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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21)
다시 사는 천재 작가 21
“미쳤어. 미쳤어!”
김미소는 자취방 침대에 누워 이불을 뻥뻥 찼다.
-현대적이지 못한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는...그러니까 낡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작가는 도태되는 걸까요?
“차라리 도태되는 중이라고 광고를 하지 그랬냐, 김미소!”
너무 부끄러웠다.
부끄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이상의 강의는 매혹적이었다.
노동문학을 버리고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가고 싶을 만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얄팍한 마음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수업 후에 그런 공격적인 질문까지 던진 것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도망치긴 했지만...
아무튼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노동문학이나 쓰는 나는 죽어야 하나...”
하지만 김미소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끌려하는 건 노동의 현장이라는 걸.
방학 때마다 온갖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부조리한 노동 현장을 몸소 느낄 만큼, 김미소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문학.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런 게 열등감인가...그 사람 얘길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괴리감이 느껴져. 다음 주 특강은 듣지 말자.’
그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김미소가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 이상입니다.
김미소가 벌떡 일어났다.
“...이상 작가님?”
-통화 괜찮으실까요?
“아, 예예...괜찮습니다.”
-아까 하셨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못 드린 것 같아서요. 늦지 않았다면 대답을 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질문을, 이렇게 전화까지 해서 대답을 주려 하다니.
김미소는 놀랐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낡고 고리타분한 문학은 도태되는 게 맞습니다.
김미소는 아랫입술을 씹었다.
‘역시...그런건가.’
하지만 이상의 대답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클래식한 문학은 영원하죠. 낡은 문학과 클래식한 문학은 분명 다릅니다. 그것을 구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문학에도 말이죠.
김미소라고 클래식과 낡은 것의 차이를 모르지 않았다.
클래식한 문학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빛을 발하는 것,
낡은 문학은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를 잃는 것을 뜻했다.
‘내 문학이 클래식이다 이건가...말은 쉽지.’
“...하지만 읽히지 않는다면 클래식도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요. 독자 없이 존재하는 문학이 무슨 의미인가요.”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시죠?
“그야...아무도 읽지 않으니까요.”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클래식을 배우는 건 힘이 들어요.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한 번 배워두면 평생을 즐기죠.
“하지만 새롭거나 현대적이진 않잖아요. 아까 말씀하셨죠. 현대적인 것을 찾지 못하는 작가는 게으른 것이라고요. 클래식은 과거를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클래식은 그 자체로 새롭고 현대적입니다. 노동문학을 쓰시니 노동문학으로 예를 들죠. 수백 년이 지나도 인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게 단순히 숨을 쉬는 일이라 해도요. 일은 인간의 존재 조건이죠. 그 존재 조건을 말하는 문학이 어떻게 낡을 수 있을까요?
이상이 역으로 물었다.
김미소는 이런 기분이 처음이었다.
자신을, 자신의 문학을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위로하고 감싸주는 말이 있었던가.
“필요한 건...시간인가요.”
-맞습니다. 김미소 작가님은 이미 예술가의 본문을 다 하고 계세요. 다만 독자들이 찾아서 읽을 시간이 필요한 거죠. 그들에게 시간을 주세요.
“....”
-좋은 작품은, 결국 읽힙니다. 버티는 건 작가의 힘이죠.
김미소는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제가 죽기 전에는 읽어주셨으면 하네요. 저도 이상 작가님처럼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거든요.”
이상은 전화 너머로 웃었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다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엇이죠?”
-흔들리지 말아주세요. 클래식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익숙함에 속아 본질을 잊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마세요.
“...명심할게요. 큰 힘이 되네요. 이상 작가님도 조만간 새로운 작품을 올리시겠죠?”
-그렇지 않아도 오늘밤 올릴 계획입니다.
“그런가요? 기대할게요. 이상 작가님만의 현대적인 스타일, 저는 아주 좋아하거든요.”
-영광이네요.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김미소는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상...뛰어난 작가인 줄만 알았는데, 뛰어난 달변가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달변에는...감출 수 없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오만할 줄로만 알았는데...마치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본 사람 같아.’
아무튼지간에, 신기한 사람이었다.
문학판이란 진흙탕 속에 혼자 당당하고 고고하게 핀 연꽃같기도 하고.
그녀는 잠시 후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다음 주 문학창작 특강을 수강신청했다.
***
일본 도쿄.
일본 내 주류 출판사 ‘도마크’ 본사.
제1 기획팀은 아침부터 긴장상태였다.
곧 무라카미 히루키가 신간 계약을 하러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구두 계약은 끝난 상태였지만, 서명은 아직.
계약서에 잉크가 스미기 전까진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히루키 전담 편집자는 도마크의 편집장 미쯔하루.
그는 어제부터 직원들을 들들 볶아가며 응접실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었다.
청소와 방향은 물론이거니와,
꽃시장에서 백합과 안개꽃을 잔뜩 주문했고, 시부야 유명 가게의 신선한 과일 주스를 공수했다.
무슨 오버를 저리 떠나 싶겠지만,
히루키의 계약은 출판사를 죽고 살리는 문제였다.
오후 두 시.
히루키는 산책을 오듯 도마크 출판사로 들어섰다.
편안한 청바지와 셔츠 차림.
매니지먼트 직원도 변호사도 없이 혼자였다.
노벨문학상을 노리는 대작가라는 명성에 전혀 개의치 않는 여유로움이었다.
미쯔하루는 히루키를 공손하게 맞아 응접실로 안내했다.
“오. 향기가 좋군요.”
“백합을 좋아하신다고 해서요. 여기, 주스라도 좀 드시면서 얘기 나누시죠.”
“케일 주스! 제일 좋아하는 건데.”
히루키는 반가워하면 주스를 마셨다.
건강을 중시하는 그의 취향을 한껏 고려한 보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히루키는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틈이 날 때마다 휴대폰을 바라봤다.
“뭘 그렇게 재밌게 보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요즘 흥미로운 글이 좀 보여서요. 출간 계약서를 좀 볼까요?”
미쯔하루가 고대하던 순간이 다가았다.
“기, 기다리십시오.”
기다리란 말이 무색하게, 미쯔하루는 테이블 위에 있던 파일에서 얼른 계약서를 꺼냈다.
선인세 일억 엔.
도마크가 기둥 하나를 내어 준 셈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히루키의 책은 항상 그 배의 배를 벌어다주었다.
“뭐...이미 합의되어 있는 대로군요. 마지막으로 확인할 겸 사무실에 있는 제 변호사에게 좀 보내도 되겠습니까?”
“예, 얼마든지요.”
‘역시 보통은 아니구나. 변호사 없이 계약을 할 리가 없지...’
히루키는 서류를 찍어서 변호사에게 보냈다.
변호사와 함께 왔으면 될 것을,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작가의 이미지는 ‘자유로움’
변호사나 매니저를 끼고 다니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작가에 대한 판타지를 채워주는 것도, 작가의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히루키였다.
다른 작가들에게 위화감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두 사람은 히루키의 변호사가 계약서를 확인하는 동안 아까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나저나, 흥미로운 글이라뇨?”
“아, 이것입니다.”
히루키는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건 짹짹이의 피드.
그곳에는 한국의 한 신인 작가에 대한 글이 가득했다.
“이...상? 이게 누구입니까?”
“올해 한국에 등장한 신인 작가입니다.”
“한국이요?”
미쯔하루는 의아했다.
프랑스나 독일도 아니고 한국의 작가?
일본 문학계는 한국 문학계를 은근히 깔봤다.
많은 문학 거성을 보유한 일본과는 달리, 한국 문학은 세계문학의 끄트머리에도 들지 못한 후발주자였다.
“그래요. 아주 재밌는 친구가 있어요. 문학과 독자에 대한 에티튜드라고 해야 하나요. 악동 같기도 하고 선구자 같기도 하고.”
“루키라 이거군요. 신인들만이 부릴 수 있는 패기죠.”
미쯔하루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이어지는 히루키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작품적으로는, 천재입니다.”
“천재요?”
“네. 천재요. 두말 할 것 없이.”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일본의 작가 히루키.
그 히루키가 말하는 ‘천재’ 작가.
편집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저도 작품을 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에 그의 신작이 올라왔어요. 첫 번째 작품이 올라오고 텀이 좀 있었죠. 어젯밤에 올라온 걸 보고 세 번이나 읽었어요. 대단해서 말도 안 나오던데요.”
“그런데, 벌써 번역이 됐단 말입니까? 책으로요?”
“아니요. 재일교포들 뉴스에 따르면 그는 홈페이지에만 글을 올린다고 해요. 독자들이 이백 엔 정도를 내고 작품을 사는 거죠.”
“하...그것 참...”
“자신감이 넘치죠? 출판사를 거치지 않는 작가라니.”
“제목이 궁금하군요.”
“제목은 <부활>입니다. 클래식하고 도발적이죠. 자신 있는 작가만이 붙일 수 있는 제목이에요. 저조차도 이런 제목은 좀 꺼리게 되는데...”
“화끈하군요.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주시면, 저도 한 번 봐야겠습니다.”
“이백 엔을 내시게요?”
히루키가 장난스레 물었다.
미쯔하루의 입장에선 그 장난마저도 의미있게 느껴졌다.
선인세 일억 엔을 받는 작가가 ‘도발적’라고 말하는 이백 엔짜리 작품이라.
“작가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작가라면, 이천 엔이라도 내야죠.”
“그러세요. 아,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군요.”
“앗. 그렇습니까.”
“음...네. 뭐, 괜찮다고 하는군요. 저도 동의하고요. 그럼 펜을 주시겠습니까?”
“네! 준비되어있습니다!”
편집장은 이날을 위해 사 둔 몽블랑 만년필을 내밀었다.
“싸인을 하시고, 가지셔도 됩니다.”
“뜻밖의 선물이군요. 고맙게 받겠습니다.”
히루키는 미소를 지으며 싸인을 했다.
***
<부활>은 성공적이었다.
올린 지 열두 시간 만에 결제 수 이천 사십 회.
세금을 제하고도 사백이 넘는 돈이 한꺼번에 떨어졌다.
가장 좋은 건...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일은 내일의 원고료가, 모레는 모레의 원고료가 들어올 테니까.
일본어 번역 페이지도 오백 회 가까이 결제가 됐다.
재일교포 인터넷 뉴스와 SNS의 힘이 컸을 것이다.
한국 SNS야 말할 것도 없고.
침묵하는 건 한국 문단뿐이다.
이슈가 다 죽은 후에야 잡지들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해대겠지.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였다.
별스타그램에서 쪽지가 왔다.
“...어? 한지온 작가?”
한지온 작가는 작년 가라사대 겨울호에 <수사기밀>을 발표해 문단의 인정을 받았다.
김한이 그녀의 스타일을 표절해 <난장>을 쓸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었다.
그런 한지온 작가가 내게 개인적인 쪽지를?
나는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쪽지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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