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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26화 (2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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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25)

    다시 사는 천재 작가 25

    대강당의 좌석이 모두 채워졌다.

    계단에 앉은 학생 수도 저번 주보다 늘어난 것 같았다.

    저 구석에 김미소 작가도 앉아 있었고.

    나는 강단의 마이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이상입니다. 이번 주에도 잊지 않고 특강을 들어주셔서 영광입니다.”

    짝짝짝짝짝!!!!!

    커다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맨 앞줄에서 조인창 교수가 날 빤히 바라보고 있다.

    괜시리 긴장이 되는군.

    “저번 주엔 문학의 현대성에 대해서 설명했죠. 잠시 리마인드를 하자면, 고리타분하고 낡은 것을 타파하는 문학은 언제나 살아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잘 닦아 미래로 밀고 나가는 ‘클래식’ 역시 또 다른 의미의 현대적 예술이라는 것을 덧붙이고 싶군요.”

    마지막 말은 나 역시 김미소 작가를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된 점이었다.

    학생들은 내 말을 진지하게 내 말을 받아 적었다.

    “오늘은 ‘시간’에 대해 강의를 해보려 합니다. 소설이라는 매체는 언어를 통해 시간을 가두죠. 그리고 여기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제가 탄생합니다. 가둘 만한 시공간, 가둘 만한 사건을 고르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안목이자 개성이니까요. 무엇을 가둘 것이냐, 어떻게 가둘 것이냐 하는 선택을 통해 특정한 시간은 영원성을 획득하죠. 이해가 가시나요?”

    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렇게 생각해보죠. 소설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글자라는 실체로 만들어진 물리적인 물건이라고요. 그렇다면 이야기는 그 글자 안에 갇힌 셈이겠죠. 그렇다면...글자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글자로 적힌 소설 역시 어떻게 될까요?”

    “계속 존재하게 되겠죠.”

    저 쪽에서 김미소 작가가 대답을 했다.

    학생들은 알았다는 듯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는 순조로웠다.

    소설과 시간의 관계.

    그것은 <부활>을 쓰며 더 확실하게 정립한 지점이었다.

    <부활>의 창작 동기가 조인창 교수와의 인연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늘 조인창 교수가 청강을 하러 온 것도 운명이겠지.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남은 시간은 십여 분.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겠습니다.”

    몇몇 학생들이 질문을 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들.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대답을 하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럼 다음주에,”

    “여, 여기요.”

    차 조교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조인창 교수님께서 질문을 하신다고 해요.”

    대강당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인창 교수님? 병원에 계신 거 아니었어?”

    “대박...이상 작가님 특강 보러 오셨나 봐.”

    “웬일이야. 이번 학기에는 못 뵐 줄 알았는데...”

    다른 조교가 서둘러 차 조교에게 마이크를 가져다주었다.

    차 조교는 그 마이크를 조인창 교수의 입에 대 주었다.

    쥐죽은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대 학자는 과연 무슨 질문을 할 것인가.

    모두다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강의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과 시간의 관계는 대단히 신비롭지요. 언어로 시간을 가둔다는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문학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은 감상.

    나는 조인창 교수를 향해서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조인창 교수는 계속 말했다.

    “하지만 작품의 시간과 작가의 시간은 다릅니다. 작가의 시간은 결코 영원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재능 있는 작가에겐 인생이 짧겠지요.”

    “동의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공감했다.

    가난과 폐병으로 28살에 요절해야만 했던 나의 삶.

    재능에 비해 너무나도 짧은 인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유한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작가의 자세나 태도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질문의 범위를 좁혀볼까요? 이상 작가님은 재능 있는 작가에게 쏟아지는 질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투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훌륭한 작가일수록 질투는 떼어놓을 수 없는 꼬리표입니다. 세상엔 욕심 많은 자들이 많으니까요.”

    마치 방금 전 나와 실랑이를 한 정한수처럼.

    나를 질투하는 인간들은 수도 없이 만나왔다.

    그 때마다 나는 나의 재능과 힘으로 그들을 눌러왔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난 조인창 교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는 답을 일부러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을 말할 생각이었다.

    “열등감이란...무서운 것이죠. 대책 없이 생겨버려서는 남과 자신을 갉아먹고 마니까요. 저는 여러 번 타인의 열등감을 맞이해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겁니다. 그들이 제게 해를 끼쳐도...저는 그것을 헤치고 나가는 수밖에 없겠죠.”

    내 개인적 이야기를 해서일까.

    학생들의 집중도가 최고조로 올라감을 느낀다.

    ‘인간’ 이상의 인간성.

    그들도 그것이 궁금했던 걸까.

    “그들을 헤치고 나가되, 상처는 주지 않는 것이 좋겠죠.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이미 스스로 상처를 입었을 테니까요.”

    분해서 어쩔 줄 모르던 정한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를 달래줄 필욘 없었다.

    하지만 나까지 나서 공격할 필요가 있었을까.

    단순한 기싸움의 무의함.

    새삼 그런 것이 느껴진다.

    “진정한 작가라면, 날을 갈아야 하는 곳은 어디까지나 종이 위라고 생각합니다....대답이 되셨습니까.”

    내 대답에 조인창 교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업은 저 역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죠.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특강이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몇몇 학생들이 다가와서 못 다 한 질문을 했다.

    그들에게 짧은 답변을 해주고 나서 강단에서 얼른 내려갔다.

    조인창 교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조 교수님께서는?”

    내 질문에 조교들이 강단 뒤쪽의 비상구를 가리켰다.

    나는 비상구를 향해 달려갔다.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복도.

    멀지 않은 곳에서 차 조교가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교수님!”

    두 사람이 뒤를 돌아봤다.

    조인창 교수는 차 조교에게 이만 가 봐도 좋다는 듯 손짓했다.

    “제가 바래다드리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이상 선생.”

    나는 조인창 교수의 휠체어를 밀었다.

    몸이 얼마나 말랐는지, 휠체어가 너무 쉽게 밀려서 불안할 정도였다.

    “다 죽어가는 꼰대가 잔소리를 했다고 생각했겠군.”

    “전혀 아닙니다. 제게 필요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자넬 탓했던 게 아니야. 자넨 고작 29살이잖나. 그 혈기왕성한 나이에 지는 걸 좋아한다면 그것도 문제지.”

    “아까는 제가 잘못한 게 맞습니다. 적어도 학생들 앞에서 강사에게 그런 치욕을 주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놈이 먼저 무례하게 굴었던 거 알아.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참 못 써먹을 놈이야. 고작 대학 하나 잘 간 걸로 떵떵거리는 꼴이 참 보기 싫지.”

    그건 그렇다.

    무례한 건 무례한 것이었으니.

    “자넬 이해해...나라고 젊었을 때 적이 없었겠나.”

    조인창 교수가 피식 웃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내 성격은 더 드셌어. 비난을 한 마디라도 들으면 끝까지 물어 잡고 싸웠지. 말로도 글로도. 다신 내 앞에서 고개도 못 들도록...그렇게 해야 직성이 풀렸지.”

    의외였다.

    항상 신선 같은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게다가 조인창은 그 착한 순호가 키운 아들이 아닌가.

    “왜 그랬는지 아나? 열등감 때문이었어.”

    “열등감이라고요? 교수님께서요?”

    “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거든.”

    나는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휠체어를 밀었다.

    순호가...일찍 죽었다고?

    “...실례지만 언제 돌아가셨는지.”

    “내가 열여덟 살 때. 간에 병이 있으셨지.”

    순호는 나보다 고작 16년을 더 살았다.

    나는 막연하게도 순호가 천수를 다 누렸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건강하던 놈이 마흔도 안 되어 눈을 감다니.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한국대학교는 돈 많고 집안도 좋은 놈들이 가득해. 대학에 들어오자 나처럼 가난한 사람도, 아버지가 없는 사람도 별로 없더군. 그런 놈이 잘났다고 눈에 뜨였으니 얼마나 많은 흉계와 따돌림이 있었겠나.”

    “....”

    “다 죽여버리고 싶었지, 그 때는. 죽을힘을 다 해 악다구니를 쓰며 싸웠고. 그 힘으로 교수까지 해먹은 거야.”

    “하지만 그런 에너지가 없었다면 학자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조인창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흉포하게 싸우는 것과 문학 연구자가 된 게 무슨 상관이 있지? 교수가 되기 위해 문학을 공부했던 것도 아니고. 나는 그 시절을 시간낭비였다고 생각해.”

    “시간낭비라니요. 그럴 리 없습니다.”

    “제행무상이라 하지. 모든 일은 다 변하기 마련이고 영원한 건 없어. 욕심을 부리는 것도 이기려 악을 쓰는 것도 다 부질없는 일이지. 돌이켜보면 많이 후회가 돼. 하지만...모든 것이 다 무의미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니야.”

    “....”

    “문학을 공부했던 건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어. 나에겐 그것만큼 영원에 가까운 건 없으니까.”

    나는 휠체어를 꽉 잡았다.

    한국대학교에서 특강을 하기까지, 반대와 훼방이 계속되어 왔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많이 예민해졌던 것일까.

    문득,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삶이 제행무상임을 잊지 말 것.

    하지만...문학만큼은 영원하리라 믿을 것.

    ‘작가의 태도’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아버지!”

    누군가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인후가 왔군. 이상 선생, 내 아들이네. 영화를 찍고 있지.”

    조인후 감독.

    한국 3대 영화감독 중 한 명으로 예술영화의 거장이었다.

    곰 같은 체형에 서글서글한 인상.

    조인창 교수와는 별로 닮은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순호 쪽에 더 가깝달까.

    “모셔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교수님,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그래...아, 이상 선생.”

    “예?”

    “<부활> 말이네, 자네 소설. 아주 좋더군...남의 얘기 같지도 않고 말이야.”

    남의 얘기 같지 않다고?

    <부활>이 나와 자신이 이야기라는 걸 느낀 걸까?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자네의 등단작과 <부활>에 대한 글을 신라문학에 송고했네. 이번 여름 호에 나올 테니, 관심 있으면 봐 주게.”

    “송고를요?! 아...예. 감사합니다, 교수님.”

    조인창 교수는 아들 조인후 감독의 부축을 받아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으로 가려던 조인후 감독이 내게 다가왔다.

    “이상 작가님, 소설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저도요. 저번 영화 <희극 노트> 정말 인상 깊게 봤어요.”

    <희극 노트>는 김혜경이 본 작품이다.

    혜경은 그 영화를 좀 어려워했지만, 내가 보기엔 작가주의가 잘 살아있는 영화다.

    “아버님께서 한참 글을 안 쓰셨던 거, 아니 못 쓰셨던 거 아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조인창 교수가 신라문학에 송고를 했다 하니, 나도 놀란 참이었다.

    “이상 작가님 소설이 올라오자마자 이건 쓰셔야겠다며 몇날 며칠을 책상 앞을 떠나질 못하셨어요.”

    “저런...죄송합니다, 감독님. 교수님 건강도 안 좋으신데.”

    조인후 감독은 껄껄 웃었다.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해야죠. 아버님은 글을 읽고 쓰실 때에만 생기를 보이시거든요. 그런 활기 있는 모습,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그 덕인지 상태가 좋아지셔서 산소줄도 빼고 다니시잖습니까.”

    그는 내 손을 꽉 부여잡았다.

    “좋은 작품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인창 교수와의 만남 이후, 내 마음은 평안해졌다.

    울분과 서러움에 차 있던 김혜경의 마음...

    그래, 이제 놔 줄 때도 됐다.

    혜경도 내가 그런 감정에 머무르는 걸 바라진 않으리라.

    물론 종이 위의 펜 끝은 언제나 날카롭게 벼려야 하겠지만.

    며칠 후, 교학팀 사무실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날아들었다.

    -이상 작가님. 저는 엠플릭스 드라마 PD 강인춘이라고 합니다. 시상식 전에 한 번 뵐 수 있겠습니까?

    나는 흔쾌히 수락을 했다.

    드라마라...

    또 다른 도전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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