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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36화 (3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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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35)

    다시 사는 천재 작가 35

    바쁜 시간이 지나갔다.

    오랜 회의 끝에 극본은 무사통과됐다.

    사소한 수정이 있을 수 있으니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하겠지만...

    지훈의 시상식도 무사히 끝났고,

    준비해왔던 사업자 등록을 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지, 간단한 서류만 있으면 ‘사업자’ 자체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업자 이름은 ‘팀 이상’

    깔끔해서 마음에 든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히루키의 책은 다른 작가의 추천사가 붙어 발간됐다.

    후회는 없다.

    가라사대에게 이용당해 줄 마음은 추호에도 없으니까.

    그리고 바로 오늘 토요일, 기다리던 책이 발간된다.

    신라문학 출판사의 계간지 <신라문학> 여름호가 나온 것이다.

    작업실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띠띠띠띠- 벌컥! 쾅!

    현관문 비밀번호을 치고 황급하게 문을 여닫는 소리.

    “형!”

    지훈이 후다닥 달려 들어왔다.

    가쁜 숨을 내쉬는 그의 손엔 <신라문학> 계간지가 들려 있었다.

    “조, 조인창 교수님이랑 제 글이 같이 실렸어요... 게다가 똑같이 형의 글을 가지고...”

    “오케이. 일단 줘 봐.”

    나는 지훈에게 계간지를 받아 목차를 살폈다.

    조인창 교수의 글 제목은 [이상 문학론].

    지훈의 글 제목은 [이상 문학의 문을 열며].

    뿌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동시에 비평을 써주다니.

    “잘됐네.”

    “형, 혹시 알고 있었어요?”

    “미안. 네가 고통스러워할 것 같아서.”

    말한다 한들 달라질 것도 없었고.

    “아~ 안 돼! 비교당할 거야, 분명 비교당할 거야! 내 바닥이 까발려질 거야!”

    지훈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비교... 당하겠지. 그것도 엄청.

    하지만 대 학자와 비교를 당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조인창 교수와 같은 주제를 잡았다는 점에서, 혜안이 있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고.

    “난 이것 좀 읽어볼게. 넌 가서 좀 진정하고 있어.”

    “네... 제 처음이자 마지막 비평일지도 모르니까 잘 좀 봐주세요...”

    “오버는.”

    지훈은 기가 팍 죽어서 터덜터덜 나갔다.

    비평가란 녀석이 저렇게 담이 작아서야.

    먼저, 지훈의 글을 읽었다.

    <세사노>를 세심하게 분석한 글.

    요 근래 본 어떤 비평보다 뛰어났다.

    특히 나의 잡문들과 함께 엮어 ‘현대성’이라는 의미망을 끌어내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심사경위도 내 생각과 비슷하게 적혀 있었다.

    송지훈, 확실히 비평에 재능이 있었다.

    비평가로서 좋은 출발을 했구나.

    이번엔 조인창 교수의 글이었다.

    [이상 문학론]

    -나는 태어나 두 명의 천재를 보았다. 첫 번째는 <날개>를 쓴 이상이고, 두 번째는 <부활>을 쓴 이상이다.

    두 이상의 위대함은 견주기 어렵다.

    <날개>의 이상은 1930년대의 방식으로 위대하다.

    <부활>의 이상은 2020년대의 방식으로 위대하다.

    나는 지금부터 후자의 이상이 어떠한 방식으로 그 위대함을 증명했는지, 나 또한 비평의 언어로 증명하고자 한다.

    이어지는 글은 <세사노>와 <부활>에 대한 섬세한 분석이었다.

    나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통찰과 직관.

    역시 한국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했다.

    그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하여, 이상의 소설은 미래지향적이다. 이 지점에 이견이 있다면 반박의 글을 이어가도 좋다.

    반박의 글을 이어가도 좋다.

    즉, 반박을 한다면 그에 대한 또 다른 반박을 이어가리란 뜻이었다.

    내 소설에 대한 사랑과 대 학자의 강단이 함께 묻어나는 글이었다.

    나는 책을 조심히 닫았다.

    “....”

    감동적이었다.

    전생의 내겐 문학적 스승은 나 하나였다.

    나 하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 하나의 내면이 만족하는 글을 썼다.

    하지만 이번 생은 아니었다.

    작가로서의 나를 이끌어주는,

    나의 글을 인정해주는,

    그리고 나를 보호해주는 선생이 있다.

    이것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조인창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가래 낀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이상 선생.

    “교수님. 잘 지내셨습니까.”

    -아쉽게도 그렇다곤 못 하겠구만.

    힘없는 목소리와 가쁜 숨.

    나는 그에게 물었다.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아니. 예정된 순서를 밟고 있어.

    “괜찮으실 겁니다.”

    -마음 쓰지 말게. 이리될 줄 알았으니 억울할 건 없어.

    “저... 이번에 신라문학에 써주신 글말입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조인창 교수는 잠시 말이 없다.

    -비평가의 글에 소설가가 감사할 필욘 없지.

    “....”

    -소설가란 비평가의 비판을 쓰게 먹어야 하듯, 비평가의 칭찬도 달게 먹어야지. 나에게 감사할 건 없네.

    서운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비평가와 소설가의 본질적인 관계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지점을 내게 알려주려 한다는 것을.

    -하지만... 친구로서 얘길 나눌 수야 있겠지. 혹시 시간이 날 때 한 번 들러주겠나.

    시간이 날 때?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으시다면 지금 가겠습니다. 댁에 계십니까?”

    -아니.

    “그럼 어디에...”

    -한국대 부속병원 병실에 있네.

    한국대 부속병원.

    그의 몸 상태가 짐작이 갔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그렇습니까. 지금 가겠습니다.”

    ***

    나는 조인창 교수가 알려준 대로 한국대 부속병원 특실 층으로 갔다.

    그 층은 병동이라기보단 호스피스의 느낌이었다.

    ‘조인창’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고, 병실 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가습기의 촉촉한 공기가 훅 불어왔다.

    “오셨습니까.”

    조인후 영화감독이었다.

    예전에 한국대 주차장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제가 갑자기 들이닥친 건 아닌지...”

    “아닙니다. 손님이 오시면 은근히 좋아하시니까요.”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덩치에 어울리게 호쾌하고 든든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럼 편하게 말씀 나누십시오. 전 집에를 좀 다녀오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연락처를 남겨드리겠습니다.”

    조인후 감독은 내게 연락처를 주고 떠났다.

    똑똑...

    나는 다시 한번 노크를 하고 병실로 들어갔다.

    “조인창 교수님.”

    “오, 왔나.”

    침대에 앉은 조인창 교수는 코에 산소줄을 달고 있었다.

    몸은 심하게 말랐고, 눈동자는 상아색으로 변했다.

    그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손에는 책을 쥐고 있었다.

    “좀 괜찮으십니까.”

    “안 좋아. 아마 얼마 남지 않았겠지.”

    “그런 말씀 마세요.”

    나는 침대 옆 간이의자에 앉았다.

    “더 빨리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귀찮게 무슨. 바쁜 거 알아.”

    조인창 교수는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요새 아주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던데. 드라마도 찍고 히루키랑 친교도 나눈다지.”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드라마는 얼추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 화 원고까지 넘겼고요.”

    “황금 같은 경험을 했군. 집 안에 갇힌 작가만큼 쓸모없는 인간은 없지.”

    “그리고 히루키는... SNS로 몇 마디 나누었을 뿐입니다.”

    “히루키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야. 이미지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그가 그렇게까지 관심을 보였다면 보통 마음이 아니었을 거야.”

    “덕분에 귀찮은 인기만 생겨버렸습니다. 하하....”

    “하지만 자네는 좀 튕기는 것 같던데?”

    그의 말이 내 본심을 찔렀다.

    “맞습니다, 교수님.”

    “그 이유가 궁금하군.”

    “...그간 저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불편함의 정체가 뭘까... 하고요. 작가로서의 히루키는 훌륭합니다. 그의 문학관을 존중하고요. 인간적인 호감도 갑니다. 다만....”

    “뭐가 걸리는 거지?”

    “그가 일본 작가라는 것이 걸립니다.”

    조인창 교수는 나를 빤히 봤다.

    “그게 왜.”

    “낡은 생각처럼 들리시겠지만... 사실 이건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어쨌건 저는 한국 문학을 하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세계문학 속에서 한국의 입지는... 객관적으로 일본에 뒤처져 있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작가들의 실력 차이 때문은 아닙니다. 저는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문화 차이에서 온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차이의 뿌리는... 일제강점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군.”

    조인창 교수가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 당시 좋은 작가들이 대거 죽었다는 건, 그래요. 지금에 와서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시기는 오늘날의 문화를 결정지어버렸습니다. 바로 ‘불안’의 문화가 싹튼 거죠.”

    “불안이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앞서나가야 한다는 불안이겠죠. 새로운 것은 얼른 받아들이고, 오래된 것은 바라보지 않게 하는.”

    “...그래서?”

    “그 ‘오래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문학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보지 않고 작가의 입지가 작아진 결정적인 이유죠. 그러니 고인물이 된 문단은 작은 파이를 두고 권세를 부릴 수밖에요. 그동안 일본 작가들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문학을 지켜올 수 있었고요.”

    “동의하는 바네. 하지만 그게 히루키의 탓은 아니잖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에요. 다만 가까이하기엔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거죠.”

    “끌끌...”

    조인창 교수가 낮은 소리로 웃음을 삼켰다.

    “...순진하군. 드라마를 쓰면서 세상의 때가 좀 탄 줄 알았더니. 나라면 만나볼 것 같은데.”

    “히루키를요?”

    “그래. 이상 자네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라.

    과연 어떤 면에서?

    “자네는 천재야. 알고 있지?”

    조인창 교수의 눈이 빛났다.

    “...압니다.”

    “하지만 아직 대가는 아니야. 너무 젊고, 뜨거워.”

    “....”

    “대가의 자세를 배우게. 그는 분명 자네에게 귀감이 될 거야.”

    대가의 자세.

    확실히 히루키는 대담하고, 여유가 있었다.

    미워할 수 없는 매력.

    그는 그런 걸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공짜로 그것을 나눠주진 않겠지. 그는 자네의 천재성을 알아갈 거야. 자네의 감각. 자네라는 천재가 생각하는 법, 말하는 법, 숨 쉬는 법까지. 그것은 그에게 대체 불가한 영감이 아니겠나.”

    대체 불가한 영감.

    조인창 교수는 그렇게 표현했다.

    ...그것은 당연히 나에 대한 극찬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나도 일본 여행을 수십 번 다녀오고 일본에서 책도 내 봤네. 하지만 일본인 학자에겐 아직도 마음이 미묘해. 왠지 지고 싶지가 않아. 어쩌면 이건 내가 193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넨 그런 것도 아니잖나.”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활력이 차올랐다.

    “부딪혀 봐. 그를 만나보고, 느껴 봐. 부딪혀서 안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돼. 자넨 젊어. 그 정도 여유는 있잖아.”

    조인창 교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마치 날 격려하고 달래주는 듯.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던 자신이 젊은 날을 떠올리는 듯.

    “또 한 가지.”

    또 한 가지?

    “그는 일본 작가이기 이전에, 자네와 같은 ‘아시아의 작가’라는 걸 잊지 말게.”

    “그거야 당연한 사실이 아닙니까.”

    조인창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히루키를 만나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야.”

    ***

    조인창 교수를 만나고 온 후, 나는 다시 집으로 왔다.

    지훈의 책상 중앙,

    계간지 <신라문학>이 당당하게 꽂혀 있었다.

    지훈이 녀석,

    이러니저러니 해도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히루키의 책을 다시 들춰봤다.

    [천재와의 만남을 기원하며. 2021년 04월 29일. 무라카미 히루키 드림]

    “천재와의 만남을 기원한다라...”

    조인창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천재성이지. 자네의 감각. 자네라는 천재가 생각하는 법, 말하는 법, 숨 쉬는 법까지. 그는 당연히 느끼고 싶을 거야. 그것은 그에게 대체 불가한 영감일 거야.

    그래. 그런 이유라면 만나지 못할 것도 없지.

    아니, 오히려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대가의 자세’가 뭔지,

    ‘아시아의 작가’로서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눌지,

    더없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신의 서>를 쓰다듬었다.

    우웅-우웅-

    전화가 걸려왔다.

    ...국제전화? 누구지?

    나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웬 일본어가 툭 튀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이상 작가님 되십니까.

    나는 순간 멈칫했다.

    김혜경의 몸으로 들어 온 후, 일본어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 역시 한국어 통역이 필요하려나. 이토 상, 한국어 좀 할 줄 알지?

    그러나 머뭇거린 것도 잠시,

    자연스럽게 일본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통역은 괜찮습니다. 이상입니다. 귀하는 누구신지요.”

    -아! 일본어를 하실 줄 아시는군요. 역시 이상 선생님이십니다! 통화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일본 도쿄 도마코 출판사의 편집장 미쯔하루라고 합니다.

    도마코 출판사.

    그곳은 일본 최고의 출판사이자 히루키의 신작이 나온 곳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하하... 다름이 아니라 요즘 무라카미 히루키 선생님과 함께 이상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습니다. 히루키 선생님께서 다른 작가분께 관심을 표하시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해서요. 저 역시 이상 작가님의 홈페이지를 매일같이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그러십니까. 번역이 어색하지 않았을지 우려가 됩니다만.”

    -그런 것 전혀 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더할 나위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본에 제 이름을 알려주신 히루키 작가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히루키 선생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다. 이상 작가님을 정말 좋아하시거든요.

    그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 내게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꺼냈다.

    -혹시, 저희 출판사에서 책을 낼 의향이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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