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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25화 (2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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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2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24

다음 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는 길.

나와 지훈, 그리고 금홍은 복도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었다.

“맞다, 나 엠플릭스 드라마 공모전 당선됐어요. 금홍샘, 그거 대학원생 실적으로 들어가죠? 업데이트 부탁드려요.”

“...뭐라고요?”

“형,...드라마?”

두 사람은 적잖이 놀란 듯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에게 드라마 공모에 투고다는 말 제대로 안 했구나.

“어. 드라마 기획안 써서 냈거든.”

“무, 무슨 상?”

“대상.”

“혀, 현수막 또 걸어야겠네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금홍이가 겨우 한 마디 했다.

“굳이 안 걸어도 돼요. 뭘 또 걸어요.”

“아니에요. 걸 거예요. 세상사람 다 봐야죠.”

“그럼 괜히 일 늘리지 말고 저번 현수막 시안 그대로 쓰세요.”

내가 금홍이와 현수막 얘길 하고 있는 동안에도 지훈은 멍한 얼굴이었다.

그때 금홍의 핸드폰이 울렸다.

금홍은 수신자를 확인하더니 얼른 전화를 받았다.

“아, 네. 교수님. 네네. 알겠습니다. 제가 교수실로 지금 올라갈게요.”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를 듣자하니 평론 교수 같았다.

금홍인 자기는 가보겠다는 듯 수신호를 보내곤 가버렸다.

“형...저 왠지 현타가...”

지훈은 창문 난간에 주저앉듯 매달렸다.

그렇게 충격인가?

너무 이러니까 조금 미안해지는데.

“괜찮아?”

“...괜찮긴 한데...저는 제가 잘났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거든요? 그런데 살리에르의 기분을 왠지 알 것 같기도 해요.”

모차르트와 동시대의 음악가 살리에르.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통 받은 궁정 음악가다.

하지만 지훈은 살리에르가 아니다.

저렇게 성실하고 성격 좋은 녀석이 살리에르가 될 리가.

나는 주저앉아 있는 지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넌 나보다 어리잖아. 너도 잘 될 거야.”

지훈이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본다.

“형, 나 이거 형한테 말 안하려고 했는데요.”

“뭔데?”

“저 신라문학 신인문학상에 투고했어요.”

“신라문학에?!”

신라문학.

그곳은 가라사대의 라이벌격인 문학잡지사였다.

아니다, 라이벌은 무슨. 적이지.

두 잡지사가 어느 정도 사이가 안 좋냐면...

신라 문학으로 등단을 하면 가라사대에,

가라사대으로 등단을 하면 신라문학에 글을 싣기가 어려웠다.

인수대 교수진들은 가라사대 편집위원이거나 혹은 그 측근들이었다.

그래서 인수대 학생들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신라문학에는 투고하지 않았다.

“왜 하필? 가라사대에 내는 게 여러모로 편할 텐데.”

“그게...소설이 아니거든요.”

“뭐?”

“형이 비평 써보라면서요.”

“너 정말이야? 비평 써서 낸 거야?”

“아후...쪽팔려. 떨어질 게 뻔한데, 괜히 그랬어요.”

전혀 아니다.

이렇게 말하긴 미안하지만 넌 소설보단 비평이 나을 거야.

“어떤 작가로 썼는데?”

“...형이요.”

나 뭐?

“이해 못 하시네. 형 소설로 썼어요. <세사노>로요.”

“...왜 그런 짓을?”

내 소설이 비평감이 될 순 있었다.

하지만 비평을 쓰려면 적어도 세 작품은 필요하다.

<세사노> 하나만으로 비평을 썼다고?

“가라사대는 <세사노>로 절대 뽑지 않을 거니까, 아예 신라문학에 내 버렸죠 뭐...”

“그럼 다른 작품으로 쓰지 그랬어. 한지온 작가나...”

“형 소설이 제일 재밌어서요.”

“....”

“그럼 어쩔 수 없잖아요. 형 걸로 써야지.”

지훈이가 담백하게 말했다.

문득, 순호가 떠올랐다.

‘난 자네의 소설이 좋아’라고 말해줬던,

그 힘으로 내게 평생 소설을 쓸 힘을 준 순호.

나는 지훈에게 말했다.

“결과야 난 잘 모르겠고, 난 네 글 정직해서 좋더라.”

지훈이 날 빤히 보았다.

그리고 읏샤- 하더니 다시 일어났다.

“형이 너무 잘나서 좀 얄밉긴 한데...그 말은 좀 힘이 되네요.”

지훈은 기지개를 켜더니 교학팀 사무실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나는 캔커피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반복된 실패는 사람을 갉아먹는다.

등단에 실패한 문창과생들의 성격이 예민해지는 것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혜경을 괴롭히던 근본적 요인도 삶에 대한 불만족 즉, 열등감이었다.

지훈 역시 예외는 아닐 거다.

열등감이 더 생기기 전에...지훈이가 어서 등단을 해야 할 텐데.

***

두 번째 한국대 특강 날이 되었다.

이현강의 수업을 한국대 특강으로 대체해버렸으므로, 일찍이 택시를 타고 한국대학교로 향했다.

내가 수업을 듣지 않아 지훈은 좀 외로워졌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언제까지 내 뒤에 숨어있을 생각은 없다며.

나는 한국대 내 별벅스에서 강의 내용을 정리했다.

먼저 저번 주에 말했던 ‘현대성’의 개념을 리마인드시키자.

그 뒤에 설명해야 할 건 ‘시간’이다.

소설에서 ‘시간’은 단순한 ‘시간적 배경’이 아니다.

소설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흘러가는 시간을 글자 안에 가두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글자에 갇힌 시간은 영원히 남는다.

책 속 어린 왕자는 100년이 지나도 어린 왕자로 남을 수 있는 것처럼.

“어? 이상 선생님?”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김미소 작가였다.

“김미소 작가님?”

“여기서 다 뵙네요. 수업 준비 하고 계신 건가요?”

“네. 뭐...작가님은요?”

“저는 신작 쓰고 있어요.”

“신작이라 하시면...”

“노동문학이죠.”

김미소 작가는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제가 쓸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 해 써 볼 생각이라서요.”

그녀의 표정은 지난 주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이상 작가님과의 통화, 제게 많은 힘이 됐어요.”

“그랬다니 다행이네요. 그 날, 좋은 작가를 잃을까 봐 조마조마해서 전화를 걸었거든요.”

김미소 작가가 시원스레 웃었다.

“해 드릴 것도 없는데 좋은 말만 해 주시네요.”

“해 주실 게 왜 없나요.”

“제가 해드릴 게 있나요?”

“일단 학생으로서 제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시고,”

“수강신청은 이미 했죠.”

그녀가 장난스레 말했다.

“제가 존경할 수 있는 동료 작가로 남아주세요.”

“그건...노력해볼게요.”

“존경할 만한 동료가 있다는 건 귀한 경험이거든요.”

그녀는 나를 빤히 보았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해요. 동료로서.”

쿨한 제안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언젠가 함께 재밌는 일을 해 보죠. 물론 문학으로요.”

내 말에 김미소 작가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좋아요. 그 날까지 저는 제 글로 버텨볼게요.”

나처럼 개척하고 판을 뒤집어엎는 것만이 힘은 아니다.

그녀처럼 버티고, 생존하는 것도 힘이다.

김미소 작가라면 이 지리멸렬한 문단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예상보다 일찍 한국대 인문대학 지하 대강당에 도착했다.

아직 차한승 조교도 오지 않아서,

강단에 걸터앉아 강의록을 들춰보고 있었다.

“이상 선생.”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오며 날 불렀다.

국문과 학과장 김진하와 박 교수였다.

박 교수의 옆에는 처음 보는 젊은 남자도 있었다.

“김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여긴 어쩐 일로...”

나는 강단에서 내려와 인사를 했다.

학과장은 부쩍 편한 얼굴로 내게 악수를 건넸다.

“저녁을 먹으러 가려다가, 마침 이상 선생의 특강이 생각나서요.”

“그러시군요. 박 교수님도 잘 지내셨습니까. 그리고...”

나는 박 교수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누구일까.

마뜩치 않은 미소로 날 바라보고 있는 이 남자는.

“내 후배예요. 학교 구경을 왔죠. 허허...”

박 교수가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는 내게 고개를 까딱 숙여보였다.

“안녕하십니까. 한국대 박사, 정한수입니다.”

“이상입니다.”

우리는 짧게 악수를 했다.

그는 내 손을 아주 강하게 쥐었다가 놓았다.

학과장이 격려하듯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상 선생의 특강, 이번 주 수강신청도 좌석이 다 찼어요. 걱정 많이 했는데 훌륭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한 짐 덜었어요.”

좌석이 다 찼구나.

차 조교가 별 말이 없어서, 특강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종강 때까지 모쪼록 잘 부탁해요.”

학과장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쓴웃음을 짓고 있던 박 교수가 학과장을 보챘다.

“학과장님, 어서 가시죠. 예약 시간 늦겠습니다.”

“그러시죠. 그럼 이상 선생, 다음에 보죠. 밥 잘 챙겨 먹어가며 수업해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두 사람은 대강당 문을 향해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정한수는 무슨 생각인지 그 불쾌한 웃음을 지으며 내 곁에 서 있었다.

“식사는 안 하십니까?”

“소문으로만 듣던 천재 이상 선생과 얘길 좀 나눠보고 싶어서요.”

...그래?

“그럼 소문으로만 듣던 천재 이상 선생에게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나는 농담처럼 되받아쳤다.

그는 미소만 지을 뿐, 웃진 않았다.

“소설이 아주 대단하던데요.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학계는 좀 다르죠.”

“무슨 말씀이신지?”

“논문이나 강사의 세계는 아시다시피 좀 고지식하지 않습니까? 그쪽도 박사 재학 중이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출신 대학이 어디...인수대였던가요?”

학계에서 타인의 학벌을 함부로 언급하는 건 대단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이 공격성의 원인은 대체 뭘까.

이 사람은 박 교수의 후배.

그리고 박 교수는 내 강의를 필요 이상 반대했었지.

...알 것 같다.

정한수가 이 특강 자리를 탐냈구나.

박 교수도 정한수를 이 자리에 앉히려 했지만 나 때문에 실패를 했을 테고.

나는 입을 열었다.

“적어도 이 특강에서는 제 재주가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아주 좋아하던걸요.”

“다행입니다. 아주 중요한 자리거든요. 이상 선생께서 서 계신 강단은.”

“정한수 선생께서는 어디서 강의를 하고 계신지요?”

“...한국대 국문과 교양 강의를 맡고 있습니다.”

정한수는 애써 떨떠름하지 않은 척 말했다.

박 교수가 내게 제안했던 자리는 그에게 간 모양이다.

“어쨌건 운이 아주 좋으셨습니다. 이상 선생. 하긴, 조인창 선생님의 무등이면 유리천장을 넘볼 수 있었겠죠.”

유리천장을 넘는 게 아니라, ‘넘볼 수 있다’고 했다.

즉, 결코 넘지 못할 거란 뜻이다.

“하하...”

나는 일단 웃었다.

발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유리천장 위에 있어도 똑바로 못 서는 사람도 많은데요. 당신처럼요.”

“뭐요? 지금 싸우자는 겁니까?”

정한수의 눈에서 지금껏 숨기고 있던 분노와 열등감이 타올랐다.

“싸우다뇨. 중간에 유리천장이 끼어 있어서 어디 주먹이나 닿겠습니까?”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삼류대 출신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만큼, 즐기시라 이거죠.”

“네. 저 역시 일류대 출신은 교양 강의를 착실하게 준비하시라 이겁니다. 최고의 자리는 못 올라도 서 계신 곳에서 최선을 다하셔야죠.”

“거 참, 이봐요-!”

정한수가 큰 소리를 냈다.

드문드문 앉아 있던 학생들이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만들 하지.”

익숙한 목소리에 옆을 보았다.

그 곳엔...휠체어를 탄 조인창 교수가 있었다.

정한수는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을 쳤다.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죄송은 여기 앉은 학생들에게 해야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한수는 슬슬 뒤로 물러다더니 강당 문을 향해 꽁무니를 뺐다.

비겁한 자식.

하지만 나도 왠지 조인창 교수를 볼 면목이 없었다.

내가 김혜경의 몸에 빙의한 이후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조인창 교수 한 사람에게만큼은 달랐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네. 난 그냥 자네 강의를 청강하러 온 길이야. 조용히 강의나 듣고 가지. 차 조교, 자리를 좀 잡아주게.”

지금껏 눈치만 보고 있던 차 조교가 맨 앞줄에 휠체어를 고정했다.

조인창 교수...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조금 긴장되는 마음으로 강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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