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23화 (2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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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22)

    다시 사는 천재 작가 22

    나는 한지온 작가의 쪽지를 확인했다.

    -이상 작가님께.

    <부활>,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젊은 기성 작가들이 작가님의 행보를 언제나 궁금해 하고, 닮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보는 눈이 많아 직접 존경한다 말하지 못하는 저희를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음속으로 응원합니다.

    한지온 드림.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었다.

    나는 문단 권력자들의 인정이 아니라 동료들의 인정이 더 고팠던 걸까.

    그 외에도 몇몇 작가들이 내게 쪽지를 보내왔다.

    자신들의 진심을 전하려는 수려한 문장들.

    그리고 그 중에는 김미소 작가도 있었다.

    -이상 선생님께.

    기대 이상의 소설이었습니다.

    ‘이상’이란 이름이 잘 어울리신다고 하면 너무 무례할까요.

    수업 때는 학생으로서 뵙겠습니다.

    독자 김미소 드림.

    당돌한 여작가의 기세가 느껴지는 글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정성들인 답장을 썼다.

    부담되지 않을 정도의 호감을 내비추며.

    이렇게나마 그들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1930년대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이 문화,

    인터넷 문화는 내 활동에 더없이 중요했다.

    답장을 보내느라 근무 내내 SNS를 붙잡고 있었다.

    <부활>도 끝났겠다, 그 정도 여유는 있으니까.

    이윽고 퇴근 시간이 됐다.

    가방을 멘 지훈이 내 모니터를 슥 봤다.

    “별스타그램 답장 제가 한다니까요. 형 바쁘잖아요.”

    “그래도 나한테 보낸 편지들인데, 내가 해야지. 맞다, 지훈아. 너 지금 시간 돼?”

    나는 가방을 싸며 지훈에게 물었다.

    “오늘요? 돼요. 왜요?”

    “<부활> 돈 들어왔잖아. 맛있는 거 사줄게.”

    <부활>의 성공의 반은 지훈의 덕이다.

    지훈은 한국 SNS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어 공부까지 해가면서 온라인 홍보에 열을 올렸다.

    “아싸. 좋아요. 뭐 사주시게요?”

    “잠깐만, 금홍 선생님, 제가 밥 살게요. 같이 가요.”

    좋아. 자연스러웠다.

    비록 금홍이와 단둘은 아니더라도, 이것도 나쁘지 않지.

    “저도 데려가주시게요?”

    금홍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하죠. 우리 한 팀이잖아요.”

    “그럼 그럴까요? 축하 파티도 할 겸.”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리 셋은 그렇게 학교를 나섰다.

    봄바람이 살랑살랑하니 기분이 좋았다.

    “형이랑 금홍 샘이랑 이렇게 셋이 가니까, ‘이상 팀’ 같지 않아요?”

    “하하...‘팀 이상’은 어때요? 그게 더 멋져 보이잖아요.”

    “그럼 ‘팀 이상’으로 하죠.”

    지훈이 워낙 붙임성이 좋아서 그런지 두 사람도 부쩍 친해진 것 같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소고기집에 갔다.

    지훈이 나서서 고기를 이래저래 잘도 시켜댔다.

    사는 집 도련님이라 그런지 맛있는 고기도 잘 아는 모양이다.

    맥주를 한 잔 하니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학교 행정 뒷담화, 교수 뒷담화, 문창과의 특이한 학생들 이야기...쉴 세 없이 떠들어댔다.

    하지만 내가 두 사람을 이렇게 모은 건 친목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훈이 알바비랑 금홍 샘 번역비 올려드릴 거예요.”

    “형...진짜예요?”

    “그래야지. <부활>은 앞으로도 계속 결제가 될 거야. 마케팅을 잘 해주고 번역을 잘 해준 덕이니까. 이번 달은 인센티브 조로 좀 더 드릴 거예요. 그 다음 작품은 아예 서면으로 명시하죠. 체계가 잡힐 수 있게. 지훈아, 대략적인 서류 준비해줄 수 있지? 결제수에 비례해서 인센티브 퍼센테이지 계산해서.”

    “제가 받을 돈 제가 계산해서 내미는 게 민망하긴 한데...일단은 해볼게요. 내역 투명하게 다 보여드릴 테니까 걱정은 마세요.”

    “혜경 선생님, 영문 페이지는 조회수가 높지도 않은데요. <부활> 번역은 아직 끝내지도 못했고요. 그러면 제가 너무 죄송해요.”

    금홍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금홍에게 <부활> 원고를 준 건 저번 주 특강 직후였다.

    일주일도 안 돼서 번역을 다 했다면 그게 더 못 미더운 일이지.

    “천천히 하세요. 원래 단편은 이삼 주 걸리는 거 알아요.”

    “금홍 샘이 하신 잡문 번역, 저희 영문과 외국인 교수님 보여드려봤는데, 번역 누가 이렇게 잘 했냐고 묻던데요?”

    지훈이 고기를 뒤집으며 금홍을 추켜세웠다.

    “거 봐요. 돈 받을 자격 있잖아요. 그런데 지훈이 넌 이제 못 받겠다 어쩐다 소린 안 하는구나?”

    “형이 얼마 버는지 다 아는데 왜 그런 소릴 하겠어요. 당당하게 받을 거예요.”

    지훈이가 낄낄 웃었다.

    그래, 차라리 저렇게 나와주는 게 낫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금홍이 말했다.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혜경 샘.”

    “이미 열심히 하고 계세요.”

    금홍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성실하고 건실한 여자란 아름답구나.

    예전엔 왜 그렇게 의존적인 여자들에게 끌렸을까.

    아마...그 시절의 나 역시 좀 미숙했던 거겠지.

    “영문 페이지도 길게 봐야 해요. 일본 시장 풀리면, 영미권도 노릴 수 있어요. 아시아에서 일본 짚고 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

    지훈이 술술 말했다.

    “너, 마케팅 진짜 진지하게 배웠나 봐?”

    “저요? 그럼요. 저는 등단해도 취업할 거예요. 한 군데에서 처박혀서 글만 쓰는 거, 돈 많이 준다고 해도 못 해요. 글도 좋지만, 사회생활 하고 싶어요.”

    “그럼 지금 하는 일도 딱이네요. ‘팀 이상’ 마케팅.”

    금홍이 말했다.

    갑자기 지훈이 눈을 빛냈다.

    “형, 안 그래도 저 드릴 말 있어요.”

    “뭐?”

    “저 아예 형 전속 매니저 할까 봐요.”

    ...이게 뭔 소리야.

    “너 등단 안 해?”

    “모르겠어요. 형 도와주는 일, 하면 할수록 천직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조회수랑 좋아요 수 올라가는 거 보면 막 너무 좋고.”

    “아르바이트처럼은 계속 해. 하지만 지금까지 공부한 게 아깝잖아.”

    “알죠. 그리고 형도 지금은 형 코가 석자일 테니까.”

    “물론 네가 정식으로 나 챙겨주면 든든하지.”

    지훈이만큼 진심으로 날 도와주고 싶은 사람은 없다.

    경제경영 쪽 지식이 많아 실속도 있고.

    문창과만 아니었으면 전속 직원으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훈이에겐 더 중요한 꿈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안 돼. 너는 등단부터 해야 해. 너 소설 합평 언제지?”

    “...다음 달이요.”

    “소설은 썼어?”

    “...아뇨. 잘 안 써져요. 형 글 어떻게 홍보할지, 별스타그램 멘트는 뭘 쓸지, 그런 것만 생각나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지만 녀석이 저런다고 나까지 흔들려선 안 되지.

    “절대 소설 포기하지 마. 알았지? 여기서 나하고 약속해.”

    “하지만 형...”

    “어서.”

    “...알았어요. 오늘부터 가서 쓸 게요.”

    “자자, 싸우지 말아요.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요.”

    금홍이 얼른 분위기를 풀어낸다.

    그러고보니 금홍이는 바리스타 준비 잘 되어가고 있나?

    지훈이 저렇게 죽상을 하니 물어볼 수가 있나.

    우리는 그렇게 소고기를 먹으며 친목을 다졌다.

    지훈은 속이 답답하다며 술을 내리 퍼마셔댔다.

    덩치도 좋고 술도 센 편이라 딱히 말리지 않았던 게 문제였을까.

    “혀엉...형은 진짜 잘돼야 해요...어?”

    하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해대더니,

    쿵!!

    “...헐.”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금홍과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

    금홍이와 둘이 남았다.

    소고기는 익다 못해 버석버석 말라간다.

    지훈이 녀석은 잘도 잔다.

    그리고...나와 금홍이가 마주앉아 있다.

    지훈이가 입을 다무니 분위기가 급속도로 어색해졌다.

    나는 금홍이를 좋아하니 그렇다 쳐도 금홍이는 왜 갑자기 말이 없어진 걸까.

    “금홍 선생님은 요새 바리스타 공부 잘 되어 가세요?”

    내가 슬쩍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럭저럭요. 3급은 딴 지 오래고, 2급 준비하고 있어요. 파트타임으로 카페 알바도 하고요.”

    “번역도 하시고 파트타임까지 하시는 거예요? 대단하시네요. 영어도 잘하시고.”

    “영어야 제가 문창과에 있어서 그렇지, 다른 과에 비하면 보통이에요. 소설도...”

    소설도?

    금홍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다.

    “...쓰고 싶었지만...재능이 없어요.”

    “누가 그래요? 재능이 없다고?”

    “김한이요.”

    개자식.

    금홍이에게 무슨 소릴 한 거야?

    “신입생 때 그 자식이랑 사귀었는데...그때도 김한은 최종심에도 몇 번 올라간 기대주였거든요. 남자친구랍시고 제 글을 많이 봐줬어요. 그리고 지 멋대로 결론을 내려버렸죠. 너는 이쪽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취업 쪽으로 진로를 바꿔라...라고요.”

    “미친놈이네요.”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김한이 요샛말로 ‘가스라이팅’을 금홍이에게 해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 글이 얼마나 얄팍한지, 제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절 문학에서 슬슬 밀어낸 거죠. 제가 책 읽는 것도 안 내켜했거든요. 차라리 그 시간에 영어를 한 자 더 보라고. 뭐...결과적으로 보면 도움이 됐죠.”

    “도움이요?”

    “네. 헛꿈 꾸지 않게 됐잖아요. 저, 되게 현실주의자거든요.”

    “헛꿈이라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나는 금홍이의 잔에 맥주를 채워줬다.

    금홍이, 강해보이지만 자신감이 없는 편이다.

    2021년도의 취준생의 삶이란...씁쓸하다.

    “멋진 카페 여시길 바랄게요. 예술가들의 쉼터 같은 곳.”

    문득 <제비>를 열었을 때가 떠올랐다.

    <제비> 뿐만이 아니다.

    나는 그 후로도 <학>이니 <69>니 하는 카페를 열었지만 모두 망했다.

    그럴 수밖에.

    예나 지금이나 경영 같은 것엔 젬병이니.

    하지만 금홍이라면 잘 해내가겠지.

    “하하...글쎄요. 별벅스 점장이나 하면 성공한 인생 같은데요?”

    별벅스 점장?

    무슨 소리.

    금홍이 정도라면 별벅스 건물주 정돈 돼야지.

    “제가 나중에 별벅스 차려드릴게요.”

    나는 장난처럼 말했다.

    금홍이가 까르르르 웃는다.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인데, 술을 먹어서인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약속이에요?”

    “약속.”

    나는 새끼손가락을 살짝 들어올렸다.

    약속했다?

    나중에 별벅스 건물 주면 받아야 해?

    건물주에 별벅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이 둘 중 하나조차도 이루기 어렵다는 걸 안다.

    하지만 꿈을 가지려면 제대로 가져야지.

    돈을 왕창 벌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

    엠플릭스 드라마 부문 심사장.

    엠플릭스 본사 제1 회의실엔 드라마 기획안과 시놉시스 출력본이 가득 쌓여 있었다.

    기획안과 시놉시스를 살펴보는 1차 심사,

    그리고 극본을 보는 게 2차 심사였다.

    즉, 1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극본은 내보일 수조차 없는 것이다.

    심사위원은 신작을 맡을 드라마 PD, 엠플릭스 기획 팀장,  극본 작가, 그리고 방송문학 박사 송 교수 네 명이었다.

    강인춘 PD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골 아프게 다 돌려 볼 것 없이, 각자 딱 세 개의 작품만 골라볼까요?”

    극본 작가 송예나가 대답했다.

    “그렇게 해요, PD님. 어차피 나중엔 극본까지 다 봐야 하는데.”

    기획 팀장 이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절약하면 좋죠. 다만 뽑으실 때 저희 입장도 좀 고려하셔서 제작 가능한 선에서 해결해 주세요. 허허...”

    “아이고, 그 잘 나가는 엠플릭스 아닙니까. 괜한 겸손은 마십시오. 껄껄껄...”

    마지막 말은 송 교수였다.

    “자, 그럼 시작하십시다.”

    강인춘 PD의 말에 다들 앞에 놓인 기획안들을 무작위로 집어 들었다.

    송 교수만이 눈치를 보며 기획안들을 들춰댔다.

    ‘젠장...어딨는 거야, 그 놈 건.’

    수백 개의 기획안들 사이에서 특정한 서류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손길은 집요했다.

    부스럭부스럭...

    ‘아. 찾았다!’

    그가 찾은 기획안의 제목은 <무너지는 날>

    송 교수는 <무너지는 날>과 함께 다른 기획안들을 한 뭉텅이 가져왔다.

    “크흠...”

    제일 먼저 <무너지는 날> 기획안을 살폈다.

    아니, 살피는 ‘척’을 했다.

    펄럭-

    송 교수는 <무너지는 날> 기획안은 바닥에 떨어뜨렸다.

    탈락작이라는 뜻이었다.

    펄럭-펄럭-

    다른 심사위원들도 탈락작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무너지는 날>은 그렇게 탈락작들에 덮여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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