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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31)
다시 사는 천재 작가 31
그러니까 오늘은 우리 ‘팀 이상’ 사상 최고의 날이다.
금홍은 바리스타 자격증 2급 취득에 성공하고,
지훈은 비평가로 등단을 하고,
나는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까.
우리는 멜론주를 한껏 마셨다.
지훈이는 갑작스런 등단에 넋이 나간 것도 잠시였다.
이내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웃으며 까불거렸다.
고생한 시간이 길어서 눈물이라도 보일 줄 알았는데.
금홍은 잘 놀다가 열 시경에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슬슬 자리를 정리하는데, 지훈이 말했다.
“형. 한 잔 더 할래요?”
조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진지한 얼굴로.
“좋지.”
“멜론주는 아까우니까 맥주 마셔요.”
“난 술은 그만 마실래. 물 마셔도 되지?”
“지독하기는. 그래요, 그럼.”
지훈은 혼자서 캔맥주를 깠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꽤 마셨는데도 취한 것 같진 않았다.
“송지훈 이제 비평가네? 공부 많이 해야겠다.”
“비평가라...”
지훈이 중얼거렸다.
“형. 술김에 말하는 거지만... 나 진짜 형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알면 됐다.”
“그냥 하는 소리 아니에요. 형 있어서 거지 같은 대학원 생활도 버틸 수 있던 거고, 비평 낸 것도 형이 권유한 거잖아요. 게다가 형 소설로... 형 진짜 진짜 천재 아냐? 어떻게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어요?”
지훈이 몸을 내 쪽으로 쑥 내밀며 물었다.
“어. 나 진짜 진짜 천재야.”
“... 난 형이 겸손 떨 줄 몰라서 좋더라.”
“넌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 싫어하잖아.”
“아무튼,”
지훈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크으...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형님. 전 형님만 믿고 따라갈게요.”
“무슨 소리야. 비평가가 소설가를 믿으면 어떻게 해? 비평가면 소설가한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해야지.”
“난 그런 비평 안 할 거예요!”
“그럼?”
“소설가들이 소설을 쓰고 싶게 만드는 비평을 할 거예요. 아, 물론 형 매니저로서도 잘 부탁합니다아-”
지훈이 식탁에 이마를 꿍-하고 박았다.
취했다, 이 녀석.
하지만 말 나온 김에 이 얘길 해야겠다.
“나 곧 사업자 낼 거야. 그때 정식으로 계약서 쓰고 매니저 해주라. 물론 비평 활동도 계속하고.”
지훈이 고개를 휙 들었다.
“진짜요?”
“그래. 순문학 작가 관리해주는 매니지먼트도 있지만... 거기에 얽히느니 널 믿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너 등단할 때까지 기다린 거야. 괜히 나 때문에 잘하던 문학 접을까 봐.”
사업자가 당장은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겠지만,
미래를 위해서 결정한 부분이다.
또, 세무 처리 면에서 이편이 낫기도 하고.
“나 오늘 직업 두 개 생겼어요. 비평가에다가 매니저. 최곤데? 내 생일인가?”
“알았어. 자세한 얘긴 다음에 하고, 그만하고 일어나. 가서 자라.”
그러자 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안 취했어요. SNS에 글 올릴 것도 남았고.”
“안 피곤해? 내일 해.”
“형. SNS의 세계에서 내일이란 없어요. 새벽에 들어 올 유입들 무시해요? 지금 딱 사람들 휴대폰 들여다볼 시간인데, 절대 놓칠 수 없어요.”
...참, 웃기지만 든든한 놈이다.
지훈은 정말로 짹짹이를 켰다.
그리고 댓글을 좀 달다가, 멈칫했다.
“...형.”
“왜?”
“... 우리 진짜 뭐가 되긴 될 건가 봐요.”
“뭔 소리야?”
지훈이가 눈이 동그래진 채 날 보았다.
“히루키가 형 계정 태그했어요.”
“... 히루키?”
“무라카미 히루키!”
“... ‘그’ 무라카미 히루키?”
“이, 이것 봐요.”
지훈이 휴대폰을 내게 보여주었다.
내 계정에 접속한 지훈의 휴대폰 화면에는 히루키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이거 뭐라고 쓴 거예요? 이상이라는 단어 빼고는 모르겠는데.”
“...이상, 그는 진짜다.”
“...헉.”
지훈이 입을 틀어막았다.
“...라고 써놨네, 히루키가.”
***
‘이상, 그는 진짜다’
히루키의 피드는 내게 한바탕 난리를 안겨줬다.
가장 먼저 반응하는 건 역시 신문사였다.
온갖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들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요는 한 가지였다.
-히루키의 태그와 ‘이상, 그는 진짜다’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생각하긴.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무라카미 히루키의 힘을 제대로 느끼는 중이었다.
문단의 원색적인 비난이 하루 만에 싹 사라진 것이다.
<부활>의 일본 페이지 결제 수도 몇 배로 뛰었고.
그러나 난 단 한 건의 인터뷰도 못 했다.
정말이지 미친 듯이 바빴기 때문이다.
밀려드는 극본 회의와 그에 따른 세세한 수정들.
드라마는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또, 기사는 인터뷰 없이도 잘만 나왔다.
<히루키가 인정한 신인 작가 이상>과 같은 기사가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졌다.
하지만... 나도 피하지 못한 문자가 하나 있었다.
-이상 작가님, 저 서인희 기자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이번 히루키 작가의 짹짹이 피드에 대해 짧은 인터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전화만이라도 괜찮아요.
...서 기자의 부탁을 거절할 순 없지.
그녀는 내가 등단한 이후 꾸준히 나에 대해 좋은 기사를 써주지 않았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은혜 갚는 셈 치고 독점 인터뷰를 해주자.
나는 엠플릭스로 가는 택시에서 그녀와 통화를 했다.
-이상 작가님! 잘 지내셨나요? 저번 엠플릭스 시상식에선 제가 취재가 잡혀서 후배를 보냈었는데요. 그날도 멋진 말씀 많이 해주셨더라고요.
“그래서 못 뵀군요. Y일보 기사는 봤어요. 좋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인터뷰까지 수락해 주시고...
“서 기자님 인터뷰는 해드려야죠. 의리가 있는데요.”
-하하하... 영광이네요. 그럼 빨리 진행할게요. 무라카미 히루키가 ‘이상, 그는 진짜다’라는 글을 남겼잖아요. 그 글을 처음 봤을 땐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음...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내 글을 보고 있었다니... 하는 생각이었죠. 사실 지금도 실감이 잘 안 나요.”
-히루키 작가가 이상 작가의 어떤 면 때문에 ‘진짜’라는 표현을 했을까요.
“글쎄요. 같은 작가로서 통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중요한 건, 이런 만남이 과거에는 없던 인터넷 문화의 수혜라는 점이죠.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한 것 같아요.”
-홈페이지를 말씀하신 거죠?
“예. 홈페이지가 아니었다면 히루키 작가가 제 글을 읽을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겠죠.”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히루키 작가에게 남기실 말씀이 있을까요?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그리고 신작 기대하겠습니다.”
-끝인가요?
“끝입니다.”
-심플하네요.
“기사 잘 좀 써주세요. 건방져 보이지 않게요. 좀 조심스럽긴 해서요.”
-맡겨주세요. 그럼 기사 초안 나오면 보내드릴게요.
“예. 부탁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서 기자의 기사는 일파만파 퍼졌다.
SNS에서는 바로 난리가 났다.
-히루키 팔로우 안 하는 작가로 유명하지 않아? 그런 대작가가 이상한테 먼저 태그를 걸었다고?
-이상 홈페이지 조회수 봐. 일본인들 이상한테 원래 관심 적지 않았음. 히루키도 그중 하나겠지.
-나 한 줌 남은 순문학 덕후인데 이상이랑 히루키 회동 진심으로 염원하는 중.
-만나면 문학 한일전이 되는 건가? 나 히루키 팬인데 그럼 매국노?
-진짜 두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베토벤이랑 모차르트 만난 것처럼!
-베토벤이랑 모차르트는 한 번 만나고 성격 안 맞아서 다신 안 봤던데...?
재일교포 커뮤니티의 상황도 비슷했다.
다만 일본인 커뮤니티는 ‘갑자기 웬 한국 작가?’라는 분위기로 간을 보고 있다고.
그나저나 히루키와의 만남이라고?
그것참... 기분이 묘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조선’의 작가로서,
일본에 대한 마음은 단순하지 않다.
1936년 10월.
나의 시간으로는 고작 2년 전.
난 내 문학세계의 확장을 위해 바로 일본에 왔다가 사상범이란 누명을 쓰고 모진 고초를 겪었다.
그때 악화된 폐병이 결국 날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물론 내 과거가 이렇다고 해서, 현재 일본에 대해 악감정은 없다.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미국인이건 내게는 똑같이 소중한 독자니까.
그저 내 글을 봐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일본 작가’는 얘기가 다르다.
나와 같은 조선의 작가들이 그렇게 죽어갈 때,
일본의 작가들은 안정적인 집필을 하며 일본의 문학 수준을 공고히 했다.
그리고 그들의 후예가 다름 아닌 무라카미 히루키.
나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그와 친교를 맺는 게 내게 절대적으로 이득이라는 걸.
하지만 이건 이해득실을 떠난 일이다.
내 마음속 남은 ‘상처’의 문제이며,
일본 작가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경쟁의식’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어렵다.
***
무라카미 히루키의 여파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국대 특강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에도 사람이 가득한 지하 대강당이었지만,
오늘은 계단에까지 학생들이 가득 찼다.
한승 조교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히루키 짹짹이 피드 때문에 청강생들이 많이 몰린 것 같아요.”
“들어 온 학생들을 내보낼 순 없으니, 잘 진행해볼게요.”
내가 단상에 오르자,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쏟아졌다.
강의 분위기가 묘하게 어수선했다.
나는 인사 대신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청강생이 좀 많군요.”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문학창작특강’ 특유의 콧대 높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 안엔 분명 그저 호기심에 구경을 온 학생도 있으리라.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들을 강의에 집중하게 하는 것.
“작가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죠?”
내가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침묵이 찾아왔다.
“답은 하나입니다. 독자를 위해 씁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학생들이 많다.
당연한 일이다.
순문학은 ‘독자’가 아닌 ‘예술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게 정설이니.
계단에 앉아있던 청강생들의 표정이 혼란으로 물든다.
‘뭐야, 히루키가 인정한 작가라며...’하는 얼굴들.
“작가답지 않은 말을 한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본질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이겁니다.”
요즘 나는 드라마를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글쓰기의 본질은 다를 게 없다는 생각 말이다.
“순수문학에서, ‘독자를 위한 글’을 쓴다고 하면 작가주의를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작품의 소유권은 온전히 작가에게 있다는 거죠. 맞는 말이에요. 작가는 독자의 눈치를 보며 글을 쓸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죠. 독자 없이는 작가도 없다는 걸요.”
몇몇 학생들은 여전히 동의하지 못하겠단 얼굴이었다.
“그래요. 독자 없는 문학도 있지 않으냐, 그럼 안 읽히는 문학은 문학도 아니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반드시 읽힐 필요는 없어요. 읽어주지 않는 문학도 문학이죠. 하지만 제 이야기의 초점은 그게 아닙니다. 이건 창작의 차원에서 사유해야 하죠. 드라마는, 극본가가 시청자의 니즈를 파악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걸 써줘야만 하죠. 그렇다면 순문학은 어떨까요?”
“독자의 마음을 대변해줘야 해요.”
누군가 대답을 했다.
“맞아요. 순문학은 독자 내면에 내재되어 있지만, 독자가 몰랐던 것을 끄집어내는 일을 합니다. 메시지건 형식이건. 즉, 무의식의 것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야 하죠. 그리고 이 독자의 영역 안에는... 당연히 작가 자신도 포함됩니다.”
학생들이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작가가 의식 없이 글을 쓰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남들보다 현대적이어야 하는 이유 역시 여기 있고요. 이성과 사고, 감성의 영역에서 작가는 독자보다, 아니 자기 자신의 의식보다 한 발 정도 앞서가야 해요. 그래야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할 수 있지 않겠어요? 결국 작가가 ‘인간’에 대해 쓰는 한, 문학이 ‘작가만의 것’이라 생각하는 건 오만이겠죠.”
그쯤 되니 강의 집중도가 거의 완벽해졌다.
그들의 의식이 내게로 빨려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두 시간 후.
강의는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었다.
수업 자료를 챙기는데, 몇몇 학생들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질문인가?
“저기... 작가님. 혹시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예상치도 못한 말이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정중하게 거절하려 하는데, 한 학생이 핸드폰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자, 작가님! 이것 좀 보세요. 히루키 작가가 또 태그를 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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