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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30화 (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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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29)

다시 사는 천재 작가 29

나는 단상위로 올라갔다.

엠플릭스 측은 꽃다발과 상패를 내게 안겨주었다.

음악과 함께 사회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대상을 수상한 극본 <무너지는 날>은 폐가에 담긴 기억과 비밀을 건축가의 시선을 통해 밝혀가는 내용으로, 실감나는 대화와 박진감 넘치는 구성, 흡입력 넘치는 전개로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무너지는 날>은 올해 안으로 사전제작을 마치고 엠플릭스를 통해 정식으로 방영될 예정입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수상자께서는 수상소감을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단상의 마이크 앞에 섰다.

드라마 판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날 보았다.

그 뒤에 선 기자들의 눈빛도 볼 만했다.

‘이상이 한국 문단에 또 어떤 자극적인 반격을 할 것인가.’

그들의 생각이 들리는 듯했다.

박수가 잦아든 후, 나는 입을 열었다.

“먼저 제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강인춘 PD님과 송예나 극본가님, 기획팀의 이솔 팀장님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드라마를 쓰면서 참 많은 걸 배웠습니다. 특히 순문학 소설가가 드라마라는 대중 문학을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제가 소설을 버리고 드라마를 선택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압니다. 돈을 위해 판을 옮겨갔다고 생각하셨겠죠.”

노트북을 치는 기자들이 손가락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이해합니다. 시와 소설만이 문학이라 생각하시는 분들께서 서운하셨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들은 틀렸습니다. 제가 드라마를 썼다고 해서, 소설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 ‘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볼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사실 나도 그 한계를 모른다.

시, 소설, 드라마, 영화, 가사, 광고, 웹소설...그 끝은 어디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그것들을 모두 해보고 싶었다.

내 능력이 닿는 한까지.

“소설이나 드라마나 근본은 같습니다. 시나 소설이 독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 처럼요. 순수문학이건 방송문학이건... 봐 주고, 읽어주는 이를 위해 존재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글은 ‘인간’을 위한 것이니까요. ‘인간’과 ‘인간의 마음’과 무관한 글이 어디에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부디 편견 없이 내 말을 이해해주기를.

“저는, 한국 문학이 오늘의 이 수상 이후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벽을 허물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문학이라는 지도를 하나로 합쳤으면 합니다. 용기 있는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그 지평을 개척하고, 지도를 넓힐 수 있도록요. 제 수상소감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침묵에 싸여 있던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박수는 이내 우레처럼 시상식장을 뒤덮었다.

“멋지다!”

“이상 파이팅!”

어디선가 응원이 터져 나왔다.

이들은 적어도 문단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받아주는 것 같았다.

***

엠플릭스 시상식 뒤풀이장.

대형 호프를 통째로 빌린 이 뒤풀이장에는 방송계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번 뒤풀이의 이슈는 역시나 이상 작가의 참석.

그는 ‘천재’라고 정평이 나 있었지만,

공식 석상이나 인터뷰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신비의 인물이었다.

그가 뒤풀이에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그를 보기 위해 부러 뒤풀이장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상의 주변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온갖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런 수상 소감은 어떻게 생각해내신 거예요? 지도라니...너무 멋지잖아. 며칠이나 준비했어요? 솔직히 말해 봐요.”

“공개된 극본 보니까 소설이랑 느낌이 많이 다르던데요? 작품 쓸 때마다 그렇게 문체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요?”

“나중에 홈페이지 프리미엄 회원 같은 건 안 받나?”

“굿즈 제작 같은 거 안 할래요? 관심 있으면 연락 줘요. 손해 안 보게 해줄게요.”

이상은 그저 미소로 일관할 뿐이었다.

대답을 할 틈도 없이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편, 금홍과 지훈은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기들끼리 소소하게 잔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형 지금 뒤풀이 온 거 후회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요? 웃고 있는데요.”

“아니에요. 잘 봐요. 저거 사회적 미소잖아요. 그냥 집에 갈걸...하고 속으론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는 중이에요. 킬킬...근데 형도 좀 즐길 줄 알아야 해요. 사람들이 좋다고 달려드는 걸 저렇게 불편해 하더라.”

지훈이 보기엔 이상은 인기를 더 즐겨도 좋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말을 그렇게도 잘 하면서,

개인적인 ‘팬’들 앞에서는 얼어붙는 게 좀 웃겼다.

‘하긴, 저런 면이 있어서 그나마 좀 인간답지.’

“그나저나 꽃 줘야 하는데...”

금홍은 옆에 둔 꽃다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시상식 후로 꽃은 고사하고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여기서 이렇게 보니까 딴 세상 사람이네.’

서운한 건 아니었지만, 어딘지 거리감이 느껴진달까.

금홍은 이상을 빤히 보았다.

자세히 보니 진짜로 미소가 석고상 같았다.

곤란해 하는 모습이 좀 귀엽기도 하고.

지훈이 말했다.

“형 저렇게 바쁜데 이틀에 한 번 꼴로 잡문 써서 주는 거 보면 진짜 놀랍지 않아요?”

“맞아요. 열 시에는 잠드신다고 했는데...어디서 그런 시간이 나시는 걸까요.”

“잡문은 벌써 오십 개가 넘었어요. 책으로 내면 좋을 텐데.”

“연락 오는 곳도 없어요? 청탁을 거절한 거지 출판을 거절한 건 아니잖아요.”

“없어요. 저들끼리 눈치나 보고 있겠죠... 어쨌건 형은 천상 글쟁이에요. 집중할 땐 손가락도 안 보인다니까요. 부럽기도 하고요.”

“샘도 잘 하실 수 있어요. 아,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금홍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는데, 얼굴이 많이 달아올라 있었다.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이따 멀쩡한 모습으로 꽃다발 드려야지. 정신 차리자.’

금홍은 차가워진 손으로 뺨을 감쌌다.

그리고 다시 호프 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기요.”

웬 멀끔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요즘 드라마 조연으로 간간이 티브이에 얼굴을 비치기 시작한 신인 남자 배우였다.

“진짜 제 스타일이셔서 그런데...번호 좀 알 수 있을까 해서요.”

“아...”

“부담 갖지 마시고요. 그냥 가볍게 커피 한 잔 해요. 저 이상한 놈 아니에요.”

그는 어울리지 않게 얼굴까지 붉히며 말했다.

금홍은 이런 경우를 수없이 많이 겪어왔다.

뒤탈 없이 거절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금홍은 최대한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남을 만날 여유가 없어서요. 이해해주시라 믿을게요.”

무례하지 않을 정도의 미소.

명확한 의사 전달.

적당한 거리감과 확실한 선.

금홍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이런 것들이 배어 있었다.

웬만한 남자라면 바로 꼬리를 내리기 마련.

그런데 이 남자는 좀 끈질겼다.

“하, 하지만 혹시 생각이 바뀌실지도 모르니까요. 괜찮으시다면 제 번호라도 알아가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아, 그래도...! 저기요!”

금홍은 할 말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그를 스쳐갔다.

‘싫다고 하는데...끈질기잖아.’

금홍은 복도를 지나 다시 테이블 쪽으로 걸어왔다.

“금홍 선생님!”

언제 왔는지 이상이 지훈 앞에 앉아 금홍을 불렀다.

환한 웃음과 함께.

‘그래. 진짜 ‘멋진’ 남자면 저래야지. 매너 좋고, 똑똑하고...‘

사실 금홍은 외모에 비해 연애 경력이 화려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온갖 놈들이 다 꼬였고, 그들의 사탕발림은 금홍을 언제나 헷갈리게 했다.

또...데이기도 많이 데였고.

그래서인지 금홍은 어느 순간부터 남자가 불편했다.

‘좋은 남자’나 ‘멋진 남자’가 대체 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이상을 만나고는 막연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금홍은 이상의 옆자리에 앉았다.

“꽃 감사해요.”

이상이 꽃다발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큰 돈 썼으니 잘 간직해주세요.”

“그럼요. 말려서 오래오래 둬야죠.”

“그런데 저희랑 같이 계셔도 괜찮으신 거예요? 혜경 샘 만나뵈려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지금도 이상을 흘긋거리는 이들이 주위에 가득했다.

아무래도 신인이면 이런 곳에서 인맥을 쌓는 게 중요할 텐데...

“절 응원하러 일부러 여기까지 와 준 사람들을 두고 내가 어딜 가요. 자, 건배.”

그 대답에 금홍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거 봐. 멋진 사람 맞다니까.’

하지만 그 마음은 이성적 호감으로만 설명할 순 없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동경이랄까.

그처럼 열심히, 멋지게 살고 싶은 마음.

그래서 언젠가는 그처럼 더 큰 세상으로 달려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

이상은 금홍에게 바라만 봐도 그런 힘을 주는 사람이었다.

“자, 건배할까요?”

금홍이 잔을 올리며 말했다.

“얼~ 금홍 샘 웬일이에요? 기분 좋으신가보다. 형, 형도 잔 들어요.”

“그래. 다들 와 줘서 고마워요. 그럼 팀 이상, 건배!”

“건배!”

“건배!”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밤이었다.

***

도마크 출판사의 신작, 히루키의 <신의 서>.

출간된 지 일주일이 넘도록 판매 지표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고 있었다.

‘무라카미 히루키’

그 이름은 역시 일본 출판 시장의 흥행보증수표였다.

이제 남은 건 <신의 서>를 해외 출판 시장에 전략적으로 내놓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오키나와의 호화 별장.

요즘 무라카미 히루키는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그는 수영장 앞 선베드에 누워 휴대폰을 뒤적거렸다.

휴대폰 화면에는 간단한 엑셀표가 떠 있었다.

매니지먼트가 보낸 수출가능 국가의 명단과 직전 작품의 판매 지표였다.

가계약도 번역도 이미 다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전 세계에서 책을 찍어낼 수도 있지만, 그러면 홍보의 임팩트가 떨어진다.

‘순서’라는 건 마케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히루키가 첫 번째로 선택한 나라.

그 표어만으로 판매 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되니까.

‘숫자만을 생각하자면 미국이 제일 좋겠지. 하지만 이런 선민의식이 섞인 홍보가 잘 통한 건 또 유럽 쪽이라 이 말이야. 아시아 쪽은 굳이 공격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고...’

행복한 고민도 잠시, 히루키는 엑셀을 꺼버렸다.

“이런 건 역시 골치 아프네~ 매니저랑 얘길 해봐야겠어.”

히루키는 머리도 식힐 겸 짹짹이 계정에 접속했다.

팔로워 300만 명. 팔로우는 0명.

‘인터넷 친목’은 자제하고 필요한 정보는 직접 검색하여 얻는 편이었다.

그가 습관처럼 검색한 단어는 ‘李箱(이상)’.

어젯밤, 그가 한국의 드라마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사실 좀 의외였다.

소설가로서 더 자리를 잡아야 하는 시기에 어째서?

지금 드라마로 진출하면 정체성이 좀 애매모호해지는 게 아닌가?

화면을 죽 내려 보니 누군가 그새 수상 소감을 번역했다.

이상은 재일교포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그의 기사는 모두 다 일본어로 번역되고 있었다.

히루키는 수상 소감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지도라...문학의 지도...경계...”

그는 이내 활짝 미소를 지었다.

멋진 노래를 들었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까지 했다.

“역시 너무 멋지잖아, 이 작가.”

히루키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청명한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한 명의 천재가 한 나라의 문화를 발전시키기 마련이지.’

한국의 문단은 곧 변할 것이다.

구태의연한 청탁과 출판 시장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판매의 기로를 마련하고 한국인들의 장점인 인터넷 문화를 적극 이용할 것이다.

‘이상’, 이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서.

‘동아시아에도 천재가 등장했으니...나도 긴장을 늦추진 말아야겠는걸. 나는 천재는 아니지 않은가.’

‘뛰어난 작가’와 ‘천재’는 다르다.

히루키 자신이 평생 자신의 문학을 갈고 닦은 ‘뛰어난 작가’라면, 이상은 날 때부터 ‘천재’다.

가슴 안쪽에서 질투가 슬금 올라왔다.

그러나 이내 그것을 깨끗하게 없애버렸다.

그것은 오직 실력과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또...같은 ‘동양인 작가’로서 친밀감도 느껴졌고.

그는 다시 짹짹이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어찌됐건 이상을 만나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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