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7화 (1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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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16)

다시 사는 천재 작가 16

한국대학교 국문과 회의실.

학과장 김진하 교수를 비롯한 일곱명의 교수진들이 날 맞이했다.

“저쪽에 앉으시죠.”

학과장은 내게 그들의 앞자리를 권했다.

마치 신입사원 면접처럼.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 선생.”

“뭘요. 만나주셔서 제가 더 영광이죠.”

“먼저 등단 축하드립니다. 우리 모두 소설을 아주 재밌게 봤어요.”

대화는 일단 부드러운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괜히 얼굴 붉힐 필요 없다는 거지.

하지만 이내 날 판단하려는 듯 고루한 시선들이 날 훑는다.

“본론을 좀 꺼내보자면,”

학과장이 입을 열었다.

“우린 이상 선생이 국문과 교양 강의를 맡아줬으면 해요.”

“맞아요. 결코 나쁜 자리가 아닙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다른 과 학생들도 많이 들을 테니까요.”

옆자리에 앉은 교수가 학과장을 거든다.

잊지 말자.

여긴 신입 사원 면접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이 교수들은 아마도 모두 한국대학교 출신, 엄격하게 따지면 내 후배들이다.

저기 구석에 심드렁하게 앉은 노교수조차도.

“나쁜 자리가 아니라면, 다른 훌륭한 강사님들께서 맡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다들 눈을 크게 떴다.

교수 말에 죽고 사는 새내기 강사가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나는 작가다.

교수를 꿈꾸는 강사가 아니라.

“제가 맡기로 한 과목은 조인창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문학창작 특강이기 때문입니다.”

학과장이 펜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이상 선생이 그리 유쾌한 기분이 아니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저희의 입장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입장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솔직하게, 아주 툭 까놓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해주십시오.”

“문학창작 특강은 국문과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듣습니다. 아니, 인문대는 물론이고 공대에서도 들으러 옵니다. 시나 소설, 비평 최종심에 이름을 한 번쯤 올린 학생들도 많아요. 개중엔 크고 작은 곳에서 등단한 학생도 있습니다.”

“그것 참 영광이군요.”

“그 학생들은 다른 수업에서는 그리 눈에 띄지 않으나, 창작 특강에서는 다릅니다. 다들 콧대가 아주 높지요. 함께 모여 있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해야 하나요.”

“그건 제가 강사로서 감당할 문제입니다.”

“학생들의 클레임을 받는 건 저희 교수진들입니다. 학교가 옛날 같지 않아요. 자기 권리를 찾고 따지기 좋아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아졌죠.”

“그 학생들이 무엇을 따진다는 말씀입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더 묻진 않았다.

그들은 내 학벌을 걸고넘어지고 있었다.

조금 억울한데?

공대 출신이긴 해도 난 당신들의 선배인데.

“저희도 다 이상 선생의 글을 인정합니다. 이상 선생이 시상식에서 말씀하신 문단의 문제에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요. 저희도 국문학 연구자로서, 문단의 폐해를 많이 봐왔습니다. 하지만 학교란 곳도 문단과는 분리된 또 다른 사회입니다. 저희만 좋다고 모든 일을 진행할 순 없어요.”

공감과 동시에 선을 긋는 유려한 화술.

한국 최고의 대학 학과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

옆에 앉아 있던 교수도 덩달아 거들었다.

“그래서 저흰 이상 선생께 교양 강의를 맡기되, 1년 계약으로 하고 그 뒤에 계속 재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할까 합니다. 웬만한 일이 없으면 계속 강의를 하실 수 있는 거죠.”

“박 교수님 말이 맞습니다. 이상 선생. 특강은 계약이 아니라 한 회 한 회 일정 수 이상 수강생이 차야 진행할 수 있는 강의입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불안하죠. 조인창 선생님쯤 되시니 수십 년간 계속 이어오신 거고요. 이상 선생이 당장 다음 주 특강을 하신다 해도, 그 다음 주면 수업이 사라질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런 리스크를 감당하느니, 안전한 교양 강의를 맡으시는 게 낫지요.”

음...알 것 같다.

이들은 단순히 강의경력을 쌓아야 하는 제자의 밥그릇을 챙겨주려는 게 아니다.

교수들은 기본적으론 선생이다.

하지만 강사를 책정하는 일에는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돈을 좇는 경영자가 아닌, 학과를 안정적으로 굴려야 하는 경영자.

그러니 불꽃처럼 타오르는 강의엔 학벌이 좋은 강사로,

안정적이고 형식적인 강의엔 학벌이 어중간한 강사를 배치하려는 거다.

문제는 내가 저들의 경영자적 마인드에 넘어갈 마음에 없다는 거지.

“지금 저 같은 한낱 강사에게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이유는, 조인창 교수님을 설득할 근거가 필요하신 것이겠지요.”

교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조인창 교수님의 추천이 아니라 저의 선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단순히 강의를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 특강을 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다른 학교의 강의도 포기한 것이고요. 이해하십니까?”

“하지만 이상 선생.”

“학과장님께서는 학벌주의를 반대하시겠지요?”

내 질문에 학과장이 당황한 듯 안경을 치켜 올렸다.

“...반대합니다.”

“압니다. 저는 여기 계신 그 어떤 교수님도 학벌주의를 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특강의 교단에 서는 것도 개인적으론 반대하지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 교수님들 말에 따르면, 문제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에게 있으니까요.”

학과장이 펜으로 테이블을 탕, 하고 찔렀다.

“그 학생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상 선생.”

“제가 자신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뭐라고요?”

“저는 특강을 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원성을 사지 않을 자신도 있고요. 그러니 교수님들께서도 조금만 용기를 내셔서, 딱. 딱 한 회만 제게 수업을 맡겨주십시오.”

“흠...”

“한국대학 국문과가 진정으로 학벌주의를 타개하고 싶으시다면, 한 회 정도의 여유는 있으실 텐데요. 그 한 회 이후 제가 수강생 유지를 못 하면, 저는 다시는 한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지 않겠습니다.”

“거 참! 그 자리, 보통 자리 아닙니다. 조인창 교수님께서 어떻게 수십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셨겠습니까? 적어도 이 대학 학풍을 잘 아는 사람이 맡아야-”

박 교수라는 사람이 언성을 높였다.

나는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렇게 기존의 명성에만 기댄다면, 과연 그 누가 그 강의를 이어받을 수 있을까요? 비슷한 학벌, 비슷한 학풍의 누군가가 앵무새처럼 조인창 교수님의 가르침을 반복해야 하는 겁니까? 누군가는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단순히 그 자리를 물려받는 게 아니라요. 저는 그것이 그 자리를 내어주신 조인창 교수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저...학과장님, 가만히 계시지 말고 말씀 좀 해보세요.”

탁.

학과장이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박 교수는 붉으락푸르락해서 안달이 난 얼굴이었다.

“그, 한 번 맡겨 보시지요. 학과장님.”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노교수가 말했다.

...한 마디를 들었을 뿐이지만, 느낌이 왔다.

교수사회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 바로 연차다.

게다가 다 같은 한국 대학 출신이라면 이 노교수가 가장 선배, 즉 실세일 터.

“나도 내 후배 강사들만 보니 지긋지긋해서. 학풍을 좀 섞어 줄 필요가 있지 않나.”

“심 교수님...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학과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심 교수란 노인은 이번엔 내게 말했다.

“젊은 사람 패기가 마음에 들어요. 아주 매력적이라 강의도 잘 할 것 같아요. 단, 학과장님의 말씀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명심해 줬으면 해요.”

“말씀이라면...”

“그 수업, 쉽지 않을 거라 이 말입니다. 아주 되바라진 녀석들이 많거든요.”

***

“야.”

금홍이 한참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언제 왔는지 장선미가 그녀를 불렀다.

“아...네, 선배님.”

조교와 사무원의 호칭은 피차 ‘선생님’이었다.

사무원의 신분은 졸업생이고

조교의 신분은 대학원생이다.

상하관계가 성립되지 않기에 관계는 동등했다.

하지만 장선미는 금홍을 여전히 후배처럼 다뤘다.

“혜경 선배는?”

“조기 퇴근 하셨어요.”

“교수님 택배 온 건?”

“택배는 저 쪽에 있어요.”

금홍이 학과 택배를 쌓아두는 공간을 가리켰다.

각 방 조교들이 알아서 찾아가는 시스템이었다.

“야. 네가 먼저 교수님들 거 찾아서 추려뒀어야지.”

금홍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저 선배는 왜 예전부터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낯을 좀 가려서 그렇지, 금홍의 성격도 보통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은 자신이 후배고 계속 볼 관계니, 참기로 했다.

“...잠시만요.”

금홍은 쌓여있는 택배들을 살폈다.

이현강 앞으로 온 건 하나였다.

그것은 꽤나 크고 무거운 데다가, 이상한 냄새까지 났다.

‘...뭐지? 따로 보관해야하는 택배면 나한테 얘길 했을 텐데?’

금홍은 이상하다 여기며 상자를 낑낑거리며 들었다.

금홍에게 가다온 장선미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냄새야? 야. 너 택배 관리 제대로 안 했어?”

“네?”

“교수님 후배 중에 한 분이 대게 보낸다고 했단 말이야. 네가 잘 받아뒀어야지.”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따로 관리해야 할 택배가 있으면 미리 말씀을 하셨어야죠.”

“뭐래... 여기서 일하는 네가 알아서 관리를 했어야지.”

“제가 이게 대게인지 책인지 어떻게 알아요? 제가 택배 상자를 뜯기라도 해야 해요?”

금홍은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장선미의 신경을 건드린 게 분명했다.

“아하...그래? 그럼 줘.”

“....”

“내놓으라고.”

장선미는 박스를 빼앗듯이 가져갔다.

금홍은 황당해서, 그 자리에 멀거니 서 있었다.

“뭐야, 저 여자...”

장선미는 항상 이런 식으로 히스테리를 부리고 간다.

그것도 혜경이나 지훈이 없을 때에만.

하지만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Rrrrr....

금홍이 전화를 받았다.

“네. 문예창작학과입니다.”

-너, 이현강 교수님 교수실로 올라와.

...또 장선미였다.

금홍은 불길함을 느끼며 이현강의 교수실로 갔다.

매캐한 담배연기 사이로 헤집어진 택배 박스가 활짝 열려 있었다.

잔뜩 썩어 악취를 풍기는 대게.

이현강은 금홍을 노려보며 말했다.

“넌 사무원이 기본적인 물건 관리도 못 하나? 이게 대체 뭐야?”

“아...죄송합니다. 하지만 생물이 온 줄을 몰라서요. 연락을 받았으면 제가 따로 챙겨놨을 텐데.”

“지금 내 앞에서 잘잘못을 따지려고? 아니면 장 조교가 내게 거짓말이라도 했단 거야?”

이현강이 따져 물었다.

장선미가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교묘하게 금홍의 탓으로 몰고 간 게 분명했다.

금홍은 상황을 설명하길 포기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쯧...이래서 여자 사무원은 안 된다니까.”

금홍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어떻게 2021년도, 게다가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교수란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다니.

금홍은 너무 놀라 무심결에 장선미를 보았다.

그러나 장선미는 그저 기세등등할 뿐이었다.

‘...저런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다고?’

금홍으로선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서 치워.”

“...아, 네.”

금홍이 얼른 상자를 들었다.

이곳에 있으니 썩은 대게와 나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현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학과 개편 보고서는?”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다음 주까지 학과 개편 보고서 내라고 했잖아. 김혜경한테 못 들었어?”

“...못 들었는데요.”

“교학팀은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긴 했지만, 금홍은 혼란스러웠다.

학과 개편 보고서?

그런 엄청난 일거리를 왜 문창과 사무를 총괄하는 자신이 모른다는 말인가.

또, 혜경이 알고 있었다면 왜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나.

“김혜경한테 전해. 밤을 새서라도 꼭 해오라고.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금홍은 얼른 교수실에서 나왔다.

닫혀가는 문틈 사이로, 장선미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뭐야, 대체.”

금홍은 울고 싶은 심정으로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한번 해 보시죠, 이상 선생.’

결국 학과장의 허락을 얻어냈다.

끝까지 탐탁지 않은 반응이긴 했으나, 그게 어디냐.

후련함 반, 특강에 대한 걱정 반.

묘한 기분으로 한국대학교를 막 나섰을 때였다.

벌써 해가 져서 밖이 어둑했다.

“어이. 이상 선생.”

누군가가 날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심 교수가 구식 소나타를 타고 있었다.

“아, 교수님. 이제 들어가십니까.”

“그래요. 가려고.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서.”

“뭡니까?”

“자네, 지도교수 이현강이랑 사이 안 좋지?”

...?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내 생각이 눈에 보였는지 그가 끌끌 웃었다.

“사이가 안 좋으니 표절 사태 때 지도교수 얘긴 한 마디도 안 했겠지.”

이 노교수,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숨길 일은 아니지.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자네 좀 곤란하겠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대학원생은 외부 강의를 하려면 지도교수의 허가가 있어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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