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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29화 (29/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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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28)

다시 사는 천재 작가 28

요즘 문학잡지에 문화부 일간지에 내 얘기가 가득하다.

엠플릭스 드라마 극본 당선을 가지고 입방아들을 찧는 것이다.

시작은 좋았다.

<한국 문단의 풍운아 이상, 드라마를 장악하다>

서인희 기자의 우호적인 기사였다.

내가 대상을 타게 된 경위와 <무너지는 날>의 간략한 스토리도 덧붙여져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기사들은 달랐다.

<발칙한 신인은 어째서 순문학의 순결성을 훼손하는가.>

<돈을 따라가는 문학, 이상 작가의 타락은 어디까지.>

등등...

기사엔 듣도 보도 못한 원로 작가와 교수들이 튀어나와 비난을 한 마디씩을 보탰다.

“이건 뭐, 명예훼손도 아니고...”

나는 사무실에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옆에서 내 홈페이지에 들락거리던 지훈이 픽 웃었다.

“형 근데 그거 알아요?”

“뭐?”

“그런 기사가 날수록, 형 소설 결제 수는 올라간다는 거요.”

“노이즈 마케팅인가?”

“알아서 해주니 다행이죠. 신경 쓰지 말자구요.”

“네 말이 맞아. 그럴 가치도 없고.”

“그러고 보니 형 시상식은 언제예요? 사진 좀 찍어서 SNS에 올릴까 하는데.”

“내일 밤이야.”

“오케이. 카메라 준비할게요. 예전에 쓰던 거 있어요.”

“새 걸로 하나 사. 우리가 정식 업체는 아니지만 경비 쓰는 셈 치고.”

나는 지훈이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지훈이는 눈을 반짝이며 양 손으로 카드를 받아들었다.

“형님, 날이 갈수록 멋져지시네요.”

“원래 돈으로 내는 멋이 제일 쉬운 법이지.”

“히히. 얼마짜리 살까요?”

“오백 안쪽으로 사. 그 정도 할 여유 있어, 우리.”

“오늘 바로 살게요. 그래야 손에 익혀서 내일 찍죠. 깨논 거 괜찮죠?”

“그래, 지훈아. 고생 좀 해 줘.”

이렇게 보면 시상식 가는 것도 일이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입을만한 옷도 사야하고.

“맞다, 너 신라문학에 비평 낸 건 어떻게 됐어?”

내 말에 지훈인 배를 감싸 쥐었다.

“묻지 말아요, 형...말만 들어도 위궤양 생길 것 같은 기분이니까.”

긴장하고 있군.

절치부심하고 써서 낸 모양이지.

지훈이 이번 공모전에서 등단을 하게 된다면...

조인창 교수의 비평과 함께 신라문학 여름호에 실리게 된다.

공교롭게도 둘 다 내 소설을 주제로 한 비평으로.

아직 지훈에게 이 사실을 말하진 않았다.

알게 되면 진짜 위궤양이 생겨버릴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신경 쓸 거 많아서 죽겠어요. 자취방 계약도 끝나서 집도 보러 다녀야 하고...”

“어? 나도 이사할 생각이었는데.”

“형은 좀 그럴 필요가 있어요. 집이 너무 작잖아요.”

“흠...”

좋은 생각이 났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같이 일할 거.

지훈이와 함께 큰 집을 구해서 살까.

그럼 일하기에도 훨씬 수월할 텐데.

“송지훈.”

“왜요.”

“남이랑 같이 살면 싫지?”

“당연히 싫죠. 불편하게. 남자면 더 싫고.”

됐다, 됐어.

나도 너랑 사는 거 징그러워서 싫다.

지훈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지금 같이 자취하자고 얘기한 거였어요?”

“됐어, 불편하다며.”

“에이. 형은 예외죠!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같이 살면 귀찮게 톡 할 일도 없고 좋겠네요! 좋아요! 형네 집 보증금 얼마예요? 집은 제가 직접 알아볼게요. 정보의 왕 송지훈 아니겠습니까.”

이건 뭐 내가 됐다는데 벌써부터 난리다.

하지만 나도 진심으로 거절하려던 건 아니었다.

“곧 드라마 공모전 상금 들어올 거랑, 엠플릭스 쪽에서 1차 계약금 받고...거기에 당장 운용 가능한 돈 합치면...1억 정도 되겠네.”

“제 자취방도 한 칠천 하니까 합치죠. 학교 후문에서 방 세 개. 일단 반전세로 가고 돈 모자라면 아버지한테 얘기 좀 해볼게요. 어차피 형 홈페이지에서 돈 계속 들어오잖아요. 남자들 사는 데니까 보안, 소음은 좀 후져도 되고. 대신 평수는 최대한 큰 걸로 구해봅니다?”

와. 속전속결이다.

이런 면에선 지훈이 나보다 낫다.

어영부영하던 나완 달리, 지훈은 벌써 부동산 매물을 뒤지며 즐겨찾기를 차곡차곡 쌓아놓는 중이다.

“제가 쫙 정리해서 3개로 추려볼 테니 형은 거기서 고르기만 해요, 오케이?”

“오케이. 믿는다.”

사업의 실무자란 이런 녀석이 해야 하는구나.

나는 지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저기,”

금홍이가 슬쩍 다가왔다.

“저도 시상식 가도 될까요?”

말이라고 하나.

금홍이는 언제나 환영이지.

“와주시면 영광이죠. 내일 같이 출발하죠. 아, 그리고 이번 잡문, 영어 번역 빨리 해주셔서 감사해요.”

금홍이의 번역에 점점 속도가 붙고 있었다.

워낙 열심히 하는 성격이니, 당연한 일이다.

“맡겨만 주세요.”

금홍이는 그렇게 밝게 말하곤 제 자리로 돌아갔다.

나와 함께 일한 후로 금홍이의 컨디션이 부쩍 좋아졌다.

‘팀 이상’이 된 효과일까.

***

시상식 날이 되었다.

우리 ‘팀 이상’은 함께 모여 택시를 타고 엠플릭스 사옥으로 가기로 했다.

“형!”

“혜경 샘!”

지훈과 금홍이는 학교 정문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지훈이는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고, 금홍인...

깜짝 놀랐다.

너무 예뻐서.

물론 평소의 청바지와 셔츠 차림도 좋았지만,

오늘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얀 원피스에 머리도 우아하게 올렸다.

화장도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고.

...문창과 퀸카가 맞긴 맞구나...

“형, 뭐해요. 늦겠어요. 택시 잡아야죠.”

“어? 어어...어, 그래.”

“가는 길에 꽃 사요, 지훈 샘.”

“커다란 걸로 사야죠. 앗! 택시 왔다! 택시!”

우리는 얼른 택시를 잡아탔다.

앞자리엔 지훈이, 뒷자리엔 나와 금홍이 앉았다.

“혜경 샘 덕에 재밌는 경험 많이 해보는 것 같아요.”

금홍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제 글이 영미권에도 더 많이 풀리면 그때 정식으로 절 도와주세요.”

지금 <부활>의 영어 페이지의 결제 수는 천 회쯤 됐다.

당장엔 번역료가 더 드는 상황이었지만,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중이었다.

꼼꼼한 금홍이가 날 도와준다면 더 바랄 게 없고.

하지만 금홍이는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그땐 검증된 번역가를 찾으셔야죠. 또...제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잖아요.”

금홍이가 하고 싶은 일.

“바리스타요?”

“이번 주 주말에 바리스타 2급 시험 보러 가요. 후...벌써 떨려요.”

하지만 ‘바리스타’라는 말을 내뱉는 금홍이는 분명 설레어 하고 있었다.

“남들은 이런 자격증 정도는 취미로도 따던데...저는 왜 이렇게 뭘 해도 진심이 되나 모르겠어요.”

“성실하셔서 그렇죠. 지훈이랑 응원갈까요?”

“가요!”

우리의 대화를 다 들었는지, 지훈이가 외쳤다.

그러나 금홍이는 손사래를 쳤다.

“안 돼요. 누가 쳐다보고 있으면 떨려서 더 못한단 말이에요. 결과 나오면 말씀드릴게요.”

금홍이가 잘 할거라 믿지만, 좀 걱정이 되긴 했다.

매사에 진지한 사람들은 상처도 잘 받기 마련이니까.

부디 시험에서 떨어지지 말아야 할 텐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엠플릭스 사옥 앞에 도착했다.

“저흰 꽃을 좀 사갈게요. 먼저 올라가 계세요. 혜경 샘.”

“그럴게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나는 혼자서 시상식이 열리는 6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웬 기자들이 따라붙었다.

“이상 작가님이시죠?”

“네, 맞습니다만.”

“대인일보 문화부에서 왔습니다. 시상식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쭤볼 게 있는데 잠시 인터뷰 가능할까요?”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엠플릭스가 잘 나간다기로소니...

신인 수상자에게 벌써부터 기자가 따라붙을 리가.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기자가 황급히 질문을 꺼냈다.

“다름이 아니라, 요즘 이상 작가님의 드라마 진출에 대한 한국 문단의 비난이 적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실 수 있나요?”

웃기는 일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언론은 한국문학에 무관심하다.

하지만 요 근래 문단이 내게 쏟아 낸 비난은 그 무관심마저도 이길 만큼 맹렬했던 모양이다.

“어떤 식의 비난을 하던가요?”

“돈을 벌기 위해 순수문학을 접고 대중문학에 고개를 숙인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이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원색적인 비난 앞에서 울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걸 ‘건수’로 생각하고 득달같이 달려 온 기자에게도 마찬가지고.

나는 일단 참았다.

여기서 당장 그의 말에 매섭게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인창 교수에게 배우지 않았는가.

무의미한 기싸움은 후회만이 남을 뿐이라고.

“잘 알았습니다. 저는 이만 식장으로 가야겠습니다.”

“네? 저, 저기 작가님!”

기자를 무시하고 식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엠플릭스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수상자 자리로 가서 앉았다.

시상식 식순은 신춘문예 때와 비슷했다.

다만 시상식장이 두 배쯤 컸고, 사람들도 훨씬 많았다.

다들 이리저리 인사를 다니거나 인터뷰를 하느라 바빴다.

수상자를 축하하기 위해 온 자리라기보단, 저마다의 인맥을 챙기기 위한 기회의 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상 작가!”

강인춘 PD와 송예나 극본가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들도 날이 날이니만큼 꽤나 그럴듯하게 차려입고 왔다.

강인춘 PD의 희끗한 수염은 여전했지만.

“별로 긴장한 것 같진 않으신데요.”

“그러게요. 시상식이 처음이 아니셔서 그런가.”

두 사람은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수상 소감은 정했습니까?”

“음...별 생각 없었는데 방금 정했습니다.”

“기대됩니다. 어어, 조 상무님!”

강인춘 PD는 아는 사람을 보고는 내게 찡긋 눈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극본 수정본에 대한 결과를 들을 생각이었는데...

그때 송예나 극본가가 슬쩍 운을 띄웠다.

“극본, 정말 잘 고쳤던데요?”

“그렇습니까? 과찬이십니다.”

“나중에 감독님께서 말씀하시겠지만...이상 작가님의 극본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어요. 대신 백업은 붙지 않을 예정이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성공이구나.

오랜 고민 끝에 극본의 방향을 정한 보람이 있었다.

“물론입니다. 맡겨주십시오.”

그녀는 나를 살짝 안아주었다.

“훌륭한 극본가가 탄생해서 기쁘군요.”

그녀는 처음으로 나를 ‘극본가’라고 불렀다.

...동료로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하지만 극본가로서만 머물진 않겠죠?”

“확답을 드릴 수가 없어서 죄송하네요.”

“그럴 줄 알았어요.”

송예나 극본가는 이해한다는 듯 내 어깨를 한 번 두들겨주었다.

극본은 내게 문학을 위한 여정 중 극히 일부다.

얼마나 많은 여정이 남았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지만.

“곧 엠플릭스와 콘텐츠진흥재단이 공동 주최한 제 2회 엠플릭스 드라마 극본 공모전 시상식이 시작되겠습니다. 귀빈들께서는 착석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안내에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몇 가지 구태의연한 의례를 마친 후, 본격적인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엠플릭스 대표와 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투자사와 광고사 상무, 이사들이 차례로 소개됐다.

그들은 이 공모의 취지를 저마다 길게 설명하며, 신인 극본가들의 탄생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시상자들의 차례였다.

우수상 두 명,

엠플릭스 플러스 상 한 명,

동상 한 명,

은상 한 명,

그리고 바로 내가 받을 대상이 한 명.

총 수상자는 여섯 명이었다.

수상은 우수상부터.

한 명씩 단상에 올라가 상패와 꽃다발을 받았다.

이어지는 수상 소감은 신춘문예 시상식과 비슷했다.

다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저마다의 감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상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무너지는 날>의 이상 님!”

내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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