의 작가, 이상입니다.”

순간 기자들이 크게 동요했다.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외쳐 물었다.

“혹시 재일교포이십니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한국의 작가’ 이상입니다.”

그들에겐 내 일본어 실력이 신기한 듯했다.

하긴, 작가란 제 모국어를 쓰는 일에도 강박증이 걸려버리는 사람들이니.

미쯔하루 편집장이 말했다.

“먼저 히루키 작가님, 신작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시지요.”

히루키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꽤나 재밌는 설명을 했다.

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그는 확실히 달변가였다.

“자, 그럼 이번엔 이상 작가님에 대해 본격적인 소개와 인터뷰를 할 시간이 되었군요.”

미쯔하루 편집장의 말에 히루키가 웃으며 마이크를 넘겼다.

나는 마이크를 꽉 잡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일본의 독자 여러분. 저는 올해 한국의 작가로 데뷔한 이상입니다. 발표한 소설로는 <세속적인 사랑의 노래>와 <부활>이 있습니다.”

짝짝짝...

예의상 박수가 흘러나온다.

그들에겐 아직 내가 낯설다.

미쯔하루 편집장이 얼른 분위기를 돋웠다.

“자, 이상 작가님. 이상 작가님은 지금까지 출판이나 청탁 없이 홈페이지에만 글을 게재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1대 1로 판매해오셨는데, 기존 시스템을 거부하고 특별한 노선으로 문학 활동을 해 오신 이유가 있을까요.”

“청탁이 오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택받기를 원하는 작가가 아니라 제가 먼저 글을 보여주고 싶은 작가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재일교포분들에게 특별히 인기가 좋단 얘길 들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일본어로 번역을 해서 올린 글이, 재일교포 커뮤니티의 관심을 받았거든요.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히루키 작가가 웃었다.

그리고 친한 듯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어지럽게 터졌다.

“자, 책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이번에 저희 도마크 출판사와 특별히-아주 특별히 에세이집을 내시기로 하셨는데요. 물론 저희 도마크 측에서 조르긴 했습니다만- 하하! 그래도 수락을 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기자들이 술렁거렸다.

도마크는 일본 굴지의 출판사다.

그런 출판사가 한국 작가에게 먼저 출판 권유를 하다니.

몇몇 기자들이 얼굴을 찌푸린다.

“네. 사실 저는 홈페이지에 올린 에세이- 저는 에세이라 부르지 않고 편하게 잡문이라고 불렀습니다만. 어쨌건 에세이라 표현하겠습니다. 그 에세이를 쓸 땐 아주 편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격도 매기지도 않았죠. 하지만 그것도 50편 이상이 모이니 그럴듯한 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좋은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셔서 흔쾌히 오케이를 했지요.”

“아하- 그렇군요. 에세이는 대체로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죠?”

‘잡문’은... 혜경의 몸으로 들어 온 직후부터 써 온 일기나 마찬가지다.

“제가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느낀 소회들입니다. 결국 인간사의 한 부분이죠. 힘을 빼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상 작가님의 에세이를 홈페이지에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의 차이가 있을까요?”

“‘느낌’입니다.”

“‘느낌’이요?”

“네. 책이 주는 촉감엔 디지털의 픽셀이 줄 수 없는 쾌감이 있습니다. 제가 모종의 이유로 한국에서 책을 내는 것을 반쯤 포기하고 살아왔습니다만... 그렇다고 책이 주는 매력까지도 부정하진 않습니다. 물론 책이 미래사회에서도 경제적인 콘텐츠로 존재하느냐, 그것은 미지수입니다. 아마 오늘날의 LP판처럼 과거의 유물이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일단 2021년이니까요.”

“그렇군요. 이상 작가.”

미쯔하루 편집장은 ‘한국에서 책을 내는 것을 포기한 모종의 이유’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역시, 프로는 프로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동의합니다.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히루키가 말했다.

나는 장난처럼 되받아쳤다.

“제행무상이다, 이 말씀이시죠?”

“역시 이상 작가의 일본어는 우리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단 말이죠!”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히루키 작가 덕분에 나에 대한 분위기도 점점 풀려간다.

사실 지금까지 일본인에게 ‘일본어를 잘하시는군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묘했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다는, 어쩔 수 없는 억울함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그 억울함이 조금은 가신 듯했다.

동료가 생긴 것도 그렇고,

일본에서 얻어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자, 그럼 이상 작가님에 대해서, 기자님들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누구 질문하실 분 계신가요? 아, 그쪽 분, 말씀하십시오.”

자, 시작되었다.

‘진짜’ 인터뷰는 지금부터다.

“예, 질문하겠습니다. 소문으로는 어제 히루키 작가와 이상 작가가 둘만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하는데요,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시가룸의 대화를 뜻하는 건가?

그런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히루키는 이런 일이 이미 익숙하다는 얼굴이다.

파파라치, 아니면 호텔 측에서 새어 나간 모양이다.

“굉장히 개인적인 만남이었는데요. 세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작가로서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대화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상 작가의 미래입니까, 히루키 작가의 미래입니까.”

그 말에는 ‘히루키 작가가 병아리 작가와 미래를 논할 리 없어’라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우리 모두의, 미래였습니다. 그렇지요, 히루키 작가님?”

“맞습니다.”

히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스쳤다.

“두 분은 얼마나 막역한 사이입니까?”

누군가 다음 질문을 던졌다.

히루키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저의 동료입니다. 같은 배를 타고 있죠.”

플래시가 엄청나게 터져댔다.

눈부셔라.

그때, 맨 앞줄에 앉은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지정을 받지도 않았는데, 마음대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상 작가님! 한국에서 책을 출판하지 않는 모종의 이유에 대해서 물어도 되겠습니까?”

좌중이 조용해졌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얼른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아, 그 질문은 받지 않는 걸로 하겠습니다. 언론에 나와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니까요.”

“아닙니다. 대답해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한국에서 등단을 했을 때, 표절사태에 휘말려 많은 압박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것을 한국 문단 자체의 문제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좋은 책을 내고 좋은 글을 묵묵하게 쓰고 계신 분들이 많으니까요. 다만 저의 경우에는, 제게 청탁과 같은 출판 시스템을 무기 삼아 저를 압박하려는 경우가 있었기에, 그것에서 자유롭고자 공식적으로 모든 청탁을 거절했습니다.”

기자들이 쉴 새 없이 내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

역시 한국이나 일본이나 기자들은 가십을 좋아하는군,

“대답이 되셨겠지요.”

나는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묻고 싶습니다만.”

그 기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한국에서 출판하지 않는 책을 일본에서 출판하려 하는 건, 한국의 문학 시장 수준이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대단히 무례한 질문.

저 질문의 저의야 뻔하다.

내가 일본에서 책을 내는 걸 ‘한일 양국의 비교 문제’로 확대해서 기삿거리로 만들려는 거겠지.

기본적으로는 한국 작가가 일본에서 책을 내는 걸 싫어하는 것일 테고.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자님이야말로, 그런 전제를 까신 걸 보면, 한국 문학 시장이 일본 문학 시장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아닙니까?”

나는 기자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순간 당황했다.

“혀,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일단은 시장의 규모도 다르고-”

“일본의 인구수는 한국의 두 배에 달합니다. 시장의 규모가 같을 수 없지요. 그렇다면 질적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본에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는 뻔뻔하게도 논점을 흐렸다.

“성공한 작가의 수를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한국 문학 시장과 일본 문학 시장의 현주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겁니다. 이런 곳에 오신 문화부 기자라면 그 정도 조사는 되어 있으실 텐데요.”

“저는 질문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질문을 하러 온 것입니다. 이상 작가님!”

기자가 발끈했다.

그때 히루키 작가가 느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기자님의 생각이 무척 궁금합니다만.”

그러자 미쯔하루 편집장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기자님의 고견을 들어보지요.”

기자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 시뻘건 얼굴을 찍는 다른 기자들도 있었다.

그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겨우 말했다.

“가, 각각의 나라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존중해야 하는 부분... 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나는 목청을 높였다.

“맞습니다. 기자님.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다니 정말로 반가울 따름입니다.”

와하하, 하고 웃음이 터졌다.

한국 작가를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이 장면은 일종의 코미디다.

“그, 그러니까 왜 하필 일본의 출판사에서 책을 내시려 하냐- 이겁니다. 한국에서 내도 될 것을요!”

기자가 끝까지 지지 않으려는 듯 외쳤다.

그에 대한 야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본 망신’이라는 속삭임마저 들려왔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본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을 해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건 정말이었다.

한국의 그 어떤 출판사도 내게 ‘잡문’을 책으로 내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는 한국 출판사의 ‘청탁’을 거절한 것이지, ‘출판’을 거절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 그럼 한국의 출판사에서도 책을 낼 의향이 있으십니까?”

미쯔하루 편집장이 물었다.

한국에서의 책이라.

포기하고 있던 것이긴 하지만... 혹시 아는가.

이 인터뷰로 상황이 바뀔지.

“가능합니다.”

단, 조건이 있지.

“저는 요즘 한국 문학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결국 저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이죠.”

이 말은, 한국 출판사들에 하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관해 저와 이야기를 나눌 ‘믿을만한’ 출판사가 있다면... 그 곳에서 책을 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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